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78화 (178/202)

#178

고백

달리아 왕국군의 보급을 해결해 주었고, 젝스 대장군과 그와 관련된 수뇌부를 구금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귀족들을 공격했던 것이 사실은 대악마의 농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달리아 왕국군은 큰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젝스 대장군 휘하의 병사들과 모병되어 온 병사들이 에스터 공주의 명령에 따라 바튼 공의 지휘 아래에 하나로 뭉쳤다.

병사들은 대의를 위해서 모였다고 했지만, 언제나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을 만큼 보급이 불안정했다. 바튼 공은 지금까지 젝스 대장군이 쌓아놓았던 보급품을 풀어서 그들의 마음을 토닥여줬다.

그리고 에스터가 수호 기사 캄벨과 구금되었던 귀족 중 외교관을 찾아서 최정예 레인저 부대를 대동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스터도 에드와 함께 움직일 생각만 했다. 이미 달리아 왕국 수도 인근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으니까. 왕국 전체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백성들은 피해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당당하게 이동했다.

그들은 달리아 왕국군의 사절로 트라비아 왕국을 향해 이동했다.

에드 일행도 그들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에드는 다크와 아린의 백마를 마차에 연결했고, 그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대악마 네프사엘이 죽어서 집요하리만치 쫓아오던 마물들이 없어진 데다가 사절단이 함께하는 중이니 에드가 움직여야 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에드는 아린과 단둘이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린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엠마가 없으니 그녀를 책임지고 돌보는 중이기도 했다.

에드는 마치 잠이 든 것 같은 아린을 바라보았다. 피부 아래에서 은은한 푸른 광채가 나는 모습을 보면 아스트론 교단의 성녀라고 해도 이만큼이나 신비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렇게 됐을까?

아스트론은 벌써 두 번째 대악마를 제물로 받았다. 그럼 뭔가 보답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녀를 왜 재웠단 말인가?

에드는 턱을 괴고 아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다시 보니 참 아름답다. 세계적인 조각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에드는 손을 내밀어 흘러내린 아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긴 에드는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를 만나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와 함께하면서 에드도 본격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중에 대악마 사냥이 압도적인 경험치를 주고 있었다. 라그록스를 죽이고, 네프사엘과 네비로스를 죽였다. 젝스 대장군까지 더해서 모두 7레벨의 상승.

30레벨 이후에 레벨을 올리기가 극악한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빠른 성장이었다.

에드는 그 모든 것이 아린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이렇게 성장해서 대악마들을 죽이다 보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여인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정했다.

에드가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아린이 문득 눈을 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을 떠서 에드는 그녀가 눈을 뜬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잠시 그녀가 눈을 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만히 에드를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어 에드의 뒷목을 잡았다. 그제야 그녀가 깨어났음을 깨닫고 몸을 빼내려는데 이미 에드의 몸은 기울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허리를 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생각도 못 했을 정도로 큰 힘이었다. 근력에 투자하지 않았다고 해도 레벨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오른 근력만으로 에드는 이미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런데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끌려 내려간 에드는 그녀와 입을 맞췄다.

아린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건 아린이 아니지 않은가?

에드가 다시 힘을 주자 이번에는 천천히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에드의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것을 보고 아린은 눈웃음을 지었다.

“왜? 싫어?”

“아스트론. 이런 장난질은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을 믿고 따르는 당신의 검에게도 할 짓이 아니고요.”

그제야 아린은 눈웃음을 지었다.

“바로 알아챘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에드도 옆에 있는 것이 저릿거릴 만큼.

대악마를 제물로 받더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걸까? 어쩌면 신들도 격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에드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똑바로 앉자 아린도 몸을 일으켜 마차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시트라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시트라의 화살. 에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설마 그녀를 견제해서 온 걸까?

보상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아스트론은 손을 들어 에드를 가리켰다.

“그래서 나도 선물을 줬어.”

“선물이요?”

아스트론의 손이 향한 곳에 에드의 입이었다.

“내 영광을 내렸어. 언제든, 내 이름을 외치는 순간 네게 내 가호가 깃들 거야.”

에드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그리고 바다사자에게 빼앗긴 입술을 떠올렸다. 젠장!

드루이드에게 입술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여신에게도 빼앗긴 걸까?

무엇이든 짜증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가호를 받고 싶다면 아스트론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물론 악마를 잡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백 번이든 천 번이든 불러줄 수 있다.

“시트라처럼 도움이 되는 것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시트라의 화살은 성유물들을 모아서 만든 것인지 몰라도 그 위력 하나는 확실했다. 다이렉트로 시트라에게 제물이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면 가장 좋아할 화살이었으니까.

하지만 일행의 성장이 필요했다. 신에게만 도움이 될 것이 아니라.

에드의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아스트론이 빙결의 활을 집었다. 그리고는 활을 만지자 그녀의 신성력이 안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는 활을 보니 이건 성유물 정도가 아니다. 지금 당장 총본회에 가지고 가도 최상단에 걸릴 수 있는 성유물이다.

아스트론은 활을 계속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아무 화살이나 들고 쏴도 성유물 정도의 위력이 날 거야. 하지만.”

아스트론이 활의 시위를 천천히 당기며 말했다.

“아스트론이여. 제게 영광을 내리소서.”

아스트론의 말이 끝나자 활의 시위로 세 발의 화살이 나타났다. 그것은 오직 신성력으로만 이뤄진 화살.

