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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66화 (66/202)

#66

너의 이름은?

여인은 담벼락 위에서 왼팔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담벼락 밑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방패를 든 성기사와 활을 든 레인저. 그리고 그 뒤에 내려서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년.

성기사는 분명 귀찮은 존재이긴 하지만 못 상대할 것도 없다. 자신의 저주는 성기사에게도 통하니까. 다만 귀찮아서 안 죽일 뿐이니까.

하지만 저 뒤의 소년은 다르다.

악마의 힘을 다루고, 상급 악마를 사역한 사령술사. 그 아이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사령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것만으로도 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어 무리해서 납치해왔다.

펜드래건이 늙었다지만 그래도 사자는 사자니까.

그와 세실리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강행한 납치였다. 그렇게 만난 소년이 사역한 상급 악마의 공격을 받는 순간 알았다. 이 아이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아이라면 자신의 저주술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악마의 힘을 다루는 것 또한 가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내려준 소년.

그래서 그 소년을 데리고 몸을 빼냈다.

펜드래건과 세실리아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택했던 것. 하지만 자신을 따라온 것은 성기사 하나와 레인저 하나였다.

뒤를 쫓는 것을 깨닫고 저주를 이용해 병사들을 보냈지만, 그들의 발만 묶고 자신을 쫓아왔다.

구출이 우선이었던 자들이다.

여인은 손에 든 화살을 담벼락 아래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대단하구나. 하지만 나 에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저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안겨주려던 여인은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는 다급히 고개를 틀어 피하느라 이름을 마저 밝히지 못했다.

망토의 능력만 믿고 있다가 화살을 팔에 맞았기에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번 화살은 망토의 능력으로 튕겨 날아갔다.

농락당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감히!”

화를 터트릴 기회조차 없이 다시 날아오는 화살에 여인은 담벼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활질하던 활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소개는 지랄.”

담벼락 위에서 화살을 뽑아낸 여인이 주저리주저리 이름을 밝히려고 하기에 화살을 한 발 날려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지금 스탯으로는 저 망토의 능력을 뚫을 수 없었다.

궤도가 틀어지는 것으로 보아 스탯이 더 오른다면 저 정도는 씹어먹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분노하는 것 같기에 화살을 한 발 더 날려줬다. 바닥에 내려선 여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자기소개는 지랄.”

에드가 한 마디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때 뒤에 있던 디에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려왔으니 잡죠.”

에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아린이 방패를 전면으로 세운 채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하늘을 닮은 신성력이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이니 한 마리 청룡을 보는 것 같았다.

여인이 당황하며 황급히 손을 내밀자 그녀의 앞으로 핏빛 원이 나타났다.

쩌엉!

딱 봐도 삿된 힘으로 보였는데 그걸로 아린의 앞을 막는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펼쳤던 핏빛 원은 삽시간에 깨져나갔고, 그녀는 그대로 방패에 치여서 벽까지 날아갔다.

벽이 무너져 내리며 그곳에 여인이 깔렸다. 저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싶을 때 이미 아린은 높이 도약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열이 받았는지 그녀의 해머 위로 선명하게 맺히는 신성력이 눈에 들어왔다.

꽈앙!

에드가 손을 쓸 틈도 없었다. 언제 저런 기술을 익혔는지 해머에 신성력을 맺히게 한 후에 내리치며 폭발시키는 신기술이었다.

악마의 힘을 다루는 저주술사에게 있어 끔찍할 정도로 위협적인 기술.

에드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마력을 축적하고 있었다. 활에 걸린 것은 두 발의 화살. 에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준비 중이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린 벽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딱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악마의 힘을 다루지 않았다면 저 정도 공격에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으니까.

덤프트럭에 치이고 커다란 바위가 머리 위로 떨어진 충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여인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나 악마의 힘을 쓰는 그녀는 그 와중에도 살아남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린의 해머가 재차 날아들 때 여인도 이제 집중해서 싸우기로 한 것인지 몸을 날려 해머를 피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타고 핏빛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게 뭘까 싶어서 바라보는데 그녀의 얼굴을 지나간 핏빛 기운이 이마 위에 모여서 원을 그리는 것이 보였다.

저주술사의 눈은 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작정하고 저렇게 힘을 보여주는 모습에 에드는 주저하지 않고 활의 시위를 놓았다. 뭔지 모르지만 저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서 쓴다는 것은 필살기나 다름없는 것.

상대의 필살기를 기다려주는 것은 만화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에드가 쏜 두 발의 화살이 저주술사를 향해 날아갔다. 아린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없던 그녀는 두 발의 화살이 새하얗게 냉기를 뿌리는 것을 보고 양손을 펼쳤다.

핏빛 원이 모습을 드러내고, 중심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눈이 된다. 이마의 눈과 연동한 기술인 것 같은데 어째 목걸이 하나 믿고 버티긴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저거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해줄 거라 믿고 있었나 보다.

미안한데 내 화살은 관통이야.

그녀가 만든 핏빛 커다란 눈을 그대로 지나간 화살이 이마에 생긴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망토의 힘으로 궤도를 틀려고 했지만, 이번 것은 에드에게 있어서도 필살기나 마찬가지.

빙결의 활에 극한의 냉기를 머금게 했고, 이기어시까지 사용한 지금 사용 가능한 최고의 기술.

