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61화 (161/202)

#161

계획

아린이 작정하고 프라엘을 잡겠다고 달려간 순간 일행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뜻이 맞았다. 디에고가 닉과 퓨리를 좌측의 괴물들을 향해 보냈고, 그쪽으로 론멜과 덱스가 달려들었다.

노리스가 홀로 프라엘의 우측에 있는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론멜과 덱스는 분명 뛰어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아무래도 노리스에 비하면 부족한 면들이 있었다. 그런 그 둘을 보조하기 위해서 닉과 퓨리가 나섰다.

그렇게 괴물들과 균형을 맞췄을 때 에드는 그들을 지원하기보다 라그록스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라그록스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생각해 보면 이 상황에서 구경만 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았다. 그러니 그런 라그록스를 향해 선공을 퍼붓는다.

대악마가 되고자 했다고 하는데 대악마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과는 그 존재감이 다르다. 이제 대악마와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괜히 무리하지 않았다.

에드가 쏘아낸 열 발의 화살이 줄지어 라그록스를 향해 날아들자 뿔 토끼가 앞으로 나서며 앞발을 휘둘렀다. 에드는 그 모습에 네 발의 화살을 방향을 틀었다.

퍼퍼퍼퍽.

여섯 발의 화살은 앞발로 쳐낼 수 있었지만, 네 발의 화살이 앞발을 피해 몸에 박혔다.

끼이익!

집채만 한 덩치라 고작 화살 네 발이 박히는 정도로 고통을 느낄 것 같지 않았지만, 화살 하나하나가 신성력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죽을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뿔 토끼의 등에 라그록스의 손이 닿자 몸에 박혀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뽑혀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는 과연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그록스는 에드와 눈을 마주친 채 씨익 웃더니 뿔 토끼의 등을 두드렸다. 뿔 토끼가 눈을 번들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에드는 뿔 토끼가 난입하지 못하도록 옆으로 이동하면서 화살을 날렸다. 에드가 날리는 화살이 줄지어 날아드는 것을 보고 뿔 토끼가 빠르게 몸을 이리저리 뛰면서 앞발로 화살들을 쳐냈다.

솔직히 이제 에드는 일반 화살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할만큼 강해졌다. 높은 스탯 덕분에 얻은 힘인데 그게 통하지 않을 정도로 뿔 토끼는 빨랐다.

집채만 한 덩치에 저렇게 빠를 수도 있는 건가?

위험하다 싶은 화살은 앞발로 쳐내면서 접근하는 뿔 토끼를 바라보던 에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라그록스는 대악마답게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을 모조리 소모품으로 쓰고 있다. 그걸 이용해서 아군의 전력을 깎아내고 직접 끝낼 생각인지 모르겠다.

드루이드 드레드의 ‘격리’의 씨앗을 받아낸 것을 보면 어떻게 그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는 신의 힘을 제대로 빌릴 수 없다.

아린과 론멜 모두 가지고 있는 신성력이 바닥나면 더는 신성 마법을 쓸 수 없을 터.

소모품을 써서라도 아군을 지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실력을 보려는 것 같았다. 어차피 저들은 소모품일 뿐이니까.

소모품이라고 하기에 강하다고 하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에드는 이 뿔 토끼가 라그록스에게 멀어졌을 때 끝을 보기로 했다. 시트라의 화살은 라그록스에게도 통할 것 같으니 그것이 아닌 다른 것만으로 뿔 토끼를 잡기로 했다.

라그록스의 시야를 뿔 토끼가 가린 찰나에 세 발의 화살을 동시에 쐈다. 세 발의 화살은 이기어시로 속도를 높인 데다가 거리가 가까워져 있어 뿔 토끼가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급하게 멈춰서 앞발을 휘두르지만 그걸 피하고 박히는 화살. 그렇게 화살이 박혔을 때 쇄폭시를 터트린다.

콰콰쾅!

세 발의 화살이 동시에 터지면서 뿔 토끼의 몸이 넝마가 된다. 화살이 박힌 상황에서 터지는 이 공격기는 대악마에게도 통하는 일격.

