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접전
에드는 네프사엘에게 선공을 취하고는 에스터를 캄벨에게 던졌다. 어차피 시선 끌기 정도였지 그걸로 승부를 낼 생각은 아니었다.
쇄폭시가 코앞에서 터지며 네프사엘이 욕설을 내뱉는 사이에 일행은 빠르게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이미 준비되어 있던 아린이 먼저 튀어 나갔다. 삽시간에 가까워지는 거리.
하지만 네프사엘은 얼굴을 붙잡고 훌쩍 뒤로 물러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쫓기 위해 아린이 땅을 재차 박찼을 때 어둠 속에서 충격파가 밀려왔다.
쾅!
방패로 앞을 가리지 않았다면 그 일격에 몸이 산산이 조각났을 정도로 강력한 일격. 아린이 뒤로 튕겨오는 것을 바로 뒤를 쫓아 달리던 론멜이 받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그런데 보이지 않았어요.”
네프사엘이 마력을 사용했다면 아린이 못 받아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더욱 놀라웠던 것.
대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뒤따라오던 에드가 인상을 굳힌 채 말했다.
“클리프 왕자가 염력을 사용했으니 같은 종류의 힘을 다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의하세요.”
보이지 않는 공격. 특히나 이렇게 어두워서는 염력을 다루는 네프사엘의 공격을 인지하기 힘들다.
마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네프사엘의 권능에 가까운 힘. 그래서 반응이 늦었다.
어둠 속에서 네프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두려움을 느낀 건가?”
에드는 그 말에 대답 대신 화살을 쏴줬다. 심안에 잡히기에 쐈는데 날아가던 화살이 멈췄다. 염력의 저항이었지만, 이쪽도 이기어시로 쐈다.
파르르 떨리던 화살이 허공에서 으스러졌다. 에드의 이기어시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네프사엘의 염력은 강했다.
“호오. 염력도 다룰 줄 아니?”
에드는 대답 대신 연달아 화살을 날리며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클리프 왕자도 염력을 다뤘지만, 네프사엘의 능력은 격을 달리했다.
이기어시를 쓰지 않으니 화살이 그대로 멈췄다가 다시 되돌아 날아오는 지경이었다.
아린이 방패를 들어 화살을 쳐내고는 네프사엘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염력을 이용하는 대악마 네프사엘. 대악마치고 좀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일행의 면면을 보면 가장 이로운 전장을 택한 것이니 탓할 거리는 아니었다.
좁은 동굴이 일행에게 이롭다고 여겼는데 오히려 네프사엘에게 더 이로웠다.
라그록스처럼 안 보이는 팔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일행의 발을 묶어두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그녀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라서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가 돕겠네.”
일행의 뒤에 있던 드레드가 바닥에 씨앗을 하나 심더니 그곳에 손을 얹자 초록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란 넝쿨이 동굴의 벽면을 타고 쭉쭉 뻗어 나갔다. 자라나는 속도가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렇게 뻗어 나가는 넝쿨은 일행을 지나서 네프사엘이 있는 곳을 향했다. 네프사엘이 인상을 굳히고는 염력으로 넝쿨들을 잘라냈지만, 넝쿨의 재생 속도는 그녀의 능력을 상회 했다.
삽시간에 그녀를 지나서 동굴을 따라 자란 넝쿨을 따라 은은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초록빛이 주변을 밝히자 네프사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 한쪽이 쇄폭시에 당해 흉측하게 변해버린 네프사엘이었다.
그녀는 넝쿨을 보고 인상을 굳힌 채 말했다.
“드루이드? 너 드레드로구나.”
3영웅의 하나인 드레드의 이름은 네프사엘도 들어 알고 있었다. 네비로스를 죽였다고 알려진 드루이드.
악마 사냥꾼이 달리아 왕국으로 진입해서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알았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서 달리아 왕국군을 움직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이곳까지 들어왔다.
막상 만나보니 싸울만하다고 여겼다. 성유물들을 둘둘 두르고 있어서 까다롭게 느껴졌지만, 자신의 권능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나타난 드루이드 드레드는 달랐다. 16년 전에 이미 네비로스를 죽였다고 알려진 그의 능력이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네프사엘은 일행의 뒤에 선 드레드와 눈을 마주치고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하. 네비로스가 죽은 게 아니었구나.”
드레드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인상을 굳힌 채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에드. 더는 돕기 힘들 것 같네. 놈이 기어 나오려고 하고 있어.”
