#198
모이는 영웅들
디에고는 일행을 신전에 내려주고 빠르게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디에고를 붙잡은 것은 노리스였다.
“그가 왔군.”
“예?”
벌써 빠져나왔다는 건가?
디에고가 돌아본 곳에는 검은 안개를 헤치며 에드가 나타났다. 옆구리에 날개가 찢어진 머리가 사라진 시체 하나가 끼어 있었다.
“형?”
그 형태가 자신들을 쫓아오던 대악마를 닮았다는 것에 디에고가 당황해 할 때 에드는 신전 안에서 달려온 아린에게 그 시체를 건넸다.
“이건 아무래도 신전 안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 같네요.”
“일단 들어가 보죠.”
에드는 대악마의 시신이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거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아린은 개의치 않고 에드에게서 받아든 대악마의 시체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체라 그런지 아무런 문제 없이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나 보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니 날아온 것은 아루스였다. 날아온 아루스는 그대로 에드의 품에 머리를 박았다.
쿵!
이 자식이!
코끼리만한 무게를 가진 놈이 이렇게 날아와 박으면 살인 미수다!
에드는 그래도 자신의 품에 안겨서 머리를 비비는 아루스를 안아 들었다. 무거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품에 안으니 묘하게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반려용을 키우는 건가?
아린은 대악마의 시체를 가지고 신전을 지키는 술법진의 중심에 가지고 갔다. 그곳에는 베네딕토 대신 아론이 신성 마법진을 펼치고 있었다.
아린은 그 마법진을 바라보며 에드에게 물었다.
“이곳을 더 강화하고 싶어요. 이들과 함께 제물로 바쳐도 될까요?”
에드는 대신전을 돌아보았다. 하긴 아린은 충분히 대악마전에서도 통할만큼 강해졌다. 그리고 계속 신성력을 얻어가다 보니 약간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그녀가 그녀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다른 이들이 강화되고 대신전의 안전을 얻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린은 대악마의 시체를 마법진의 중앙으로 가지고 갔다. 그 시체가 품고 있는 마력에 모인 이들 모두 기겁하는 사이에 아린이 마법진의 중앙에 대악마의 시체를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 아스트론에게 기도하죠.”
말을 마친 아린이 대악마의 시체에 손을 올리자 성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성화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타오르다가 곧 마법진 전체를 성화로 뒤덮었다.
분명 위험해 보임에도 기도를 올리던 사제들은 모두 눈을 감고 기도했다.
그렇게 모두가 기도하자 성화는 점점 강해졌고, 삽시간에 대악마의 시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성화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모든 술법진은 저렇게 만들었던 걸까?
타오르던 가공할 성화는 검은 안개를 태우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대악마들이 만든 결계가 깨지기라도 한 건지. 단숨에 하늘까지 치솟은 불길이 곧 신성력의 폭포로 변했다.
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서 신이 강림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곳에서 대악마들이 하려는 계획은 신들에게도 위협인지 그들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신성력만 내려보냈다.
그리고 그 신성력은 술법진에 서 있던 사제들에게 스며들었다.
아마도 저 사제들은 평생 이런 기회를 얻어보지 못했으리라.
실제로 하급 악마조차 잡는 성기사가 드물 정도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대악마의 일부라도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놀라울 정도이리라.
그렇게 스며든 신성력에 사제들은 희열을 느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아루스도 그 빛의 폭포를 보고는 냉큼 에드의 품에서 벗어나 빛줄기 속을 날면서 신성력을 만끽했다.
그러고 보니 아린이나 아론은 이제 익숙한 일이지만, 신성력이 얕았던 저들에게는 평생 얻었던 신성력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신성력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희열일 터.
그리고 모든 사제가 신성력이 강화시키고도 남은 신성력은 술법진에 스며들었다.
대악마 하나의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신성력은 아린과 아론만으로 충분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린과 아론이 덜 받아내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아스트론이 더 많은 신성력을 내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쏟아지던 빛이 끝났다고 여긴 순간 하나의 신성력 구체가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될 만큼 구체는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체는 그대로 날아와 에드의 활로 스며들었다.
에드는 굳이 피하지 않았고, 그렇게 스며든 빛으로 활은 눈부시게 빛나다가 다시 제 색을 찾았다.
