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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36화 (136/202)

#136

봉인

심안을 읽을 수 있는 것만 봐도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았는데 쌍룡사의 승려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과거 테인을 처음 만나서 주인공 캐릭터로 의심 가는 이들을 물었을 때 쌍룡사의 수도승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딱 봐도 수준 높아 보이는 수도승을 보니 저 승려가 그 인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악마를 잡는 수도승이라면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에드는 화살을 화살집에 돌리고 심안을 조절했다. 심안은 감각의 종합. 집중을 풀고 감각을 옅게 만들자 심안이 풀렸다.

승려는 에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땅을 박찼다.

퐁. 퐁. 퐁. 퐁. 퐁.

수면에 작은 물방울이 튕기며 승려는 강을 건너왔다. 강폭이 좁다고 해도 50미터는 되는데 고작 다섯 걸음에 강을 건너왔다. 그것도 발바닥에 물 하나 안 묻히고.

그렇게 강을 건너왔으면서도 그는 10미터 밖에 내려섰다.

“쌍룡사의 호법승 노리스라고 합니다.”

에드가 아무리 민첩하다고 하지만 수면을 차고 달릴 정도의 수준은 안 된다. 싸운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주인공 중 하나라면 일행이 있을 법도 한데 다른 이들은 기척이 잡히지 않았다.

혼자인가?

하긴 저만한 실력자라면 혼자 움직여도 될 것 같기는 했다. 에드가 봐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론멜이 강 밖으로 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시트라의 검인 론멜이라고 합니다.”

“시트라의 성기사셨군요.”

평상시라면 갑옷을 입고 있으니 그를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속옷 하나 달랑 입고 있으니 아무리 노리스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노리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기에 에드도 담담히 답했다.

“에드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들은 노리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혹시 악마 사냥꾼이십니까?”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노리스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물에서 물놀이하던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던 덱스가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난 덱스.”

사슬을 팔에 감은 브란트도 일행의 뒤에서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브란트라고 하오.”

디에고도 대충 옷을 두르고 와서는 손을 흔들었다.

“전 디에고라고 해요.”

노리스는 그들 면면을 돌아보며 감탄했다. 에드가 심안을 가지고 있어서 그 앞에서 심안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의 수준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쌍룡사 내에도 저만한 수준의 이들은 많지 않았다. 쌍룡사의 무승에 비견될 만한 강자들.

특히 악마 사냥꾼 에드는 호법승인 자신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강자였다. 활을 내려놓고 있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론멜은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갑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 밤은 저희랑 함께 지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리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에드와 그 일행이 이룬 업적에 대해서는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론멜이 에드를 돌아보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 모습을 보고 노리스는 역시 이 일행의 리더가 에드라는 것을 알았다. 하긴 저만한 강자가 리더가 아니면 누가 리더겠는가?

“따라오시죠.”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들을 따라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온 노리스는 그곳에 있는 아스트론의 성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이 몸에 이만한 신성력을 품어도 되는 걸까?

에드의 심안과 다르지만 비슷한 능력을 가진 눈으로 보아도 마치 화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신성력을 품은 성기사였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당신과 함께하길. 아스트론의 검 아린이라고 합니다.”

“쌍룡사의 호법승 노리스라고 합니다.”

둘이 나누는 인사에 불쑥 테인이 끼어들었다.

“악마를 사냥하는 쌍룡사의 수도승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자네였나? 호법승?”

노리스는 테인을 보고 반장하며 답했다.

“악마 연구가 테인님이시군요. 제가 악마를 사냥하고 다니는 것은 맞습니다.”

“꽤 잡았겠군.”

“지금까지 열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테인이 감탄하며 물었다.

“그런데 쌍룡사의 호법승이라면 쌍룡사의 법을 지키는 이들이 아닌가? 무승 중에서도 극소수만 뽑는 것으로 아는 데 이리 외부로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노리스는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본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본사의 호법승은 당대에 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 제가 외부로 나온 것은 홍련왕 카루아리스님의 예언 때문입니다. 천 년 전부터 있었던 예언으로 그 예언에 따라서 나왔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새삼 노리스를 바라보았다. 쌍룡사의 수많은 무승 중 단 두 명만이 얻을 수 있는 호법승이라니 저만큼이나 강한 것도 이해가 갔다.

