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환영
매드 몽키는 대형 쾌속선이라 그런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마차를 싣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말만 태운 채 이동했는데 그래도 상당한 속도를 자랑했다.
이번에 라그록스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혈마석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면서 마차는 베른 시의 신전에 부탁해서 총본회로 보내달라고 했다.
만약 라그록스를 만나든 다른 악마를 만나든 이번에 아스트론의 총본회에 가볼 생각이었다.
시트라 교단에서도 꽤 많은 것을 받아냈지만, 아스트론 교단에서도 성유물을 뜯어낼 때가 됐다.
에드야 아스트론의 축복이 깃든 활이 있으니 굳이 필요한 것은 없지만, 제라드와 그 일행들은 장비를 한 번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됐다.
제라드의 실력이 는 것을 보니 이들도 꽤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는데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 그 효과를 확실히 볼 수 있을 터였다.
선수에 서서 아인 강의 수면을 바라보던 에드의 옆으로 아린이 다가왔다.
“확실히 도움이 될 만 하네요.”
아린은 신성력을 거의 갈무리하면서 실력이 늘어서인지 제라드 일행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제라드가 급성장하면서 그들 파티에서 가장 강해진 것으로 보였지만, 그를 제외하고도 모두 수준급의 실력자들이었다.
그저 아린 일행이 너무 급성장한 탓에 저들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될 뿐이었다. 그래도 상급 악마를 맡겨볼 만한 전력.
아린은 이번 일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합류를 반겼다.
에드는 강물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렇죠. 제라드가 그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어요.”
대지 파괴자가 뛰어난 장비이기는 하나 그보다는 제라드가 성장했다. 야만전사답게 치열한 전투 중에 급성장한 것일 터.
아린도 에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가 보여주었던 풍압은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아무런 장비 없이 오직 근력만으로 만들어낸 기예였다.
에드는 뭔가 생각에 잠긴 아린을 흘끔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형님이 남아서 다행이네요.”
브란트와 엠마가 이번에 베른 시에서 헤어졌다. 이번 전투가 라그록스와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와 헤어지기로 했다. 브란트는 엠마와 함께 왕도로 가겠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왕도에는 다시 가게 될 것이었기에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왕도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에드는 슬쩍 뒤편을 바라보았다. 선미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디에고를 보면 확실히 그들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았다. 엠마가 내린 후에 디에고는 저렇게 저기압이다.
에드가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제라드가 안에서 나와 옆에 섰다. 야만전사라 그런지 확실히 키가 크다. 올려다보려면 목이 아플 정도니까.
“제라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대충 사흘이면 도착할 거야.”
말을 탈 때도 그리 어려운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배에 오르니 신경 쓸 것이 없어 편했다. 테인은 벌써 낚싯대를 드리우고 베른 시에서 사 온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더그가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물고기를 낚는 것은 대부분 더그였다. 저런 것 보면 생활 스킬만 올리고 있는 고인물이 떠오르고는 한다.
에드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반대편을 살폈다.
하멜과 포드는 말없이 마주 앉아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고, 시르케는 그 옆에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바빴나 보네?”
“악마가 돈이 되기에 악마들을 잡는 데 집중했지. 생각보다 악마가 많더라고. 그것들 잡다 보니 이렇게 내 배도 가질 수 있었지.”
악마를 자본주의적인 접근으로 잡았다는 건가?
에드는 픽 웃음을 흘리고는 도도히 흐르는 아인 강의 강물을 바라보았다.
“신세 좀 질게.”
“신세는 무슨.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제라드는 용병이었기에 보수를 제시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중이었다. 이번 혈마석의 악마를 잡는 데 그들을 1만 골드에 고용했다.
선수금으로 1천 골드를 주었을 때 제라드의 눈이 휘둥그레지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제라드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돈값은 할 테니까.”
“기대하지.”
매드 몽키 덕에 편안하게 오는 동안 에드는 장비들을 점검하고 자신이 가진 기술들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들을 연구했다.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걸 어떻게 활용해야 상대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에드만 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대악마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노리스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준비했고, 아린과 론멜은 성기사로서 넘치는 신성력을 체화하기 위해 기도로 시간을 보냈다.
덱스는 달릴 수 없으니 밧줄을 잡고 돛대 위로 올라가서는 그 위에서 균형을 잡은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수련을 해왔다. 그렇게 사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인 강을 끼고 있는 도시 프루센. 혈마석의 악마가 감지된 곳이다.
매드 몽키를 부두에 대고 일행은 프루센에 들어섰다. 베른 시만큼은 아니어도 이곳도 아인 강을 끼고 있어서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이들이 많아 다들 몸이 좋았다.
어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들을 지나쳐 도시의 입구로 가니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았다.
척 봐도 흉흉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들이라 긴장한 그들의 앞으로 아린이 나섰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하기를. 아스트론의 검 아린이라고 합니다.”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 아스트론 교단의 입김은 대단했다. 게다가 아린은 은은히 후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성력을 모두 갈무리할 수 있게 된 이후로 후광을 굳이 뿜어낼 필요가 없음에도 이렇게 창천의 푸른 빛을 보여주면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깨하기를. 성기사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프루센에 볼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교회에 가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럼 뒤에 있는 분들은?”
“제 일행입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병사들이 물러나자 일행은 별문제 없이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제라드가 에드의 옆에서 걸으며 중얼거렸다.
“아린 경 덕분에 수월하게 들어왔네?”
“성기사란 그런 존재니까.”
누구도 감히 성기사를 사칭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신성력을 뿜어내는 성기사는 평생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한 존재라서 더욱 그렇다.
