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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79화 (79/202)

#79

현신

넷째인 딘은 귀가 잘려나간 것보다 자신들의 보호막이 안 통한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방금 공격에 샤린은 이마에 화살이 꽂혔다.

혈마석을 얻기 전이었다면 저 한 방에 죽었을 상황이다. 크로셀의 손가락이 이렇게 쉽게 죽었다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되리라.

“정신 차려!”

막을 수 없는 화살이라는 것을 깨달은 딘이 황급히 몸을 날리며 단검을 꺼내 팔뚝을 길게 찢었다. 팔뚝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방패를 만들기도 전에 옆구리와 허벅지에 화살이 박혔다.

무슨 놈의 화살이 이렇게 빠른지 눈으로 확인도 안 됐다.

딘은 방패를 띄워 전방을 방어하고 황급히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에서 쏟아진 핏물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가 에드의 발밑에서 날카롭게 가시가 되어 튀어나왔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화살을 쏴대는 데 샤린도 이제야 이마에 박힌 화살을 뽑고 움직이고 있었다.

“미치겠군.”

이만한 실력을 지녔으니 마야가 당했구나 싶으면서도 고작 활쟁이가 이렇게 강해도 되나 싶었다. 특히나 보호막을 뚫고 방패에 깊숙이 박히는 화살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왔나 싶을 정도의 강자.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샤린!”

혼자서 안된다면 둘이서 함께 한다.

이마에 박혔던 화살을 뽑다가 두 발의 화살을 양 눈에 맞은 샤린도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누운 채로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거대한 뱀의 형상을 이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물이라도 있었다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제물이 없으니 지금 당장은 혈마석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딘의 핏물이 주변을 온통 가시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다.

한 놈이었다면 이기어시로 구멍을 내서 끝장을 내줬을 텐데 이게 두 놈이다 보니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것들은 머리에 화살이 박혀도 몸에 화살이 박혀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이래서야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저 괴물일 뿐이다.

사람의 피를 이용한 공격이라면 벌써 빈혈로 쓰러졌어야 할 텐데도 그들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발 디딜 곳도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튀어나왔고, 여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뱀이 에드를 노렸다.

모두 악마의 힘을 이용한 상대들.

신성 화살로 박살 내면 될 것 같은데 이걸 써도 상대의 혈마석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마야와 싸우면서 깨달았다.

그러니 함부로 신성 화살을 쏠 수도 없었다. 2초 안에 둘 다 죽이지 못하면 화살을 회수할 수가 없으니까.

다행이라면 저들의 공격을 읽을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리 없이 피하고 있었는데 점점 피할 곳이 줄어갔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둘도 승리를 확신했는지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드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활을 어깨에 걸치고 몸을 날렸다. 결정타는 신성 화살로 한다고 해도 우선 저 귀찮은 것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아쉬운 것은 축원을 받았다고 해도 무기에 축성을 걸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축원만으로도 몸놀림이 빨라졌으니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스걱.

다행이라면 이 무형의 검기는 핏빛 뱀과 가시도 모조리 잘라낼 수 있었다. 마력으로 펼치는 검기이다 보니 마력으로 만든 물질을 벨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열린 길을 따라서 에드가 치고 나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로 만든 가시의 수가 늘어났고, 에드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몸이 반으로 잘렸던 뱀은 이제 두 마리가 되어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내려면 결국 혈마석을 베어야 했다. 검기를 이용하면 멀리서도 몸을 조각낼 수 있지만, 두 명의 몸을 혈마석보다 작은 단위로 잘라내기에는 마력이 부족했다.

그러니 거리를 좁힌다.

에드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둘의 반격이 시작됐다. 피로 만든 가시는 더욱 사납게 솟구치고 있었고, 뱀도 머리가 수백 개로 갈라져 덮쳐왔다.

에드는 온 세상이 핏빛으로 변하고 자신이 피할 공간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에드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였고, 그 시간 속에서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력은 최소한도로 검에만 두른 채 덮쳐오는 핏빛 파도를 베어낸다.

전면을 붉게 물들이며 밀려오던 파도가 베이고 에드는 샤린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에드의 검이 그녀의 몸을 서른여섯 조각으로 베어냈다. 검날에 마력만 덧씌워서 베어낸 샤린의 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지만,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았다.

저렇게 조각내는 와중에도 혈마석은 걸리지 않았나 보다.

마저 조각내려고 할 때 사방에서 핏빛 가시가 튀어나왔다. 샤린을 끝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몸을 지키면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에드는 검을 휘둘러 길을 열고 빠져나왔다.

역시 둘인 데다가 혈마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쉽게 제압이 어려웠다.

훌쩍 물러난 에드가 동굴 앞에 다시 내려섰을 때 딘이 샤린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 조각들 안쪽에서 흘러내린 핏물 속에서 강렬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명치 어림에 자리잡은 혈마석과 공명을 시작했다.