“무슨 예언이었는지 들을 수 있겠나?”

“세계가 열리고, 죽었다고 여겨졌던 이들이 돌아온다. 열 개의 손가락이 하늘을 찢고 신을 끌어 내리니 세상이 불타오르게 되리라.”

노리스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굳어졌다. 테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첫 문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열 개의 손가락이 하늘을 찢고 신을 끌어내린다는 말은 대충 이해가 가는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테인이 담담히 답했다.

“하늘을 찢을 만한 존재는 대악마 뿐이야. 그런데 대악마가 열이나 된다는 건가?”

“트라비아 왕국만 계산했을 때는 셋만 남았지만, 대륙 전체를 본다면 열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론멜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몸서리쳤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악마가 열이나 된다면 과연 그것들을 막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가? 그럼 대악마가 나서서 신을 끌어내린다는 건가?”

테인은 그리 말하면서 아린의 눈치를 살폈다. 아린은 분위기가 일변하고 있었다.

아스트론의 검 앞에서 대악마가 신을 끌어내리겠다는 말이 나오니 그녀는 지금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다.

테인의 시선이 노리스를 향했다.

“그런 예언이 있었는데 왜 나온 건가?”

노리스는 반장한 채 말했다.

“본사의 주지 스님께서도 그리 예상하셨습니다. 대악마가 열 개의 손가락일 거라고. 그러니 대악마를 죽이지 못한다면 세계가 업화에 휩싸일 거라고 여기고 저를 내보내셨습니다.”

에드는 그 말을 듣고는 대충 예언을 이해했다. 첫 번째 문장인 세계가 열린다는 건 자신이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세계가 열렸다는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죽었다고 여겼던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대악마의 부활이 아닐까? 죽은 악마도 다시 봐야겠다.

그런데 대악마가 열이나 된다는 건 에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확실히 대악마들을 잡지 못하면 신이 끌어내려 지고 세상이 업화에 휩싸인다고 하니 아마도 저 예언은 악마의 시대 2의 핵심이 되는 예언이리라.

“그렇다면 자네도 대악마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건가?”

“예. 일단은 눈에 띄는 악마들을 죽이는 중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친구로군.”

테인이 장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이에 엠마가 소리쳤다.

“식사 준비 다 됐어요. 모두 식사하세요.”

일행은 일단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받았지만, 노리스는 건네주는 스튜에 고개를 내젓고는 품에서 말린 과일을 꺼내서 입에 넣더니 천천히 녹여 먹기 시작했다.

에드는 가만히 앉아서 스튜를 떠먹으며 노리스를 바라보았다.

득도한 고승처럼 차분한 느낌의 그는 여전히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심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괜히 심안을 켜서 심기를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노리스는 입에서 녹이던 것을 꿀꺽 삼키고는 에드를 마주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악마를 추적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노리스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마치 부처의 미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노리스는 미소를 지은 채 품에서 손바닥 크기의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이 돌고 있는데 어째 일반 나침반과는 달라 보였다.

“이게 악마를 쫓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게 악마를 쫓을 수 있게 해준다고요?”

노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냥 악마만 쫓을 수 있게 해준다면 단순한 뽑기인 건가?”

노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잡은 악마를 기록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보다 강한 악마가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새로운 악마를 만나 죽이고 기록하는 식으로 싸워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급 악마를 죽였으니 아마도 다음 악마는 최소 중급 악마 이상일 겁니다.”

테인은 그 말에 호기심을 품고 다가와서 나침반을 살펴보았다.

“허허. 과연 쌍룡사에는 기물이 많다고 하더니 대단하군. 그래. 다음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건가?”

“거리나 방향으로 봐서는 수도 시무스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수도 시무스.

일행이 찾아가는 곳에 최소 중급 악마 이상이 있다? 탐지기가 있으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우리도 시무스로 가고 있는데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나?”

