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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92화 (92/202)

#92

타임 어택

헤나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병영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그녀의 도움으로 한 방에 해결됐으니까.

그녀는 병영에 모이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내성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들을 실은 마차에 일행이 탈 수 있게 해주었다.

술을 실은 마차의 마부로 분장한 에드는 마차 내부에 숨어있는 디에고를 떠올렸다. 대낮에 벌이는 일이라 디에고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상대가 누군지 파악했다고 해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어서 디에고는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뒤쪽의 음식을 실은 마차에는 덱스가 마부를 맡고 있었고, 안쪽에는 브란트가 숨어있었다.

에드의 시선은 가장 앞에 가는 마차에 닿았다.

헤나가 타고 있는 마차로 그곳에는 아린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녀의 호위로 타고 있으니 검문에서 걸릴 일도 없으리라.

병영에 다가가니 안에서는 훈련이라도 받는 것인지 기합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영지민들 모아다가 허름한 갑옷에 무기나 쥐여주고 전장에 내보낼 줄 알았더니 훈련까지 시키는 것을 보면 그래도 화살받이로 쓸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병영의 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다가왔지만, 헤나를 따라왔던 수호 기사가 나서서 하는 말에 마차 안을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줬다. 은근슬쩍 수문장에게 찔러준 주머니도 뒤편의 마차를 대충 검사하게 하는데 한몫했으리라.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고민됐던 병영의 문이 열리자 마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과 술은 병영 동쪽으로 가면 보급관의 막사가 있으니 따라오시오.”

헤나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다가온 경기병이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경기병은 헤나의 마차를 인솔해서 본진 중앙으로 향했다.

에드는 그 모습에 살짝 인상을 굳혔다. 안으로 들어왔으니 기회를 봐서 몸을 빼내면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헤나를 곧장 악마로 여기고 있는 파렐에게 안내하고 있으니 아린 혼자서 악마를 상대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 부분에 관해서도 이야기는 나눈 바가 있었다. 혹여나 그리된다면 그때는 신성력을 터트리라고.

그럼 어떤 상황이든 뛰어가겠다고 했다.

에드는 잠시 그녀에 대한 걱정을 접고 앞서가는 경기병의 뒤를 따라 마차를 몰았다. 막사들 사이로 보이는 연무장에서는 병사들이 모여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수가 얼핏 보아도 수백을 헤아리니 그 자체로 조금씩 군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에드는 경기병을 따라 마차를 몰면서도 모든 정신은 아린이 타고 가는 마차에 집중되어 있었다. 병사들이 외치는 고함에도 그쪽에만 줄곧 신경을 쏟던 에드는 경기병을 따라 도착한 보급관 막사에 도착했다.

병사들의 병장기와 식량들을 모아놓은 곳에 마차가 도착하자 경기병이 보급관에게 말을 전했다.

“영애께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준비해 주신 술과 음식이다. 막사에 잘 보관하도록 해라.”

“그리 하겠습니다.”

경기병이 물러나고 보급관이 다가오는 사이에 마차에서 디에고가 내려서 마차 밑으로 숨어들었다. 에드도 마부석 밑에 숨겨놓은 활과 화살집을 꺼내 들고는 슬그머니 디에고와 함께 몸을 빼냈다.

그건 뒤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덱스와 브란트가 은밀히 눈빛을 교환하고 따라서 움직였다.

보급관은 마차의 안을 확인하고는 마부를 찾아갔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보급병들을 불렀다.

“술과 음식들을 옮겨라.”

보급병들이 술과 음식을 옮기는 사이에 에드 일행은 막사 사이에 모였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에드는 감각을 일깨우고 막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대부분 막사가 비어 있어 그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때 큰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굉음이 울리며 막사의 중앙에서 찬란한 푸른빛 기둥이 솟구쳤다.

아린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 주저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폭음에 병영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내려앉았고, 그 침묵 위를 에드 일행이 달렸다.

