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누더기 골렘
톰과 제리가 일행이 되고 사흘 후.
야영지를 정했다. 근처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지만, 도시 수준이 아니라면 괜히 마물들이 습격할 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그럴 때는 거리를 두고 야영지를 물색한다.
오늘도 야영지를 물색한 후에 다들 저녁 준비를 하는데 디에고가 톰과 제리를 풀어 놓고 눈을 감았다. 저녁에 수련이 가능한 디에고이다 보니 저녁 준비보다는 사령술사로서의 기량을 올리는데 집중하라는 에드의 충고를 들은 탓이다.
엠마도 자신이 더그를 도우면 충분하다고 말해줘서 디에고는 조금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령술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령술의 깊이가 깊어진 만큼 후안을 소환하지 않고 그와 의사소통만 가능해지면서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사령술에 대해 집중해서 배우던 디에고는 오늘 새로운 훈련을 시도하기로 했다.
두 마리 소환까지는 가능하고 동시에 감각 공유도 가능했다. 처음에는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사령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감지 타입의 제리와 은신 및 암습이 가능한 톰.
제리는 쉽게 디에고를 따라왔는데 톰은 조금 달랐다. 생전의 기억이 강해서 톰은 주위를 탐색시키는 데도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 위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벽도 뚫고 지나갈 수 있음에도 그러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차차 나아질 거라 여기고 둘을 한 팀으로 보냈다. 전처럼 제리만 보냈다가 역소환 당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둘이 함께 보냈다.
톰의 머리 위에 올라간 제리. 둘의 시야를 공유하며 숲의 나뭇가지를 밟고 이동하는 둘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디에고는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제리가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감각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디에고는 잠시 고민했다.
예전에 이 감각만 믿고 이동했다가 제리가 역소환 당하며 혼절했던 것이 떠올랐다.
톰과 함께니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그곳에 톰과 제리를 대기하게 하고 감각 공유를 끊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감각 공유를 끊은 탓인지 어지러워서 비틀거렸다. 그런 디에고를 부축하는 작은 손길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풉. 고맙습니다는 또 뭐야?”
디에고는 그제야 자신을 부축해준 것이 엠마인 것을 확인했다.
“언제 왔어?”
“저녁 다 됐다고 먹으라고 하려고 왔지. 그런데 배고파서 그래?”
“아니. 그보다 잠깐만. 형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디에고는 잠시 가만히 서서 어지럼증을 가라앉히고는 걸음을 옮겼다. 엠마의 말처럼 다들 저녁을 먹기 위해 모여 있었다.
다들 스튜 한 그릇씩을 받아든 채였는데 에드는 디에고가 다가오자 물었다.
“할 말 있다고?”
마차 안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그걸 또 듣고 있었나 싶었지만, 에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형. 제리가 감지해 낸 게 있어요. 톰과 보낼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려고요.”
에드는 그 말에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방향인지는 알겠어?”
“잠시만요.”
눈을 감고 제리와만 교감한 디에고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저 방향이에요.”
디에고가 가리킨 방향을 에드가 돌아볼 때 더그가 입을 열었다.
“마을 방향입니다.”
일부러 마을을 피했더니 그곳에 악마의 힘이 느껴진다는 건가?
일행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에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인지 정찰만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가요.”
아린의 말에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란트와 덱스라면 충분히 이곳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디에고는 굳이 함께 갈 필요가 없다.
“디에고. 말을 타고 이동할 테니까 안내만 해줘.”
“잠시만요.”
디에고가 잠시 눈을 감고 있자 금세 톰과 제리가 돌아왔다. 그리고 제리가 뽀르르 달려와 에드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에드는 그런 제리를 어깨에 올린 채 디에고를 바라봤다.
“부탁한다.”
“맡겨만 줘요.”
에드의 그 말이 기뻤는지 디에고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사령이다 보니 아린의 근처로는 갈 수 없어서 에드의 어깨에 올라온 제리가 앞발로 수염을 쓸어내리더니 찍찍 거렸다. 어차피 마을까지 가는 길이야 알고 있지만, 그곳에서부터 제리가 필요했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에드는 아린과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달렸다. 이제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
마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충 봐도 백 호 정도 되는 마을. 목책이 늘어서 있지만, 밤에 지키고 있는 이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 불빛 하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드가 아린을 돌아보자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눈으로 마을을 돌아본 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들어가 봐야겠어요.”