테인의 물음에 노리스가 에드와 아린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노리스는 예언을 말했지만, 전부를 밝히지는 않았다.

‘업화 속에 피어나는 여섯 영웅이 있으니 그들에게 세계의 존망이 걸리리라.’

누가 여섯 영웅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밝히게 된다면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될 터였다. 시기도 명확하지 않고, 설령 그 여섯 명을 특정 지을 수 있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될 터였다.

노리스는 악마를 잡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여섯 영웅을 찾는 임무도 같이 받았다. 그리고 여기 누구보다 그 여섯 영웅에 어울리는 이를 발견했다.

신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신성력을 품은 여인.

그리고 호법승인 자신도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궁수.

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들이다. 그러니 이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시무스로 가는 길에 덱스는 당연하다는 듯 노리스에게 도전했다가 떡이 되도록 두드려 맞았다.

전투 예측을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

에드도 그 대련을 보고는 감탄했다. 마력을 이용해 몸을 강화해서 싸우는 데 그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민첩함은 에드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근력은 에드를 한참 상회 했다.

일격의 파괴력이라면 에드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노리스의 실력에 론멜도 달려들었다가 떡이 되도록 두드려 맞았다.

온화한 미소를 짓지만, 대련에 있어서는 가차 없었다.

그 둘을 상대하니 다음으로 나선 것은 브란트. 그는 악마의 힘을 꺼내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것을 훈련하는 중이었다.

팔과 다리만 붉고 굵게 변하게 하고 싸움에 임했음에도 노리스에게 패했다. 브란트의 사나운 공격을 피한 노리스의 손바닥이 브란트의 가슴에 닿는 순간 풀썩 쓰러졌다.

브란트가 그대로 혼절하자 노리스는 그를 부축한 채로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옷을 벗기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에드가 물었다.

“뭘 하려는 겁니까?”

노리스는 손을 들어 에드를 말리더니 브란트의 가슴을 살펴보았다. 그의 가슴 중앙에서 시작한 붉은 기운이 마치 문신처럼 가슴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에드도 브란트의 벗은 가슴은 보지 못했었다. 물놀이할 때도 옷을 입은 채로 하고 있었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싶었다.

“몸 안에 범상치 않은 것을 품었군요. 맞습니까?”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리스는 품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군요. 이 능력 봉인해도 되겠습니까?”

“봉인이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대신 전력에서 열외될 겁니다.”

에드는 그 말에 브란트를 바라보았다. 브란트는 주인공 중 하나. 그런 그가 힘을 잃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매일 고통을 받는 브란트를 생각하면 일단 힘을 봉인해 두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걱정도 됐다.

“봉인은 어떤 식으로든 형님에게 고통을 전해준다고 들었습니다.”

“이대로 둔다면 오히려 더욱 고통받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에드가 주저할 때 옆으로 걸어 나온 아린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엠마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봉인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릴게요. 아빠의 힘을 봉인해 주세요.”

엠마는 브란트가 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지만, 그것이 고통을 전해주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말에 그 힘이 봉인되기를 바랐다.

그 말을 들은 노리스는 손목을 그었고, 오른손으로 반장한 채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왼팔을 따라 흘러내리던 핏물이 다섯 손가락 끝에 뭉쳤다.

노리스가 브란트의 가슴에 난 붉은 문신 위에 손을 얹고는 열쇠를 잠그듯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노리스의 손가락 끝에 맺혀있던 다섯 개의 기운이 나선형으로 회전해 들어가니 브란트의 가슴 위로 퍼져 있던 핏빛의 문신이 점점 줄어들어 엄지손톱만 한 크기까지 줄었다.

노리스는 그제야 길게 숨을 토해내고는 말했다.

“봉인은 성공했습니다.”

엠마는 그제야 아린의 손을 놓고 달려가 브란트를 끌어안았다. 아린이 노리스에게 다가가 회복 주문을 거는 사이에 에드는 그를 바라보았다.

무력도 뛰어나고, 술법에도 능한 자.

이 스님 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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