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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78화 (78/202)

#78

꼬리

에드는 아론과 디에고를 각기 옆구리에 끼고 일단 마을을 벗어나 달렸다. 아론에게 들은 마야라는 여자는 여섯 번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하니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짐작되었다.

이제 고작 손가락 두 개를 해치운 상황에서 어떤 놈이 올지 모르는데 걸어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게 나뭇가지를 밟으면서 이동한 에드는 그들이 건넜던 계곡에 도착해서야 둘을 내려주고는 숨을 골랐다.

혼자도 아니고 둘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에드에게도 쉽지 않았지만, 옆구리에 끼인 채 들려온 둘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둘이서 나란히 엎드려 토하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계곡물을 떠서 마시면서 숨을 골랐다. 아론은 한참을 토하다가 더는 나오는 것이 없고 나서야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에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요. 어디로 데려다줄까요?”

에드의 말에 아론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가장 안전한 곳은 본단이겠지만,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군요.”

아론이 고개를 돌려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가 선 채로 그 시선을 받아들이자 그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제 동생과 함께하고 계신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동생에게 데려다주십시오. 걱정 많이 했을 텐데 얼굴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에드는 그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우선 그녀를 만나고 나서 생각해 보죠.”

“얼마나 가야 합니까?”

에드는 아론의 옆에 앉아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말을 타고 쉬지 않고 오 일을 달려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에드는 그리 말하고는 화살을 시위에 걸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쏘아 보냈다. 계곡의 물가로 나오던 마물 하나가 머리에 화살을 맞더니 픽 쓰러졌다.

“마물인가요?”

“마을에 들르지 못하면 질리도록 보게 될 겁니다.”

에드의 말에 아론은 새삼 에드의 등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남자는 어떤 생활을 하는 걸까?

단순히 악마만 사냥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물을 질리도록 보고 그들을 죽이는 것이 일상인 사내. 동생과 함께하고 있다니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진 아론은 앞으로 관심 있게 그를 살펴보기로 했다.

두 남녀가 마야의 시체 앞에서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대로 박살 났네요.”

“혼자 잘난 척할 때부터 알아봤지.”

여인이 마야의 시체를 뒤적이다가 답했다.

“혈마석은 사라졌어요.”

사내는 고개를 들어 죽은 이들을 살펴봤다. 무기는 모두 회수해 갔나 본데 시체들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아서 화살에 당한 것 같았다.

“성기사 중에 활을 쓰는 자는 없을 텐데. 누구에게 당한 거지?”

“잠깐만요.”

여인은 마야의 시체 앞에서 단검을 꺼내 손바닥을 베었다. 그리고 피를 주욱 짜내자 그 핏물이 마야의 시체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더니 그 핏물은 마야의 핏물과 뒤섞이는가 싶더니 곧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한 마리 여우를 연상케 했는데 핏빛 여우는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코를 킁킁거리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여인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찾았어요. 그런데 거리가 상당한데요. 잘못하면 놓치겠어요.”

사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곳은 태워 버리고 바로 쫓아가도록 하지.”

두 남녀는 빠르게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르고는 마을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핏빛 여우가 나뭇가지 위를 달리는 것을 보고 남녀는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나무 위로만 다닌 건가?”

“그런 것 같아요.”

여인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런데 마야가 죽었으니 제가 여섯째인가요?”

“마야를 죽인 자를 찾아 죽이고, 아론을 회수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겠지.”

“맡겨두라고요.”

여인은 활짝 웃고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사내는 그런 여인과 보폭을 맞추면서 인상을 굳혔다. 혈마석이라는 것을 얻으면서 그들의 전력은 크게 성장했다.

전과는 비할 수 없이 강해졌는데도 마야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그만큼 상대가 강하다는 뜻.

하지만 넷째인 자신과 일곱째인 샤린이 함께 하니 당할 리는 없으리라 여겼다.

성기사 말콤과 성기사 알론은 불에 탄 마을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늦은 것 같군.”

“이들도 제물로 바쳐진 건 아닌 것 같은데?”

모조리 불에 탔지만, 사지 멀쩡한 이들의 시체를 보니 제물로 바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제물로 바친 것 같은데요? 끔찍하게도 죽었네요.”

조각조각 난 시체를 보며 하는 알론의 말에 말콤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물로 바쳤다고 하기에는 절단면이 너무 깔끔해. 굉장한 실력자가 자른 것 같은데?”

알론도 말콤의 말에 잘린 단면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기를 쓸 만한 이들은 아스트론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으니 이건 장비의 힘을 빌린 것이겠네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말콤이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던 사내는 허리가 굽은 이였는데 바닥을 살피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루 정도 거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고용한 용병으로 추적술에 능한 팔콘이라는 자였다.

“놓치지 않을 수 있겠나?”

팔콘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치더니 말했다.

“이곳, 이곳, 이곳을 막아야 할 겁니다. 그곳을 막고 저희는 뒤를 쫓도록 하죠.”

