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28화 (128/202)

#128

열리다

이기어시로 사냥하고, 빙결의 활을 이용해서 사냥하면서도 마력은 8할을 유지했다. 어차피 혼자 싸우는 것도 아니고 무리해서 적을 쓸어버릴 필요는 없었다.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라면 알뜰하게 막타를 노려야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화살이 부족했다.

이제 남은 화살은 백 발 정도.

‘지옥화’가 진행되어 지옥의 ‘문’이 열렸다면 그곳에서 튀어나올 악마들의 수는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근처에서 생성될 마물들까지 생각하면 처음으로 화살이 바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백 발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잡몹들 막타를 위해서 화살들을 낭비하면 중요한 놈들을 놓칠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닉과 퓨리의 전력이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형 마물들을 모조리 죽인 닉과 퓨리가 전방에서 길을 열고 있다.

사령 둘이 길을 여니 다른 이들도 여유롭게 마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에드가 가정 먼저 인상을 굳혔다.

다가오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뭔가 특별했다.

마물들도 그들을 덮치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날 정도의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

그 수가 열을 넘어서는데 하나하나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 이제는 익숙한 혈마석이 느껴졌다.

혈마석의 악마는 아니다. 그걸 깨달은 에드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크로셀.”

“예?”

아린이 옆에서 에드를 돌아보기에 간단히 말했다.

“예상대로 ‘지옥화’가 진행 중이었나 봅니다. 크로셀의 손가락입니다.”

예전이었다면 크로셀의 손가락이 등장했을 때 귀찮음부터 느꼈을 터였다. 아무래도 볼 수가 없으니까.

그건 아론에게 맡겼던 일.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에드도 심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앞에 크로셀이 나타났다면 죽이면 될 뿐이다.

아린은 크로셀이라는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아린이 전방에 시선을 돌렸을 때 마물들이 좌우로 물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 사이를 걸어오는 존재들의 이질적인 마기가 마물조차 숨죽이게 했다.

그렇게 나타난 이들을 바라보던 아린과 론멜의 표정이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그건 에드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가오는 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각 교단의 사제복이다. 아스트론 교단의 사제 복을 입은 이들이 셋이나 되었고, 시트라 교단의 사제복을 입은 이가 둘이다.

그리고 그 외에 다이아나 여신의 사제는 물론이고, 불과 대장장이의 신의 사제, 음악과 술의 신의 사제 등 모두 마기에 감염된 채 악마가 빙의했다.

악마의 빙의체 자체도 자주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지옥화’의 술법진의 제물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빙의체도 사제에 빙의된 것은 처음이다.

‘지옥화’의 술법진의 제물은 보통으로는 어림없다. 양으로 승부를 보거나 질로 승부를 보거나. 그리고 저들은 질로 승부를 보았다.

설마 각 교단의 사제들을 잡아다가 제물로 바쳤을 줄이야.

“크-로-셀!”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아린이다. 그녀는 방패를 앞으로 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사령들이 나설 틈도 없었다.

그렇게 돌진하는 아린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막을 겨를이 없었다. 돌진하는 아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드도 황급히 화살을 날렸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보다 먼저 도달한 아린을 보고 크로셀이 피식 웃었고, 악마가 빙의된 사제들이 앞으로 나섰다. 가장 선두에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트론의 사제들.

돌진하는 아린의 눈에 짙은 살의가 깃들었다. 저 사제들, 낯이 익었다.

이름까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낯이 익은 이들이 마기에 감염되어 전신의 모세혈관을 따라 검은 핏줄이 일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린은 참을 수 없었다. 감히 신의 종인 사제들을 제물로 바치다니?

그리고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들이 크로셀이라고 했다.

분노한 아린의 몸에서 밤의 어둠조차 몰아낼 정도로 가공할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게 방패에 집중되어 아스트론 사제들을 덮쳤다.

콰앙!

악마에 빙의된 사제들은 신성력을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평시에 지녔던 신성력이 오염되면서 오히려 마기는 몇 배나 늘어났다.

사제들의 몸에 깃든 것은 하급 악마들.

지옥의 ‘문’이 열리기 전에 그 틈으로 영혼을 비집고 빠져나와 사제의 몸에 깃든 자들.

원래의 하급 악마보다 더 많은 마기를 지닌 그들은 이렇게 힘없이 튕겨 나갈 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린은 가진 신성력도, 그것을 체화해서 신체 능력을 높인 것도 마스터 팔라딘에 버금갔다.

그런 그녀의 돌진을 막기에는 하급 악마 이상 되는 능력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튕겨 날아간 셋의 미간에 세 발의 화살이 박혔다.

전열이 무너진 사이에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론멜이었다. 성검을 다루는 론멜도 지금까지 마물들을 베어 넘기면서 성검이 계속 힘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론멜도 평시의 그가 아니었다.

튀어나간 론멜의 성검이 그 뒤를 따라 달려 나오던 시트라의 사제 둘을 베어 넘겼다. 그 둘을 사선으로 베어 넘기는 모습.

지금의 론멜은 분노에 휩싸인 채였다. 그런 론멜의 성검에 자비는 없었다.

악마 빙의체 자체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다른 사제들은 벌써 타락한 신성 마법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사제들이 쓰는 신성 마법이 마기를 이용해 발현되어 일행을 붙들려 했지만, 이미 그들의 미간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신성 마법은 발현되지 못하고 빙의체들이 쓰러졌다.

악마 빙의체는 분명 까다로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지금 일행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중급 악마 정도는 혼자서 때려잡을 수 있는 이들이 몇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빙의체들이 죽으면서 들어온 경험치에 레벨이 올랐다. ‘지옥화’로 인해 나타난 수많은 마물을 잡으면서 얻은 경험치에 그리폰과 블랙 와이번을 잡으면서 쌓였던 경험치에 더해진 악마 빙의체가 더해지면서 레벨이 올랐다.

