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납치
왕도 수비대의 병사들이 빠져나가면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이 점점 멀어지고 대저택 단지로 들어선 에드와 아린은 느긋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급할 것도 없었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왕도의 잘 닦인 대로를 따각 거리는 말발굽 소리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불퉁했던 것이 풀리면서 함께 말을 모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렇게 말을 몰던 중에 에드의 감각에 먼저 소란이 잡혔다.
“응?”
소란이 들리는 곳은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펜드래건의 저택이다.
“저택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에드가 먼저 말의 옆구리를 차며 치고 나가자 아린도 표정을 굳히고 그 뒤를 따랐다. 먼저 달려간 에드는 문 앞에 널린 시체와 다친 병사를 볼 수 있었다.
펜드래건의 집에는 일반 병사조차 정예병들이다. 그건 아마도 펜드래건의 영향 때문일 거로 생각했는데 그런 정예병사가 심각하게 다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아린이 놀라서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회복 주문을 걸어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왕도 수비대원들이 들이닥쳤는데 창에 찔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달려드는 바람에 당했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빠르게 말했다.
“응급처치만 하고 따라와요.”
“알겠어요.”
지금 이곳이 문제가 아니다. 에드는 저택 안으로 말을 달렸다.
방심했다. 펜드래건의 저택을 어떤 미친놈이 습격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펜드래건이 활약한 것은 16년 전. 그 뒤로 그는 왕도에 거하며 마수 사냥을 다니기만 했기에 그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자인지 모르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 명성은 들어도 허명일 거라 여기는 자들.
이곳에 만약 펜드래건이나 세실리아가 있었다면 어떤 적이 왔어도 난공불락의 요새였겠지만, 오늘따라 그들이 없었다.
왕궁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서 펼친 습격.
이곳을 지켜보던 부엉이. 저주술사의 패밀리어를 떠올린 에드는 말의 속도를 높였다. 진짜 저주술사가 습격했다면 디에고가 위험했다.
펜드래건의 대저택 주위로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저주에 걸린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아왔던 에드는 고통을 잊은 인간들의 시체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수가 많아서인지 펜드래건의 저택을 지키던 정예병사들의 시체도 간간이 보였다.
보니까 왕도 수비대를 그저 고통을 잊게 만든 후에 습격을 시켰나 본데 그 수가 많으니 정예병들도 죽은 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멀쩡한 이가 없다.
에드는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정예병들을 뚫고 들어온 이들의 시체가 거실 앞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사지가 잘려나가거나 머리가 잘린 채 산처럼 쌓여 있는 곳.
그 뒤편에서 덱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악하악. 아직 남아 있었냐?”
덱스가 검을 뽑아 들고 일어나는 모습에 에드가 소리쳐 물었다.
“디에고는?”
덱스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 갑자기 들이닥친 녀석들한테서 영감을 지키느라 가보지 못했어.”
“젠장.”
에드는 덱스의 뒤편에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테인을 보았다. 아마도 머리를 뭔가에 얻어맞았나 보다. 상처입은 테인을 지키려다 그랬는지 덱스도 이곳저곳 상처가 꽤 있다.
일단 둘 다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을 확인한 에드는 곧장 디에고가 쉬고 있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에드는 반쯤 무너져내린 복도의 한쪽 벽과 산산조각이 난 문을 볼 수 있었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피아가 쓰러져 있었다.
“소피아!”
에드가 그녀를 부축하고 상태를 살폈다. 가뜩이나 몸이 약했던 그녀였던지라 걱정이 돼서 살펴보는데 소피아가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소리쳤다.
“디에고! 디에고!”
소피아는 정신없이 소리치다가 에드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물었다.
“디에고는요? 우리 디에고는 어떻게 됐어요?”
소피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에드는 그녀의 어깨를 꽉 쥐고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신 차리고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디에고는 어떻게 잡혀간 겁니까?”
소피아는 어깨에 전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에드와 눈이 마주치자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빠르게 말했다.
“밖에 소란이 일고 창문으로 가보니 병사들과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래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문을 잠그고 디에고 앞에 서 있었는데 문이 폭발했어요.”
에드가 보기에도 문이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요?”