“내게 기도를 올릴 것 같지는 않으니 네가 쓸 수 있는 화살은 세 발이 한계야. 하지만 이건 네가 원하는 곳에 무조건 적중할 수 있는 화살이야.”

“무슨 뜻입니까?”

“공간을 격하고 맞출 수 있다는 거지. 목표만 정해 놓으면 끝이야.”

에드는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성력으로만 만들어졌기에 물리력은 기대할 수 없는 화살이다. 하지만 백발백중이라면 지금까지와의 전투 양식이 달라질 정도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스트론은 맑게 웃더니 윙크했다.

“하는 거 봐서?”

그리 말한 아스트론이 손을 내밀어 에드의 양 뺨을 잡았다. 그리고 가까이서 눈을 마주 바라보더니 말했다.

“트라비아 왕국에 왜 대악마들이 가장 많은 줄 알아?”

“대륙의 중앙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니. 그곳에서 지옥의 문이 열렸었기 때문이야.”

아스트론은 눈웃음을 짓더니 에드의 양 뺨을 놓아주었다.

“대악마가 셋이 죽었어. 대륙에 올라와 있는 다른 대악마들도 그들의 부재를 알게 됐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상급 악마들과 중급 악마들이 악업을 쌓기 위해 세계를 뒤흔들 거야.”

상급 악마나 중급 악마 모두 에드에게는 손쉬운 상대들이다. 고작 세 발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 위력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세계의 대혼란에는 잠들어 있던 자들도 깨어나게 될 거다. 그들은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지.”

아스트론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최선을 다해라. 그리하면 보답이 있을 테니.”

에드는 아스트론이 운을 띄우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

일종의 심상이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집어 던졌던 그 여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 아스트론이 좋은 미끼를 던졌다.

에드가 고개를 끄덕일 때 아스트론이 슬쩍 밖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노리스의 나침반이 작동할 거다. 그리고 너희는 쉴 틈이 없을 거야.”

그건 오히려 환영이다.

대악마든 상급 악마든, 중급 악마든. 놈들을 죽이는 것은 이제 에드에게 있어 일상이자 삶의 목표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달콤한 보상도 기다리고 있다면 더더욱.

“그런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아스트론은 자신의 입술을 만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가 용기가 없어서 내가 대신해 준 거란다.”

그리 말한 아스트론의 격이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아린이 눈을 떴다.

살짝 상기된 그녀는 기억이 나지 않는지 에드를 바라보고, 주위를 살폈다. 그 모습은 진짜 같았다.

“여기는 어디···?”

에드는 그녀가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여신의 축복이 담긴 키스가 아니라 그녀와 키스하고 싶었다.

에드가 다가가 그녀의 양 뺨을 잡고 입을 맞췄다.

아린의 눈이 흡 떠졌다가 천천히 감겼다. 그렇게 둘의 입맞춤이 이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둘은 지금까지 못해왔던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서툴면서도 진심을 담아 입을 맞췄다.

호흡이 부족해서 입을 떼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입을 맞추고 있었으리라. 에드가 입을 떼고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 아린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둘 다 너무 서툴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한참을 웃던 에드와 아린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동료에서 연인으로.

그 선을 넘어선 한 걸음임을 서로가 인지하자 그저 손만 잡고 있어도 미소가 그려졌다.

“···왜 그랬어요?”

아린의 물음에 에드는 솔직히 답했다.

“좋아서요.”

아린이 오히려 얼굴이 붉어졌을 때 에드가 말을 이었다.

“아린. 좋아해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더는 드루이드나 여신에게 입술을 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에드의 고백에 아린이 얼굴을 더욱 붉혔을 때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생각해 보니 이 인간들. 하나같이 초인적인 청각을 가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심안으로 읽을 수 있는 이들까지 있다. 아스트론이 강림했을 때야 그녀가 손을 썼을지 몰라도 에드와 아린은 그런 것을 할 줄 몰랐다.

그러니 둘의 고백과 입맞춤은 모두 들었으리라.

에드가 마차의 문을 열자 말을 타고 이동하던 노리스를 필두로 론멜과 일행 모두가 보였다.

다른 마차를 타고 있는 테인과 디에고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웃는 낯으로 자신과 아린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이들에게 뭘 숨긴단 말인가?

그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에드는 아린의 손을 잡은 채로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할 말이 있어요.”

덱스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어찌나 뜸을 들이던지 내가 대신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제라도 고백했으니 다행이네.”

론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잡는 것은 대륙 최고면서 고백은 어찌나 못하던지 못 봐주겠더군. 그래도 다행이야. 이제라도 해서.”

이 인간들이 약점을 잡았다고 좋다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에드는 그런 그들의 웃음과 반기는 분위기에 손을 내밀고 말했다.

“좋아요. 솔직히 말하죠. 저 아린 좋아합니다. 고백도 했고요. 우리 사귈 거예요.”

에드가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하는 말에 그들은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에드는 그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 할 말이 있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할 말이 있나?”

에드는 웃음기를 지우고는 말했다.

“아스트론이 말하기를 대악마들의 부재로 대혼란이 일어날 거라고 합니다.”

“대혼란?”

“잠들어 있던 자들이 깨어나고 그들은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예언도 함께요.”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노리스의 표정은 한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짜 그리 말했습니까?”

그가 워낙 진지해서 에드가 오히려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겁니까?”

노리스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잠든 자들. 그중에는 쌍룡사를 세운 홍련왕 카루아리스도 계시니까.”

에드는 그 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홍련왕 카루아리스는 드래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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