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정화
에드는 소년을 향해서 시위에 걸었던 한철 화살을 날렸다. 날아가던 화살은 소년의 앞을 가로막는 원혼을 일곱을 뚫고 그 뒤에 나타난 원혼 열일곱을 얼렸지만, 소년에게 닿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앞에서 얼어서 깨지는 원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 너머에서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내 아이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지.”
소년이 천천히 일어나는데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상급 악마가 몸에 깃들었던 국왕보다도 격이 높아보인다.
이만한 원혼을 다룰 수 있는 소년.
그리고 말하는 것을 보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네프사엘이 빙의했구나.”
소년이 입가를 말아 올렸다.
“나를 알아볼 줄 알았다.”
소년의 주위를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원혼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노리스가 그걸 보고는 반장한 채 물었다.
“네프사엘이라면 대악마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에드는 활에 시트라가 축복을 내린 화살을 걸었다. 대악마가 빙의했다면 저 소년이 얼마나 강할지 모른다. 그러니 시트라가 선물한 화살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에드는 소년이 원혼을 다스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령술이 아니라 드높은 네프사엘의 격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어떤 사령술보다 강할 것을 알았다. 워낙에 지독한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원혼들에게 그 원한을 풀 방향만 정해주는 것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강력한 위협이 된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소년을 향해 날아들자 소년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손길을 따라서 원혼들이 줄을 지어서 날아왔다.
콰아아!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거침없이 원혼들을 뚫고 지나갔다. 지금 밀려오는 원혼이 못해도 수백은 넘어가는데 그 원혼들을 아무렇지 않게 뚫었다.
그것은 에드의 관통이 통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화살이 가진 순수한 파괴의 힘이 원혼들을 모조리 무로 돌리고 있었다. 원혼의 격류를 뚫고 들어가는 화살에 에드는 이기어시를 담았다.
화살은 단숨에 원혼들을 뚫고 소년을 향해 날았다. 소년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원혼들이 뭉쳐서 날아들었지만, 그 또한 모두 무로 돌아갔다.
소년이 황급히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기어시로 쏘아낸 화살은 피할 수 없었다. 소년은 다급하게 자신의 몸으로 원혼을 불러들였다.
빙의에 적합한 몸이라 원혼을 품고 그걸로 강해질 생각이었나 본데 그보다 빠르게 날아든 화살이 그 이마에 꽂혔다.
“끄아아악!”
소년이 화살에 맞은 순간 검은 불꽃이 일었다. 그것은 검은 성화. 그것도 론멜이 일으키는 성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르고 강하게 타오르는 성화였다.
삽시간에 소년이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어?”
에드도 이건 몰랐다. 시트라의 화살은 놀라울 정도의 위력을 가졌지만, 죽인 존재를 시트라의 성화로 태워버린다. 성기사 없이 곧장 제물로 가져가 버린다는 얘기.
나는 잿더미 사이에 꽂혀 있는 시트라의 화살을 보았다. 심안으로 살펴본 화살은 소년을 제물로 태워버려서인지 전보다 더 많은 힘을 품은 것 같았다.
대악마가 빙의한 소년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화살.
이 정도의 장비는 3영웅으로 플레이할 때조차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노리스도 그 위력에는 놀랐는지 옆으로 다가와서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정녕 뛰어난 화살입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거라 그런지 확실히 다르네요.”
에드도 감탄할 때 옆에서 덱스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도 싸워보고 싶다고.”
에드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사실 덱스가 가진 장비들도 모두 성유물이라 충분히 소년이 부리는 원혼들을 상대할 수 있엇을 테지만, 에드도 화살 한 방에 소년이 죽을 줄은 몰랐던 터였다.
게다가 이 화살로 적을 죽이면 시트라에게 바쳐지는 대신에 화살 자체가 강화된다. 지금도 무지막지한 화살인데 더 강해진다면 필살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시트라에게 계속 제물을 바치게 되면 화살은 강해질지언정 다른 이들이 강해질 기회를 빼앗게 된다. 이 화살은 굉장한 무기인 동시에 아껴야 할 무기다.
에드는 화살을 챙기고는 시체들이 쌓인 산과 주위에 떠도는 원혼들을 보았다. 시트라의 성화가 소년을 태우면서 시체들까지 모조리 태워버려서 그들의 원혼은 같이 휘말려 승천했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원혼이 너무 많았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요.”
이 원혼들은 악마가 부렸을 때 큰 힘이 된다. 이들의 죽음은 악마를 상급 악마로 끌어올린 악업이 되었을 뿐 아니라 원혼만으로도 이 숲에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돌아가죠. 아린 경에게 부탁해야겠어요.”
아린의 신성력으로 숲을 정화하는 중이었지만, 모든 숲을 정화하기에 숲은 너무나 넓었고, 죽은 원혼이 너무나 많았다.
일행에게 돌아왔을 때 론멜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시트라님의 성화가 피어올랐는데 무슨 일이야?”
에드는 화살을 꺼내 보였다. 론멜은 화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신성력이 더 강해졌는데?”
“그런 것 같았어요.”
스스로 성화를 바치고 강해지는 화살이었다.
에드의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네프사엘이 빙의한 소년이 원혼을 움직여 공격했어요. 이 숲의 원혼은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만 할 것 같아요.”
“노력하고 있지만, 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숲이 너무 넓어요.”
아린은 성기사다. 그녀의 신성력이 성녀조차 울고 갈 정도로 강하다고 해도 대규모 정화 마법은 알지 못했다. 그저 단순한 정화 마법을 무지막지한 신성력으로 펼쳐 넓게 사용했을 뿐.
