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63화 (63/202)

#63

카르엔

베네딕토는 차를 마시면서도 꼼지락거리는 아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에드가 에밀리아와 반만 데리고 떠나고 나서 계속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아론과 아린 둘 다 베네딕토가 만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에 유행했던 악마 종속자와 추종자들이 만든 단체 크로셀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아이들이었다.

3영웅 중 하나인 드루이드 드레드가 그들을 구출했지만, 살아남은 것은 남매가 전부였다.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은 아이들을 본 베네딕토는 운명을 느꼈다. 그리고 크로셀이 왜 이 아이들을 노렸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둘 다 굉장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건 가능성이었다. 크로셀에게 넘어갔다면 그들의 크로셀의 차기 단주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정도로.

아론은 단주가 아린은 그들의 무력을 담당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

아론과 아린 모두 당시에 거의 망가져 있었기에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와서 매일 같이 씻기고 돌봤던 것이 베네딕토였다. 그래서 정말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이다.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둘의 성향이 다름을 알았다.

성서를 읽고 교리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론은 최연소 주임 사제가 되어 베른 시로 나갔다. 그곳에서 경험을 쌓고 본단으로 돌아와 중히 쓰일 터였다.

그런 아론과 반대로 아린은 무척이나 활발하고 싸우는 걸 좋아했다. 망가져 있을 때는 베네딕토의 팔을 어찌나 물었는지 피가 마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아린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그 재능을 높이 산 마스터 팔라딘에게 맡겼다. 그곳에서 정신 수양을 쌓고 뛰어난 성기사가 되었다.

예언에 따라 본단에서 나와 혈마석을 쫓을 수 있는 것이 그녀가 유일하다는 말을 듣고 살짝 걱정했었다. 혹시 어렸을 적 크로셀의 제물이 될 뻔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찾아온 그녀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오랜만에 만난 베네딕토에게 그녀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손녀의 재롱을 보는 것 같아 처음에는 즐거웠다. 처음에는.

온통 에드! 에드! 에드!

그건 손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과 함께 그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아스트론의 눈을 이용할 수 있는 베네딕토는 에드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전해 들어왔었다.

그자가 아린과 함께 한 뒤로는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린이 그의 얘기만 할 줄은 몰랐다.

마스터 팔라딘 밑에서 검을 배우고 교리를 배울 때는 성기사의 표본이라고 불리던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걱정도 됐다.

그저 악마 사냥에 미친 놈에게 빠진 건가 싶어서 걱정했는데 직접 만나본 에드는 생각보다 쓸만한 놈이었다.

사리 분별할 줄 아는 자. 그리고 자신을 믿는 자였다.

괜찮은 놈이었다.

베네딕토는 그래서 아린에게 한마디 해줬다.

“그를 못 믿는 거냐?”

“예? 아뇨.”

“그런데 뭘 그리 걱정하는 거냐?”

아린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궁시렁댔다. 그런 모습도 처음이라 베네딕토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얼굴로 돌아올 거다. 그를 믿어라.”

“후우. 알겠어요.”

아린은 차를 후후 불며 한 모금 마시고는 베네딕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저보다 더 에드를 잘 아는 것 같죠?”

베네딕토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살아온 세월이 있잖느냐? 그리고 이제 내 친구이기도 하고.”

아린은 베네딕토의 농담에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왕도의 밤하늘 아래 어딘가 있을 에드를 떠올리며 아린은 차를 마셨다.

아스트론의 눈으로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들. 카르엔을 돕는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위치가 파악 됐으니 그걸로 됐다.

말을 타고 달리던 에드가 천천히 말의 속도를 줄였다. 에밀리아와 반이 뒤따라 오던 중에 함께 말의 속도를 줄였다.

