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보부상
이건 에드도 놀랐다.
함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
그것은 에드가 시트라의 총본회에 가면 어떻게든 구하려고 마음먹었던 칠채비도였다. 자신이 품고 있는 하나를 제외한 여섯 자루의 칠채비도.
이게 왜 여기 있는 건가?
엠버는 살짝 턱을 든 채로 에드의 시선을 즐겼다.
“마음에 드나?”
“물론입니다. 그런데 이건 시트라 교단의 성유물인데 제가 가져도 되는 겁니까?”
론멜이 눈을 부라리든 말든 에드는 은근슬쩍 성유물의 소유권을 주장해 보았다. 그 물음에 엠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선물이니 당연히 가져도 돼.”
에드는 함에 있는 비도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칠채비도를 이렇게 빠르게 얻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얻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파괴의 신인 시트라의 권능이 담겨 있는 칠채비도 중 하나가 성화와 만나면서 귀환 명령을 듣게 되어 전투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게 되었는데 나머지 모두를 손에 넣을 줄이야.
다음 상급 악마를 잡을 기회가 있다면 칠채비도를 모두 꽂은 채 아스트론에게 제물로 바쳐야겠다. 그렇게 되면 일곱 자루의 비도 모두가 귀환 기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빙결의 활보다 주력으로 쓸 수도 있다.
일곱 개의 비도가 각기 다른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서로 공명하며 더욱 큰 힘을 불러낼 수 있다고 했다.
석화의 권능도 더 강해질 거라 했으니 에드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것 같다니 다행이군. 내게 온다면 그건 시작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지.”
론멜은 기가 막혔지만, 엠버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총본회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성유물이 어떻게 유출된 걸까?
하지만 엠버 왕자 정도 되는 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성유물이라고 해도 구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어떻게 딱 맞게 칠채비도를 가지고 온 걸까?
그 모든 의문점에 대한 것을 물을 수 없었다. 총본회에 가면 그때나 이 상황에 관해서 묻고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럼 식사나 마저 하지.”
엠버는 그 뒤로 간단히 악마 사냥에 대해서만 물었을 뿐 자신을 찾아오란 말은 하지 않았다.
저렇게 어린대도 사람을 상대할 줄 알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에드는 앞에 선 론멜에게 말했다.
“이거 총본회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아. 도대체 이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가 받은 거니 제 것 맞죠?”
론멜은 그 말에 인상을 굳혔지만, 곧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맞겠지. 맞을 거야.”
에드는 칠채비도를 꺼내 들었다. 생긴 것은 똑같은데 비도에 새겨진 룬문자가 달랐다. 에드가 론멜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명 좀 해주시죠.”
론멜은 그 말에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칠채비도를 하나씩 짚으며 말했다.
“이건 부식, 이건 노화, 이건 환영, 이건 투명, 이건 흡혈, 이건 파사의 권능을 지니고 있네.”
에드는 그 말을 듣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곱 자루 비도. 그 안에 담긴 권능이 일곱 가지인데 다루기에 따라서는 활보다 더 뛰어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빙결의 활도 성유물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졌으나 이건 말 그대로 성유물이다. 게다가 일곱 가지 다른 권능.
“부식은 상대의 무기를 빠르게 부식시키네. 노화에 당한 상대는 급격한 노화를 겪는다고도 했고, 환영은 칠채비도가 함께 있을 때는 일곱 자루로 늘어난다고 했지. 투명은 잠깐 형체가 사라지고, 흡혈은 내가 가진 성검과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지. 파사는 사특한 힘을 부수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했어.”
게다가 칠채비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특질을 알 수 없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죽끈이 있었다. 그곳에 하나둘 비도를 꽂아 넣었다.
현철 비도보다 조금 더 긴 덕분에 일곱 개의 비도를 꽂는 것으로 방어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얻은 석화의 권능을 지닌 비도를 꽂은 에드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린이 물었다.
“정말로 마젤타 왕국에 몸을 의탁할 건가요?”
에드는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채 답했다.
“악마를 상대할 무기를 준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죠. 그리고 이건 선물이라고만 했지 받는 대가로 반드시 오라고 한 건 아니니까요.”
어린 왕자님의 플렉스 덕에 좋은 무기를 얻었다.
엠버는 밀러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자네가 구해온 물건에 만족하더군.”
밀러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시트라 교단에게 있어 칠채비도는 성유물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쓸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성기사들은 비도라서 잘 쓰지 않으니 성유물이면서도 애물단지처럼 창고에 쌓아만 놓은 물건이었다.
그걸 밀러가 시트라 교단과의 거래로 구해왔다. 언제 에드에게 전해주어야 이게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할 때 엠버가 에드를 원했다.
그리고 그가 원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밀러는 깨달았다. 이건 기회다.
트라비아 왕국에 파견 나간 특첩부대원 모두를 잃고 특무부대 마저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얻은 기회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칠채비도를 내놓았다.
