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얻은 것들
“혹시 다음 목적지를 알 수 있을까요?”
에드는 카산드라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로 갈 생각입니다.”
카산드라는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답했다.
“수도인 시무스까지 가신다면 말을 타고 이동할 경우 대략 이십 일정도 걸리겠군요. 이쪽이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말이죠.”
에드는 뭐 그런 부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시트라 교단의 총본회를 찾아가서 아큘라의 반지를 받아야 한다. 브란트가 대악마의 힘에 저항할 방법을 찾았다고 하지만 그는 앞으로 더 성장할 거고 그러다 보면 봉인 사슬만으로는 그 힘을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 지옥의 문을 닫았기에 그 공적을 생각하면 아큘라의 반지를 얻는 것이 수월할 것 같았다.
“혹시 장비도 삽니까?”
“물론이죠. 파실 물건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에드는 사도에게서 빼앗은 지팡이를 꺼내 보았다. 디에고에게 쓰게 하려고 했는데 지금 쓰고 있는 것이 더 사령술사에게 잘 맞았다.
저주술사의 물건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령술사인 디에고에게는 더 잘 맞는다고 하니 지팡이를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에드가 건넨 지팡이를 본 카산드라가 그걸 살펴보고는 감탄했다.
“요정목에다가 구하기 힘든 묘안석을 박아 넣었군요. 주인만 잘 만나면 큰돈 만질 수 있겠어요.”
“얼마입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1,000골드입니다.”
“팔죠.”
카산드라가 금패를 꺼내서 건네기에 그걸 받은 에드가 물었다.
“혹시 현철 화살도 주문을 받습니까?”
카산드라는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화살집 하나를 꺼냈다. 언제 꺼내 보일까 고민했는데 기회가 왔다.
그녀가 꺼낸 것은 무한의 화살집이었다.
“특급 무한의 화살집입니다. 천 발이 들어가죠.”
500발이 들어가는 무한의 화살집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크의 안장에 하나 달아놓고 하나는 직접 착용하고 가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 전투에는 어쩔 수 없이 두 개를 다 착용하고 갔는데 이게 있다면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화살집은 괜찮군요. 그보다는 현철 화살을···.”
카산드라가 화살을 하나 뽑아 보였다. 화살촉이 마치 얼음 조각처럼 보였다. 에드는 솔직히 감탄했다.
“이거 한철(寒鐵)입니까?”
한철의 강도는 현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철은 그 특성상 빙계 속성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 만큼 한철의 가격은 현철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 한철로 화살촉을 만들 줄은 몰랐다.
에드가 무한의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내 보았다. 다른 것도 한철이었다.
“설마 이게 다 한철입니까?”
“예. 특별 주문 제작했죠. 언젠가 저를 찾아주실 줄 알고요.”
궁수가 공격력을 높일 방법 중 가장 돈 지랄이면서 효과적인 것은 화살을 바꾸는 거다. 빙결의 활이 강화되어서 마력의 소모 없이도 냉기를 담아 쏠 수 있는데 한철로 만든 화살이라면 그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마력을 주입해서 쏜다고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위력이 1할 이상 높아지리라.
이건 사야 한다!
“얼마입니까?”
“천 발에 100골드입니다!”
천 발에 유물급 장비에 버금가는 가격. 하지만 지금은 그리 크게 무리가 가는 금액은 아니다.
“사죠.”
카산드라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특급 무한의 화살집과 제작 비용을 생각한다면 200골드는 받아야 할 물건이었지만, 이건 일종의 서비스다.
금패 하나를 다시 돌려받은 카산드라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시무스에서 뵙겠습니다.”
카산드라가 꼭 사령의 안장을 구해오겠다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카산드라를 보내고 나서 에드는 일행을 한 자리에 모았다.
“그럼 론멜이 올 때까지는 휴가인 건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돌아올 때까지 재정비할 시간은 있겠죠.”
그 말에 엠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아스트론 교회에서 지낼게요.”
브란트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스트론 교회는 왜?”
“칸토 선교사님이 이곳저곳 돌아다닌 곳이 많아서 여러 가지 레시피를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 요리를 배우는 중이에요.”
브란트는 엠마가 자신 있게 답하는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저 보호하려고만 했는데 혼자서 일행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씩씩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브란트는 손을 내밀어서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엠마가 환하게 웃는 동안 디에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도 닉과 퓨리, 톰과 제리를 데리고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도 만나봐야 하고요.”
지옥의 문을 마주하면서 변화가 생겼지만, 돌아오는 동안 후안을 소환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물들이 넘쳐서 그렇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마물은 넘쳐나는데 에드는 화살이 부족해서 마음껏 날뛸 수 없었다. 대신에 칠채비도를 쓰는 것이 능숙해졌다. 마력을 쓸 정도의 마물은 없었고, 그냥 던지고 귀환만 하는 것이었는 데도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마물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냥하다 보니 후안을 소환해서 자세히 물을 여유가 없었다.
디에고는 마을에 돌아왔으니 이제 후안을 만나기로 했다.
에드의 시선이 다른 이들을 향했다. 덱스는 그 시선에 씨익 웃으며 답했다.
“난 잘 거야.”
물을 생각도 없었는데 덱스가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린도 그 말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기도하러 갈게요.”
아린은 자신의 신성력이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당분간 이걸 체화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테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난 후안을 만나는 자리에 함께하고 싶군.”
