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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31화 (131/202)

#131

응급처치

닫힌 지옥문이 천천히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지옥문은 닫았지만, 지옥문이 열려있는 동안 튀어나온 수많은 마물이 문제였다.

타룬 산맥 전체가 마물의 소굴이 되어버린 느낌이니까. 왕국 수준에서 토벌전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던 지옥문을 닫았다. 이걸 닫는 동안 레벨도 폭발적으로 올랐다. 그리고 여기 널려있는 시체들을 성화로 제물로 바친다면 아린이 얼마나 강해질지도 기대가 됐다.

론멜은 지옥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뒤돌아섰다.

“선배!”

신시아를 향해 돌아서던 론멜은 그녀를 보고는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고개를 뒤로 완전히 꺾은 채 줄이 연결된 마리오네트처럼 기이한 형태로 신시아가 서 있었다. 저런 자세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론멜이 달려나가려고 할 때 아린이 그의 앞을 막았다.

“아린!”

“···저건 신시아가 아닙니다.”

저건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론멜의 눈이 돌아갔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신시아가 뒤로 젖혔던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들었다.

마치 줄에 연결된 것 같던 자세도 점차 고쳐지더니 똑바로 섰다. 그리고 신시아는 자신의 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그건 마치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동작으로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신시아가 뿜어내는 격이 달랐다.

“빙의인가?”

브란트의 중얼거림에 론멜이 이를 뿌득 갈았다.

“선배가 고작 빙의에 당할 것 같아?”

“저 격을 느끼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지금 신시아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공할 격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의 몸 안에 다른 것이 깃들었다는 얘기다.

론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신시아가 빙의가 되다니? 성기사 중에서도 신실하기로 유명한 그녀다.

신시아가 주먹을 꼭 쥐어 보더니 시선을 그제야 일행에게 돌렸다.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늦었다.

신시아의 입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점점 커지더니 광소를 터트렸다.

“아하하하! 아하하!”

협곡을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 그 웃음에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론멜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시트라여.”

신의 이름을 부르는 론멜을 보고 신시아가 광소를 터트리던 것을 멈추고는 시선을 내려 론멜을 바라보았다.

“시트라의 검을 육신으로 얻을 줄은 몰랐다.”

신시아의 피부가 검어지는 것을 보고 에드가 물었다.

“아린. 저 영혼을 쫓아낼 수 있을까요?”

“일단 제압하고 구마 의식을 치러야 해요.”

에드의 시선이 론멜을 향했다.

“시트라 교단에 구마 사제가 있습니까?”

“있어. 다만 구마 사제들은 총본회에 있어.”

신시아를 제압하고 총본회로 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뭐든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신시아 안에 깃든 것은 견적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악마의 영혼이 성기사의 몸에 깃들었다. 타락한 성기사는 그 자체로 강력한 병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악마 본인의 몸에 비하면 약하다.

그걸 알았기에 에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제압하죠.”

제압이라면 경험치도 안 들어오는 일이지만, 론멜과 신시아의 사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에드는 론멜에게 손을 내밀었다. 론멜이 에드의 손에 뭐냐는 듯 바라보았다.

“성검을 빌려줘요.”

론멜은 성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금도 자신에게 가공할 힘을 전해주고 있는 성검. 하지만 자신이 이 성검을 쥐었을 때보다 에드가 쥐었을 때 더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론멜은 에드에게 성검을 내밀며 말했다.

“부탁한다.”

에드는 론멜이 내민 성검을 받아 쥐었다. 그리고는 전해지는 힘에 경악했다.

수많은 악마를 베고 또 베면서 쌓인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어낸 것은 대악마의 것으로 짐작되는 손가락을 잘랐다.

성검은 지금 넘치는 힘을 에드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에드는 성검을 쥐고 짐작했다. 단순히 스탯만을 놓고 본다면 지금 자신은 적어도 두 레벨 이상 오른 느낌이라고.

에드는 저 멀리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아린이 주었던 성검을 내팽개친 채 맨몸으로 서 있는 신시아. 그녀의 피부는 이제 모두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에드는 그 눈빛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영혼도 경험치를 주나?”

신시아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에드를 가리켰다. 조금 전의 불쾌한 경험이 떠오르는 손가락질에 에드의 이마에 핏줄이 설 때 신시아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신시아의 도발에 에드가 그대로 땅을 박찼다.

에드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오자 신시아가 마주 달려오며 주먹을 휘둘렀다. 과연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른 주먹이었지만, 에드가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성검이 없었다고 해도 피할 수 있었을 정도의 공격. 간단히 고개를 숙여 피하면서 성검의 손잡이로 신시아의 턱을 올려쳤다. 턱이 들린 신시아의 가슴을 어깨로 들이받고 허리가 숙여진 채 뒤로 튕겨 날아가는 그녀의 머리를 브라질리안 킥으로 후려 찼다.

빠각!

잠깐 사이에 날린 세 번의 공격에 신시아가 쓰러졌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에드가 검을 쥔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역시나 신시아는 뒷목을 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의 공격은 그녀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신시아가 흐릿한 미소를 짓더니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

근육이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빙의한 악마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원하는 속도를 내기 위해서 몸을 혹사할 뿐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에드는 시간을 끌다가는 자신이 죽이지 않아도 대악마가 신시아의 몸을 혹사해서 죽일 거라는 것을 알았다.

