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침입
디에고는 제리를 소환하지 않아도 악마의 힘을 감지하는 영역이 아린보다 월등히 높다. 그렇기에 혈마석을 지닌 악마를 찾기 위해서 디에고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린에 대해서는 펠만 국왕도 이미 말을 해놓았다. 편의를 봐주겠다고.
그래서인지 아린이 지나가는 길은 병사들도 분분히 물러날 뿐 검문조차 하지 않았다.
밤이었다면 아무래도 조금 더 악마의 위치를 특정하기 쉬웠을 테지만, 지금은 대낮이라 그런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이곳에는 악마의 힘을 지닌 자들이 많아서 그중에서 혈마석의 악마를 찾는 것 또한 힘이 들다.
그 미세한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밤이 되어 제리의 능력을 빌려야 할 판이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에드가 문득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멀리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에드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소란이 일어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에드가 말을 멈추고 돌아보자 아린도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브란트?”
아린의 중얼거림에 에드는 활을 꺼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란트가 엠마를 옆구리에 낀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서 지붕을 달려오는 자들이 셋. 대로를 따라 병사들도 소리를 치며 따라오려고 한다.
에드는 그 모습에 아린을 돌아보았다.
“뭔가 일이 생겼나 본데 우선 브란트는 제가 구할게요. 호텔로 가 있어요. 호텔에서 봐요.”
“알겠어요.”
에드는 자신의 앞에 타고 있던 디에고에게 고삐를 주고는 말했다.
“다크를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엠마를 잘 부탁해요.”
“그래.”
에드는 말에서 내려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건물의 벽을 박차고 반대편 건물의 벽을 박차면서 단숨에 지붕까지 올라갔다.
지붕에 올라간 에드는 활을 꺼내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브란트를 쫓아오던 자들이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지만, 그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온 화살에 반응이 늦어 몸에 화살이 하나씩 박힌 채 지붕에서 굴러떨어졌다.
브란트가 방향을 틀어 에드 쪽으로 달려왔다. 에드는 그런 브란트에게 손짓하며 길에서 쫓는 병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지붕 위에서라면 찾기 쉬워도 지상에서는 찾기 어려운 곳을 골라서 건물 지붕 사이를 뛰어넘던 에드는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브란트도 따라서 뛰어내리자 에드는 그와 함께 건물의 뒤편에서 몸을 숨겼다. 브란트가 엠마를 내려놓자 속이 안 좋은지 눈을 감고 있던 엠마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일입니까?”
브란트는 에드의 물음에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답했다.
“아칼란의 요원들이 점원으로 변장하고 우리를 노렸네. 엠마를 노리던 자를 죽였을 때 병사들이 들이닥쳤네. 테인이 우리는 잡히면 안 된다고 빠져나가라고 해서 빠져나왔는데 금세 뒤를 쫓는 이들이 있더군.”
브란트의 얘기를 듣고 보니 다비드가 작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칼란의 요원들을 보내고 그런 그들을 죽였을 때 맞춰서 병사들이 들이닥쳤다면 요원들이 걸려서 죽을 것까지 계산에 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어떻게든 잡기만 하면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니 그때부터는 저쪽의 뜻대로 놀아나게 된다. 브란트와 엠마는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아린은 성기사고, 그녀와 함께 알현했던 에드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이들은 얼마든지 엮어 넣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잡혀갔을 수 있겠군요.”
“아마도 그랬을 것 같아.”
그들을 빼 오는 것도 일이다. 트라비아 왕국에서야 테인의 입김이 어느 정도 통할 테지만, 이곳은 트라비아 왕국을 배신한 베리코 왕국이다.
성기사인 아린이라고 해도 자국민을 살해한 이들에 관한 재판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아스트론 교단에 빚을 씌워두겠다며 풀어준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을 구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그래도 다행이라면 브란트가 빠져나왔다는 점이다. 브란트가 잡혔다면 그는 악마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 교단이 아예 나설 수 없었을 테니까.