그리고 지금 마젤타 왕국 서열 3위의 줄을 잡았다. 서열 2위인 태자가 기획했던 트라비아 왕국에서의 일이 수포가 된 지금 서열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
츠바이와 함께 밀어준다면 엠버를 서열 2위로 올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엠버는 가볍게 밀러와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술을 비웠다. 고작 12살이지만 술이라면 오래전부터 배워왔었다.
술잔을 비운 엠버가 밀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3군단을 접수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를 도와라.”
“츠바이가 함께 하는 것으로 압니다.”
“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엠버는 자신이 제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함을 알았다. 엠버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엠버가 내민 손을 보고 밀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았다.
알론도 시의 일이 끝나고 일행은 마차를 타고 마젤타 왕국의 서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덱스는 테인을 조르는 중이었다.
“영감. 그란트에게 연락 안 됩니까?”
“왜?”
“유물급 장비 좀 구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유물급 장비? 그런 거야 돈만 있으면 여기서도 못 구할 것도 없지. 론멜. 그렇지 않은가?”
론멜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물급 장비는 뭐하려고?”
“뭐하기는 뭐 따라잡아야 칼빵이라도 놓을 것 아냐? 게다가 무기 다 뺏긴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유물급 중에서 무기 말고 다른 장비로 구해야겠어. 그런데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것 맞아?”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암시장은 나도 모르는데?”
덱스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봐? 성기사가 암시장을 이용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에드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면 아린도 처음에는 완전 허당이지 않았던가? 그건 론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마젤타 왕국의 암시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에드도 모른다. 이곳은 악마의 시대 1에서는 올 수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에드는 레벨이 오르면서 신체 능력이 자연스럽게 오르고 있었고, 이제는 성유물도 제법 가지고 있다. 상급 악마와 싸워본 결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상태에서 칠채비도까지 얻었다.
하지만 일행의 능력을 높이려면 장비 쇼핑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다.
테인이 수염을 쓸어내리고는 말했다.
“다음에 들르는 도시에서 알아보도록 하지.”
테인의 시선이 덱스를 향했다.
“그란트에게 연락한다고 해도 그는 마젤타 왕국으로 넘어올 수 없어.”
덱스는 그 말에 인상을 굳혔다.
“어, 나 돈 없는데? 론멜. 성기사는 돈 많지?”
론멜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필요해? 한 100골이면 돼?”
덱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로 유물급 장비 하나나 구하겠어?”
“어렵지.”
옆에서 에드가 맞장구를 치자 론멜이 머리를 긁적였다.
“필요하면 교회나 신전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 큰 금액은 총본회의 허락이 필요해.”
아스트론 교단에서 아린이 가져다 쓰는 돈에 비하면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린도 목돈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교회나 신전에서 가용할 수 있는 지원금이 많을 뿐이었는데 마젤타 왕국에 와서는 그것도 쉽지 않으니까.
“우선은 암상을 찾아보죠. 돈이라면 제가 있으니까요.”
돈이라면 넉넉해진 에드가 인심을 베풀기로 했다. 그리고 에드도 이번에 쓸만한 유물이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에드는 그리 말하고는 칠채비도를 뽑아서 던지는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세 개를 동시에 던지는 것까지 훈련했다. 세 발의 화살을 이용해서 동시에 쏘아내는 훈련을 해서 그것들을 조종하는 법까지 훈련했는데 일곱 자루를 동시에 던져서 그것들을 움직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력은 일곱 개를 동시에 쓸 만큼이 되지만, 일곱 개를 동시에 다른 궤적을 그리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네 개를 동시에 조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네 개를 던지고 다시 세 개를 던지는 식으로 하는데 늘려 놓은 마력도 간당간당했다. 몇 번 훈련하고 나면 마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이번에 유물을 보러 암상을 만나러 간다면 그때는 자신도 마력을 늘릴 수 있는 장비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 관련 장비는 신비술사들은 물론이고 마력을 다루는 이들에게 유용한 물건이라 가격보다도 매물이 별로 없다.
에드가 일곱 자루 비도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론멜은 헛웃음을 흘렸다.
전대 마스터 팔라딘이 다루던 칠채비도였지만, 그도 저렇게 자유자재로 비도를 다루지는 못했다.
저걸 보니 칠채비도가 마치 제주인을 만난 것 같은 모습이라 기분이 묘했다.
다음에 머문 곳은 작은 마을이었다. 마물의 습격이 없으니 마젤타 왕국에서는 이런 마을의 여관에서 묵어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에드는 그날 묵는 방 창문에 흑기를 걸어놓았다. 이번에도 밀러가 찾아왔기에 암상을 만나고 싶다고 전하니 하루만 더 있어 달라는 말을 전하고 떠났다.
목적지가 정해졌지만, 하루 정도 쉬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니니 하루 더 머물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한 여인이 일행을 찾아왔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온 여인이 우리가 머무는 방으로 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카산드라에요. 원하는 물건들이 있다면서요?”
에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우리는 유물급 장비들을 취급하는 암상을 소개 받기로 했는데?”
카산드라가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찾아가는 서비스!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무엇이든 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