말콤은 그 말에 살짝 인상을 굳혔다.

“존이 당한 것을 보면 어지간한 병력으로는 막을 수 없을 걸세. 괜히 피해만 키울 수 있으니 지켜만 보라고 해. 무력으로 막으려고 하다가는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

알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하자 뒤에 있던 수사가 돌돌 말린 전서를 꺼내서 말콤이 전한 말을 적고는 새장을 열어서 안에 든 매를 꺼내서 발목에 묶인 통에 집어넣고 날려 보냈다.

말콤이 팔콘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지.”

크로셀은 밝은 곳에서 활동하지 않음에도 굉장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론을 구하러 올 때처럼 마을마다 들르기보다는 가능한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고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사흘 만에 일행은 거지꼴이 되었다.

그런데 아론은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에드가 잡아 온 새를 디에고가 손질하는 것을 돕고 불을 피우면서도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에드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딘가 즐거워 보이네요.”

아론은 그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까요? 모든 것은 아스트론 님의 뜻대로, 그 순리대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 지금 이 순간도 모두 그분의 뜻대로라는 생각이 드니 즐기게 되는군요.”

디에고가 그 말에 입을 비죽 내밀었다.

“말을 타고 이동하면 지금쯤 합류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계속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통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고요.”

“디에고 형제. 내가 회복 주문이라도···?”

“미쳤어요?”

아론은 디에고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찔끔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디에고는 그런 아론을 한 번 쏘아보고는 에드가 잡아 온 새의 털을 뽑았다.

아론은 금세 또 싱글싱글 웃으며 디에고에게 말을 건넸다. 디에고는 틱틱대지만 은근히 둘은 잘 어울렸기에 에드도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네프사엘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간 에드의 손에 죽은 마물이 너무 많은 걸까?

요즘은 찾아오는 마물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러다 트라비아 왕국 내의 마물이 씨가 마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에드는 둘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대충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말을 타고 이동하지는 않지만, 에드가 직접 둘을 데리고 이동하다 보니 속도 자체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해도 길을 따라가지 않으니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늦어도 사흘 안에 아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사흘 정도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말에 디에고는 투덜거리던 것을 멈췄고, 아론은 이래도 저래도 좋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디에고가 소환해 놓았던 제리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제리는 탐지용으로 가능하면 소환해 놓고 있었는데 뭔가 느꼈는지 반응을 보였다.

에드가 돌아보자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힘을 지닌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요.”

에드는 그 말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굴을 등지고 있는 작은 공터에서 불을 피우고 식사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이곳으로 적이 온다는 말에 전투를 준비하기로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있어요. 거리는 얼마나 될 것 같아?”

디에고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말했다.

“다가오는 속도를 보면 3분 안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 얼른 들어가요. 식사는 전투가 끝나고 하죠.”

아론이 그런 에드에게 다가오더니 축원을 해주었다.

“아스트론님의 영광이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기를.”

아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겼다. 하긴 아린은 계속 악마를 죽여서 신성력을 강화하고 있었지만, 아론은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축원을 올려주는 것을 보니 구출했을 때랑은 또 달라져 있었다.

뭔가 깨달았다고 하더니 그래서일까?

그의 축원을 받은 에드는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들어가 계세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론이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에드는 함정을 준비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는 묵묵히 화살만 준비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핏빛 여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 두 명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에드가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공터에 내려섰다. 평상시라면 그들의 머리에 먼저 화살을 박아줬겠지만, 지금은 대화를 조금 해볼 생각이었다.

“너희는 몇 번째 손가락들이냐?”

에드의 물음에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넷째와 일곱째다. 그런데 너 혹시 악마 사냥꾼이냐?”

에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마야를 죽인 게 너지?”

에드가 또 고개를 끄덕여주자 여인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강아지상의 여인이라 눈웃음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이제 내가 여섯째가 될 거야.”

“다섯째도 죽었는데 다섯째까지는 못 올라가는 건가?”

여인이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자리가 빈다고 올라가는 건 아냐. 공을 세워야지. 그런데 널 죽이는 공까지 세운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

다섯째를 죽였을 때 눈치챘었는데 크로셀은 단순히 아린과 아론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희가 모시던 대악마가 죽었는데 어떻게 존속할 수 있었던 거지?”

“누가 그래? 우리가 모시던 대악마가 죽었다고?”

에드가 여인의 말에 집중할 때 사내가 손을 들어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는 두 발의 화살을 날렸다.

카캉!

그들의 앞으로 핏빛 막이 나타나 화살을 막아냈다. 남자와 여자 모두 미소를 짓다가 핏빛 막을 관통한 화살에 기겁하며 몸을 틀었지만, 여인은 이마에 화살이 꽂혔다. 사내는 용케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귀가 떨어져 나갔다.

“쉽게 죽는 놈이 없네.”

여인이 살아있음을 눈치 챈 에드의 화살이 줄지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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