“테인이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해줬네요. 우선 몸을 숨길 곳을 찾아봐야겠어요.”
브란트와 엠마를 데리고 에드는 펠만 시의 빈민가를 찾아갔다. 병사들의 눈을 피해 빈민가를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빈민가를 찾은 에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눈마저 피해서 사람이 없는 폐가를 찾아냈다.
뭔가 스산해 보이는 폐가 근처에는 아예 사람이 없었다. 빈민가에서 지붕이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그곳을 얼마나 탐내는지 아는 에드로서는 조금 의외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간 에드는 곧 왜 사람들이 이곳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심안에 잡히는 존재.
사령이다.
사령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필요했기에 에드는 신성 화살로 사령을 맞췄다. 강제로 성불시킨 에드는 화살을 회수하고는 브란트를 돌아보았다.
“우선 이곳에 계세요. 귀신 나오던 곳이라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알겠네.”
에드는 엠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디에고가 네 걱정 많이 했어. 그러니 괜히 움직이지 말고 아빠 곁에 딱 붙어 있어.”
“알겠어요. 그보다 디에고는 괜찮아요?”
“괜찮아. 아린이 옆에 있으니 특별히 위험할 일도 없을 거야.”
“잘 부탁해요.”
에드는 엠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상황 파악하고 다시 올게요.”
에드는 그들을 빈민가의 폐가에 데려다 놓고 곧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쫓아오던 자들에게 화살을 날렸으니 자신도 체포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도 지붕을 지나 창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간 에드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린과 디에고를 만날 수 있었다.
디에고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에드를 보고는 얼른 다가왔다.
“형. 엠마는요?”
“일단 둘 다 무사해.”
디에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 에드는 아린을 돌아보았다.
“저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어요. 설마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줄은 몰랐네요.”
적들이 움직일 가능성도 생각해 두었었다. 그래서 어제 꼬리를 잡아 오기도 했던 것이고.
그런데 꼬리가 잡혔다는 것을 알자마자 저들의 움직임이 과격해졌다. 아침부터 요원을 보내고 그들이 실패하자 치안대장까지 움직여서 일행을 잡아갔다.
그들을 구출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고작 인간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력으로 탈출시키면 뒷감당이 쉽지 않다.
“어떻게 하죠?”
“일단 치안대장을 만나서 상황 설명을 듣도록 하죠. 아무래도 한통속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이쪽의 일행임을 주지시켜 놓으면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죠.”
일단 죄를 지었으니 잡아두기는 했지만, 이쪽에서도 그들을 무력 구출하기 힘들 듯 저쪽에서도 교단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전쟁을 앞둔 지금 교단이 등을 돌리고 교회와 신전의 사제들을 철수시키면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니까.
“알겠어요.”
에드의 시선이 디에고를 향했다.
“그리고 너는 음식들을 챙겨. 나랑 같이 브란트씨한테 갈 거야.”
엠마 걱정이 한가득하였던 디에고는 그 말에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금방 싸 올게요.”
디에고가 호텔 주방에 음식을 주문하러 간 사이에 에드는 아린을 바라보았다.
“타로스가 이곳의 정보를 꽉 쥐고 있다고 한다면 빈민가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요. 그곳도 발각될 가능성이 커요.”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죠?”
“하지만 거기서 싸운다면 병사들이 나서지 못할 겁니다.”
병사들이 빈민가에 들락거린다면 그것 자체로 의심을 받을 일이다. 그리고 어설픈 병력으로는 브란트를 절대 잡지 못한다.
“다비드라는 자가 이번 일과 연관이 있으니 그자를 만나볼 생각이에요.”
“좋아요. 치안대장을 만나서 그들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도록 얘기해 놓을게요.”
“부탁할게요.”
