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19화 (119/202)

#119

감각 교란

기사들은 해가 정상에 걸리기 전에 마차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일행 모두가 초대되었기에 마차가 두 대가 왔고, 일행 모두가 나눠탔다.

론멜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지만, 일행 중 누구도 그 덕분에 초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마차는 기사들의 인도로 내성으로 향했고, 내성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길이 열리며 일행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에드는 마차 안에서 심안으로 내부를 훑어보고 있었다.

엠버 왕자의 초대로 가는 길. 군단 사령관인 페트라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기회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는 상급 악마와도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졌지만, 그건 싸울 수 있을 정도지 압도하지는 못한다. 주변 인물까지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무리니까.

내성의 쌍둥이 탑 중 하나에 도착하니 마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일행이 모두 마차에서 내렸다.

탑의 입구에서 기사는 론멜을 제외하고 모두 무기를 반납했다. 에드도 가지고 있던 장비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몸에 지니고 있던 장비들을 탈탈 털어놓으니 한가득 쌓인 장비에 기사가 질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론멜은 기사들이 챙기는 장비를 보며 말했다.

“그중에는 시트라의 성유물도 있으니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면 좋겠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사가 앞장섰고, 론멜을 비롯한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안내받은 곳은 탑의 상층에 있는 식당이었다. 가능한 창문을 많이 뚫어서 알론도 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뷰가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 놓인 긴 식탁의 끝에 앉아있던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에고보다는 컸지만 그래 봐야 12,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

소년은 검지와 중지를 미간에 대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파괴는 끝이 아닌 시작일지니.”

같은 말로 인사를 받은 론멜에게 옆에 있던 시종이 다가와 자리를 권했다. 론멜은 소년의 맞은편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나머지 일행은 그 옆에 자리 잡고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잡자 소년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소년을 따라 모두 자리에 앉자 소년이 입을 열었다.

“마스터 팔라딘에게 검술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군.”

“여전히 잘 지내십니다.”

각자의 앞에 시녀들이 스프를 내주는 사이에 엠버는 꼿꼿이 허리를 편 자세로 론멜을 바라보았다.

“시트라의 신도로서 성기사가 총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내성에 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네.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지.”

“감사합니다.”

일행 모두가 론멜을 바라보았다. 진짜 론멜 때문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건가 싶어 바라보는데 엠버는 수저를 들며 말했다.

“일단 들지.”

모두가 스프를 떠서 먹는 동안 에드는 엠버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심안으로 그를 살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모두를 살폈다.

다행히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는 악마와 연관된 이가 없었다.

엠버는 스프를 몇 숟가락 뜨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일행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일행들의 행색이 독특하군. 특히 그쪽은 아스트론의 성기사인가?”

아린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스트론의 성기사 아린이라고 합니다.”

“본국에 아스트론의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성기사는 한 명도 없네. 그런데 무슨 일로 성기사가 이곳까지 온 건가?”

그 대답은 론멜이 대신했다.

“성기사가 하는 일이 뭐겠습니까?”

엠버는 그 말에 론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성기사가 하는 일이라면 악마나 마물 퇴치를 말하는 건가?”

“예.”

엠버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어젯밤 재미있는 보고를 들었네. 듣자 하니 르세뉴 시의 루카스 총무관이라는 자가 악마였다고 하더군.”

에드는 그 말에 엠버가 밀러를 만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르세뉴 시의 일을 보고하면서 이곳에도 악마가 있을 수 있다고 했을 터.

엠버는 이해가 맞았기에 이들을 성내로 부른 것이 확실했다.

“그랬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악업을 쌓고 있었죠.”

엠버는 그 말에 흥미가 동한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론멜을 바라보았다.

“성기사들은 악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맞나?”

“예.”

“그렇다면 왕국을 위해서 3군단 사령부의 사람들을 확인해 줄 수 있겠나? 악마가 있어 왕국의 힘을 갉아먹고 있다면 색출해내야 할 테니 말일세.”

론멜은 그제야 엠버가 무슨 뜻으로 자신을 불렀는지를 알았다. 시트라 교단이 마젤타 왕국의 국교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섣불리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엠버는 지금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론멜의 시선이 자연스레 에드를 향했다. 아스트론 교단의 예언에 따른 퇴마행을 하는 일행의 리더로 여긴 에드에게 보낸 시선에 에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론멜은 그 모습에 시선을 돌려 엠버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악마라면 당연히 확인 후에 처치해야죠.”

엠버는 론멜의 대답을 듣다가 시선을 에드에게 돌렸다. 별다른 기척도 없는 자였는데 론멜은 분명 대답 전에 그를 바라보았다. 시트라의 성기사가 왜 다른 이의 눈치를 보는 걸까?

엠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네. 그럼 식사부터 마저 하도록 하지. 3군단 사령부의 인물들은 내가 만나게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엠버는 식사를 하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들의 대표로 대화하고 있는 것은 론멜이었지만, 실상 저 일행에서 그의 위치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식사를 마친 일행은 엠버와 함께 탑을 내려왔다. 엠버는 그들을 데리고 맞은편 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론멜이 가는 길에 엠버에게 물었다.