저주술사가 황급히 손을 들어 화살을 막아 보지만, 한 발의 화살이 그녀의 몸을 얼려버렸다. 그리고 시간 차를 둔 것처럼 움직이던 화살이 저주술사의 이마 한가운데 새로이 만들어지던 눈에 꽂혔다.

쩌저저적.

이마에 꽂힌 화살을 중심으로 그녀의 머리 전체가 얼어버렸다.

에드는 그 모습을 보고 활을 천천히 내렸다. 경험치가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니 그녀는 확실히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경험치는 중급 악마보다도 훨씬 많았다.

물밀 듯 밀려오는 경험치에 오랜만에 레벨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름 모를 여인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공격력이 부족했던 것을 느꼈던 에드는 민첩에 하나를 더 투자했다. 레벨이 오르는데 경험치가 많이 필요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스탯을 하나 올렸을 뿐인데 체감되는 것이 달라졌다.

아린과 덱스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것을 단숨에 따돌릴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이 느껴졌다.

에드는 디에고에게 다가갔다. 디에고는 쥐의 사령을 품에 안은 채 에드를 향해 웃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납치당했던 녀석이 의젓하게 웃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물건이다 싶었다.

재능보다도 이 대범한 성격에 높은 점수를 줘야겠다.

“오래 안 걸렸지?”

“형, 누나. 모두 대단해요.”

초롱초롱한 디에고의 눈에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준 에드는 얼어붙은 여인의 머리를 내리쳐 산산조각 내 버린 아린을 볼 수 있었다.

에드야 경험치가 들어왔으니 여인이 죽은 것을 알았지만, 악마와 싸우면서 죽은 악마도 다시 보게 된 아린은 그 정도로 방심하지 않았다.

얼어버린 여인의 머리를 다시 쪼개버리는 모습에 에드는 그녀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하며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여러 가지를 함축해서 물었는데 아린은 해머를 밑으로 내린 채 길게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린은 죽은 여인의 머리가 부서진 잔해로 다가가 뭔가를 집어 들었다.

“이 여자. 머릿속에 혈마석을 가지고 있어요.”

아린의 손에 들린 혈마석을 보고 에드는 죽은 여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결국, 그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이 여자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주술사로서도 뛰어난 여인이었던 것 같은데 혈마석까지 먹다니.

생포했다면 라그록스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후안을 잡으면서 혈마석의 흔적을 놓쳐서 어떻게 다시 라그록스의 뒤를 쫓을까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혈마석이 알아서 굴러들어왔다.

“확인해 봐요. 옆은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저주술사가 죽으면 저주가 풀리다 보니 다리가 얼어붙은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저주에 걸리지 않은 이들이 그런 사병들을 지키기 위해서 모이고 있었다.

멀쩡한 남의 저택에서 싸움을 벌였으니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기본적으로 이쪽 대저택들에는 다 한 끝발 날리는 이들이 산다.

과연 소란을 듣고 저택에서 나온 이들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오늘 밤 카르엔 대신을 잡기 위해 왕도 수호대가 움직이고 있는 만큼 몸을 사리던 귀족은 갑자기 담을 넘어와 분탕질을 친 이들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사병들이 다리가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니 명분도 그들에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의 표정은 기세등등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와 그의 뒤편에 선 수호기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에도 에드는 태연히 디에고를 자신의 뒤로 숨기고는 아린에게 손짓했다.

아린도 혈마석을 추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아린이 혈마석을 추적하기 위해서 기도를 올리자 그녀의 전신에서 하늘빛 신성력이 빛나기 시작했다.

담을 넘어와 분탕을 지른 이들에게 따지기 위해 달려오던 젊은 귀족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한밤중에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신성력을 보면 아무리 기세등등하던 이들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 일이 교단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됐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다가온 젊은 귀족의 표정은 처음과 다르게 조금은 진중해졌다.

그는 에드의 앞까지 다가와서는 말에서 내렸다.

“난 아젤트 공이라고 하오. 보아하니 성기사 일행으로 보이는데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소?”

에드는 대답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비행기라도 날아오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던 에드는 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린 남녀 한쌍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본 아젤트 공이 황망히 인사를 건넸다.

“부마와 공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펜드래건은 그에게 관심도 없었고, 세실리아가 인사를 받아줬다.

“아젤트 공. 오랜만이군.”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웃인데 당연히 기억하지. 아버님은 잘 계시지?”

“별장에서 지내셔서 제가 임시로 가주를 맡고 있습니다.”

세실리아가 아젤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펜드래건은 에드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눈으로 상황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게 우리 집을 들쑤신 녀석인가?”

“예. 저주술사인데 악마의 힘을 다루는 자였습니다.”

“저주술사인데 악마의 힘을 다뤄? 악마와 계약한 자인가?”

“계약이요?”

펜드래건은 에드의 물음에 아린에게 시선을 준 채 답해주었다.

“악마는 보통 종속자나 추종자를 두지만, 악마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거나 아니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들은 계약을 맺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면 보통 저주술사가 아니었을 텐데 용케 둘이서 잡았군.”

“악마의 힘을 다룬다면 상성 상 저희가 유리하니까요.”

저주술사가 처음에 만들었던 핏빛 원도 일종의 보호막이었을 텐데 아린의 신성력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펜드래건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 집에서 난리를 쳤다길래 머리를 쪼개주러 왔더니 이미 쪼개져 있군.”

에드는 그 말에 남몰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막타를 빼앗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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