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조우
에드는 괴물을 쫓으면서 화살을 한 발씩 쐈다. 마력은 조금씩만 담아서 금세 회복할 수 있을 정도로만 쓰면서 쫓으니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맞히지 않았다.
지금 괴물은 자신을 유인한다고 여기겠지만, 놈의 목적지를 알기 위해서 적당히 쫓아가는 중이었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은 괴물이 피해냈다고 해도 건물의 지붕을 통째로 얼리고 있었다. 그러니 뒤를 놓치는 일은 없을 터.
에드를 피해 도망치던 괴물이 향한 곳은 도시의 외곽에 있는 저택이었다. 다만 그 저택은 사람이 살지 않는지 오래된 것인지 허름해 보였다. 그곳이 목적지라는 듯 뛰어드는 괴물을 보고 에드가 이기어시로 화살을 쏘아냈다.
그 화살은 지금까지의 화살과는 다른 빠르기였다. 목적지를 알아낸 이상 굳이 상대를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살려둬 봐야 적의 편이 늘어날 뿐이다.
한줄기 섬전이 된 화살이 괴물의 머리를 관통했다. 신성력과 냉기 속성이 결합된 화살은 괴물의 머리를 얼리고 그 안에서부터 파괴했다.
위력은 상급 악마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상급 악마의 격을 이루지 못한 괴물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그 특별함에 놀랐을지 몰라도 결국은 상급 악마보다 약하다.
그 수가 많다면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으나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
에드는 그렇게 괴물을 죽여서 경험치를 획득한 후에 폐가를 바라보았다. 저 안에 대체 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에드는 활에 화살을 하나 걸어 놓은 채 폐가를 향해 심안을 펼쳤다. 별은 넘어 폐가의 내부를 살피기 시작한 에드는 그 안에 자신의 심안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음을 알았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거나 아니면 자신의 심안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심안을 막는 기술을 익힌 자라면 다행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곤란하다.
역시나 혼자서 상대하러 뛰어들 수는 없는 곳이었다.
에드가 그렇게 심안으로 집을 살피는 동안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아린은 에드의 앞에 쓰러져 있는 괴물을 보고는 다시 폐가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인가요?”
“이곳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저 안에는 심안을 막는 존재가 있습니다.”
집이라는 곳. 그 안에 함정을 파고 어떤 괴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 에드가 일행을 돌아볼 때 제라드가 앞으로 나섰다.
“뭘 고민해?”
그리 말한 제라드가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 들린 대지 파괴자가 웅웅 울리는 것을 보면서 에드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제라드가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그러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무시한 채 그대로 저택을 향해 대지 파괴자를 내리쳤다.
쿠콰콰콰콰!
대지 파괴자에 마력을 불어 넣으면 어스 퀘이크 마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마력이 더해진 일격에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그 끝에 있는 저택을 무너트렸다.
우르릉.
저택이 무너지면서 먼지구름이 치솟아 오르는 걸 보고 일행은 제라드를 돌아보았다.
“저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그런 거야?”
“뭐긴 뭐야? 살고 싶으면 기어 나올 악마 새끼들이지.”
제라드가 그리 말하며 대지 파괴자를 어깨에 걸쳤을 때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폭발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튀어나온 자들을 본 에드는 더는 제라드를 탓하지 않았다.
그렇게 튀어나온 것은 모두 열하나의 괴물과 그 중심에 선 자였다.
기형의 괴물들에도 차이가 있음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오직 육체적 강화만을 생각해서 만들어진 팔이 네 개 달린 괴물들. 이미 보았던 괴력의 괴물이 여섯에 그 중심에 선 특별한 형태의 괴물 다섯.
팔에서 가시를 쏘아내던 괴물도 그들 중 하나로 보였다.
그들의 진형을 보고 깨달았다.
양산형 괴물은 손가락으로 만든 자들. 손가락이 많이 줄었지만, 빈자리는 채우면 될 일. 그렇게 채워서 만든 자들로 전에 싸웠던 그대로의 힘을 지닌 자들.
반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더 뛰어난 자들로 만들어서 각자의 개성이 있어 보이는 자들이었다.