그때 끼어든 것은 오랜만에 나타난 후안이었다. 그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가 디에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크리스탈 해골이라면 가능하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디에고를 향했다. 크리스탈 해골은 영혼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재료로 강력한 사령술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아티펙트다.
죄 없는 영혼을 끌어들이기 두렵다고 했던 디에고였기에 쓰는 것을 아껴왔던 것.
“원혼을 모아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디에고가 결정하면 될 일이지. 원혼은 사실 더 강력한 재료이기는 하니까. 그리고 술사에게도 무리가 가지는 않을 거야.
에드는 디에고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죄 없는 영혼을 끌어들이기 두려워하던 디에고는 에드의 시선을 받고는 잠시 고민했다.
“형. 가만두면 저 원혼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겠죠?”
“여기는 죽음의 숲이 될 거야.”
디에고가 고민할 때 옆에 있던 덱스가 끼어들었다.
“뭘 고민해. 그들을 데려다가 악마를 죽이는 데 쓰면 그들은 오히려 고마워할걸? 그들이 죽은 일도 사실은 악마의 계책 중 하나였으니까.”
그들의 죽음에 악마가 연관된 건 사실이었다. 덱스의 말을 들은 디에고는 엠마를 돌아보았다. 엠마는 덱스의 시선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디에고가 옳은 선택을 할 거라 믿어.”
디에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눈에 담았다. 밤하늘을 유영하는 원혼들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디에고가 잘 느낄 수 있었다.
아린이 뿜어내는 신성력 덕분에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들은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아마도 일정 수가 넘어가서 가능하다면 아린의 신성력을 뚫으려 할지도 몰랐다. 불에 타 죽은 그들의 원념은 목표도 없이 마구 들끓고 있는 중이라 그들 사이로 들어온 일행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니까.
나방이 불길을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게 하는 신성력을 보고 점점 더 모이고 있었다.
디에고는 고개를 내려 일행을 돌아보았다. 이 일행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 원혼을 거두는 일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디에고가 크리스탈 해골을 꺼내 들며 말했다.
“제가 거둘게요.”
디에고의 대답을 들은 후안이 그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잘 생각했다.
후안의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신성력을 거두면 원혼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터. 그때 크리스탈 해골로 흡수하면 되니 신성력을 거둬주게.
“알겠어요.”
후안은 디에고의 어깨를 잡은 채 말을 이었다.
-크리스탈 해골에게 원혼을 삼킬 명령만 내리면 된다.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린을 바라보자 그녀가 신성력을 거두었다. 그녀 주위에 은은하게 남길 정도로 신성력을 거두자 사방에 가득했던 원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행의 앞으로 나선 디에고가 크리스탈 해골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크리스탈 해골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났고, 입을 벌린 순간 사방의 원혼들이 빨려들기 시작했다.
원래 목표가 그곳이었다는 듯 원혼이 격류를 일으키며 크리스탈 해골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숲을 떠돌던 원혼들은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다른 원혼들이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몸을 실었던 것.
의지라고는 없는 원혼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격류가 크리스탈 해골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원혼은 영혼이라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음에도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격류는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처음 크리스탈 해골을 발견했을 때와 비교하면 그 수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원혼이 모여드는 것. 에드는 디에고를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에드가 나서기 전에 후안이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나설 필요 없네. 크리스탈 해골이 모든 사령술사들이 꿈에 그리는 아티펙트인 이유는 아무리 많은 혼령을 담아도 술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니까.
원혼의 격류가 몰려오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크리스탈 해골을 들고 있는 디에고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확실히 디에고에게는 무리가 되어 보이지 않았기에 에드도 걱정을 내리고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후안은 그런 디에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원혼들을 이용하면 사령들을 강화할 수도 있고, 강력한 사령술도 사용할 수 있으니 머지않아 상급 악마도 상대할 수 있을 걸세.
“당신만큼 강해진단 말입니까?”
처음 만난 상급 악마였던 후안이 하는 말에 에드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크리스탈 해골을 가졌다면 또 달랐겠지만, 나는 가지지 못했던 아티펙트를 저 아이가 가졌으니까. 그리고 지옥의 문을 만나면서 씨앗은 완전히 개화했네.
“그래도 인성은 남아 있는 거군요.”
후안의 시선이 엠마를 향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도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지. 디에고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 아이 덕분이 아닌가 싶군.
에드는 그 말에 엠마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디에고를 걱정하면서 브란트의 곁에 서 있는 그녀. 저 어린 소녀가 디에고를 디에고이게 해줬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디에고가 악마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으니.
마지막 한 마리의 원혼까지 모조리 쓸어담은 크리스탈 해골의 눈이 푸른 광채를 뿜어냈다가 천천히 빛이 사그라졌다.
디에고는 그제야 긴 숨을 토해내고는 크리스탈 해골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에드는 아린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어때요?”
“원혼이 모두 사라졌어요.”
에드가 심안으로 느끼기에도 걸리는 존재는 없었다. 숲에 있는 5만에 달하는 원혼을 거둬들였으니 정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숲은 자생할 수 있게 됐다.
에드는 디에고에게 다가가 그를 격려해주려고 했다. 그보다 빠르게 달려가 디에고의 품에 안기는 엠마만 아니었어도.
디에고는 엠마가 품에 안기자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고는 에드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크리스탈 해골이 모든 힘을 대신 받아들여 반동이 없었다고 해도 어딘가 지쳐보이는 모습이었다.
에드는 그런 디에고에게 다가가 머리를 헝클어주며 말했다.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