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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25화 (125/202)

#125

타룬 산맥

타룬 산맥.

마젤타 왕국의 서부에 있는 산맥으로 그곳을 바라보며 에드는 탄성을 터트렸다. 색색이 단풍진 산맥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높은 곳에는 새하얀 눈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멀리서 보아도 산맥이 얼마나 험준한지 알 수 있었다. 저곳에 혈마석을 지닌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니 찾는 것도 일이겠다 싶었다.

정말로 하늘을 나는 사령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산맥이 높고 험준한지 산맥을 보고도 그 초입까지 마차가 가는데 꼬박 하루가 소모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은 고작 이백 호 정도가 사는 마을이었다. 국경에서 멀어지니 군사 도시가 아닌 일반 마을들도 이렇게 눈에 띄었다.

마을의 목책으로 마차와 일행이 다가가자 목책 위에서 경계를 서던 이가 소리쳐 물었다.

“마을에는 무슨 일이시오?”

경비의 물음에 나선 것은 론멜이다. 마젤타 왕국 내에서는 어떤 문도 그를 막지 않았다.

론멜이 앞으로 나서며 망토를 살짝 들추고 갑옷에 그려진 시트라의 문양을 보여주자 경비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시트라의 성기사님이십니까?”

“시트라의 검 론멜이다. 문 열어라.”

경비 중 하나가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목책의 문이 열렸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니 목책 위에서 말을 걸던 경비가 어느새 내려와서는 다가오고 있었다.

“론멜 경. 일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 마을의 이름이 일렌인가?”

“예. 서쪽의 경계에 있는 마을입니다.”

론멜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 마을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일세.”

“저희 마을을 지나서는 타룬 산맥입니다. 산맥을 넘으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산맥에서 찾을 것이 있어. 그보다 자네가 자경단장인가?”

“예. 일렌의 자경단을 맡은 톨입니다.”

“그렇다면 시트라 신전으로 안내해주게.”

“제가 모시겠습니다.”

톨이 론멜의 말고삐를 잡자 론멜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을에 여관은 있나?”

“여관은 없고 거래하는 상단이 올 때 마을 회관에서 묵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행은 회관으로 안내해주게.”

톨이 손짓하자 자경단원 하나가 따라붙었다. 그가 일행을 인솔하는 사이에 에드는 마을을 돌아보았다.

별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마을이다. 산맥의 입구라고 할 수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경단원들이 대부분 사냥꾼이었다. 활과 단검으로 무장한 이들.

안내해주는 자경단원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아린이 시트라의 신전과 반대쪽에 있는 아스트론의 교회에 시선을 주었다.

시트라의 신전이 아스트론 교회의 몇 배는 됨직한 크기였다. 고작 이백 호 정도의 마을에 과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시트라의 신전이 있는 것은 아마도 마젤타 왕국의 국교이기 때문이리라.

그때 아스트론 교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초췌한 안색의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일행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달려왔다. 달려오다가 자신의 발에 걸려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려오는 모습에 아린이 말에서 내렸다.

일행도 말을 멈추고 달려오는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제는 달려오는 동안 먼지투성이가 되었는데 그는 마차에 시선을 주고 달려오다가 아린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성기사십니까?”

“아스트론의 검 아린이라고 합니다.”

“맙소사! 이곳에서 아스트론의 성기사를 뵙게 될 줄이야! 그리고 저 마차는 대체 뭡니까? 교황 성하나 성녀님을 모시고 계신 겁니까?”

아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일행이 타고 있습니다.”

일행이라는 말에 사제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린은 잠시 산맥을 바라보았다. 타룬 산맥은 정찰하고 이동하는 데만도 족히 한 달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런 곳에 마차를 가지고 이동하기는 힘들 것도 같았다.

“사제님.”

“아스트론의 영광이 아린 경과 함께 하길.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마젤타 왕국에 파견된 선교사 칸토라고 합니다.”

“칸토 선교사님. 저희 일행은 타룬 산맥에 올라야 합니다. 그동안 마차를 맡아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 정도 마차라면 교단의 보물 아닙니까? 그런 것을 어찌 제가 맡을 수 있겠습니까?”

아린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마차는 지금 당장 아스트론 총본회에 가져가면 보물은 아니어도 충분히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물건이긴 했다.

지금은 일행의 이동 수단으로 쓸 뿐이지만.

그래도 이 기능에 대해서만 알려진다고 해도 모두가 눈독을 들일만한 물건이었다.

그때 에드가 불쑥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누가 훔쳐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예?”

에드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시트라 교단의 신전에서 달려오는 이들이었다. 론멜의 뒤를 따라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들은 시트라 교단의 수도승들이었다.

그리고 론멜의 옆에서 말을 달리는 중년인은 시트라 교단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론멜과 함께 달려온 사제는 선교사 칸토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는 아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일렌의 신전 주임 사제 렌드로요.”

“아스트론의 영광이 당신과 함께하길. 아스트론의 검인 아린입니다.”

렌드로의 눈빛에 짜증이 살짝 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에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악마와 연관된 이도 아니고, 마젤타 왕국에서 아스트론의 검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그리고 그녀가 시트라 교단의 인사도 무시한 채 아스트론 교단의 인사를 건네 올 줄도 몰랐고.