에드가 제리를 돌아보자 끽끽거리며 앞발로 마을 쪽을 가리켰다.
“안쪽에 있나 보네요. 말은 여기 두고 가죠.”
목책을 넘어가야 하니 말은 마을 입구가 보이는 나무에 묶어 놓고 마을을 향해 다가갔다. 목책의 높이가 왕도의 대저택들의 담벼락 높이만큼이나 높아서 손을 내밀었는데 아린은 고개를 내젓고는 그대로 도약했다.
벽을 가볍게 차는가 싶더니 목책의 끝에 도달해 손으로 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전보다 신체 능력이 올라갔나 보다. 역시 성기사는 사기다.
에드도 땅을 박차고 솟구쳤는데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벽을 차지도 않고 단숨에 목책의 끝에 도달했다. 손가락을 걸고 사뿐히 목책 위에 올라선 에드는 마을을 돌아보았다.
연기 하나 올라오는 곳이 없고, 불빛도 하나 없다.
유령 마을이다.
에드가 아린을 돌아볼 때 그녀는 마을을 돌아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아요.”
에드는 그 말에 새삼 어깨에 올라간 제리를 바라보았다. 사령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감지력에 있어서 아린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새삼 증명했다.
제리가 고개를 들고 수염을 파르르 떨더니 찍찍거렸다.
제리가 어깨에서 뛰어내려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에드와 아린은 시선을 교환한 후에 그 뒤를 따라갔다. 제리는 벽을 그냥 관통하기 때문에 에드와 아린은 지붕 위를 달리며 열심히 뒤를 쫓았다.
이 정도 크기의 마을이라면 오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교통의 요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있어서 에드 일행도 밤마다 습격하는 마물들만 없었다면 이곳에서 묵었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마을을 습격한 악마가 있다?
멍청한 놈이거나 아니면 뭔가 문제가 생긴 녀석일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아니라면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실력이 있던가.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적어도 상급 악마는 되어야 한다. 후안 정도만 해도 도시 하나를 작정하면 하루 만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중급 악마만 돼도 이 마을 하나 해치우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뒷감당하기에는 그 수준으로는 무리였다. 중급 악마도 몸을 사릴 줄 아는데 이렇게 무식하게 일을 벌였을까?
여러모로 의문이 드는 마을이었다.
그렇게 에드가 고민하는 사이에 제리가 빠르게 마을 회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쫓던 아린도 그제야 뭔가를 감지했는지 방패와 해머를 동시에 뽑아 들었다.
에드도 활을 왼손에 들고는 물었다.
“마을 회관인가요?”
“아뇨. 교회에요.”
그 말에 에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악마들은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당연히 교회는 건드리지 않는다. 교회를 건드렸을 때는 성기사가 즉각 파견되며 죽을 때까지 악마를 쫓으니까.
그런데 교회에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진다?
죽고 싶어 환장한 악마일 수도 있다 싶었다. 아린은 지붕에서 뛰어내리더니 땅을 박차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교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근력은 에드보다 높다 보니 그녀의 발이 땅을 찰 때마다 쭉쭉 앞으로 달려나간다. 에드도 목적지를 알아냈으니 제리를 따르기 편하게 지붕 위를 달리기보다는 바닥에 내려서서 편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금세 아린의 뒤를 따라잡은 에드는 멀리서 전해지는 혈향에 인상을 굳혔다.
마을의 외곽에 있던 교회에서 혈향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 혈향을 에드만 아니라 아린도 맡더니 눈빛이 변했다.
그녀의 속도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에드도 그녀를 따라 달리며 화살을 하나 뽑아서 시위에 걸었다.
제리는 교회가 보이는 곳에 멈춰 서서 앞발을 들고 서 있었다. 아린과 함께 교회로 달려간 에드는 교회 안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고는 인상을 절로 굳혔다.