“왜 그러시죠?”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을 타고 접근하면 적들이 알아챌 가능성이 높으니 여기서부터 걸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에밀리아가 말에서 내리려고 하자 에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스트론 교단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자들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놈들일 겁니다. 그들의 근거지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이곳에서 수호 기사와 함께 기다리신다면 제가 카르엔의 목을 구해오겠습니다.”

에밀리아는 에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혼자서 상대하시겠단 말씀이신가요?”

“예.”

“괜찮으시겠어요?”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곳이 위험하다고 해봐야 카르엔 대신의 대저택만 하겠습니까?”

그제야 에밀리아는 수첩에 적었던 이 남자의 내력을 떠올렸다. 카르엔 대신의 집으로 들어가서 저주술사를 죽이고 동료를 구출. 그 와중에 카르엔 대신을 습격.

또 다른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노예 상인 발터의 콜로세움에 잠입. 동료를 구출하며 발터를 죽인 전적이 있다.

자신이 그를 찾아온 것은 그라면 반드시 카르엔을 잡거나 죽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에밀리아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잘 부탁드려요.”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말의 안장 위로 사뿐히 올라서는가 싶더니 옆의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담벼락 위에 내려서기 무섭게 망토를 휘날리며 에드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에밀리아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부탁만 해도 되나 모르겠네.”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제대로 누리기는커녕 바짝 엎드려 지냈다. 그러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아카데미에 진학 수석 졸업하면서 모든 일을 손수 해결해 왔다.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뭐에 홀린 것처럼 부탁하고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그 남자를 믿고 있었다.

에드는 에밀리아를 떨어트려 놓고 혼자 달려가면서 빙결의 활을 뽑아 들었다. 빙결의 활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가 된 상황이었다.

에드는 담벼락을 달리면서 감각을 확장했다.

카르엔을 데리고 간 자들은 왕도의 주택이 몰린 곳으로 이동했다고 했다. 그것만 봐도 이 자들이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함 속에 자신들을 숨기는 것에 능숙한 자들.

그런 자들을 찾아내는 아스트론의 눈이 대단하다 여기면서 에드는 그들의 집을 찾아냈다. 작은 정원이 있는 저택. 모든 불이 꺼져 있는 저택을 바라보며 에드는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보았다.

평상시에는 이렇게까지 감각을 깨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감각을 모조리 깨우자 저택의 나무 위에 하나, 저택 담벼락의 그늘아래 하나. 저택의 지붕 위에 하나가 숨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곳에 숨은 자들. 호흡 소리마저 가는 것을 보면 제대로 훈련받은 이들이다.

특무대인 아칼란과 다르게 이들은 은밀했다.

에드는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저택 안쪽까지는 감각이 닿지 않으니 우선 저 셋을 처리한다.

첫 번째 화살은 눈에 보이는 위치인 저택의 지붕에 있는 자였다. 다른 둘은 감각에는 잡히지만, 눈으로 확인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첫 번째 화살이 저택의 지붕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를 향해 날아가기 무섭게 에드는 두 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 발의 화살을 날리면서 이기어시를 사용했다.

두 발의 화살을 동시에 이기어시로 조종하는 것은 마력의 소모가 컸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자들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붕 위에서 은신하고 있던 자의 머리에 화살이 박히는 순간 담벼락과 나뭇가지에 은신하고 있던 자들에게도 화살이 박혔다.

나뭇가지에 은신하고 있던 자는 머리를 뚫고 나무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았고, 담벼락의 그늘에 숨었던 자도 담벼락에 머리가 박혔다.

셋 모두를 제압한 에드는 소리 없이 달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의 외부를 지키던 자들은 모두 제압된 상태.

에드는 담벼락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저택을 살폈다. 저택 외부의 감시자들을 처리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저택의 창문을 빠르게 살핀 에드는 2층 창문을 열고 밖을 살피고 있는 자가 하나 있음을 파악했다.

아직 그자는 밖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화살촉을 현철로 만들어서 빛나지도 않는 데다가 워낙에 빠르게 날아든 화살이 은신한 이들을 그대로 벽과 나무에 박아버려서 다른 소음이 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었다.