에드는 아스트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에드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공격력이라면 대악마들에게도 통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악마에게 이길 수 없다.
차라리 방어구를 강화해 주지.
이번에 대악마와 1대1로 싸워서 이긴 것도 사실은 카루아리스의 가죽옷의 방호 능력 덕분이었다. 저항력이 높았던 것인지 아니면 언령 방어에 특화된 것인지 몰라도 덕분에 살아남았다.
에드가 바라보는 가운데 하늘에 뚫렸던 구멍은 메워졌고, 그곳은 다시 검은 안개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대신전을 감싼 신성 마법 보호진이 더욱 넓어졌다. 대신전만이 아니라 주위 영역까지 넓힌 덕에 신의 보호가 지켜주는 곳이 넓어졌다.
마리포사가 그걸 보고는 투덜거렸다.
[알박기로군.]
“알박기?”
[대악마들의 계획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려고 애쓴 것 같지만,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왕도는 사라질 거다.]
마리포사의 단언에 에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왕궁 전체에 걸어놓은 술법진이 무엇인지 몰라도 만약에 그게 제대로 발동한다면 왕도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 말.
농담이 아니다.
당연히 그럴 만한 위력을 품고 있었으니까.
대악마 하나를 줄였다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엠마가 달려왔다가 구해온 이들 중 브란트가 없는 것을 보고는 비틀거리자 디에고가 그런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엠마는 디에고의 품에 안겨서 물었다.
“아빠는?”
디에고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의 곁으로 다가간 에드가 손을 내밀어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구해올 수 없었어. 아무래도 저들과 결착을 볼 때나 구할 기회를 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어.”
엠마가 그 말에 고개를 숙였을 때 디에고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내가 꼭 구해올게. 약속해.”
에드는 자신도 쉽게 못 한 약속을 하는 디에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런 결심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 테니까.
에드가 그곳을 벗어나려고 이동할 때 아루스가 날아와 머리 뒤에 매달렸다.
코끼리 무게를 목 하나로 버티는 것이 가능한 것을 보면 확실히 이 몸도 초인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에드는 아루스를 거의 목말 태우듯 데리고 베네딕토를 찾아갔다. 그는 신성 마법진을 작동하고 있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아스트론의 눈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저 이적은 자네 덕분에 일어난 것 같군.”
“대악마의 시체 덕분입니다.”
베네딕토는 드물게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국왕과 공주를 구해왔다는 것을 들었다. 그들을 구출하면서 대악마까지 잡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네는 정말 신이 이곳으로 보낸 희망과 같은 존재군.”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신인지 아닌지 몰라도 자신을 이곳으로 집어 던진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그보다 펜드래건님은 언제 도착합니까?”
“그게 궁금해서 온 건가? 마틴 대주교는 이 속도로 온다면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거네.”
닉과 퓨리를 데리고 가서 데리고 오면 좋겠지만, 이 검은 안개는 그리 쉽게 뚫을 수 없었다. 아루스의 브레스가 뚫을 수 있지만, 그게 언제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대악마의 수를 줄였지만, 저들은 군대를 가지고 있어요. 제대로 싸운다면 대악마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울 겁니다.”
에드의 말을 들은 베네딕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일은 아니군. 그래도 다행이라면 3영웅이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네.”
“다른 이들과도 연락이 닿은 겁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신전에 들러 자신들이 왕도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 덕분이지. 아마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것 같네. 그들이 도착한다면 어떻게든 싸워볼 만하지 않겠는가?”
에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안개 때문에 신전 밖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리포사. 혹시 저들의 술법이 완성될 시간을 알 수 있어?”
[시간은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어. 아마도 제물의 수로 시간을 앞당기고 있는 것 같은데. 처음 도착할 때만 해도 사흘은 남은 것 같더니 이틀로 줄었어. 어쩌면 내일이면 왕도 전체를 가라앉게 할지도 몰라.]
“끔찍하군.”
그래도 3영웅이 돌아온다는 건 그들과 함께 하는 악마의 시대 2의 주인공들도 온다는 말이다.
메르헨과 제라드가 온다.
그들의 전력까지 더한다면 저 군대를 관통해 대악마들을 죽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시간을 늦춰야겠네.”
[어떻게?]
“왕도에 사는 이들을 끌어모아 대신전으로 데리고 와야지.”