“안으로 붉은빛의 눈을 한 여인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후안이 나타나서 그녀를 날려버렸어요. 벽까지 날아가서 해결된 줄 알았지만, 후안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사라졌고 여인은 다시 들어왔어요. 제가 옆에 있던 의자를 휘둘렀지만,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벽까지 날아간 것만 기억나요.”
에드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디에고는 후안을 소환할 수 있을 상태가 아니었다. 아마도 위기 상황이라 후안이 무리해서 튀어나왔나 본데 그것만으로 저주술사를 막을 수 없었나 보다.
악마의 힘을 쓰는 저주술사가 디에고를 왜 데리고 갔을까?
디에고는 악마의 힘과 사령의 기운을 모두 다루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디에고를 제자로 쓰려고 하는 것이든 아니면 제물로 쓰려고 하는 것이든 우선 구해내야만 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가죠.”
이곳에 저주에 걸린 채 들이닥친 인원이 백 명이 넘는다. 왕도 수비대와 마주치는 족족 저주에 걸어서 보냈나 보다.
에드가 만났던 이름 모를 저주술사와는 수준이 완전히 다른 저주술사였다.
무엇보다 대범하다. 펜드래건이 저택에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해도 직접 이곳으로 온 것을 보면.
소피아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간 에드는 거실에 널린 시체의 산을 보고 몸을 덜덜 떠는 그녀를 꼭 안아준 채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 앞에는 왕도 수비대가 족히 스물은 죽어 있었다. 아무리 유물급 장비를 얻었다고 해도 새삼 덱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에드는 덱스의 곁에 소피아를 데려다 놓았다. 소피아는 테인을 보고는 깜짝 놀라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는 치마를 찢어서 상처를 싸매주고 있었다.
그때 아린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오는 길에 부상자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위급한 상황인 것을 보고 안으로 먼저 들어왔다.
아린이 테인의 찢어진 이마에 회복 주문을 걸어주며 덱스를 바라보았다.
“덱스는 어때요?”
덱스는 그 말에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디에고를 지켜주기로 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해.”
“아니야. 이렇게 겁 없이 나올 줄은 몰랐던 탓이 커.”
덱스는 어깨를 돌려보고는 말했다.
“구하러 갈 거지?”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덱스가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가자. 여기는 나보다는 아린이 있는 것이 낫겠지.”
물론 아린이 있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일단 그녀는 이곳의 부상자들도 회복시켜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악마의 힘을 지닌 저주술사를 상대하는 데는 성기사가 챔피언보다 백 배는 낫다. 덱스와 아린의 실력이 비등하다 하더라도 상성 상의 문제였다.
에드는 덱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덱스. 상대는 저주술사야. 상성 상 아린이 나아.”
덱스는 그 말에 가볍게 혀를 찼다. 에드는 그런 덱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싸울 기회는 많아. 고작 이 정도 적을 상대로 위험을 자초하지 마. 그리고 이곳을 지킬 이도 필요하고.”
덱스는 손을 들어 에드의 어깨를 잡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 새끼 포를 떠줘야 하는데, 이번에는 양보한다. 하지만 다음에는 양보 안 해.”
“이해해줘서 고맙다.”
에드는 덱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테인의 상처와 소피아의 상처를 회복 주문으로 응급처치하고는 덱스에게 다가왔다.
덱스는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괜히 신성력 낭비하지 말고 가서 그 저주술사나 잡아.”
아린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덱스는 지치고 상처가 났지만, 위험할 정도의 상처는 없었다.
에드는 아린과 함께 일단 집 밖으로 나왔다. 디에고를 납치해서 이동 중이라면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말을 타고 빠져나갔다면 오다가 만났을 터.
다른 방식으로 도망쳤을 터였다.
에드는 쓰러져 있는 병사를 보고 물었다.
“왕궁에 연락을 넣었나?”
“예. 넣었습니다.”
곧 펜드래건이 움직일 터. 그러나 디에고가 잡혀간 지금 한시가 급하다.
에드가 감각을 확장하고 있을 때 빠르게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습관적으로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기다가 다가온 존재를 확인하고는 활을 내렸다.
그것은 초록색 반투명한 쥐의 사령이었다.
아린이 그걸 보고 해머를 들어 올리기에 급히 그녀를 말리며 말했다.