뿔 토끼가 상급 악마보다 강해 보인다고 해도 필살이다.

마력 소모가 크지만, 이제는 회복력 자체가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간을 잠깐 끄는 것만으로 충분히 마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에드는 뿔 토끼가 쓰러지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는 라그록스와 눈을 마주쳤다. 라그록스는 에드를 향해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악마 사냥꾼. 네 소문은 여러 방면에서 들리더군.”

에드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활에 화살을 뽑아서 지금 전투 중인 이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려고 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고, 심안에도 잡히는 것이 없었지만, 순간 에드는 바닥을 굴렀다.

콰직.

에드가 서 있던 곳에 거대한 손톱이 휘두른 것처럼 네 개의 고랑이 파였다. 스치기만 했어도 찢겨 나갈 뻔했다.

에드는 섬뜩한 느낌에 라그록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턱을 괸 채 감탄하고 있었다.

“재미있군. 보이지 않았을 텐데?”

심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라그록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에드가 바라보자 라그록스가 빙글거리며 손짓했다.

“내가 가만있는데 네가 저 판에 끼어들면 안 되지.”

“이거 영광이군.”

라그록스는 에드가 저 판에 끼어든다면 죽이겠다고 선포한 셈이다. 아무리 에드가 뛰어나도 다른 곳에 신경을 쏟으면서 라그록스의 공격을 또 피한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었다. 요행을 바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쾅! 쾅! 쾅!

크로셀의 대사도 프라엘이 변한 괴물은 단순히 비늘만 몸에 두른 것 같지만, 그 움직임은 다른 괴물들과 격을 달리했다. 에드의 화살을 손으로 잡을 만큼 빠른 자.

그런 프라엘이 휘두르는 공격을 아린은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모조리 쳐 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린이 익힌 방패술이 아니었다.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힘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물론 아린은 그렇게 힘으로 받아내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기회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몸에 쌓이는 부하는 커져만 갔다.

그것을 이를 악물고 눌러 참은 채 아린은 프라엘의 빈틈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속도 면에서 앞섰던 프라엘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카운터를 날렸지만, 그때마다 방패에 막혔다.

그렇게 발차기나 주먹을 휘두르던 프라엘은 이어지던 공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칼로 내리쳐도 흠집하나 나지 않는 자신의 비늘이 깨지고 있었다.

방패로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한 건가?

프라엘의 표정이 굳어졌을 때 아린은 이미 그의 품으로 파고든 후였다. 그리고 내지르는 아린의 방패는 프라엘의 품 안에서 날린 공격이라 피할 틈이 없었다.

프라엘이 양팔을 모아서 방패를 막았다.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꽈득.

막았던 양팔이 부러졌다. 프라엘이 놀라며 뒤로 물러날 때 이미 그의 가슴을 향해 해머가 날아들었다. 황급히 몸을 피하려고 할 때 날아들던 해머가 강렬한 신성력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꽈앙!

그 폭발은 성화로 이뤄진 폭발. 그것에 닿은 프라엘은 자신의 비늘이 불타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굳혔다.

그런 프라엘에게 달려들며 아린이 소리쳤다.

“더 웃어 봐!”

아린이 휘두른 해머를 막기 위해 부러진 팔을 들어 올리던 프라엘은 그 해머에 결국 팔이 박살 나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프라엘은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그런데 아린은 차올리는 프라엘의 발목을 향해 방패를 내리찍었다.

콰직!

방패에 맞은 발목이 박살 났을 때 아린의 몸이 회전하며 해머가 프라엘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발목이 부서져 균형을 잃었을 때 날아든 공격이 프라엘의 머리를 박살 냈다.

프라엘이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 아린은 그 시체 앞에 서서 긴 숨을 토해냈다.

이 자들은 크로셀.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 이웃을 모조리 잔인하게 죽였던 자들. 그런 자들의 수장이 자신의 손에 죽었다.

