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켈베로스
다크라고 이름 지은 이 말.
보마라고 불린다고 하더니 과연 바람처럼 달린다. 게다가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뒤따라오는 디에고의 말 때문에 속도를 조절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말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묘하게 느껴지는 일체감이다.
에드는 지금까지 말을 이동 수단이나 아니면 미끼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다크는 앞으로도 계속 아낄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뛰어난 말이었다.
오죽하면 디에고를 앞에 태우고 달리는 게 더 일찍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신나게 달리던 중에 다크가 갑자기 훌쩍 뛰어올랐다. 잘 달리던 말이 갑자기 멀쩡한 길에서 도약하는 모습에 에드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디에고가 탄 말이 다크가 뛰어오른 곳을 달려오다가 바닥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전에 에드는 다크의 등을 가볍게 차고 뛰어올라 디에고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디에고가 탄 말의 머리를 밟고 디에고를 낚아채 도약할 수 있었다.
디에고가 타고 온 말은 구덩이에 빠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지만, 디에고는 구할 수 있었다.
에드는 디에고를 내려놓고는 활을 꺼내 왼손에 쥐고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다크는 구덩이를 빙글 돌아 에드에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살기를 느끼는 것은 에드의 기민한 감각으로 가능한 일이나 이렇게 미리 만들어 놓은 함정은 에드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걸 파악하고 알아서 피해준 덕분에 다크를 얻자마자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에드는 다크의 목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모든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것에 집중하느라 주변에 소리가 사라진 것을 몰랐다. 벌레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매복이다.
에드는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고는 디에고에게 물었다.
“혹시 악마의 힘이 느껴져?”
디에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에 디에고는 눈을 뜨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안 느껴져요.”
“그럼 크로셀은 아닌가 보네.”
크로셀이 아닌데도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걸까?
그런데 이것들이 이제 막 마음을 준 다크를 위험에 빠트릴 뻔했다. 그냥 둬서는 안 될 놈들이다.
“나와라!”
에드의 외침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에드는 코웃음을 쳤다.
나오지 않는다고 그들을 못 찾을 것은 아니다. 다만 귀찮아질 뿐.
하지만 이미 귀찮음을 감수할 만큼 열이 뻗쳤으니까.
“디에고. 톰을 소환할 수 있겠어?”
“밤이 아니라서 소환해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예요.”
“괜찮으니까 저 그늘에 가서 소환하고 있어. 다크도 데리고 가고.”
“알겠어요.”
디에고는 다크를 데리고 물러나 톰을 소환했다. 그늘에서 톰을 소환한 디에고가 다크와 함께 대기하고 있는 사이에 에드는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벌레 소리도 안 들리는 지금 은신하고 있는 자들은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공격을 가하려고 매복해 있나 본데 그들은 에드를 몰랐다.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에드의 귀에 호흡이 들렸다. 제 아무리 대단한 은신술을 가진 자라고 해도 호흡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짧은 호흡만으로도 에드는 그곳으로 화살을 날렸다.
나무 뒤에 숨어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저 정도 회전각이라면 굳이 이기어시가 아니어도 맞출 수 있다.
“억!”
한 명이 죽었음에도 이들은 흥분한 기색이 없다. 역시 하나 정도 죽는 정도로 흔들릴 만큼 어설픈 자들은 아닌가 보다.
이 정도 수준이면 아칼란 요원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런데 아칼란은 지금 국왕파가 태자파를 쥐잡듯 잡고 있을 거다. 펜드래건도 그 일에 나선다고 했으니 자신을 노릴 여력 따위는 없으리라.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호흡 소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나무 위. 조금 까다롭지만, 맞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시 날아간 화살에 또 한 명이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그제야 자신들의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동시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표창이 있었다. 에드는 제 자리에서 뛰어올라 허공에서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날아드는 표창을 피하면서 화살을 날렸다.
아무리 에드라고 해도 그런 곡예에 가까운 자세로 화살을 날리는 건 고작 두 발이 한계였다. 그렇게 두 발의 화살에 비명이 두 번 울렸다.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에드는 표창이 날아온 방향으로 화살을 날렸지만, 벌써 몸을 피한 건지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기척을 감출 수는 없다.
움직이는 인원은 대략 열두 명. 움직이는 솜씨는 대단했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놓칠 이유가 없었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숲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엄폐물을 찾아서 이동하는 것 같지만, 휘어져 날아가는 에드의 화살은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기척을 들킨 이상 제아무리 훈련된 자들이라고 해도 다시 기척을 바로 숨길 수는 없었기에 에드는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불쑥 바닥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느껴지는 기척을 모두 처리했고, 장애물 뒤에 숨은 녀석들을 맞추는 거라 대부분이 곡사로 화살을 쏘다 보니 호흡이 딱 끊기는 지점이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온 칼날에는 에드도 놀랐다. 하지만 단련된 에드의 몸과 감각은 바닥을 칼날이 뚫고 나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이미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가볍게 솟구친 것 같지만, 그 높이가 3미터에 달했다. 순식간에 3미터나 솟구친 에드는 품에서 비도를 꺼내 던졌다.