[그게 가능하겠어?]
“너도 도와줘. 낙원으로 보낼 수 있는 최대 인원을 보내고, 안개를 이용해서 도와준다면 그만큼 제물의 수가 줄어들 테니까.”
[저 검은 안개 때문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돕도록 하지.]
에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대악마들도 이번에 따로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니 팀을 나눈다.
에드의 설명을 들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구울이 되지 않은 왕도의 시민을 구하는 것.
대악마들의 계획이 왕도를 가라앉히는 것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단순히 왕도의 사람들이 죽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가 위태롭다. 그러니 그들의 계획을 최대한 늦추면서 아군을 기다린다는 말에 모두 수긍했다.
“그래서 팀을 나누겠습니다.”
팀은 총 세 개.
아린과 덱스, 디에고.
노리스와 론멜 아론.
에드와 마리포사, 아루스가 팀을 이뤘다.
각 팀에는 신전의 수사들이 열 명씩 붙어서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최대한 살아남은 이들을 구출해서 데리고 오는 것. 가능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람들을 구해오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인지 수사들도 아스트론의 눈에 소속된 이들로 은밀한 이들을 추려냈다. 아티펙트를 이용한 것인지 기척을 완전히 사라지게는 못했어도 은밀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다른 기척으로 시선을 끈다면 그들의 기척은 느끼지 못할 정도.
그렇기에 그들과 함께 은밀히 이동해서 사람들을 구해오기로 했다. 집에 가족별로 숨어 있는 이들은 어쩌지 못한다고 해도 구역별로 사람들은 모였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덕분에 표적이 되어서 하나둘 쓰러지고 있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 곳을 구출하기로 했다.
아린은 에드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에드. 괜찮겠어요?”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셨잖아요. 대악마를 잡아온 것을요.”
아린도 깜짝 놀랐다. 에드가 혼자서 대악마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가 대악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은 그의 곁에 설 이유가 없으니까.
아린의 표정을 본 에드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또 대악마를 혼자 잡겠다고 나설 이유는 없어요. 그건 너무 위험하더라고요.”
언령 공격을 받아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지 굉장히 위험한 전투였다. 그런 위험한 도박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말 잊지 마요. 위험하다 싶으면 반드시 도망쳐요.”
“물론입니다.”
도망이라면 얼마든지 칠 수 있다.
에드의 확답을 들은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팀을 이끌고 움직였다.
아린이 떠나고 나자 노리스가 다가왔다. 에드는 그런 노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노리스. 혹시 카루아리스의 소식은 아십니까?”
홍련왕이 돕는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그때 떠난 이후 소식이 없었다.
노리스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홍련왕께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대악마들이 왕도를 가라앉히려는 것이 대혼란의 가장 중요한 핵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일이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 해야 할 일은 그것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무사하시길.”
가볍게 반장을 해 보인 노리스의 팀이 떠나고 나자 에드도 곧장 움직였다. 에드가 향한 곳은 빈민가 쪽이다. 빈민가에는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이들은 없지만, 인원만을 따진다면 가장 많은 이들이 밀집되어 있을 터.
그곳의 사람들을 구하기로 했다.
에드가 수사들과 함께 이동한 곳은 빈민가에 마련된 구호소. 브란트가 만들어서 이용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천이 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대악마도 안다. 역사의 분기점이 될만한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빈민가의 인물들은 그저 필요한 원념을 채우는 연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면서도 살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이들도 끌어모아서 술법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그들도 공격 받고 있었다.
에드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가왔을 때는 이미 구울을 이끌고 나타난 상급 악마가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에드가 가볍게 혀를 차고 상급 악마를 죽이려고 움직일 때 구울들의 공격 속에서도 어떻게 아직도 이들이 건재한지 알 수 있었다.
구울의 머리에 박히는 화살들이 있었다.
그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던 에드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급 악마를 향해 날아가는 새하얀 불꽃과 푸른 얼음이 가시처럼 솟구쳤고, 상급 악마가 그것을 막아내려다가 반이 불타고, 반이 얼어 버리는 형태로 죽어버렸다.
상급 악마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신비술.
그곳에는 메르헨이 있었다.
“에드!”
반갑게 인사하는 메르헨을 보며 에드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얻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