가슴 속에 쌓였던 돌덩어리가 내려간 것처럼 후련했지만, 이것에 더 신경을 쏟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다른 이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에드는 어쩐 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라그록스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에드의 앞에 커다란 뿔 토끼가 죽어있는 것을 보면 놀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라그록스와 대치 중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군을 도와야 했다. 당장 라그록스와 에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지금 가장 먼저 괴물을 죽인 자신이 나서서 괴물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린이 주위를 돌아볼 때 이미 노리스도 상대 괴물의 머리를 석장으로 부숴버렸다. 아린과 노리스가 눈이 마주치자 둘은 동시에 론멜과 덱스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잠깐! 이거 내 거야! 끼어들지 마!”

아린은 덱스의 말을 듣고는 잠시 고민했다. 덱스가 상대하는 괴물은 두 개의 팔과 하나의 꼬리를 이용해서 변칙적으로 공격했는데 두꺼운 꼬리에는 스치기만 해도 부러지는 정도로 끝날 공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덱스는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성유물인 검과 칼은 매우 날카로워서 괴물의 몸에는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나 괴물의 왼쪽 눈에 꽂혀 있는 고통의 레이피어 덕분에 괴물의 공격은 단조로운 경향이 있었다. 아린은 잠시 덱스를 바라보았다.

과연 덱스는 닉의 도움을 받으며 괴물의 목을 베어냈다. 괴물의 목을 베어낸 덱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이거지!”

아린은 그런 덱스를 바라보다가 본능적으로 그의 앞으로 달려가 방패를 들었다.

꽈앙!

아린이 뒤로 튕겨 날아갔고, 덱스가 그런 그녀를 끌어안은 채 바닥을 굴렀다. 아린은 방패로 앞을 가리고 일어났다가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줄지어 라그록스를 향해 날아갔다가 뭔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튕기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라그록스가 덱스를 노렸음을 알았다.

라그록스는 보이지 않는 공격을 펼친다.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끼지 못했다면 이 방패에 전해진 충격으로 보아 덱스의 몸이 조각났을 터였다.

덱스도 그제야 자신이 무슨 꼴을 당했을 뻔했던 것인지 깨닫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것 봐라?”

아무리 괴물을 죽였다고 기뻐하는 중이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전투 예측이 통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 예측으로도 읽을 수 없는 공격이라니?

덱스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덱스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라그록스를 바라보았다.

“오싹오싹하네.”

닭살이 돋을 만큼 짜릿하고 좋았다. 지금 혼자서 그를 상대한다면 분명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대악마와도 싸울 수 있다.

“아린. 길만 열어 줘. 목은 내가 딸게.”

론멜도 괴물을 죽이고 그 옆에 다가와 섰다. 지금 저 멀리서 에드가 보이지 않는 공격을 피하며 라그록스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지금 모든 괴물이 다 죽었다.

아린의 곁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이들.

그렇게 모인 이들을 보며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길을 열게요.”

아린은 에드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가 라그록스의 시선을 잡아끄는 순간을 읽었다. 그리고 그 작은 빈틈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라그록스가 아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공격이지만 그 근간이 마기인 이상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이건 흘려내기도 안 된다.

아린이 이를 악물고 버텨내려고 할 때 그녀의 등을 받치는 이들이 있었다.

론멜과 노리스가 아린의 등을 받쳐 주었다.

콰앙!

라그록스의 공격에 아린이 밀리지 않았을 때 그녀의 옆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라그록스의 공격을 아린이 받아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서 마치 카운터와 같았다.

라그록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격. 그렇게 날아든 검이 라그록스의 옆구리를 베었다.

“하?”

라그록스가 자신을 공격한 덱스를 후려치려 할 때 에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라그록스는 그 화살마저 쳐내고는 뛰어올라 나뭇가지 위에 섰다.

라그록스는 자신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았다. 시트라의 성유물에 입은 상처라 그런지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라그록스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옆구리의 살을 한 움큼 뜯어냈다. 라그록스가 나뭇가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자신을 잡고자 한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지만, 이곳에 가두기 전에 비하면 전력은 6할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깝기는 했지만, 이들을 죽이면 훨씬 더 양질의 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저 하늘의 신들에게 엿까지 먹일 수 있는 상황.

“모든 건 계획 대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