고민하지 않는다. 민첩에 스탯을 투자한 에드는 아린과 론멜이 크로셀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크로셀의 손가락. 전에 만났을 때는 혈마석 때문에 까다로운 상대였다.

과연 아린의 해머에 머리가 깨지고, 론멜의 검에 하반신이 잘려나갔는데도 죽지 않는다. 심안으로 혈마석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에드는 품에서 비도를 날렸다.

날아간 석화의 비도가 그대로 크로셀의 가슴에 박혔다. 돌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 크로셀이 조각나면서 경험치가 들어왔다.

에드는 손을 내밀어 석화의 비도를 손으로 돌아오게 했다. 비도를 챙긴 에드는 아린과 론멜이 각자의 기도로 아스트론과 시트라의 사제를 성화로 태우는 것을 보았다.

악마 빙의체. 그것도 신을 믿던 사제들이었다. 그 특별한 마법은 쓰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그들을 제물로 썼다는 것만으로 이미 아린과 론멜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린과 론멜이 성화로 악마 빙의체의 시체를 태우는 것을 보고 마물들도 분분히 물러났다. 아린과 론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마물들도 질려서 피할 정도다.

저 마물들도 그냥 두면 위험하겠지만, 그보다는 ‘지옥화’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지옥의 ‘문’이 열리면 그때는 악마의 파도가 몰아칠 수도 있으니까.

저 끔찍한 지옥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그들은 이미 ‘문’ 앞에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저렇게 빙의를 시도한 악마들이 있는 것.

그리고 ‘문’이 열리면 육체를 가진 채 튀어나온다. 지상에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숨어 사는 악마들이 아니라 지옥의 투쟁에서 살아온 악마들.

그들은 같은 등급의 악마라도 전투를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살기 등등한 아린과 론멜을 향해 에드가 입을 열었다.

“제물에 빙의가 되었다면 이미 9할 이상 술법진이 진행된 상황입니다. 더 늦기 전에 속도를 높이죠.”

론멜은 그 말에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이렇게까지 분노한 론멜은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더 늦기 전에 서두르자.”

론멜은 그리 말하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살의를 전신에 휘감은 론멜은 시트라의 사제들을 보고는 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신시아가 사라진 지금 그녀가 저들과 같은 짓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론멜은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수많은 마물을 베고, 악마 빙의체를 베고, 크로셀의 손가락도 베었다.

그 모든 힘이 성검에 깃든 론멜은 전과는 다른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런 론멜이 일행의 선두에서 길을 열기 시작했다.

성기사들의 살의에 짓눌린 마물들이 도망치듯 길을 열자 그 사이로 산맥의 협곡이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우뚝 솟은 만년설이 쌓인 두 개의 봉우리 사이로 길게 열려있는 협곡. 그 협곡 안에서 꿈틀대는 악의를 느끼면서 론멜이 입을 열었다.

“저기다.”

심안으로 보지 않아도 일행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저곳에서 이 모든 악의가 시작되고 있음을.

마물이 미쳐 날뛰는 이유가 저기 있음을.

감히 사제들을 제물로 바친 끔찍한 술법이 저곳에 있음을.

론멜은 그걸 느끼자마자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신시아는 아직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에드도 놀랄 정도로 오래 버티는 중이다.

어쩌면 그녀가 버티기에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만한 악의가 넘실거리고 있다면 지옥의 ‘문’은 이미 삐걱거리는 수준일 테니까.

달리는 론멜의 뒤를 따라 일행 모두가 달려간 곳. 협곡을 따라 달리면서 론멜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렇게 달리던 중에 밀려오는 악의가 어떤 임계점을 넘었는지 폭발했다.

그것을 느낀 론멜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늦었다.’

론멜은 달리는 속도를 더 높였다. 그렇게 달린 끝에 일행이 본 것은 끔찍한 형상의 커다란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조금 열려있었고, 그 문에 매달린 이가 눈에 보였다.

문이 열리면 찢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한 상황.

그리고 그 열린 틈으로 하급 악마들이 비집고 나오기 위해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머리부터 나온 녀석과 팔부터 비집고 나온 것들.

인간의 형체를 갖추지 못한 각양각색의 악마들.

그들이 비집고 나오려고 할수록 매달려 있는 성기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신시아 선배!”

론멜이 애타게 부르자 비명을 내지르던 신시아가 우뚝 멈췄다. 온몸을 비틀던 신시아는 고개를 숙여 론멜과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후배를 보았다.

“론···멜?”

이미 의식의 절반 이상이 어떤 존재에게 잡아먹혔음에도 그 멍청한 얼굴을 보니 조금이나마 의식이 돌아왔다. 어쩌면 이곳에 갇힌 채 술법진 위에서 자신의 몸을 탐하는 악마의 영혼에 저항하면서 흐려지던 의식이 자신이 아는 이를 보는 것으로 조금은 또렷해졌다.

어쩌면 이건 악마가 보여주는 환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 죄악의 현장에 그가 있어선 안 됐다.

“도-망--쳐!”

신시아의 외침에 대한 답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이 짜릿한 순간에 그래서야 쓰나?”

신시아의 뒤에서 나타난 것은 악마 멘제스터였다. 그는 길게 찢어진 입으로 미소를 지으며 신시아의 뒤에서 그녀의 배를 손으로 뚫었다.

멘제스터의 손톱 끝에서 핏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는 순간 신시아의 고개가 떨어지며 지옥의 ‘문’이 열렸다.

“신-시-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