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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88화 (88/202)

#88

강화 구울

비대한 몸집에 의자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위에 앉은 자는 태연히 돼지 뒷다리를 뜯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뭔가 답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프롤님이 돌아오시려면 적어도 내일은 되어야 합니다.”

코룬 시의 주인인 코룬 공은 돼지 뒷다리의 살을 마지막 한 점까지 발라내고는 접시 위로 툭 던졌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니 의자가 용케 부서지지 않고 버텼다.

코룬 공은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 사내에게 시선을 준 코룬 공이 입을 열었다.

“베르. 더 필요한 것은 없나?”

“없소.”

베르라는 자가 이곳을 찾아온 지도 반년. 병에 걸려 죽어가던 아들을 살려낸 것이 그들이다.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고 하나 죽어가던 아들이 살아났고, 자신도 병을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원하는 것은 고작 술과 연구를 할 공간뿐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게.”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또 술병을 기울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코룬 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마저 즐기다 들어가시게.”

코룬 공은 베르의 뒤편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다가 군침만 삼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코룬 공이 떠나가고 나자 베르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진행되고 있지?”

베르의 뒤편에 서 있던 여인이 공손히 답했다.

“이제 8할 정도입니다.”

“너무 더딘 거 아냐?”

“아무래도 새로운 시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베르는 그 말에 씨익 웃고는 말했다.

“듣자 하니 손가락이 여럿 줄었다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나도 그 자리에 들어야겠어.”

“완성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그래. 서두르도록 해라.”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베르는 술잔을 비우며 창가로 걸어갔다. 자신이 계획한 일이 성공만 한다면 결원이 생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시를 내려다보던 베르는 뭔가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느끼는 것을 마지막으로 뒤로 넘어갔다.

디에고가 톰을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된 데다가 기척을 온전히 죽일 수 있는 반지까지 얻었다. 원거리 공격도 망토가 막아줄 것을 알았기에 이번에는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안전하게 하려면 어깨에 제리를 올려놓고 혼자 가는 것이 좋겠으나 그렇게 가면 제대로 악마의 힘을 가진 자들을 탐색하기 어렵다.

제리가 입을 열어 말은 하지 못하니까.

열 명이 넘게 악마의 힘을 지닌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제리와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디에고의 실력도 예전과 같지 않은 데다가 후안을 믿고 함께 가기로 했다.

코룬 시의 내성의 성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성이 있는 만큼 이름 있는 가문이라는 얘기인데 어쩌다가 악마의 힘에 취하게 된 걸까?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이동하던 중에 디에고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악마의 힘을 지닌 자가 있어요.”

디에고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는데 창문으로 다가오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

“예.”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창밖에 나온 자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숙였지만, 이마에 화살이 박히자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서 혈마석을 지닌 자는 아닌 것 같았다.

“나머지는?”

“하나는 저 위쪽에 있고, 대부분은 지하에 있어요.”

에드는 잠시 고민했다. 성의 지하로 들어가려면 안 들킬 수가 없었다. 괜히 다른 이들을 놓치느니 위쪽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다.

“위쪽부터.”

디에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따라오세요.”

디에고가 먼저 달리는데 톰은 이제 사령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벽면을 수직으로 달렸다. 에드는 그런 톰을 따라 달려서 벽을 차고 솟구쳐 틈에 손가락을 걸고 마치 거미가 벽을 타듯 쭉쭉 올라갔다.

그렇게 단숨에 성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곳의 창문까지 올라가니 톰은 벽에 몸을 고정한 채 서 있었고, 에드는 창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프롤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거구의 돼지가 침대에서 옷을 벗다가 고개를 돌리는 중이었는데 그의 미간에 비도가 박혔다.

“꺄···.”

침대에 있던 여인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다가가 그녀의 턱을 후려쳐 재워버렸다.

악마의 힘을 가진 자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으니 여인은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 제압만 했다.

쓰러진 돼지의 미간에서 비도를 뽑은 에드가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디에고가 인상을 굳힌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에 모여 있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눈치 빠르네. 앞장서.”

톰이 벽을 타고 뛰어 내려갔다. 그런 톰을 따라 에드는 그냥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려설 때 소리가 나지 않게 바닥에 한 번 구른 에드가 몸을 일으킬 때쯤 톰이 벽을 다 타고 내려와 달리기 시작했다.

톰과 제리. 단둘만으로도 디에고는 자신의 가치를 톡톡히 증명하는 중이었다. 디에고가 먼저 달려가서 안내해 준 곳은 내성의 동쪽에 있는 탑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는 탑에 경계가 삼엄한데 그 안쪽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만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악마의 힘을 가진 존재가 뭐든 간에 몰려있던 놈들이 풀려나면 좋은 꼴 보기는 힘들다.

과연 안에서 비명이 들리면서 정문을 지키던 이들도 당황해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는 잠시 디에고와 함께 성의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지켜보았다. 곧 문이 부서지면서 튀어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보는 순간 저건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구울인데 그냥 구울이 아닌가 보네.”

에드는 그대로 화살을 날렸다.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경비를 쫓던 구울들의 머리에 화살이 박히자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몸이 뒤집혀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튀어나온 구울이 열 마리나 됐다.

한 호흡에 일곱 발의 화살을 날렸는데 구울들은 머리에 화살이 박힌 채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냥 화살로는 안 되네.”