팔이나 다리를 잘라도 아린이 붙여줄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악마가 빙의해서 육체가 변이된 상태에서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고, 연달아 차내는 세 번의 발차기를 허리를 젖히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피하던 에드는 마음을 굳혔다.

품에서 꺼내 든 것은 파사의 비도.

“쥐새끼처럼 잘 피하는구나!”

말을 하는 동안도 일곱 번의 공격이 들어왔다. 점점 속도를 높이느라 근육이 찢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피부마저 찢기면서 피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퍼붓는 공격은 에드에게 닿지 않았다.

허리를 노리고 뻗는 공격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가 오히려 더 빠르게 다가가며 파사의 비도를 휘둘렀다.

허벅지를 길게 자르고 지나가는 일격.

신시아가 처음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파사의 비도에 베인 허벅지는 검게 변했던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신시아의 표정이 일그러진 채 파사의 비도를 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그건 뭐냐?”

에드는 파사의 비도 너머로 신시아가 긴장한 것을 보고는 견적을 재보았다. 파사의 비도에 베인 허벅지가 제 색을 찾고 있었다. 한 번에 그만큼 몸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몇 번이나 베어야 할까?

“후우.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

에드는 뒷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간 에드가 비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르고, 베고, 연달아 퍼붓는 공격에 신시아는 뒷걸음질만 칠 뿐이었다.

고작 열 걸음. 신시아의 전신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파사의 권능이 담긴 비도로 베어낸 덕분에 신시아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근육이 찢어지고 베여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신시아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안에 품고 있는 영혼이 대악마의 격이라고 해도 그 육체의 한계는 뚜렷했다.

성검까지 쥐고 있는 에드에게 미치지 못하니 손도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린.”

에드의 부름에 아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말없이 다가가 쓰러진 신시아에게 다가가 그 손에 성검을 쥐어 주고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퍼부었다.

상급 악마를 죽이고 나서 신성력이 많이 늘어난 그녀가 신성 회복 주문도 아니고 그냥 신성력을 때려 부으니 신시아가 허리를 튕기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당장 그만두지 못해?”

제대로 된 구마 의식은 아니지만, 신시아의 몸에 깃든 대악마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전해줬다.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이미 에드에게 근맥이 잘린 상태에서 회복 주문을 걸지 않아서 근육이 이어지지 않아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게다가 파사의 권능이 담긴 단검에 베여 크게 약해진 상태로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아린의 신성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얻은 몸인데 놔줄 것 같냐?”

아린은 그 말에 신시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깃든 자가 얼마나 대단한 악마인지는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아마 본래의 몸으로 이곳에 나타났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위험했을 정도로 높은 격을 지닌 존재였다. 그 격에 아린도 잠시 몸이 굳었을 정도.

그런 상대를 향해 에드가 혼자 뛰어들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둘의 공수가 어찌나 빠른지 아린도 도우려고 뛰어들었다가는 오히려 피해를 줄까 싶어서 끼어들지도 못했다. 그만큼이나 빠른 공수 교환이었다.

그리고 에드가 반격을 나섰을 때는 더 놀라웠다.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신시아가 쓰러졌으니까.

아린은 쓰러진 신시아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오지 말고 버텨. 그렇게 고통받다가 소멸해라.”

이 정도 격을 지닌 자를 고작 신성력을 쏟아붓는 정도로 죽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크흐흐흐. 오만하구나. 아스트론의 검 주제에··· 윽!”

신시아에게 깃든 대악마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더는 연결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얼마만에 얻은 육체인데 그냥 연결을 끊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저들에게 악몽 같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심장이라도 터트려주고 갈 생각이었다. 부활도 시킬 수 없도록.

“잘 기억해라. 내 이름은 바스토프. 지옥의··· 꺽!”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심장에 남은 모든 힘을 몰아넣어 터트리려고 할 때 그 심장을 찌른 비도에 깃든 파사의 권능이 힘을 터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에드는 심안으로 살펴보던 중에 갑자기 심장으로 몰리는 기운을 읽었다. 전신에 남아있던 모든 힘이 모이는 것을 읽은 순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파사의 단검으로 그 힘이 모인 곳을 찌르자 바스토프의 연결이 끊어졌다.

“에-드!”

론멜이 소리치며 달려올 때 에드가 단검을 뽑으며 심장을 손으로 막은 채 소리쳤다.

“아린. 회복 주문을.”

아린도 바스토프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쏟아내던 신성력을 회복 주문으로 바꿨다. 아린도 심장에 구멍이 난 상황을 치료해 본 적은 없었기에 극도로 집중해서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에드는 흡혈의 비도를 꺼내서 신시아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팔뚝을 그었다. 흡혈의 비도에 베이자 마력과 체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피를 많이 흘린 신시아에게 수혈 대신 흡혈 비도를 이용해 응급처치를 취했다. 심장에 난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고 아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시아의 안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에드는 팔뚝을 두 번째 긋고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신시아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씩 돌기 시작하자 다가온 론멜이 자신의 팔뚝을 그었다.

론멜은 그래도 신시아가 깨어나지 않자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팔뚝을 그으려고 했다. 그때 그의 손목을 잡는 손길이 있었다.

론멜이 시선을 들자 그를 바라보는 신시아가 힘없이 웃고 있었다.

“자해하는 취미라도 생겼냐?”

“선배!”

론멜이 신시아를 와락 끌어안자 그녀의 눈이 잔뜩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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