헤나의 마차를 타고 함께 이동한 아린은 일행과 헤어졌음을 들었지만, 그럴 경우도 미리 얘기해 놓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헤나가 붉은 눈빛을 보았다고 했지만, 그것이 진짜 악마인지는 자신이 만나봐야 알 수 있었다. 병영에 다가오면서 감각이 교란되어 악마가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마차가 파렐을 만나러 가는 동안 악마를 감지하는 감각의 일그러짐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곳에 악마가 있음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곧 마차가 멈추고 수호 기사가 직접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헤나가 아린과 눈을 마주치고는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아린이 그 뒤를 따라서 내리니 병사들은 아린을 흘끔 보았을 뿐이다.

망토로 장비들을 가리고 있어 아린의 외모에는 시선을 주었을지언정 그녀가 성기사라고 짐작하는 이는 없었다. 아린도 이제는 후광을 제어하는 법을 익혀서 다른 이들에게 일반인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했다.

천막 앞을 지키고 있는 수호 기사가 헤나를 보고는 왼쪽 가슴에 주먹을 올리며 예를 취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오빠. 안에 있죠?”

“예. 기별하겠습니다.”

수호 기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다시 나와서는 천막을 걷어주었다. 헤나와 그녀의 수호 기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린을 천막을 지키던 이들이 막아 세웠다.

“누구십니까?”

“제가 모신 분이에요. 오빠에게 소개해 주려고요.”

헤나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모습에 수호 기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아린은 어차피 안에서 느껴지는 파렐의 기운을 읽었기에 망토를 조금 걷어서 입고 있는 갑옷을 보여줬다. 아스트론의 증표가 새겨진 갑옷을 보고 수호 기사들이 놀라 눈을 뜰 때 아린이 담담히 말했다.

“아스트론의 성기사 아린입니다.”

성기사 한 명이 영지 내에 들어왔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징집관과 문제가 있었다는 소문도 이미 들었다. 그런 성기사가 이런 미녀일 줄은 몰랐기에 살짝 놀란 수호 기사들은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전쟁을 준비 중이기에 아스트론 교단과 연을 맺을 기회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수호 기사가 물러나자 아린은 헤나의 뒤를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의 뒤편으로는 막이 처져 있었고 그 앞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있는 서류를 뒤적이던 사내가 헤나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린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건넸다.

“아스트론의 성기사님이시라고요?”

아린은 눈앞에 선 사내를 빤히 바라보다가 헤나보다 앞으로 나서서는 그의 두 눈을 직시했다. 눈을 마주친 아린에게 파렐이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콜린 가의 파렐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가 붉은 눈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으니 감각이 일그러진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자가 악마다.

아린은 대답 대신 등 뒤로 손을 돌려 방패를 꺼내고 허리에 차고 있던 해머를 뽑는 것과 동시에 던졌다.

옆에 있던 이들이 놀라서 반응도 하기 전에 날아간 해머에 파렐이 손을 들어 막았다.

콰앙!

신성력이 깃든 해머를 막은 파렐의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해머를 잡은 손에서 피부가 벗겨지며 그 아래에서 검붉은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악!”

헤나가 비명을 지를 때 아린의 전신에서 가공할 신성력이 폭발했다. 천막의 지붕이 뚫리며 하늘로 솟구친 신성력.

그걸 보고 파렐이 코웃음을 쳤다.

“귀찮게 됐군.”

파렐은 전투를 즐기는 악마가 아니다. 전투 보다는 인간들의 욕망을 자극해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것을 즐기는 자.

그렇다고 걸어온 싸움을 피할 정도는 아니다. 상대가 성기사라고 해도 귀찮아서 상대하지 않았을 뿐이다.

혈마석을 얻은 뒤로 자신은 이제 전과 달리 강해졌으니까.

혈마석을 지닌 악마들도 당했다고 하지만 자신이 당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파렐은 성기사가 홀로 자신을 찾아온 지금 그녀를 먼저 죽여야 함을 알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으니 그들이 오기 전에 죽인다.