에드는 침착하게 빙결의 활에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의 총량도 늘어났고, 마력의 재생력도 늘어난 마당에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

다만 마력을 주입하고 그게 제대로 된 위력을 내려면 연사 속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호흡에 고작 세 발이 전부다. 그래도 그렇게 날린 화살은 확실히 상대를 제압했다.

달려오던 구울이 머리에 화살을 맞고 탑까지 밀려나 벽과 함께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마리의 구울을 처리했을 때 그들은 다른 이들을 놔두고 에드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거리가 꽤 멀다.

에드는 거리를 좁히도록 두지 않고, 족족 화살로 쏘아 맞혔다. 이성을 잃고 야성만 남은 것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인간을 초월한 근력 덕분인지 마지막 구울만 에드의 발치 앞에서 머리가 얼어붙은 채 쓰러졌을 뿐. 나머지는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더 남은 거 있어?”

“예. 저기 도망치고 있어요.”

에드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도망치는 자가 있었다. 망토를 펄럭이며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고 에드가 화살의 시위를 당겼다.

“되겠어요?”

거리가 제법 되지만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화살의 시위를 놓았다.

에드의 사거리에서 간당간당 벗어나는 여인이었지만, 이기어시까지 쓰는데 놓칠 리가 없다. 역시나 날아간 화살이 여인의 뒤통수에 꽂히며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런데 뭐하는 놈들인데 코룬 가의 영지에서 보통 구울도 아니고 강화 구울을 만들고 있었던 걸까?

강화 구울에 대해서는 테인의 악마 총람에도 만드는 방법은 나와 있었다. 실제로 만드는 것은 힘들 거라고 했다. 구울을 만들고 그 구울을 사람의 피에 담근 채로 수십 가지 약재를 이용해서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어렵게 만들어내는 만큼 그렇게 만들어낸 구울은 일반 구울을 압도하는 위력을 낸다고 했다.

그래 봐야 에드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죽었지만.

에드는 한숨을 내쉬고, 구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얼어 죽은 구울들을 바라보던 에드는 그 화살을 회수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겁에 질린 경비병들이 에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구울들이 문을 부수고 튀어나올 때 겁에 질려서 다리에 힘까지 풀린 경비병들은 에드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저 무시무시한 구울들을 선 자리에서 모두 제압한 이였으니까.

에드는 그들을 지나쳐 화살을 모두 회수하고는 탑의 부서진 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구울들에게 사람들이 찢겨 죽어 사방이 피범벅이었다.

하여간 악마랑 연관이 되면 깨끗한 현장을 보기가 어렵다.

“크로셀인가?”

에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경비병들을 두고 디에고에게 돌아왔다.

“아까 죽인 녀석들 확인 좀 해보자.”

에드는 디에고와 함께 가려고 하는데 비명이 들리더니 곧 성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래서야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에드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디에고와 함께 마지막에 죽은 여인을 찾아갔다. 디에고는 여인의 품을 뒤져보았지만, 약병이 두 개만 나왔을 뿐 건질만 한 것은 없었다. 이 약병이 어디다 쓰는 것인지 모르니 테인에게 가져다줘야겠다.

다른 신분을 밝힐 만한 것은 없었다.

“거울이 없는 것을 보면 손가락도 못 되는 녀석들인가?”

확실히 붙어보니 알겠다. 경험치가 손가락에 반도 안 되는 자들이다. 그나마 강화 구울은 경험치가 괜찮았지만, 아직도 레벨이 오르기에는 멀었다.

하지만 이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제고 레벨은 오를 터.

에드는 성내가 발칵 뒤집히는 것을 보고 디에고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다. 코룬 공이 죽었고, 경비대원들에게 모습을 들켰으니 시간이 지나면 성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예전이라면 그냥 몸만 내빼면 끝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크가 있어 성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여관에서 다크를 되찾은 에드는 디에고와 함께 성문으로 다가갔다.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은 에드가 다가오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곧 성문을 닫아야 한다. 무슨 일이냐?”

에드는 은화 하나를 던졌다. 수문장은 그걸 받아들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

이번에는 주머니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걸 받아든 수문장은 슬쩍 주머니를 열어보고는 번쩍이는 은화들을 보고는 헛기침했다.

“흠흠. 문이 닫히기 전에 어서 가보시게.”

에드는 군말하지 않고 말을 달렸다. 흐뭇해하는 수문장은 곧 병사들을 시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지키기를 잠시 곧 성내에서 달려 나온 기병이 외쳤다.

“혹시 이곳을 찾아온 자가 있소?”

수문장은 받아든 돈주머니를 숨긴 채 답했다.

“없습니다. 시간이 되어 성문을 닫은 뒤로 찾아온 자 하나 없습니다.”

“성주께서 암살당하셨소. 그러니 성문을 엄히 지키고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하오!”

거기까지 말하고 돌아서는 기병을 바라보던 수문장은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이곳을 빠져나간 이들이 성주를 암살한 자들이라면 그들을 놓친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수문장은 기병이 멀어지자 모인 병사들에게 주머니 안에 든 은화를 나눠주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오늘 이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로.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코룬 시가 발칵 뒤집힌 소란이 일어났다. 에드는 그런 소란을 뒤로하고 다크를 몰았다. 어두운 길에 말을 달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나 다크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 신나게 달렸다.

단숨에 코룬 시가 멀어지며 그 소란조차 뒤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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