얼굴에 핏줄이 일어선 채 말하는 드레드를 보고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만든 넝쿨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동굴을 밝힌 것이 아니라 잎을 따 먹으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뒤로 물러나던 드레드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다친 사람은 저 잎을 따서 먹으면 도움이 될 걸세.”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드레드가 직접 말했으니 다른 이들도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아냈다.
그때 제라드가 앞으로 나섰다.
“형. 길은 내가 열게.”
“조심해.”
에드의 화살이 통하지 않는 적. 다른 이들이 시선을 끌어줘야 에드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라드는 곧장 대지 파괴자를 옆으로 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는 제라드를 보고 네프사엘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염력이 제라드를 붙들었다. 저들은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그녀의 염력은 사람을 조각조각 낼 수도 있다. 그녀가 염력을 비틀어 제라드의 몸을 사방으로 비틀어서 뜯어내려고 할 때 제라드의 눈이 빛났다.
“어림없다!”
제라드의 옷 아래에서 회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브란트처럼 커진 것은 아니지만 팽팽하게 땅겨진 근육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기대하게 했다.
“쿠워엉!”
제라드의 문신은 회색곰의 정령이 깃든 것이라고 했던가? 그 힘을 일시적으로 끌어들인 제라드는 자신의 몸을 찢어내려는 염력의 힘을 뚫어냈다.
잠깐 멈췄던 제라드가 다시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자 그런 그를 향해서 네프사엘이 손톱을 쏘아냈다. 붉은 손톱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제라드가 대지 파괴자를 틀어서 막아냈다.
쩌정!
대악마가 자신의 손톱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면 그건 유물급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염력을 이용해서 쏘아낸 손톱은 대지 파괴자에 박힐 정도였다.
그러나 제라드는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대지 파괴자를 네프사엘을 향해 내리찍었다.
설마 대지 파괴자가 금이 간 상태로 휘두를 줄은 몰랐던 네프사엘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지 파괴자를 향해 자신의 염력을 휘둘렀다.
콰창!
눈앞에서 대지 파괴자가 파괴되었다. 박살 난 대지 파괴자를 보면서도 제라드는 고민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왔다. 염력을 다룬다고 하지만 네프사엘도 대악마다.
그런 주먹에 맞아줄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네프사엘이 손을 들어 그 공격을 받아내는 찰나 정강이에서 통증을 느꼈다. 그쪽에 신경을 빼앗긴 순간 제라드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순간에 날아든 제라드의 공격을 양팔을 교차해서 받아낸 네프사엘은 그 주먹에 담긴 강대한 힘보다 정강이에 박힌 화살이 폭발하면서 전해준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도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동굴 벽면에 가득 자란 넝쿨이 적들에게 이롭다면 전장을 옮기면 된다. 그래서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붙들고 뒤로 움직였다.
네프사엘이 빠르게 물러났지만, 동굴 옆면을 따라 자랐던 넝쿨은 그녀의 뒤편에서 서로 얽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녀가 염력으로 그걸 찢으려고 할 때 뒤에서 연달아 화살이 날아왔다.
인상을 굳힌 네프사엘이 바닥을 잡아 뜯어서 화살을 막았다.
화살이 허공에 뜬 돌을 뚫고 날아와 네프사엘을 덮쳐왔지만, 그녀는 바닥을 잡아 뜯으면서 그 아래로 몸을 던진 후였다.
퍼퍼퍼퍽.
네프사엘의 뒤편 넝쿨에 화살들이 박혔고, 그녀가 아래로 몸을 던졌을 때 뒤늦게 도착한 이들이 곧장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몸을 날린 것은 뜻밖에도 덱스였다.
혹독한 훈련으로 몸을 만들던 그는 지금 두 가지 신성력이 한 몸에 들어오면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뛰어내리는 덱스의 검에는 푸른 신성력이, 도에는 검은 신성력이 맺혀 있었다.
덱스는 구멍 아래로 떨어져서는 인상을 굳혔다. 네프사엘이 뛰어내린 곳은 지하수가 흐르고 있는 동굴이었다. 그 물살에 덱스가 휘말려 떠내려갈 때 다른 이들도 속속 도착했다.
이미 덱스가 휘말려 들어간 것을 알았기에 일행은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에드도 그곳으로 뛰어들면서 넝쿨에 달린 잎을 잡아 뜯었다. 만약을 대비한 채 구멍으로 뛰어들었던 에드는 인상을 굳혔다. 물속에서는 화살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동굴 아래로 흐르는 지하수는 상당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물살을 따라 흘러가면서 에드는 심안으로 일행들을 찾아보았다.
