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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62화 (62/202)

#62

베네딕토

에밀리아의 등장에 아린은 처음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에드를 조사하고 간 날 밤에 다시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에밀리아가 에드와 마주 선 순간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뭔가를 깨달았다.

에밀리아의 마음에 지금 이 순간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해왔다. 카르엔 대신을 잡는데 에드의 도움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카르엔 대신은 악마의 힘에 취한 자도 아니었고, 그저 인간 중에서 죄를 지은 자일 뿐이다. 그런 자를 잡거나 죽이는 데 도움을 달라니?

이거야말로 직권남용이다.

아린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에드는 넙죽 또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에 아린이 그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그랬더니 에드가 뒤돌아 아린에게 다가왔다.

“아린.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아스트론의 눈을 빌릴 수 있을까요?”

트라비아 왕국 내 아스트론 교단의 교인들의 수는 대략 8할이 넘는다. 다른 교단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교인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교단에는 온갖 정보들이 모인다.

그래서 그걸 아스트론의 눈이라고 부르는데 보통은 악마에게 홀리거나 해서 특이 행동을 보이는 자들을 파악하는 데 쓴다.

이단심문관이 주로 쓰는 것인데 그걸 이용하게 해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성기사는 기본적으로 아스트론의 눈을 쓸 수 있지만, 그걸로 이 밤에 뭘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건 정치적인 문제다.

“아스트론의 눈은 악마를 쫓는 데만 쓸 수 있어요.”

에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이 순진한 아가씨를 봤나?

교단만큼 정치에 민감한 곳이 없다.

“대신전으로 가서 베네딕토 대주교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아린은 이 부탁이 에밀리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그걸 애써 눌렀다.

“같이 가죠.”

에드는 에밀리아를 돌아보았다.

“집행관도 함께 가시죠.”

에드가 말을 건네자 에밀리아는 뭔가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답했다.

“좋아요.”

아린은 그 또한 못마땅했지만 여기서 그런 얘기를 꺼내봐야 성기사답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앞장서 갔다.

“덱스. 이곳을 잘 지키고 있어.”

덱스가 그 말에 술잔을 내려놓고 눈을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몸이 근질근질해 보이는 녀석을 보니 괜한 말을 했나 싶었지만, 약간의 긴장은 필요해 보였다.

테인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곳은 펜드래건의 집일세.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쳐들어오지 않을 테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에드는 아린의 뒤를 따라 움직여 밖으로 나왔다. 집사가 이미 말을 두 마리 준비해 주었기에 그곳에 올라탄 채 곧장 이동할 수 있었다.

에밀리아와 반도 뒤따라 달려오는 것을 확인하던 에드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대저택을 지켜볼 수 있는 나뭇가지 위에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서 빤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꼈다. 일반 부엉이라면 저렇게 사람을 관찰하듯 빤히 바라보지는 않을 터.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어서 당겼다. 일반 부엉이라면 나중에 구워 먹으면 될 일이고, 만약 패밀리어라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테니까.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벼락처럼 날아들 때 부엉이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자신의 화살을 피할 정도로 일반 부엉이가 민첩할 수는 없다.

설령 그걸 눈으로 보고 있었다고 해도.

에드는 이기어시로 날아가던 화살의 방향을 틀었다. 날아오르던 부엉이의 가슴에 화살이 박히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아린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말의 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부엉이는 왜 잡았어요?”

“패밀리어 인 것 같아서요. 저주술사가 재주가 많네요. 겁도 없고.”

에드가 알아볼 정도였으니 펜드래건에게 걸렸다면 당연히 발각되었으리라. 그리고 펜드래건의 심기를 건드리면 신비술사 따위 갈가리 찢겨 나갔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악마의 힘을 가진 저주술사라면.

아린은 그 말에 잠시 산산조각이 나서 죽은 부엉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부엉이를 분명 스쳐 지나가듯 보았다.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그걸 잡아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다.

에드가 에밀리아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역시 그는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새삼 마음을 다잡으며 아린은 말을 몰았다.

아린의 뒤를 따라 대저택이 몰려있는 곳을 지나 중앙 광장까지 가로지르는 동안 왕도 수비대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많은 인원이 움직이고 수색을 하는 데도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태자의 애도 기간이기 때문이리라.

왕도 수비대의 규율이 생각보다 엄격한 것인지 그들은 소란 하나 피우지 않고 조용히 수색하는 중이었다.

그들을 통솔하는 것은 왕궁 친위대의 기사들. 그들은 바삐 움직이는 에드 일행 중 에밀리아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길을 열어 주었다.

해가 진 밤의 왕도에서 오직 그들만이 요란하게 말을 달렸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아스트론의 대신전이었다.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케 하는 높은 기둥과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기둥의 높이만 무려 20미터에 달하니 대체 저 무거운 바위들을 어떻게 옮겨서 만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대신전의 앞을 지키고 있던 수사들이 아린을 보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대신전 앞까지 간 일행은 말에서 내렸고, 안에서 나온 사제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아린 경. 무슨 일로 이 야심한 시각에 찾아오셨습니까?”

