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40화 (140/202)

#140

라르스

라쉬드 국왕이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라쉬드 국왕을 바라보던 수호 기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전하!”

눈앞에서 국왕이 죽었다. 그가 악마에 홀린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것도 그를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건 수호 기사의 눈앞에서는.

수호 기사가 라쉬드 국왕을 향해 달려가려는 것을 노리스는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수호 기사는 라쉬드 국왕의 목에 손을 얹어 보고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의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서 국왕이 죽었다. 수호 기사가 살아남고 국왕이 죽었다는 것은 수호 기사에게 죄를 물을 일이다. 그것도 수호 기사만이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가 처형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쪽으로 경비병들이 몰려왔고, 곧 왕궁 친위대도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 만큼 이 일을 덮는 것도 불가능했다.

암담함을 숨기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채 자리에 앉아있던 수호 기사 페트릭을 지나쳐 다가온 에드가 국왕의 시체에서 화살을 뽑아내고 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화살을 뽑는 모습에 페트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이 국왕 전하를 죽였다.

그런 생각에 불같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국왕 전하를 지키지 못한 수호 기사는 어떻게 됩니까?”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그 말을 듣고 페트릭은 움찔 굳었다. 그도 자신의 미래를 잘 알았다.

“국왕 전하는 악마에게 종속되었고, 그 손으로 직접 수호 기사를 죽였습니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제압했습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도저히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에드는 태연히 무한의 화살집에 화살을 돌리면서 노리스를 돌아보았다.

“쌍룡사의 호법승이 증언할 겁니다. 그리고 국왕 전하의 수호 기사인···.”

에드가 페트릭을 바라보며 말을 끌자 그가 서둘러 답했다.

“페트릭입니다.”

“페트릭 경이 증언하게 되겠죠.”

페트릭은 노리스를 바라보았다. 노리스의 이마에 그려진 쌍룡의 문신을 보면 그가 쌍룡사의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고 휘두르던 라쉬드 국왕의 검을 막던 실력을 생각하면 그가 호법승이라는 것도 믿을 수 있었다.

쌍룡사의 호법승.

페트릭이 생각하기에 쌍룡사는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그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왕국 내에 있으면서도 왕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곳이었다.

왕국에서도 그들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그들도 외부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쌍룡사라는 이름은 계속해서 전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쌍룡사를 세운 것이 인간이 아닌 홍련왕이라고 불리는 드래곤 카루아리스 때문일 수도 있다.

드래곤의 수명은 수천 년을 넘어간다고 하니 쌍룡사를 건드렸다가는 드래곤의 분노를 직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천 년 전 쌍룡사를 세울 당시에 카루아리스가 벌였던 일들이 구전되는 것의 절반만 진실이어도 어떤 왕족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때 왕조가 한 번 갈아 엎어졌다고 했으니.

그런 쌍룡사에서 외부에 알려진 이들이 호법승이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무승들이다. 그리고 호법승이 아닌 이들은 쌍룡사에서 나오지도 못한다.

그런 쌍룡사의 호법승이 하는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시트라 교단을 놓고 비교하자면 적어도 마스터 팔라딘에 준하는 무게감을 주는 이니까.

그런 이가 국왕 전하가 악마에 홀려 수호 기사를 직접 죽인 것에 대해 증언한다면 그 무게감이 다르다.

에드는 말없이 페트릭을 바라보았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페트릭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오직 한 길만 남아있었는데 그 길을 못 찾는 것 같아 길을 제시해줬을 뿐이다.

에드는 위쪽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노리스. 긴 밤이 되겠네요.”

노리스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악마만 처리하고 나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악마와 밀회를 나누는 국왕을 만났고, 악마는 죽으면서 국왕을 완전히 종속시켰다.

악마에 종속된 자는 되돌릴 수 없다. 보통 그것은 악마에게 스스로 영혼을 저당 잡힌 자들이나 가능한 일이지만, 상급 악마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암시와 세뇌를 진행했기에 국왕을 종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국왕은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 에드의 입장이었다.

마젤타 왕국에서는 국왕이 죽은 사건. 이번 일에 대한 조사로 오늘 밤은 왕궁에서 보내야만 하리라.

왕궁의 비밀 공간.

지금 그 자리에는 라르스가 내려와 있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왕궁 친위대가 알고는 자신들만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친위대장은 곧장 라르스에게 연락을 전하고 그곳을 지켰다. 그래서 달려온 라르스는 그곳에 머리가 돌이 되어 죽어 있는 여인과 한쪽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라르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페트릭 경. 그러니 저 죽은 수호 기사는 아버지의 손에 죽었고, 이미 악마에게 종속되어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건가?”

“예.”

라르스의 시선이 노리스와 그 뒤에 선 에드를 향했다.

“호법승도 그리 판단했고.”

“예.”

라르스가 긴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시신과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인의 모습을 한 악마라고 했다. 그리고 저 악마가 왜 저 여인의 모습을 했는지도 이해했다.

라쉬드 국왕이 가장 사랑했던 자신의 어머니. 그것도 절정의 미모를 뽐내던 시절의 어머니 초상화와 닮아 있었다. 아마도 죽은 어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터였다.

악마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를 만났을 때 수작을 부렸으리라.