다행이라면 일행 모두가 무사히 물살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쿠르르르릉.
어둠 속에서 들리는 굉음.
에드는 그 소리를 듣고는 인상을 굳혔다. 지하 동굴에서 이런 굉음을 내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심안으로 그곳을 살핀 에드는 금세 높이를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높은 지하수 폭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걸 깨달은 것은 에드만이 아니었다. 심안은 아니라고 해도 다들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
그때 아린의 해머가 일행을 앞질러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앙!
갑작스레 터진 푸른 신성 폭발이 신호탄처럼 주위를 밝혔다. 가장 먼저 떠내려가던 덱스는 그걸 보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높이 떠오른 덱스는 폭포수 아래를 살폈다. 분명 먼저 떨어진 네프사엘이 자신을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변수를 만든 것이었는데 그렇게 뜬 덱스의 감각에 허공에 뜬 채 고개를 들고 있는 네프사엘이 눈에 들어왔다.
붉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본 덱스가 소리쳤다.
“조심해!”
네프사엘이 손을 들어 덱스의 몸을 짓이기려고 했다. 그녀의 염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푸른빛을 내는 화살들이 줄지어 날아들었다. 아무리 네프사엘이라고 해도 이들을 염력만으로 짓이기려면 집중해야 했는데 그 집중을 방해하는 화살이 있었다.
“에드.”
이를 악물고 염력의 방향을 틀어서 화살들을 모조리 되돌려 보냈는데 그걸 또 아린이 방패로 받아냈다.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네프사엘은 생각을 바꿨다. 아무리 저들이 대단한 능력을 지닌 악마 사냥꾼 일행이라고 해도 하늘을 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염력으로 몸을 띄울 수 있는 자신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먼저 상대해야 할 것은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덱스였다. 두 가지 신성력을 품고 있는 변종 성기사.
놈을 죽이기 위해서 손톱을 쏘아내니 이 어둠 속에서도 용케 손톱을 막아냈다. 어떻게 막아냈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행에서 떨어진 변종 성기사를 죽일 때다.
네프사엘이 허공을 밟고 달려와 덱스와의 간격을 좁혔다. 덱스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쭉 뻗어 나가던 검을 다 뻗기도 전에 덱스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도로 몸을 가렸다.
콰앙!
성유물인 도가 낭창거리며 휘어질 정도로 강력한 일격. 폭포 쪽으로 날아가던 덱스는 왈칵 피를 토하면서 네프사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것은 뱀의 머리를 한 꼬리였다. 어찌나 빠르던지 전투 예측으로 읽어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네프사엘은 자신의 꼬리 공격을 용케 받아낸 덱스를 쏘아보다가 그마저도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저 멀리 폭포 아래로 떨어졌지만, 까마득한 높이라고 해도 죽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그들을 죽일 공격을 퍼부을 생각이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뾰족하게 천장에서 내려오던 종유석들이 부러져 날아왔다.
그 하나하나가 집채보다 큰 것들이었는데 그 수가 물경 수십에 달한다.
“죽어라.”
네프사엘이 쏘아 보낸 수십 개의 종유석이 폭포를 따라 아래로 날아갔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드는 종유석이 떨어지는 방향에서 푸른 성화가 피어 올랐다.
콰콰쾅!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것은 방패.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종유석 기둥을 모조리 부수고 날아와 네프사엘도 몸을 피해야 했다.
저 멀리 위로 날아간 방패가 천장에 박히는 동안 종유석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프사엘이 바라보는 가운데 두 개의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솟구쳐 오른 곳에는 두 마리의 사령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핀과 블랙 와이번.
그 등에는 물에 흠뻑 젖은 악마 사냥꾼의 일행들이 타고 있었다.
“하! 이것들 봐라?”
염력만으로 상대하기 힘든 자들인 것은 틀림없었다. 드루이드 드레드는 네비로스와 싸우느라 빠진 지금 모두 죽여야겠다.
촤아악!
네프사엘의 등을 찢고 피막의 날개가 여섯 장이 튀어나왔고, 그녀의 이마에도 길게 뻗은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장도 4미터까지 자란 그녀는 본체로 변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아온 화살이 있었지만, 모조리 염력에 막혔다.
본체로 돌아갔을 때의 네프사엘이 가진 염력은 인간형일 때에 비하면 족히 두 배는 된다. 화살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네프사엘은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다 죽어라.”
네프사엘의 염력이 폭풍이 되어 일행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