그때 나선 것은 론멜이었다.

“무례를 범하지 말게. 그녀는 나의 일행이니까.”

론멜의 한 마디에 렌드로는 입을 다물었다. 시트라는 파괴의 신이고, 그러다 보니 성기사들의 입김이 가장 강한 교단이다.

신전의 주임사제. 그것도 이런 변두리의 주임 사제가 비벼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아무리 론멜이 신입 성기사라고 해도.

렌드로는 론멜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내심을 숨기는 모습에 에드가 말을 건넸다.

“론멜 경. 마차를 아스트론 교회에 맡겨 놓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타룬 산맥을 다녀오도록 지켜줄 인원을 시트라 신전에 부탁해도 될까요?”

론멜도 일행이 타고 다니는 마차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스트론의 신성력을 뿜어내서 마물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마차 자체의 방어력만 해도 어지간한 보호 장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시트라 교단에서도 저만한 마차는 두 개밖에 없다. 성유물이라고는 못 불러도 유물급은 되는 장비. 그것도 돈으로는 살 수도 없을 정도의 물건이다.

마스터 팔라딘에 버금가는 아린이 매일 같이 신성력을 주입하면서 마차의 가치는 점점 오르고 있었으니까. 처음 만들었을 때의 마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마차였다.

“물론이지. 이 마차는 내게도 소중하다고.”

론멜이 돌아보자 렌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마을에서 마주하고 있다 보니 아스트론의 선교사인 칸토를 멸시하고 있었지만, 론멜이 저리 말하는 물건은 안 지켜줄 수도 없다.

오히려 론멜이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저 마차를 분실하게 되면 그 책임을 자신에게 물을 판이었다.

일행이 함께 마차를 끌고 가는 동안 시트라 교단의 수도승들이 호위를 섰다. 그 모습에 지금까지 온갖 천대를 받던 선교사 칸토는 가슴을 활짝 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시트라 신전의 주임 사제인 렌드로의 말만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아스트론의 말씀을 전하고 선교하려는 것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랬는데 지금은 마을 사람들도 칸토를 바라보는 모습이 달라졌다. 시트라 신전의 수도승이 칸토를 호위하듯이 가고 있었고, 그 일행의 중심에는 아스트론의 신성력인 하늘빛 신성력을 뿜어내는 마차가 있었으니까.

시트라 신전의 주임 사제인 렌드로도 신성력을 한 톨 내비치지 못하는 마당에 스스로 신성력을 뿜어내는 마차를 보았으니 사람들을 선교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질 것 같았다.

마차를 맡기면서 칸토의 어깨에 힘을 잔뜩 넣어준 후에 일행은 회관으로 이동했다. 오늘 하루 쉬고 내일 산으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마을에 있는 물건들을 구매했다.

아무래도 산속의 밤은 쌀쌀할 수도 있어서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구매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론멜이 입을 열었다.

“타룬 산맥의 마물들이 전보다 늘어난 것 때문에 한 달 전쯤에 성기사가 파견 나갔다고 하더군.”

“시트라의 성기사면 아는 분이십니까?”

“신시아 선배라고 들었어.”

덱스가 론멜의 표정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론멜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무, 무슨 소리야!”

얼굴까지 상기돼서 하는 말에 일행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론멜이 어이가 없어 했다.

“하! 차! 내가 그 선배한테 진짜 죽도록 맞고 굴렀거든?”

덱스는 그 말에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강해?”

“강하지. 선배는 강하지.”

론멜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제 내가 신성력도 올랐고, 요즘 기도빨을 받고 있으니 해볼 만할 것도 같군.”

덱스는 그 말에 금세 관심이 식었는지 시선을 돌렸다. 론멜의 실력은 덱스에게 자극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그 수준의 성기사라면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다.

테인은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

“마물들이 갑자기 개체 수를 늘린 것에 혈마석의 악마가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군.”

그 말에 론멜의 표정이 굳어졌다.

“혈마석의 악마를 선배가 만날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

테인의 대답에 론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출발하세.”

일행은 흥분한 론멜의 반응에 모두 에드를 돌아보았다. 에드는 그 시선에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밤에는 이동 못 해요. 한 달이나 먼저 들어갔다면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따라 잡아보죠.”

론멜도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길게 숨을 토하고는 답했다.

“너무 흥분했군.”

론멜은 에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신에 신시아 선배를 찾는 데 도움을 줘.”

“강행군이 될 겁니다. 그러니 푹 쉬도록 하세요.”

에드의 말에 모두 회관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제는 다들 잠을 자야 할 때 바로 잠드는 것이 익숙해져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호흡 소리가 들렸다.

에드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옆에서 불쑥 론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

에드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옆에 누웠던 론멜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꼭 구해야 해.”

론멜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것이 의외라 에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고 해도 잔뜩 긴장한 그의 얼굴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에드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쥐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부탁한다.”

타룬 산맥의 깊은 곳.

수많은 마물의 시체 사이에서 외로이 검을 짚고 선 여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미친 새끼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이 중 가운데 서 있던 이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제물이 제 발로 찾아왔군. 시트라의 개라니. 기대 이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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