듣자니 상급 악마라고 하는데 악마 총람을 읽어 본 라르스는 상급 악마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지 알고 있었다. 고작 인간이 저항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존재들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국왕이었다고 해도 작정한 상급 악마에게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어쩐지 요즘 아버지가 국정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시더라니,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국왕의 죽음은 덮을 수 없지만, 그것이 악마와의 밀회 중에 악마에게 종속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런 치욕이 없다. 라르스가 보고를 듣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시트라 교단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악마에 종속되었다면 그걸 증명하는 것은 시트라 교단의 추기경이 확인해 보면 될 일. 하지만 그리 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래서 홀로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늘 만났던 이들을 만났다. 에드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하고 있는 승려가 쌍룡사의 호법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굳이 확인해 보지 않기로 했다.

라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에드와 노리스를 돌아보았다.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자들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하는 일.

하지만 앞에 선 에드와 노리스가 문제였다. 대장군급의 무력을 지녔다고 켈베로스에서 보고한 에드와 쌍룡사의 호법승을 죽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면목이 없군.”

“아닙니다.”

에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급 악마와 마젤타 왕국의 국왕을 죽인 덕분에 레벨이 올랐다. 사실 지옥화를 막으면서 폭업을 한 상태라 당분간은 레벨을 올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마젤타 왕국의 국왕은 상급 악마조차 가뿐하게 넘어서는 경험치를 주었다.

진지하게 왕족을 살해하고 다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 정도로.

그랬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라르스는 에드를 바라보다가 노리스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이번 일은 왕가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일. 이 일은 조용히 묻었으면 하네.”

에드는 왕가에서 척살대가 쫓아온다고 해도 이해해줄 생각이었다. 물론 당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술술 풀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라르스의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기로 했다. 보통 이런 일은 살인멸구가 따라오니까.

어쩌면 에드와 노리스는 건들기에 위험하기에 그렇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둘을 제외한 이들은 청소가 될 수도 있었다.

라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 아버지의 죽음을 숨겨야만 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를 부탁하지.”

국왕의 죽음은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왕권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 라르스가 무리 없이 왕권을 넘겨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리라.

에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신 저 악마 시체는 저희가 회수해 가도 되겠습니까?”

“악마의 시체를?”

“예.”

라르스는 잠시 고민했다. 악마의 시체를 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왕가의 비밀인 비밀 통로를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

에드는 그런 라르스의 고민을 읽은 듯 답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저와 호법승을 눈치챌 이들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라르스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이 이곳에 진입해서 회랑의 바닥을 부수고 비밀 공간에 진입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말은 왕궁의 경비를 저들은 손바닥 뒤집듯 뚫었다는 이야기.

새삼 이 둘이 어떤 자들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자신의 수호 기사와 왕궁 친위대장, 그리고 페트릭 경뿐이었다.

저들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자신도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라르스는 그런 내면의 불안을 표출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좋아. 이곳에 있는 이들의 입은 내가 막을 테니 들키지 말고 빠져나가게. 대신 누군가에게 발각된다면 침입자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네.”

이곳을 빠져나가면 자신의 도움을 바라지 말라는 말에 에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죽은 악마가 마침 인간형이라 보쌈해간다고 생각하면 옮기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노리스와 자신은 이미 왕궁의 경비를 뚫었다.

아무리 그들이 경비를 강화한다고 해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 허락하지. 대신 내가 찾아갈 때까지 왕도에 머물러 줬으면 좋겠군.”

저게 부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왕도에서의 일을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터였고, 무엇보다 국왕의 죽음은 오래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오래 걸릴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지.”

에드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악마에게 다가가 시체를 덮고 있는 천과 함께 들어서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노리스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몸을 날렸다.

비밀 공간의 천정 높이가 5미터가 넘고 회랑의 두께가 거의 2미터에 달한다. 그 높이를 한번 도약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라르스가 감탄할 때 에드도 그를 따라 뛰어올랐다.

그래도 에드는 인간적이게 뛰어오르는 중에 뭔가를 밟고 재차 도약했다. 그렇게 둘이 나가더니 금세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라르스가 물었다.

“글로웰. 그대라면 저리 할 수 있겠나?”

“저는 검을 잘 다룹니다.”

저렇게 몸을 움직이는 재간과는 다르다는 대답에 픽 웃음을 흘린 라르스가 물었다.

“붙으면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글로웰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왕국 서열 2위 수호 기사의 장을 맡은 그였지만, 그 둘을 보았을 때 도저히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보냈다.”

글로웰은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았다. 글로웰은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고, 페트릭이 그 모습에 당황했다.

“태자 저하.”

라르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글로웰의 검은 페트릭이 저항할 틈도 없었다. 글로웰은 페트릭의 목을 쳐내고, 곧장 돌아서며 내려와 있던 왕궁 친위대장의 목도 쳤다.

글로웰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더니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곧 조용해졌다. 글로웰이 다시 내려오자 라르스는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아버지를 모셔라.”

“예. 전하.”

라르스는 먼저 사다리를 올라갔고, 회랑에는 왕궁 친위대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라르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피에 젖은 회랑을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상이라도 줘야겠군.”

정정했던 라쉬드 국왕이었기에 적어도 이십 년은 지나야 왕국을 물려받을 거라 여겼던 왕좌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걸어가는 라르스의 입가에는 보기 드물게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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