다섯이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 싸울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 선 자다.
흰자위 하나 없는 붉은 눈동자. 그가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은 붉은 눈에 부러진 뿔의 토끼였다. 토끼라고 보기에는 집채만 한 덩치를 생각하면 토끼라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저 토끼. 사실은 이곳에 있는 어떤 괴물보다 위험해 보였다.
아무리 괴물들이 상급 악마보다 격이 떨어져 싸울만하다고 해도 그런 자가 열하나에 그보다 뛰어난 토끼. 그리고 토끼에 기대고 있는 자.
에드는 그를 보면서 물었다.
“네가 라그록스냐?”
에드의 물음에 붉은 눈의 사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내가 라그록스다.”
라그록스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양팔을 벌렸다.
“이곳까지 나를 찾아오느라 고생 많았다.”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한 발의 화살이 섬전처럼 날아갔다. 이기어시로 날아가는 화살을 양산형 괴물 하나가 달려들어 굵은 팔로 막으려고 했지만, 간단히 그것들을 피해서 날아들었다.
그런 화살을 손으로 잡는 자가 있었다. 다른 괴물들과 다르게 피부만 비늘로 바뀐 괴물. 그 움직임은 예상보다 빨랐다.
이기어시가 변화를 일으키기도 전에 잡아챈 손길.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다른 괴물들과 격이 다르다.
상급 악마의 격은 이루지 못했지만, 능력치만이라면 상급 악마를 압도하는 자.
그 옆에 선 누구와도 다른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자다. 솔직히 지금 일행이 잡기에 쉽지 않은 수준의 자.
그자의 손이 화살을 움켜쥔 순간 팔뚝까지 얼어붙었지만, 구경하던 라그록스가 가볍게 훅 하고 바람을 일으키자 얼어붙었던 팔의 얼음이 녹아 사라졌다.
신성력에 의한 파괴도 복구되는 것을 보니 라그록스가 어떤 자인지 짐작이 갔다.
대악마. 신의 대척점에 선 자들이다.
신성력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른 자들.
그때 지옥의 문을 열고 나타났던 그 손가락들처럼 라그록스는 지고한 격을 지닌 존재였다.
이자를 만날 것이라 대흉이 떴던 걸까?
에드가 아린을 돌아보자 그녀가 해머와 방패를 마주치고는 눈을 감았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이 자리에 함께하나니. 저와 제 일행 모두에게 저 악마를 처단할 힘을 주소서!”
아린의 머리 위로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창천의 푸른 빛이 떨어져 그녀를 중심으로 일행에게 전해지는 것을 본 라그록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줄 알고 있었던 건가?”
라그록스가 손가락에서 하나의 씨앗을 바닥에 던졌다. 씨앗은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뿌리를 내렸고 쭉쭉 자라났다. 라그록스의 옆에서 자라난 나무는 금세 머리 위를 뒤덮는 가지를 뻗더니 그 가지가 둥글게 휘어져 커다란 공터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세상과 격리가 되었다. 아린을 향해 내려오던 신성력의 빛줄기도 사라진 상황.
아린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지만, 나뭇가지에 가려져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에드는 이게 뭔지 기억하고 있었다.
3영웅의 하나인 드루이드 드레드의 필살기 중 하나. ‘격리’다.
격리는 세계의 단절을 의미. 이 ‘격리’된 세계 안에서 드루이드는 오히려 힘이 배가 된다. ‘격리’시키는 씨앗의 종류에 따라 다른 가호를 받아 더 강해진 상태로 적을 말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왜 라그록스의 손에 들린 건가?
라그록스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신과의 연결이 끊겼지?”
아린은 당황해하다가 숨을 고르더니 곧 눈을 빛냈다. 그녀는 방패로 앞을 가린 채 해머를 옆으로 비스듬히 내렸다.
“연결이 끊어졌어도 그분은 내 가슴 속에 있다.”
지금까지 아린은 수많은 제물 덕분에 과분할 정도의 신성력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가슴에 품은 이상 연결이 끊어졌다고 신성력을 다루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린의 옆에서 론멜도 성검 로우트를 꺼내 들고는 투구의 바이저를 내려썼다.