에드는 그 자를 향해서도 화살을 날렸다.

열려있는 나무 창문 사이로 날아든 화살이 그대로 상대의 머리에 박혔다. 에드는 화살을 쏘고 곧장 달려 그 창문으로 뛰어 들었다.

사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래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말튼. 무슨 일이야?”

에드는 활 대신 에트라인의 검과 비도를 뽑아 들었다. 왼손에 비도를 든 에드가 계단 쪽으로 소리 없이 다가가는 사이에 계단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저택 안에 느껴지는 기척은 최소 여섯.

에드가 계단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니 사내 하나의 발이 먼저 보였다. 에드는 그의 얼굴이 드러나기 전에 비도를 던지고는 땅을 박찼다.

계단 아래로 다가오던 자가 비도에 반응했지만, 몸을 틀어서 치명상을 면하는 정도에 그쳤다. 어깨에 깊이 박힌 비도에 신음을 흘리려던 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에드의 검이 그의 목을 베었다.

목이 잘린 사내가 쓰러지기 전에 그의 몸을 지나친 에드는 곧장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렸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저택의 거실. 계단에서 사내를 베고 달린 에드는 사내가 쓰러지며 내는 소리에 반응하는 자들을 보았다.

에드는 에트라인의 검을 짧게 세 번 휘둘렀다. 에드를 발견하고 달려오던 자들의 목이 검기에 모조리 잘려나갔다.

소파에 앉아있던 깡마른 카르엔이 그제야 고개를 돌리다 에드를 발견했다. 랜턴의 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달려온 에드를 향해 반데스가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것이 보였지만, 반데스의 검이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고 그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카르엔이 들고 있던 술잔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에드가 그걸 받아들고는 단숨에 비웠다.

에드가 술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고도 카르엔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일이 믿기지 않았다.

마젤타 왕국의 특첩부대 켈베로스의 요원들이 지키던 안가에서 비명 한번 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죽었고, 자신 앞에 나타난 암살자.

카르엔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얼마를 받았든 그 열 배를 주겠네.”

에드는 그 말에 가만히 카르엔을 내려다보았다. 이 자는 자신이 죽이지 않아도 어떻게든 카일의 손에 죽을 놈이었다. 카일에게 있어서는 가문의 원수.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메르헨이 어떤 식으로든 카일을 구하고 훗날 카일이 이 자를 죽이지 않았을까?

에드가 아무런 말이 없자 카르엔이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뽑아 내밀었다.

“이 반지는 재생의 반지라는 거네. 체력과 마력 회복에 뛰어나지. 족히 300골드는 받을 수 있을 걸세.”

트라비아 왕국의 대신. 급히 나오지 않았다면 많은 것을 가졌을 테지만, 지금 당장 걸치고 있는 것은 저것이 전부인가 보다.

에드가 반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이 자들은 누구지?”

에드의 물음에 카르엔은 잠시 주저했다. 이들의 정체를 밝힌다면 자신이 기대는 마지막 끈이 떨어진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에드의 무심한 눈을 보자 결국 실토했다.

“마젤타 왕국의 특첩부대 켈베로스라네.”

남부 귀족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기 위해서 카일의 가문과 남부 귀족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줄 알았더니 이 자가 그 원흉이었다.

“지금은 이것뿐이지만, 남부의 펠만 공에게 나를 데리고 가 준다면 몇 배, 몇십 배로 보답하겠네.”

에드는 남부의 펠만 공이 카르엔과 깊은 유착 관계가 있음을 알아내고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카르엔의 머리가 바닥을 구를 때 에드는 조금 당황했다.

카르엔의 무력이란 없는 것만 못한데 이곳에서 얻은 경험치 중 가장 많은 경험치가 들어왔다.

경험치란 단순히 개인의 강함만으로 쌓이는 것이 아닌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