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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89화 (89/202)

#89

사과

아린과 만나기로 한 콜린 시까지 가는 데는 새벽 일찍 출발해서 저녁까지 달려 도시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흘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게 첫날 저녁에 들른 작은 도시의 여관에서 식사를 주문했다. 한창 성장기라 그런지 몰라도 디에고의 식사량도 꽤 늘어난 상태였다.

에드는 어차피 양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아니라서 간단한 안주만 주문하고 술을 마셨다. 취하지도 않는 술이지만 분위기로 마셨다.

시끌시끌한 사람들의 소란 속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에드는 여관으로 들어오는 남녀를 보았다. 짧은 금발에 훤칠한 키의 남자와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여인.

그들을 본 에드는 품에서 말없이 단검을 하나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 보고도 남자는 뒷짐을 진 채 다가와 테이블 앞에 섰다.

“합석해도 괜찮겠소?”

여관에 빈자리는 아직 두어 개 있는 데도 합석을 원한다?

에드는 술잔을 내려놓고 단검을 탁자 위에 꽂아 놓고는 말했다.

“앉아.”

이유 없이 찾아오는 자는 없고, 찾아오는 자치고 좋은 놈이 있을 확률은 극악이다.

그것이 이쪽 세상임을 이미 경험한 에드였기에 단검 자루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자리에 앉더니 점원을 불러서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 술잔에 술을 따르고는 한잔 쭉 넘기더니 입을 열었다.

“반갑소. 난 밀러라고 하오.”

“에드.”

간단히 대답한 에드는 가만히 밀러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죽이고자 한다면 밀러가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죽일 자신이 있었다.

에드가 가만히 바라만 보자 밀러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사과할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소.”

에드는 시큰둥했다.

“사과를 맨입으로 하나?”

에드의 대꾸에 밀러는 미소를 지었다. 저리 말하는 것은 사과를 받을 생각이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밀러는 품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걸 보고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이다.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미 누구랑 연관이 있는지 밝혔을 터.

그 말은 적으로 만난 자가 사과하러 왔다는 말.

“그게 뭔데?”

에드의 물음에 밀러는 화살을 테이블에 놓고 앞으로 밀었다. 에드가 흘끔 보니 화살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보니 보통 화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드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이건 죽음과 파괴의 신 시트라의 성유물 중 하나인 시트라의 화살이오.”

에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성유물?

얼마나 큰 죄를 사과하려고 성유물을 가져다 바친단 말인가?

에드가 시트라의 화살을 집어 들어서 바라보았다.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고 밀러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화살에 맞은 부위에 괴사가 일어나는 화살이오. 이 화살에 맞으면 재생이 불가하지.”

재생 불가 옵션?

에드가 화살을 앞에 내려놓고 밀러의 눈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사과의 의미일까? 이런 사과라면 백 번이라도 받아줄 수 있다.

“뭐에 대한 사과인지 들어볼까?”

밀러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난 켈베로스의 트라비아 왕국 총 책임자인 밀러라고 하오.”

켈베로스.

왕도에서 죽였던 자들이다.

“왕도에서 죽었던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특무대를 소환. 당신을 습격하라 명했소.”

에드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짧은 웃음을 터트리는 동안 디에고의 안색이 변했고, 밀러의 뒤에 있던 여인의 표정도 굳어졌다.

에드는 웃음을 멈추고는 밀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에드는 시트라의 화살을 집어 밀러의 목젖 앞에 겨누고 있었다. 밀러는 그러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이것에 찔리는 순간 죽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도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에드는 그의 목젖을 가만히 겨누었던 화살을 그대로 돌려 화살집에 꽂아 넣었다.

“사과는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번만이야. 다음에 다시 나나 내 주변인들을 노린다면 그때는 저번처럼 놓치지 않아.”

밀러는 에드가 하는 말을 듣고 그때 도망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에드가 확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밀러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대신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에드가 말없이 바라보자 밀러는 그것이 무언의 허락임을 깨닫고는 물었다.

“당신은 달리아 왕국 사람이더군요. 트라비아 왕국에서 악마를 사냥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에드가 가만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밀러가 말을 이었다.

“마젤타 왕국에도 악마는 많습니다. 시트라의 성기사들이 잡아 죽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많은 악마가 있죠. 단순히 악마를 사냥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원을 받으면서 악마를 사냥할 수 있게 해주겠소.”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밀러는 그 모습에 조금의 기대를 가지고 부탁했다.

“마젤타 왕국으로 오지 않겠소?”

“안가.”

간단히 잘라 말한 에드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사과는 받아줬고, 더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 꺼지라는 뜻이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소?”

“친구들을 두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밀러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라도 좋소. 마젤타 왕국에 온다면 귀히 모시겠소.”

“기억해 두지.”

밀러가 여인과 함께 물러나자 디에고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아. 저번에 습격했던 자들과 한패라는데 살려 보내실 거예요?”

에드는 그 물음에 화살집에서 시트라의 화살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성유물을 받았으니까.”

사실 에드가 손해 본 것은 없었다. 짜증이 조금 일었지만, 켈베로스의 습격에 경험치와 반지를 얻었었으니까.

사과의 의미로 별 쓸데없는 것을 가져왔다면야 단검을 이마에 꽂아줬겠지만, 성유물을 가져 왔으니 봐줬다.

시트라.