금세 디에고가 음식을 한가득 싸 왔다. 에드는 그런 디에고를 옆구리에 낀 채 호텔의 창문을 나와 빈민가로 향했다. 아직 빈민가까지는 타로스가 움직이지는 않은 건지 병사들은 여전히 바삐 움직이지만, 빈민가는 조용했다.
아무래도 병사들이 성내를 계속 돌아다니니 빈민가에 병사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부랑자들이 알아서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산한 빈민가를 달려서 브란트가 있던 폐가로 가니 엠마가 환한 얼굴로 디에고를 맞이했다.
“배고팠는데 뭐 싸 왔어?”
디에고가 씨익 웃으면서 싸 온 것을 꺼냈다.
“호텔에서 싸올 수 있는 것들 다 싸 왔어.”
디에고가 꺼낸 것들을 보니 엠마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달달한 빵들이 한가득이었다.
브란트도 그 모습에는 헛웃음을 흘렸다.
“디에고. 먹을 걸 챙겨오랬더니 빵만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해?”
“급하게 챙겼잖아요.”
에드도 브란트도 디에고가 왜 빵을 이리 챙겨왔는지 안다. 특히나 달달한 빵은 일행 중 엠마만 좋아하는 것이었으니까.
엠마가 미소 지은 채 브란트에게 빵을 권했다.
“아빠. 드세요. 맛 좋아요.”
브란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빵을 받아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디에고와 엠마도 마주 보고 웃으며 빵을 먹기 시작했다.
에드는 그들이 빵을 먹는 사이에 브란트와 잠깐 떨어져서 이야기를 꺼냈다.
“치안대장에게 모두 잡혀갔다고 해서 아린이 치안대장을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아린이 가는 것만으로도 일행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다비드 그자의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걸세.”
펠만 국왕이 타로스라는 정보 단체를 만들어 줄 정도라면 왕국 내에서 다비드의 입김이 만만치 않을 터.
하지만 에드는 그 입김을 못 불게 할 생각이다.
“그래서 말인데 엠마를 디에고에게 맡기고 저랑 같이 가죠.”
“어디를?”
“왕궁이요.”
“왕궁에 잠입하자고?”
“예.”
브란트는 그 말에 디에고를 돌아보았다. 디에고가 엠마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봐서 알지만, 과연 디에고를 믿고 맡길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르다.
디에고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아직 애니까.
“어차피 밤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그리고 밤이 되면 디에고는 낮과는 다르게 믿고 맡길 만큼 강하니까요.”
브란트는 그 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다비드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는 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그 이름만으로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디에고가 챙긴 빵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깊은 것을 보고 에드는 디에고에게 기척을 죽이는 반지를 받아서 브란트에게 끼워줬다.
“형님이랑 성에 다녀올 테니 엠마를 잘 지켜주고 있어.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까.”
디에고가 그 말에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만 믿어요.”
브란트가 그런 디에고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어 디에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부탁한다.”
“엠마는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제가 죽기 전에 엠마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테니까요.”
브란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때 엠마가 달려와 그 허리를 끌어안았다. 브란트가 그런 엠마의 등을 토닥여 줬다.
“다치지 말아요.”
“걱정하지 말고 디에고와 여기 있어라. 밤의 디에고는 믿을만한 녀석이니까.”
에드와 브란트는 디에고와 엠마를 두고 떠나갔다. 엠마는 둘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주먹을 들어 디에고의 어깨를 때리며 말했다.
“아야!”
“뭘 디에고가 죽기 전에는 내가 안 다친다는 거야? 그런 말 입에 담지 마! 알겠어?”
디에고는 화를 내는 엠마의 모습에 씨익 웃었다.
“다음부터 그런 말 안 할게.”
에드는 브란트와 함께 불을 잔뜩 밝혀 대낮처럼 밝은 내성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내성이 아니라 베리코의 왕국의 왕성이라 부를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경계가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왕성에 잠입하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에드는 브란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죠. 다비드 만나러.”
에드와 브란트가 왕성을 향해 기척도 없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