“저희 무기를 돌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엠버는 고개를 내저었다.

“론멜 경이야 시트라의 성기사니까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지만, 다른 이들이 무기를 지니고 3군단 사령부에 들어가서야 되겠나? 저들도 저들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론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들은 3군단 사령부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군단 사령부를 지키던 기사들이 엠버를 보고는 군례를 올렸고, 엠버는 그들을 일변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고작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의 나이지만, 태어나기를 왕자로 태어난 엠버는 뼛속까지 왕족이었다. 엠버를 따라 이동하며 에드는 심안을 이용해서 탑의 내부를 훑었다.

그런데 탑의 상층부는 심안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확실히 뭔가가 있다. 다만 무기도 없이 악마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이 짜증 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탑은 뭔가 분주했다. 마치 압수수색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서류를 확인하는 이들과 그들을 불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 계속 올라가던 에드는 디에고에게 시선을 주었다.

심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던 것을 디에고는 어찌 느꼈을까?

디에고는 에드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내저었다. 디에고의 감각조차 흐리게 하는 힘.

전투에 특화된 상급 악마였던 루카스와 다르게 이 자는 저번에 만났던 중급 악마처럼 감각을 교란하는 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심안을 방해하던 공간에 들어서니 심각하게 감각 교란이 일어났다.

안개가 낀 것도 아닌데 세상이 일그러지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걸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걸 느낀 것은 감각이 유달리 예민한 이들이었다.

브란트도 고개를 내젓고 있었고, 아린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푸른 성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앞장서 걷던 엠버가 걸음을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린을 돌아보았다.

아스트론의 성기사가 마젤타 왕국에는 왜 왔나 싶었는데 전신에서 성광을 뿜어내는 것을 보니 아스트론 교단 내에서도 꽤 높은 수준의 성기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성광을 왜 지금 뿌리는 건가 싶어 바라보던 엠버가 물었다.

“혹시 근처에 악마가 있기라도 한 건가?”

“확실하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가?”

엠버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페트라 사령관이 악마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3군단 사령부 내에 악마가 있다?

그렇다면 그도 실각을 면치 못하리라.

엠버의 수호 기사도 악마가 있다는 말에 조금 빠른 걸음으로 3군단 사령부의 회의실로 다가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3군단 사령부 기사들이 그들을 보고는 군례를 취하자 엠버가 뒷짐을 진 채 말했다.

“페트라 사령관은 안에 있나?”

“예. 안에 계십니다.”

“기별을 넣게.”

기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는 사이에 엠버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기사가 밖으로 나오더니 답했다.

“안으로 드십시오.”

문이 활짝 열리고 그 안으로 엠버가 들어섰다. 수호 기사 둘을 앞장서게 한 채로 들어간 엠버는 회의실의 자리에 앉아 있던 페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씨익 웃어 보이고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가서 앉았다.

페트라는 엠버의 뒤편에 늘어선 이들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감사에 적극협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만 어쩐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재미있는 보고를 들어서 말이야.”

페트라가 아무런 답도하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자 엠버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루카스 총무관에 대해서 기억하나?”

페트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토란 장군 휘하의 총무관 말입니까? 제법 영민한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엠버는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고는 말했다.

“아니지. 그는 이번 출정의 기획안을 올린 자고 그 기획안을 지지한게 페트라 사령관이니 더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

페트라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하루에 받는 기획안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하루에도 100개가 넘고 일 년이면 4만 개에 달하는 기획안을 받습니다. 그 기획안의 기안자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만큼 녹록한 자리가 아니라서요.”

“어쨌든 그 총무관이 악마였다는 것이 밝혀졌다는군.”

페트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엠버가 몸을 앞으로 숙여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는 몸을 숙였다. 그리고 페트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이야. 3군단 사령부에도 악마가 있다는 거야.”

페트라의 시선이 뒤편에 서 있는 론멜을 향했다. 론멜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시트라의 검과 함께 오신 겁니까?”

“맞아.”

페트라의 시선이 론멜을 향했다. 그는 론멜을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래서 우리 시트라의 검께서는 악마를 찾으셨나?”

론멜은 그 말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악마를 감지하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론멜의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아린도 지금 눈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지만, 이 안에 악마가 있다는 것만 파악이 될 뿐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 있는 이들은 페트라와 그의 뒤에 서 있는 수호 기사 넷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엠버와 그의 수호 기사는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저들 중 악마가 있다는 말인데 자신의 눈으로도 그를 구분해 낼 수 없었다.

아린이 에드를 돌아보았다. 에드는 그 시선에 저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읽을 수 없음을 알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악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엿 같은 상황이었는데 에드는 그들의 앞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페트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붉은빛이라도 보인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 녀석은 그것마저 숨기고 있었다.

대단했다. 이런 악마도 있구나 싶었다.

에드는 론멜의 성검을 뽑아서 그대로 웃고 있는 페트라의 면상을 향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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