마젤타 왕국에서는 아스트론 보다 더 믿는 신이다.

죽음과 파괴의 신.

그 이름에 걸맞은 신성이 담겨 있는 화살.

베네딕토에게 받았던 성유물만큼이나 귀중한 무기다.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걸 알아서 구해다 바쳤는데 용서해줘야지.”

에드는 그리 말하고는 시트라의 화살을 다시 빙결의 화살집에 집어넣었다. 소모성 장비인 화살이지만, 에드가 쓰면 다르다. 그런 특별한 화살이 이제 세 개.

이기어시를 동시에 세 개를 다룰 수 있게 훈련해야겠다.

밀러의 뒤를 따르던 샤샤가 물었다.

“시트라의 화살까지 내줘야 했습니까?”

“덕분에 대장군급 궁사가 내 말을 들어줬지.”

켈베로스의 특무대를 죽였다고 해도 그들에게서 켈베로스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언제고 그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대장군급 궁사를 적으로 맞이하느니 성유물을 바쳐서라도 친분을 다지는 것이 이득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젊다. 그 나이에 대장군급의 경지에 올랐다면 그는 장차 3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르니 이렇게라도 인연을 쌓아둬야지.”

“설마 그 정도까지 성장할까요?”

“그건 모르지.”

누구에게나 성장 한계라는 것은 있으니까.

하지만 약간의 가능성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유물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도록 해.”

“그리하겠습니다.”

특무대까지 잃은 일로 켈베로스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지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리라.

콜린 시.

트라비아 왕국의 남쪽에 자리한 도시라 그런지 날씨가 점점 따뜻해졌다. 콜린 시의 성문을 보면서 에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형. 빨리 가요.”

오는 길에 가능한 야숙을 피하려고 했지만, 하루는 야숙해야만 했다. 그렇게 야숙하는 동안 마물들이 전보다 늘어났다.

왕도가 있는 트라비아 왕국 중부 인근의 마물들은 거의 씨가 말라서 그런지 찾아오는 수가 확 줄었는데 남부로 오니 마물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거의 백 마리가 넘는 마물을 처리해야 했다.

예전에는 그것이 당연했다. 혼자서 자다가 마물을 만나거나 악마를 찾아 밤을 헤매는 것이.

혼자서 모닥불을 켜두고 제대로 잠도 못 잔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모닥불을 지키고 있는 디에고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제대로 쉬지도 않고 말을 달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디에고가 엠마를 만나고 싶다고 빨리 가자고 서두르고 있는 모습에 열심히 놀려댔지만, 에드도 실상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 다크를 재촉해왔다.

그래서 아직 해가 저물기도 전에 콜린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 가자.”

이곳에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온 에드는 도시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도시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집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있는 것이 뭘 두려워하는 걸까?

그때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일단의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닫힌 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리며 나온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펠. 14세 이상의 아들이 하나가 있군. 펠과 아들은 징집되었으니 당장 짐을 싸서 병사들의 인솔을 따르도록 한다.”

“아이고. 징집관님. 저희 아들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침대에서만 지내왔습니다. 징집은 불가능합니다.”

징집관이라고 불린 자는 수염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답했다.

“한 명을 봐주면 다른 사람도 봐주라고 하겠지.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건가? 끌려 나와야 속이 시원하겠나?”

“아닙니다. 징집관님.”

진심 어린 호소가 씨알도 안 먹히는 광경에 에드는 인상을 굳혔다.

이곳은 남부. 영지전이라도 벌어지는 건지 영주의 부하들이 영지민들을 강제 징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일일 뿐. 에드가 상관할 영역은 아니었다.

그런데 징집관이 에드와 디에고를 보고는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에드가 다크의 고삐를 당겨 멈추고는 징집관을 바라보았다. 징집관의 눈이 다크를 훑어보고 있었는데 대충 어떤 말인지 한눈에 알아본 것 같았다.

그의 눈이 빠르게 에드와 디에고의 상태도 훑었다. 밤에는 마물들과 싸우고 낮에는 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려온 탓에 완전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징집관은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울리지 않게 좋은 말을 타고 있군. 영주님께서 영지군을 모으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물자도 징집 중이다. 그 말도 징집 대상이다.”

“저는 콜린 시 사람이 아닙니다만···.”

“성문을 넘어온 순간 모든 것은 콜린 공의 것이 된다.”

에드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트라비아 왕국법에 개인의 사유 재산은 보장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징집관은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나 보군. 하지만 전쟁 시에는 영주에게 징집권이라는 것을 발동할 수 있다.”

너무 당당하게 하는 말이라 기도 차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영주와 엮이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그냥 말을 내주고 떠났을 터였다.

그러나 다크는 그렇게 헤어질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의 에드가 아니다. 에드가 품에 있는 단검을 집어갈 때 저 뒤편에서 달려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백마를 달리며 다가오는 이의 기세에 병사들이 분분히 물러났다. 그리고 징집관이 타고 있던 말이 그 기세에 놀라 앞다리를 치켜드는 바람에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달려온 말이 높이 발을 들며 멈췄는데 떨어지는 말의 발굽이 징집관의 다리 사이에 꽂혔다.

“히익!”

징집관이 오줌을 지리며 기겁할 때 말에 타고 있던 아린이 푸른 성광을 뿜어내며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스트론 교단의 귀빈에게 뭐하는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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