에드도 그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악마에 대한 지식은 테인을 따라갈 수 없지만, 그래도 악마의 시대 1을 질리도록 해서 그도 모르는 내용을 알고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펜드래건과 함께 움직인 테인은 헬레나와 드레드를 한 번씩 만나보았지만, 그들이 어떤 전장을 해쳐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에드는 그 역사를 모두 알고 있으니 후안을 만나보기로 했다.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에고는 에드와 테인, 브란트가 함께 한 자리에서 후안을 소환했다. 오랜만에 소환된 후안은 일행들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지옥의 문은 잘 닫은 건가?]
“응. 그보다 아빠 나 좀 확인해 줘.”
후안은 그 말에 디에고를 둘러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디에고의 몸에 깃들어 있던 씨앗이 최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지옥의 마기를 쐬면서 급성장했다.
디에고의 몸에 깃든 사령술도 크게 성장했지만, 이게 좋은 일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악마들이라면 마기가 커질수록 강해지니 상관이 없지만, 인간은 마기가 커지면 마성에 물들 수 있으니까.
[사령술이 크게 성장했다. 마력의 양도 증가했지만, 마기가 커진 것이 문제야. 이제 발아에서 개화 수준까지 급성장했지만, 반인반마인 너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강한 힘을 얻은 만큼 네 안의 마성이 깨어날 수도 있으니까. 잘못하면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디에고는 그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강해진 것은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있었다. 사령을 부리는데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줄어들었으니까.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마물들을 잡는데도 큰 도움이 됐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힘을 얻은 만큼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절로 긴장하게 됐다.
악마가 된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후안이 악마이면서 아버지로 얼마나 잘해줬는지 잘 아니까.
“나도 지옥의 마기를 뒤집어썼는데 몸 안의 악마가 더는 날뛰지 않는 느낌이다. 왜 그런지 아나?”
후안은 브란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마도 지옥의 마기를 뒤집어쓰고 만족해서일 거다.]
“만족?”
[그리고 다음에 다시 나타날 때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그대의 몸을 차지하려고 하겠지.]
브란트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더는 머릿속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사라져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는 더 큰 반동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 걱정이 앞섰다.
브란트는 지금 위험한 줄다리기 중이었다. 적의 힘을 끌어오면서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대악마가 더 큰 힘으로 자신의 몸을 노린다면 지금 상태로는 무리다.
그런 브란트의 어깨를 에드가 꽉 쥐었다.
“아큘라의 반지가 더해지면 괜찮을 겁니다.”
브란트는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최대한 노력하도록 하지.”
에드는 궁금한 것들이 해결되었기에 디에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악마가 될 일은 없을 거야. 악마가 된다고 해도 넌 지켜줄 테니까.”
디에고는 그 말에 감동받았다. 악마라면 가차 없는 에드가 자신은 봐주겠다고 했으니까. 새삼 그의 일행이 된 것을 느꼈다.
에드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후안에게 물었다.
“후안. 혹시 사령에게 안장을 씌울 수 있습니까?”
[사령에게 안장을? 왜?]
“이번에 얻은 닉과 퓨리에게 안장을 씌운다면 이동 속도가 비약적으로 오를 테니까요.”
후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건 일리가 있군. 하지만 그건 연구가 필요하겠어. 보통 사령술사는 혼자서 군단을 이룰 수 있어서 굳이 다른 이들을 안장에 태울 일은 없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카산드라가 정말로 안장을 구할 수 있을까?
에드는 사흘간 이번에 새로 얻은 한철 화살의 능력을 확인해 보았다. 마력을 걸지 않고 그냥 쏘아내도 냉기가 작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라면 처음 빙결의 활을 얻어서 마력을 담아 쏘던 것에 버금가는 위력이다. 지금 만나는 놈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잠깐 멈칫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 되었다.
빙결의 활에 최대로 마력을 집중했을 때도 위력이 1할은 강해졌다. 역시나 화살을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것이었다.
에드는 회관 옥상에서 화살을 회수해서 손질하면서 목책을 바라보았다. 목책을 따라 달리는 덱스가 눈에 띄었다.
잠을 자러 가겠다고 하더니 그날부터 덱스는 쉬지 않고 목책을 따라 달리는 중이다. 장비로 인해 능력은 향상됐지만, 체력은 아니다.
그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덱스는 그날부터 쉬지 않고 저렇게 체력을 기르는 중이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알고, 그걸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 일행이 되기에 충분했다.
에드는 목책을 따라 달리는 덱스를 바라보다가 목책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론멜과 신시아가 들어오고 있었다. 찾고 있던 성검은 찾았는지 신시아의 등뒤로 커다란 양손검이 눈에 들어왔다.
론멜은 목책 안으로 들어오다가 목책을 따라 달리는 덱스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덱스가 회관을 가리키자 론멜은 고개를 들었다가 에드를 발견하고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것만 봐도 론멜의 시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이번에 상급 악마를 제물로 바치면서 신성력이 올라가고, 그걸 체화하면서 신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였다.
해맑게 웃는 론멜을 바라보던 에드는 타룬 산맥으로 시선을 돌렸다.
혈마석을 따라 찾아온 타룬 산맥에서 일행들은 모두 크게 성장했다. 지옥화는 끔찍한 현상이지만, 덕분에 일행은 많은 것을 얻었다.
에드의 시선이 동쪽으로 향했다.
이제 이곳을 떠나 수도 시무스로 가야 했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