세 개의 비도가 바닥에서 솟구치는 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자는 비도가 날아들자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러 그것을 쳐내려고 했지만, 비도 세 자루가 동시에 궤도를 틀며 칼을 피하고 사내의 미간, 목, 심장에 차례로 박혔다.
“꺽!”
에드는 바닥에 사뿐히 내려서서는 다시 감각을 일으켰다. 감각에 잡히는 자는 없었지만, 조금 전에 바닥에서 칼날을 들고 솟구친 자도 기척이 잡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기척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장비의 도움을 얻었을 가능성이 컸다. 에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게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채로 마지막에 죽은 자의 몸을 뒤졌다.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이 나올까 싶었지만, 훈련된 자들답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의 몸에 걸친 것도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에드는 그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빼냈다. 그걸 확인하고 있는데 디에고가 물었다.
“형. 이제 괜찮아요?”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했다.
“아마도.”
디에고가 다크를 데리고 다가오기에 에드는 반지를 던져줬다. 디에고가 반지를 받아들고는 물었다.
“이게 뭐예요?”
“껴 봐.”
디에고가 군말 않고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데 엄지에나 맞았다. 디에고가 엄지에 반지를 끼는 것을 바라보던 에드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호흡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암살자들에게는 성유물이라고 해도 바꾸지 않을 유물급 장비다. 디에고에게는 과연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암살자에 가까운 사령술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디에고는 에드의 옆으로 와서는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뭐죠?”
“몰라.”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행적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 새벽에 출발할 것을 미리 알고 가는 길에 함정을 파고 준비하고 있었다.
코룬 시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 어제였으니 대체 언제부터 자신들의 행적을 알아냈는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다. 에드는 감각에 걸리는 이가 더는 없는 것을 깨닫고는 시체들을 뒤졌다. 다른 이들은 쓸만한 장비 하나 없었다.
명품 급에도 못미치는 장비들은 가지고 가도 푼돈이나 만질 수 있을 뿐이라 얻은 것은 경험치뿐이었다. 경험치도 조금 들어왔다면 짜증이 날 뻔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죽은 자가 하급 악마 수준이었고, 나머지도 다 더하면 하급 악마 수준이라 하급 악마 둘은 잡은 경험치였으니 잠깐 노동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에드는 그들에게 쏜 화살들을 모조리 뽑아 회수하고는 디에고에게 말했다.
“네 말이 죽었으니 다크를 같이 타고 가자.”
“그래도 돼요?”
“별수 없잖아. 오늘 해지기 전에 코룬 시까지 가려면 바빠.”
“아싸!”
에드는 디에고를 앞에 태우고 말을 달렸다. 사람이 둘이 탔음에도 다크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오른쪽 눈에 대고 있던 망원경을 내리며 밀러는 헛웃음을 흘렸다.
“특무대가 상처 하나 남기지 못하고 당했군.”
밀러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샤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켈베로스의 특무대가 암살에 실패한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함정을 미리 판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상대에게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밀러는 망원경을 다시 들어 살피며 샤샤에게 물었다.
“에드라고 했던가?”
“예. 악마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자입니다.”
“대장군급은 되겠는데?”
샤샤는 그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장군급의 강자들은 왕국에 하나나 둘 정도가 전부다. 어디 산에 처박혀 수련해서 그만한 강자가 튀어나올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만한 강자는 많아야 둘이다.
대장군급 강자가 셋만 되어도 침략 전쟁을 벌일 정도니까.
밀러는 망원경으로 저 멀리 작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멀어지는 에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저 멀리 달리던 에드가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다.
망원경을 통해서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밀러는 그가 망원경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망원경을 접고 샤샤의 손목을 잡은 채 몸을 날렸다.
기척을 감지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거리에서 어떻게 눈이 마주쳤는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대장군급이라면 조금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들켰다.”
밀러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이 아니라고.
에드는 작은 언덕 위의 나뭇가지 위에 서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눈치가 빠른데?”
아주 멀리서 느껴진 시선에 곧장 몸을 날렸다. 에드가 작정하고 달려왔음에도 그곳에는 이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을 느낀 건가?
얼핏 빛에 반사되는 것을 보면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놓쳤다는 것이 아쉬웠다. 에드는 입맛을 다시고는 다시 디에고에게로 돌아갔다.
“잡았어요?”
“놓쳤어. 눈치가 빠르던데?”
“아쉽네요. 밤만 되었어도 제리를 이용해서 찾는 건데.”
“그러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에드는 곧 훌훌 털어버렸다. 뒤를 쫓던 자들을 놓친 것은 짜증 나는 일이나 그것에만 얽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크가 무척이나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코룬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반 말로 달려왔다면 적어도 내일 점심이 지나서나 도착했을 곳에 둘을 태우고도 지치지 않고 와준 다크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멜트 공이 코룬 시의 기사들을 잡아둔 덕분에 이곳은 아직 경비가 허술했다. 성문 경비에게 가볍게 은화를 찔러주는 것만으로 성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여관에서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온 에드는 디에고를 바라보았다. 디에고는 제리를 소환하고는 잠시 감각을 공유하더니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
“왜?”
“너무 많은데요?”
디에고가 눈을 뜨고 에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못해도 열 명 이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