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연계
“도와라! 네비로스!”
네비로스의 정수를 잘린 팔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네프사엘의 마력을 무서울 정도로 집어삼키며 네비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비로스는 촉수를 가진 대악마. 네프사엘의 잘린 팔의 단면 사이로 촉수가 무섭게 꽃처럼 피어나며 줄지어 날아오는 화살을 받아냈다.
콰콰콰쾅!
박히는 화살이 일제히 폭발하며 촉수가 넝마가 되었지만,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네비로스의 정수도 힘이 크게 줄었다.
네프사엘은 눈을 반짝였다. 잘만하면 네비로스의 약해진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얻으면서 대악마 그 이상의 위계에 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몸을 옥죄는 드레드는 여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네프사엘은 전력으로 염력을 써서 드레드의 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근력만으로 풀어내는 것은 무리지만 염력을 함께 사용한다면 얘기는 다르다.
드레드의 몸이 드드득 풀어내는 사이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에드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어느새 활을 어깨에 걸치고 양손에 비도를 든 채 달려드는 모습에 네프사엘이 네비로스의 촉수를 뻗어냈다. 네비로스도 이미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것 때문에 독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정수 스스로 의지를 갖고 에드를 상대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촉수가 날아드는 것을 보며 에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비로스의 정수가 이동해서 저 촉수를 다시 볼 줄은 몰랐다. 여기가 공중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드는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칠채비도를 이기어시로 조종했다.
저 폭포 아래에서부터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칠채비도를 이용해서 그걸 밟고 도약하면서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공중전에서 칠채비도를 다루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지금 당장은 이 수밖에 없었다.
날아드는 촉수를 피해 몸을 비틀면서 손에 든 석화의 비도를 휘둘렀다. 촉수가 길게 베일 때 에드는 그 탄력을 이용해서 머리를 바짝 숙였다.
거리를 보는 감각이 있다고 해도 공중전에서는 마음껏 몸을 움직이기 힘드니 위험했지만, 삽시간에 좁혀지는 거리에서 최대한 피하며 이번에는 흡혈의 비도로 베었다.
그리고 그 탄력을 이용해서 몸을 회전하며 두 개의 촉수를 피해냈다.
그때 에드는 심안에 잡히는 기운을 읽었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오는 존재. 급격히 가까워지는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 파악한 에드는 다시 날아드는 촉수를 발로 차면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리고 에드의 빈자리에 대신 날아든 것은 한 자루 석장이었다.
촉수가 날아드는 석장을 휘어 감았을 때 확 불길이 일었다. 그렇게 촉수를 태워버리는가 싶더니 그제야 날아든 노리스가 합장하고 있던 양손을 쭉 뻗었다.
라그록스와 싸울 때 보여줬던 커다란 불꽃의 손바닥이 다시 나타나 촉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는 양손을 펼쳤다. 그의 주위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칠채비도가 다시 돌아와 잡혔다. 굳이 던지지 않아도 날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위력을 높이려면 직접 던지는 것이 좋다.
연달아 쇄폭시를 쓰면서 소모되었던 마력도 흡혈의 비도를 써서 회복되는 중이었기에 노리스가 만들어낸 기회를 살릴 순간이었다.
노리스의 불꽃의 손바닥이 촉수를 태울 때 그 사이로 줄줄이 칠채비도가 날아들었다. 드레드가 염력을 묶어 놓은 지금이 기회였다.
에드가 날린 칠채비도가 네비로스의 정수에 차례로 날아가 꽂힌다.
느려지고, 부식되고, 돌처럼 굳으면서 촉수들이 줄줄이 파괴된다. 그렇게 촉수가 부서졌지만, 네비로스의 정수에는 단 한 자루의 비도도 닿지 않았다.
과연 대악마의 정수답게 그 중심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프사엘은 그렇게 잠깐의 시간을 번 사이에 드레드를 떨쳐내고는 염력까지 이용해서 고속으로 이동했다. 날개가 셋이나 박살 나서 속도를 제대로 내기는 힘들었지만, 염력을 이용하면 속도를 뽑아낼 수 있었다.
단숨에 몸을 빼내면서 네프사엘은 주위를 살폈다. 벽에 무기를 박아넣고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 채 눈을 빛내며 기회를 노리는 자들은 물론이고, 뱀에서 다시 독수리로 변해 날아오는 드레드.
일곱 개의 비도를 이리저리 밟으며 떠오른 에드가 틈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쏘아내고 있었고, 불꽃 손바닥을 날렸던 노리스도 그 반발을 이용해 허공에서 몸을 띄운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작정하고 달려들지만, 네비로스의 정수가 자신의 뜻에 잘 대응해주고 있었다.
자신은 중상을 입었지만, 오히려 전력은 더 강해진 상황.
드레드는 자신을 괴롭히던 네비로스를 내보내고 싶었나 보지만 덕분에 자신은 더 강해졌다.
다만 오늘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러자면 어떻게든 수를 줄여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저 악마 사냥꾼.
날개도 없는 주제에 허공에 떠다니는 일곱 자루의 비도 위를 달리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공격하는 것. 그리고 염력을 전력으로 발현해야 하는 드레드.
멀찍이 떨어지려고 해도 쉴 틈 없이 날아오는 화살도 문제였다. 어떻게 된 게 지금까지 백 발은 쏜 것 같은데 화살 하나하나가 모두 성유물이었다.
어느 하나 방심할 수 없었다.
짜증 나는 상대다.
화살들을 염력으로 밀어내며 몸을 빼내려고 할 때 덮쳐오는 드레드의 뒤편에서 날아오는 방패가 있었다.
역시나 짜증 나는 놈들이다.