교회 안에는 끔찍한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아스트론 교단의 증표에 사제 하나가 못 박힌 채 죽어 있었고, 교회 중앙에는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을의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시체가 되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다. 적어도 이곳까지 끌려오는 동안은 집에서 죽은 이들이 없었다는 말이니까.
집에서 피를 흘렸다면 오는 동안 혈향을 못 맡았을 리가 없었다.
아린은 시체들의 산을 바라보며 씹어 뱉듯 말을 꺼냈다.
“나와.”
아린의 말에 시체들의 산이 들썩였다. 저거 살아있는 것이었나?
시체들의 산이 들썩이면서 에드도 그 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잠시 후 시체들의 산에서 불쑥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벌써 온 건가? 아직 준비가 안 끝났는데.”
에드가 대뜸 상대의 이마에 화살을 박아 넣지 않은 것은 사내의 이마에 새겨진 문신 때문이었다. 원 안에 뒤집힌 십자가 문양의 문신. 어딘가 낯이 익은 문신을 바라보던 에드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크로셀?”
악마의 시대 1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자들이다. 드루이드 드레드가 박살 낸 것으로 기억하는데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던 건가?
시체들의 산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었던 자의 눈이 에드를 향했다.
“호오. 우리를 아나?”
크로셀이라면 악마 종속자와 추종자들로 이뤄진 자들. 한마디로 미친놈들의 집단이라는 얘기다.
에드가 대답 대신 화살을 날리려고 할 때 그보다 먼저 날아간 것이 있었다. 아린의 신성력이 듬뿍 담긴 해머가 놈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시체 여럿이 뭉쳐서 그 해머를 막았다.
콰앙!
신성력이 듬뿍 담긴 해머를 막았던 시체들이 산산이 조각났지만, 그사이 놈은 시체의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아린은 해머를 다시 돌아오게 한 후에 이번에는 대뜸 방패를 던졌다.
방패가 날아드는 순간 시체들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그 앞에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벽은 단번에 박살 났다.
에드는 그제야 저놈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았다.
누더기 골렘을 만들려는 거다. 이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두 기워서 만들어내는 누더기 골렘.
그런데 아린의 상태가 이상했다. 침착함을 잃었다.
방패를 날린 그녀는 성검을 뽑아 들고 해머까지 들고 누더기 골렘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에드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 혼자 위험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에드는 누더기 골렘이 몸을 일으키다가 아린의 검에 다리가 잘려나가고, 해머에 몸이 박살 나는 것을 바라보다가 빙결의 활에 마력을 주입했다.
누더기 골렘 안에 숨은 놈. 그놈을 끝내지 않으면 누더기 골렘은 계속해서 마을 사람의 사체를 이용해서 재생할 터였다.
아린의 신성력이 워낙 막대한 데다가 성유물의 성능이 뛰어나지만 저렇게 무식하게 싸워서는 위험하다. 약점이 아니라 그냥 때려 부수는데 재생력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필요한 것은 저 안에 있는 놈을 잡는 건데 저래서는 답이 없다.
누더기 골렘은 아직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않았다. 이백 명이 넘는 인원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거라 형체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신장만 해도 10미터가 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완성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린의 저 이해 못 할 열기와 광기도 식혀줄 필요가 있었다.
에드가 날린 화살이 몸을 일으키던 누더기 골렘에 가서 꽂혔다.
쩌저저정!
교회 천장까지 부수며 일어나려던 누더기 골렘의 몸이 그대로 커다란 얼음 덩어리 안에 갇혔다. 하지만 놈이 죽지 않았음은 들어오지 않는 경험치로 알 수 있었다.
“아린! 진정해요!”
그러나 아린은 얼음 덩어리 안에 갇힌 누더기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해머를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아린을 둬서는 위험하다. 저 안에서 놈이 무슨 짓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무식하게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에드는 아린의 뒤로 가서 한팔로 그녀를 안으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린! 진정해요!”
에드의 외침에 아린의 성검과 해머가 천천히 멈춰졌다.
“하악. 하악.”
아린이 호흡조차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서 날뛰는 건 에드도 처음 보았다. 에드는 아린의 어깨를 뒤에서 감싸 안은 채 말했다.
“저 새끼 숨통은 아린이 끊게 해줄 테니까 진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