이건 라그록스에게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혈마석의 공명은 자신이 막을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두 개의 혈마석이 공명을 일으키며 딘의 의식은 사라졌다.

그리고 두 개의 혈마석이 공명해서 만들어 낸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샤린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만들어낸 거대한 뱀과 그 뱀의 머리 위에 딘의 상반신이 온몸에 핏빛 가시를 갑옷처럼 두른 채 일어났다.

그리고 그 눈.

그 사악한 눈을 마주한 에드는 저것이 조금 전의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 봐라?”

톰을 소환한 채 아론의 앞을 지키고 있던 디에고는 밖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솟구치는 핏빛 가시들과 그걸 피하는 에드의 움직임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솟구친 가시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마치 가시나무 숲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에드와 나타난 둘의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디에고의 옆에서 함께 그걸 바라보던 아론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지만, 나타난 둘의 몸에는 전혀 새로운 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발현되는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힘이 움직이는 것은.

처음에는 그 힘이 인간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곧 그 인간의 영혼마저 잡아먹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에드가 싸우는 것을 보니 그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요한 곳을 노리지 못하고 계속 엉뚱한 곳만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모습을 드러낸 뱀과 그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몸. 그곳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핵.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핵을 보니 그 너머의 존재가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자. 그 존재 자체가 세상에 해악이 될 자다.

아론은 동굴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손목을 디에고가 잡았다.

“뭐하는 거예요? 아얏!”

디에고는 아론의 손목을 잡았다가 얼른 손을 뗐다. 그건 마치 손바닥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제야 아론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신성력을 볼 수 있었다. 피부 위를 흐르는 신성력 때문에 손바닥이 뜨거웠던 것. 게다가 아론의 두 눈은 마주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강렬한 신성력을 내뿜고 있었다.

아린이 악마의 힘을 추적할 때 보이는 것과는 그 깊이가 남다른 신성력이었다.

디에고가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날 때 아론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동굴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뱀의 머리 위에 사람이 매달린 채 나타난 자는 크로셀의 손가락 둘이 합쳐졌지만,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도 짐작이 갔다.

혈마석을 다루는 존재.

“라그록스냐?”

에드는 말을 걸면서도 혈마석이 어디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고작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가 이리도 강한 존재감을 뿌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대악마의 격.

이런 놈을 때려잡은 이들이 셋이나 있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나를 아는가?]

“그럼. 네 대가리에 화살을 꽂아주려고 이렇게 열심히 쫓아가는 중인데.”

라그록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스트론의 예언을 믿는 건가?]

“바짝 쫓아온 걸 너도 알잖아?”

사내의 입가가 길게 찢어져 올라갔다. 마치 조커를 보는 것처럼 길게 찢어져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아 물었다.

“그 둘은 어떻게 된 거지?”

[이들의 영혼? 내가 이곳에 잠시나마 현신하기 위한 대가로 사용했지.]

“하여간 악마 새끼들이란 하급이나 대악마나 똑같군.”

크로셀에는 힘을 주겠다고 해놓고는 사실 자신이 현신하기 위한 재료 정도로 여겼다는 뜻이다.

에드의 말이 웃겼는지 라그록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래. 악마라는 종자들이 다 그렇지. 그래서 내가 너에게 제안 하나 할까 하는데 들어보겠나?]

“듣는 거야 뭐 어렵나?”

에드의 대꾸에 라그록스가 양팔을 벌린 채 말했다.

[내 종속자가 돼라. 그리한다면 너에게 무한한 힘과 영광을 주리라.]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지금 어떻게 현신했는지 빤히 보고 있는데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라그록스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설득력이 조금 부족했군. 어차피 말로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네 몸에 혈마석만 심으면 똑같은 이야기니까.]

에드가 웃으면서 시위에 화살을 걸 때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라그록스의 격에 놀라고 그에게 집중하느라 놓쳤던 기척이었다. 그리고 설마 이런 전투 중에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더욱 몰랐고.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라그록스가 덮쳐올 것은 알아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아스트론님의 두 눈은 모든 거짓을 꿰뚫으시니.”

아론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등 뒤에서 넘실거리는 신성력에도 에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라그록스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진실이 보이리라.”

아론의 한 마디와 함께 신성력의 파도가 라그록스를 덮쳐갔다. 핏빛 가시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라그록스도 그 신성력의 파도 앞에 몸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개의 혈마석이 ‘보였다’. 에드는 주저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그려낸 궤적이 그대로 혈마석 두 개를 꿰뚫자 라그록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렸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에드는 돌아온 화살을 손으로 잡으며 답했다.

“그래. 또 만나자. 짭짤하네.”

라그록스가 현신해서 그런지 경험치가 놀라울 정도로 들어왔다. 단번에 부족했던 경험치를 모두 채워서 레벨을 올려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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