“저거 다이아나 교단의 신수 같은데 무슨 짓을 한 거야?”
에드는 부러진 뿔을 가진 뿔 토끼를 보고는 잠시 주저했다. 라그록스를 제외하고 가장 위험해 보이는 녀석인데 저걸 잡으면 다이아나에게 혼나지 않을까 싶었다.
일행들이 하나둘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에 제라드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1만 골드에 목숨을 걸어야 하네.”
에드는 제라드의 중얼거림에 픽 웃고는 말했다.
“오늘 저녀석 목을 따면 1만 골드 더 준다. 그러니까 살아남아.”
“형님.”
형, 형 부르다가 1만 골드를 더 준다니 형님으로 격상했다. 에드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시작하죠.”
에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린이 전위로 나선 채 돌진했다. 아린의 돌진을 보고 양산형 괴물 둘이 달려들었다. 괴력을 지닌 괴물들이 넷이 달려들었고, 제라드 일행은 반대편으로 움직이자 그쪽으로도 둘이 움직였다.
그렇게 적들이 나눠서 움직이는 동안 라그록스는 빙글빙글 웃으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린은 괴물들의 공격을 방패로 흘려내면서 그대로 돌파했다. 그렇게 괴물들이 자세가 무너졌을 때 좌우에서 론멜과 노리스가 공격했다.
론멜의 성검 로우트가 괴물의 두꺼운 팔을 잘라냈고, 노리스가 뻗은 석장이 괴물의 목에 박혔다.
그때 뒤따라가던 덱스가 검과 도를 휘둘러 괴물들이 휘두르는 손톱을 쳐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닉과 퓨리가 좌우에서 저공 비행하며 괴물 둘을 들이받았다.
일렬로 달려가면서 괴물들을 관통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에드의 화살 네 발이 괴물들의 자세가 무너지면서 만들어진 빈틈을 파고들어 그 머리에 박혔다.
쩌저저정!
괴물들의 머리가 얼어붙고 깨져나간다.
삽시간에 괴물 넷을 처리한 에드는 그 와중에 허리를 틀어 두 발의 화살을 더 날렸다.
제라드가 대지 파괴자로 괴물들의 주먹을 쳐냈고, 그 사이에 하멜의 화살과 포드의 검이 손톱을 막을 때 에드의 화살이 그들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괴물 둘이 그대로 머리가 얼어붙어 깨졌다.
제라드는 쓰러지는 괴물들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형님. 장난 아닌데?”
제라드는 조금 전 괴물들의 공격을 대지 파괴자로 쳐내느라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고작 화살 두 발로 목숨을 끊어 놓을 수 있다니! 아무리 빈틈을 노린 공격이라고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괴물들은 강했으니까.
제라드는 남은 괴물들을 보며 소리쳤다.
“적어도 둘은 우리 거다!”
제라드가 외치며 달려들자 포드가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그 뒤를 따랐고, 하멜과 시르케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그 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아린의 돌진이 막힌 것은 에드의 화살을 막았던 괴물이 나서면서였다. 비늘로만 전신을 두른 그 괴물은 아린의 방패를 걷어차서 그녀의 돌진을 막았다.
아린의 방패술을 생각하면 그렇게 정면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흘려내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아린의 돌진을 막아낸 자가 키득거렸다.
“난 대사도 프라엘이다.”
괴물로 변한 상태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대사도 프라엘의 주위로 늘어선 세 괴물. 그들이 일행의 좌우를 막아섰다.
일점 돌파로 라그록스를 향해 돌진하던 아린은 앞을 막아선 대사도 프라엘을 바라보았다.
“크로셀의 대사도.”
프라엘의 입이 좌우로 쭉 찢어지며 미소를 지을 때 아린의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신성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프라엘의 미소가 진해졌다.
“잘 컸구나.”
그 말에 아린의 눈이 돌아갔다. 크로셀의 대사도. 그가 자신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자신과 오빠가 납치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 모두가 죽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린이 그대로 프라엘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