에드는 아린의 옆으로 말을 몰아 다가가서는 물었다.
“느껴지나요?”
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린이 혈마석을 감지하는 능력은 더욱 발달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마도 이곳에 혈마석을 가진 악마는 감각을 교란하는 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 당장 알아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해가 지면 디에고의 제리가 나서면 될 일이니까.
“교회에 다녀올 건가요?”
“예. 감지 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밤이 되어야 할 테니 미리 보고하고 올게요.”
“같이 가죠.”
아린은 어딘가 기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함께 말머리를 같이 한 에드는 다른 일행들이 여관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곳에서는 대악마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되다 보니 아린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린 혼자서도 충분히 일이 벌어져도 버틸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안 덕분이다.
다른 일행에는 노리스와 제라드가 있으니 큰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교회에 도착한 에드는 인상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아린이 돌아볼 때 에드가 굳은 표정으로 교회를 바라보았다.
“이곳도 당했네요.”
“당해요?”
아린은 곧 그 말이 뭘 뜻하는지 깨닫고는 인상을 굳힌 채 말에서 내렸다. 에드도 다크에서 내려 그녀와 함께 교회로 다가갔다. 심안에 적은 잡히지 않았기에 문을 열고 안을 살핀 에드는 훅 밀려오는 혈향에 인상을 굳혔다.
에드가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끔찍하게 죽은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제대로 저항은커녕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머리가 터져 있거나 잘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괴물의 소행인가 보네요?”
에드는 시체의 곁으로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어 바닥에 쏟아진 피를 만져 보았다.
“피가 아직 따뜻해요.”
교회에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됐다면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발각되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곳이 당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을 보면 이들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았다.
피가 아직도 따뜻한 것을 보면 에드와 아린이 도착하기 전. 길어야 10분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이들이 죽어 있었다. 마치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환영 인사인가 보네요.”
아린이 이를 뿌득 갈 때 에드는 주위를 둘러보며 심안의 범위를 넓혔다. 만약 이곳의 참사가 환영 인사라면 자신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라도 가까이에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펼친 심안에 흔적은 잡히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자신들이 찾아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은 놈들이 일행을 살피고 있었다는 뜻이다.
에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우선은 합류해야겠어요.”
아무리 괴물이 있다고 해도 허투루 공격을 가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랬다면 이렇게 둘이 따로 떨어져 나왔을 때 환영식을 하기보다 공격을 했을 테니까.
노리스가 있는 곳을 노린다고 해도 노리스와 제라드만 해도 쉽게 당할 이들이 아니다.
에드가 아린을 따라오면서 괜히 일행을 나눈 것이 아니었다.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곳에 죽은 이들을 한곳에 모으고는 기도를 올렸다. 차분하게 읊조리는 그녀의 기도가 어찌나 서슬 퍼렇게 들리는지 이 일을 벌인 자는 곱게 죽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죽은 이들도 그 기도문을 듣고는 안심하고 떠났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기도를 올린 아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돌아가요.”
교회의 시체들을 덮어준 하얀 천이 붉게 물들고 있다. 아마 이번 일도 조사단이 와서 수습하리라.
우선은 이 일을 벌인 자를 찾아 단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에드는 아린과 함께 교회 밖으로 나갔다가 반사적으로 그녀를 껴안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조금 전 에드와 아린이 서 있던 곳에 폭발이 일어났다. 에드의 심안 너머에서 날아온 것은 기다란 가시였다. 길이만 1미터가 되는 기다란 가시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피하지 못했다면 좋은 꼴 보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에드와 아린이 떨어졌을 때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적은 그들을 저격하기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교회에서 나오는 순간을 노렸다.
에드가 펼쳐놓은 심안의 가장자리에 가시가 느껴지는 순간 몸을 날렸는데도 간신히 피했을 정도로 가시는 빨랐다.
에드는 가시가 날아온 방향을 추론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행들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러죠.”
아린이 해머를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뭐하는 건가 싶었을 때 수직으로 날아올라 간 해머가 강렬한 광채를 뿌렸다.
“저런게 가능했어요?”
돌아오는 해머를 받아든 아린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해머는 원래 돌아오는 권능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생겼다는 건가?
어찌 되었든 일행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그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터. 에드는 가시가 날아온 방향으로 심안을 펼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쪽이에요.”
에드가 앞장서 달려갈 때 또 한 발의 가시가 날아왔다. 에드가 고개를 돌려서 피하고 아린은 방패로 가시를 쳐냈다. 저 가공할 속도와 위력을 가진 가시를 쳐내면서 잠시 비틀거렸던 아린은 금세 속도를 높여 따라왔다.
그렇게 달리던 에드는 심안에 잡히는 괴물을 볼 수 있었다. 양손을 내밀고 있는 녀석의 손바닥에서 가시가 쏘아져 오는 것을 느낀 에드는 두 발의 화살을 동시에 쐈다.
카캉!
두 발의 가시와 두 발의 화살이 허공에서 부딪쳐 튕겨 날아가는 사이에 에드와 아린은 괴물과의 거리를 좁혔고, 괴물은 곧장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도 못 했을 만큼 빨랐다. 놀라운 속도로 도망치는 괴물을 보고 에드는 아린에게 소리쳤다.
“표식을 남길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에드는 발끝에 힘을 주고 속도를 높였다. 레벨이 오르면서 투자한 민첩 덕분에 더 빨라진 에드가 빠르게 괴물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린은 그가 자신과 속도를 맞춰줬음을 깨달았다.
괴물과 에드 모두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