파렐의 가죽이 재가 되어 흩어지고 그의 전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중급 악마였던 자신을 상급 악마에 준하는 힘을 주었던 혈마석이 몸 안에서 미친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혈마석을 통해 전신을 휘도는 마기를 담아 주먹을 내뻗었다.

성기사가 방패를 들어 앞을 가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 방패 하나로 자신의 공격을 막겠다고?

코웃음을 치며 뻗은 주먹이 그대로 방패를 후려쳤다.

꽈앙!

해머를 막았을 때는 인간형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본체를 드러낸 상황. 하지만 방패를 친 순간 그곳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에 뒤로 튕겨 날아가야 했다.

우지끈.

튕겨 날아간 파렐이 천막의 기둥에 부딪히며 기둥이 무너졌다. 천막이 머리 위를 덮는 것을 보며 파렐이 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길을 따라 천막이 찢어졌다.

천막을 찢고 모습을 드러낸 파렐은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느꼈다. 트라비아 왕국의 내전에 관련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아마 이 전쟁은 악마들이 손을 대는 만큼 엄청난 숫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계획이었는데 그것이 틀어졌다. 그러나 지금 혈마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전신을 타고 흐르니 굳이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피를 이용한다면 자신은 온전한 상급 악마로 올라설 수 있으리라.

도시 하나를 제물로 바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그때 천막 밖으로 밀려났던 헤나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소리쳤다.

“이 악마! 아버지를 어떻게 한 거냐!”

“고집쟁이 영감?”

파렐이 뒤로 손을 내미니 천막이 덮인 부분이 찢기더니 중년인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파렐은 지금까지 자신을 애 먹였던 콜린을 그의 딸이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녀가 느낄 공포와 분노, 그 모든 감정을 집어삼킬 계획이었으니까.

“보아라! 날 고생 시켰던 이 늙은이의 최후를! 그리고 너희가 겪게 될 최후를!”

콜린의 목을 쥔 채 팔을 잡아 뽑으려고 손을 들어 올렸을 때 뭔가가 날아들었다. 어찌나 빠르게 날아드는지 형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팔로 막아야 했다.

그런데 그 화살은 들어 올린 팔을 타 넘고는 콜린 공을 쥐고 있던 손목을 관통했다.

“크윽!”

손목이 뚫리는 순간 지독한 통증이 전해지는 것을 보니 이건 신성력이 담긴 화살이었다. 그때 무언가가 또 날아들기에 파렐이 뒤로 훌쩍 뛰어 피했다.

날아든 것은 뱀처럼 움직여 콜린 공의 허리를 감고는 뒤로 돌아갔다.

손목의 상처를 쥔 파렐은 입을 벌려 불을 뿜어내려고 했다. 손으로 직접 잡아 찢는 것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콜린 공을 그냥 내줄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입을 벌렸을 때 또 날아드는 화살들이 있었다. 줄줄이 날아드는 화살이 어찌나 위험해 보이는지 불을 뿜어내다가는 고슴도치가 될 판이다.

그래서 자신의 앞에 불을 뿜어 벽을 만들었다. 불의 벽을 뚫고 들어온 화살들이 몸에 부딪혔지만, 벽을 뚫느라 힘이 다해 몸에 박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불의 장벽이 사라졌을 때 파렐은 앞에 선 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일행의 앞에 선 성기사와 그 좌우에 선 자들. 쌍검을 쥔 사내와 팔에 감고 있는 사슬을 길게 늘어트린 자. 그리고 가장 후미에 선 궁수와 소년까지.

라그록스가 전했던 퇴마행을 하는 자들.

혼자서는 분명 위험한 상대다. 하지만 혈마석이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이곳으로 자신을 돕기 위해 다가오는 이가 있음을.

콜린 공을 무사히 구해낸 에드가 재차 시위에 화살을 걸 때 디에고가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저자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에드는 어쩐지 눈앞의 악마가 여유를 부린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나 보다.

“오랜만이네. 타임 어택.”

에드가 활에 세 발의 화살을 걸었다.

자신이 가진 대악마용 화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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