“디에고가 새로 얻었다는 쥐의 사령이에요.”
아린은 쥐의 사령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디에고는 무사하겠네요.”
“아직은요. 감각 공유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용케 저주술사에게 걸리지 않고 쥐의 사령을 보냈네요.”
앞에서 자신의 수염을 앞발로 비비던 쥐의 사령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돌아서 뛰어갔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쥐의 사령을 따라서 에드는 말에 탈 시간도 없이 곧장 쫓아가야 했다.
지금 달려가는 방향은 길이 아니었기에 말을 타고 쫓기가 힘들었다.
에드는 민첩이 높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아린은 어떨까?
그런데 아린도 별다른 문제 없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기와 방어구 자체가 에드에 비해서 무거운 걸 생각하면 이 정도 속도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린의 기량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얘기이리라.
그렇게 쥐의 사령을 쫓아가는데 쥐의 사령이 그대로 벽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벽을 뚫고 지나갔다.
에드는 먼저 치고 달려가 양손을 깍지 낀 채 뒤돌았다.
“아린!”
아린은 에드가 뭘 하려는 건지 깨닫고는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에드의 양손을 밟고는 그가 올려주는 힘을 이용해서 도약했다.
그녀는 단번에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에드는 그녀를 올려보내고는 곧장 뒤를 따라 달려가 벽을 밟고 위로 솟구쳤다. 담벼락을 넘어가니 이미 아린은 쥐의 사령을 뒤쫓아 달리고 있었다.
에드는 단숨에 그녀의 뒤를 따라잡았다.
아린은 에드가 따라붙자 말을 건넸다.
“디에고를 데리고 이 담을 넘었다는 건가요? 저주술사가?”
에드 정도나 되니까 어렵지 않게 넘는 거지 보통은 어림도 없는 높이다. 그런데 디에고를 데리고 넘었다?
신체 능력 자체가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상대다.
“만만히 볼 자는 아니네요.”
아린은 그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술사들은 온갖 신비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신체 능력이 뛰어난 신비술사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쉬운 상대는 아닐 것 같았다.
에드는 감각을 확장하다가 인상을 굳혔다.
“눈치챘네요.”
“우리를요?”
“예.”
쥐의 사령을 쫓아 다음 담을 넘었을 때 달려오는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저택의 담을 넘어 달리다 보니 어느 귀족 가문의 사병들인 것 같았다.
“해주할 수 있어요?”
“할 수는 있는데 시간이 걸려요.”
“그럼 묶어 놓고 갑니다.”
에드는 그리 말하고는 화살 한 발을 바닥에 날렸다. 마력을 크게 주입하지도 않았는데 달려오던 이들의 발까지 모조리 얼어붙었다.
“끄아아악!”
다리가 얼어붙어도 달려오려고 했지만, 잠깐의 시간이면 그들을 지나쳐가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지나쳐 달리던 에드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따라잡았다.”
디에고를 옆구리에 끼고 담벼락을 오르는 여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의 화살이 날아들자 여인의 망토가 펄럭이는가 싶더니 화살의 궤도를 틀어서 빗나가게 했다.
보통 망토가 아니었지만, 이번 공격은 그녀의 발을 묶고 디에고를 구하기 위한 공격이었다. 처음부터 이기어시로 날린 화살이라 틀어진 화살이 다시 돌아와 디에고를 안고 있던 팔에 꽂혔다.
화살이 꽂혀 디에고를 놓친 여인이 반대편 팔로 디에고를 잡아채려고 할 때 이미 그녀의 코앞까지 아린의 해머가 날아들고 있었다.
몸을 뒤집어 아린의 해머를 피한 여인이 담벼락 위에 사뿐히 내려설 때 전력으로 달려온 에드가 떨어지는 디에고를 받아냈다. 디에고는 창백한 안색으로 에드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형. 저 잘했죠?”
에드는 디에고의 머리를 쓸어 만져주며 말했다.
“잘했다. 정말 잘했어.”
에드는 디에고를 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 아린이 어느새 다가와 돌아온 해머를 받아쥐고 방패를 꺼내든 채 전위를 맡았다. 에드는 자신의 뒤에 디에고를 내려주며 말했다.
“금방 끝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