날아드는 방패를 네비로스의 촉수로 쳐냈다. 피할 틈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는데 이 방패는 그 안에 깃든 강대한 신성력 때문에 성화가 붙었다.
그러나 네비로스의 정수는 알아서 불이 붙은 촉수를 잘라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네비로스의 정수도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무작정 몸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갖고 들어오는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머지 능력으로 남은 자들을 처리하면 된다.
지하 폭포수라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 불나방처럼 반짝이는 아린과 덱스. 나머지는 그런 불빛도 비치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서 눈만 반짝이며 달려들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득 든 생각에 네프사엘은 급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떨어져 내리는 네프사엘을 보고 일행들도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네프사엘은 미소를 지었다. 그대로 떨어지면 저들은 위험하다. 지하 폭포수 높이는 까마득하니까.
지금까지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던 저들이 이렇게 고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자신은 언제든 날 수 있지만, 저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전장을 바꾸기로 한 네프사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벽에 박혀있던 벌레들도 연달아 뛰어내리며 사령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네프사엘의 염력은 거리에 한계조차 뛰어넘는다. 그리고 자신의 염력을 막을 방법은 아린의 성검 밖에 없음을 안다.
네프사엘이 염력으로 날아오는 블랙 와이번의 목을 비틀었다. 사령이 반영체라고 해도 네프사엘의 염력은 통했다.
콰드득.
블랙 와이번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디에고가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원혼으로 강화했다고 해도 대악마 네프사엘의 권능은 당해내지 못했다.
가장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에드는 그 모습에 뒤를 돌아보았다. 피를 흘리는 디에고를 옆구리에 낀 것은 제라드였다.
좋은 선택이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문신술로 회색곰 정령을 힘을 다루고 있는 제라드라면 이 높이에서 떨어져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에드는 떨어져 내리는 이들을 보고 칠채비도를 던졌다.
마무리는 자신이 짓더라도 그 기회를 만들어줄 이들이 필요했다.
에드가 던진 비도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아린이었다. 에드가 던진 비도를 밟고 재차 도약하며 가속했다.
그렇게 아린이 다시 전위로 향했고, 다른 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에드가 조종하는 비도를 밟고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에드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생겼다.
덱스와 론멜, 노리스가 아린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에드는 돌아오는 칠채비도를 받아들고 다시 던질 준비를 했다.
저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시르케가 바람을 일으켜 포드와 하멜을 띄웠다. 하긴 지금 당장 저들의 도움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다행이라면 시르케의 신비술이 풍 속성이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되리라.
제라드도 그걸 깨달았는지 디에고를 그들에게 던지고 그 반발력을 이용해서 속도를 높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에드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이들의 편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네프사엘이 네비로스의 힘까지 얻으며 강해졌지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네프사엘의 당황한 얼굴을 보니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하긴 이 높이에서 오히려 가속하며 뛰어내리는 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겠지.
아린은 방패를 앞으로 한 채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며 네프사엘을 쏘아보았다.
“날개도 없는 것들이!”
네프사엘이 대각선으로 솟구쳐 올라 단숨에 아린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걸 보고 에드는 아린을 향해 비도를 던졌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비도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 아린은 그걸 밟고 재차 네프사엘을 향해 도약했다.
급격한 움직임에 네프사엘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미 품까지 다가온 아린을 처리해야 했다. 귀찮은 상대를 쳐내기에는 역시 네비로스의 촉수가 적격이다.
촉수를 휘둘러 아린의 돌진을 막으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신성력을 집중시킨 방패는 촉수로 간단히 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성화가 옮겨붙어 피해를 봤다.
“건방져!”
염력을 날카롭게 만들어 방패 너머로 해머를 휘두르는 아린의 손목을 잘라 내려 했다.
갑자기 날아든 불길이 일렁이는 석장만 아니었어도.
염력으로 석장을 쳐내는 사이에 노리스가 아린보다 높은 곳에서 몸을 회전하며 발을 차 냈다. 그 발길질을 따라 불길이 반월형으로 날아왔다.
날카로운 검기처럼 날아드는 불길에 네프사엘이 멀쩡한 팔을 들어 방어해야 했다.
콰앙!
불꽃이 닿는 순간 폭발이 일어나 뒤로 쭉 밀려났다.
그렇게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비도를 밟고 아린의 좌우에서 짓쳐 드는 덱스와 론멜이 보였다.
덱스는 이미 자신의 팔을 벤 적이 있던 자라 아예 염력으로 쳐내고 론멜을 상대했다. 론멜은 무리해서 공격을 가하기보다는 날아드는 공격을 검으로 막아냈다.
워낙에 날카로운 성유물이라 그런가?
손끝에 난 상처에 네프사엘이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에 제라드가 날아들었다.
이것들이 연계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네프사엘은 정신없이 몰아쳐 오는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염력으로 쳐낸다.
염력으로 제라드를 쳐내는 순간 부풀어 올랐던 제라드의 뒤편에서 그림자처럼 날아드는 이가 있었다. 한 마리 표범. 드레드의 공격에 네프사엘은 촉수를 내뻗었다.
촤악!
그러나 드레드는 네비로스의 정수가 만들어낸 촉수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베어냈다. 단번에 촉수를 잘라낸 드레드의 이격을 막기 위해서 무리해서 염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렇게 드레드를 튕겨 낸 순간이었다.
서늘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며 전력을 다해서 염력을 끌어냈다. 그래서 다행히 뒤통수로 날아오던 화살을 튕겨냈다.
하지만 무리해서 쏘아낸 염력 때문에 마력이 뒤틀려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돌린 네프사엘의 시선에 보인 것은 줄지어 날아드는 화살이었다.
“이런 씨이---발.”
퍼퍼퍼퍼퍽!
네프사엘의 머리에 연달아 박히는 화살들이 연달아 폭발했다.
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