“대주교님은 혹 주무시고 계십니까?”

“아직 깨어 계십니다.”

“그렇다면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따라오시죠.”

사제는 신성력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기품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아 다른 도시에 갔다면 주임 사제가 되고도 남을 인물 같아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대신전의 넓은 대전을 지나 안쪽 깊숙한 곳까지 갔다.

곳곳을 지키고 있는 수사들이 눈에 띄는데 그들의 실력이 하나 같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왕궁에 갔을 때 보았던 근위병에 버금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니 계단이 있어 그곳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다. 대신전 뒤편에 있는 기둥의 안쪽에 만들어진 계단이었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그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집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업무를 보는 곳으로 보였는데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책상에 앉아 조용히 성서를 읽고 있던 노인은 에드 일행이 찾아오자 조용히 성서를 덮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린 경. 야심한 시각에 어쩐 일로 찾아온 건가?”

“죄송합니다. 급히 요청할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노인의 시선이 아린의 뒤편에 선 에드를 지나 에밀리아와 반까지 훑어보고는 에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린 경이라면 아무리 급해도 무례를 저지르지 않을 성격이니 그대가 한 청인가 보군.”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꼿꼿하게 편 허리의 노인은 소파를 권했다.

모두 자리에 앉는 동안 노인은 옆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와 차를 따라 주는데 찻잔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에드는 감탄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과한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건 아니 그리 눈치 주지 말게.”

눈치를 준 건 아니었다. 그저 찻주전자 따위가 유물급이라는 것에 놀랐을 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유물급 장비에 놀랐을 따름입니다.”

노인은 미소를 짓더니 손을 들어 차를 권했다. 에드는 군말하지 않고 차를 들어 향을 먼저 음미했다. 끓여 마시는 차치고 굉장히 화려한 향을 뿜어내서 살짝 놀랐다.

에드는 조용히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화려한 향과는 반대로 은은한 단맛이 우러나왔다. 절로 흡족한 미소가 지어지는 차였다.

노인은 가만히 에드가 차를 음미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악마 사냥꾼 에드인가?”

에드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예. 제가 에드입니다.”

노인은 깐깐해 보이던 눈매를 누그러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린 경이 자네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더군. 손녀처럼 생각하던 아린 경이 그리 말하니 샘이 다 나더군.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네. 왕도의 대신전을 맡은 베네딕토라고 하네.”

아린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지만, 에드는 베니딕토에게 집중하느라 그녀를 보지 못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베네딕토 대주교님. 아론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에드가 목에 걸고 있던 증표를 꺼내 보이자 베네딕토 대주교는 손을 뻗어 그걸 만져보더니 눈을 감고 작게 기도를 올렸다. 곧 목걸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심술궂게 대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일세.”

목걸이에 깃든 신성력이 깊어진 것을 보니 이것도 강화된 느낌이다. 에드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베네딕토는 에밀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밀리아 자매님도 반갑군. 중한 임무를 맡은 것 같던데 그것 때문에 오신 건가?”

에밀리아도 아스트론 교단의 인물이다 보니 대신전에 가끔 와서 기도를 올리고는 했다. 그러나 베네딕토는 먼발치에서나 봤지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베네딕토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답은 에드가 대신했다.

“카르엔 대신을 찾고 있습니다. 아, 지금은 죄인이니 카르엔을 찾고 있습니다.”

“카르엔이라···.”

베네딕토는 그렇게 말을 끌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에드를 바라보다가 에밀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베네딕토 대주교는 왕도 내에서 레이든 국왕과 펜드래건 다음 가는 유명인사다. 굉장히 유명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이다.

그런 그의 시선에 에밀리아는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 눈빛은 마치 그녀에게서 뭔가를 찾으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베네딕토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건 다분히 정치적인 일이라서 교단이 개입된 것을 알게 되면 시끄러워질 걸세.”

에드는 베네딕토가 에밀리아를 알고 있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노회한 대주교인지 알 수 있었다. 칼림 시의 찰리 주임 사제처럼 뭔가를 밝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를 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성력도 깊은 것을 보면 신실한 아스트론 교단의 성직자이면서 정치적인 눈도 가진 이.

이런 이가 오히려 말이 잘 통한다.

“도움을 주신다면 잊지 않겠습니다.”

“자네가? 아니면 에밀리아 자매가?”

“둘 다입니다.”

빚을 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나 베네딕토 대주교 같은 이와 인연을 맺는 것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에드는 어차피 왕도에 남아 있을 생각도 없다.

왕도야 펜드래건이 지키고 있으니 자신은 연관된 두 마리의 대악마를 잡으러 떠나야 할 일.

저 빚은 결국 에밀리아가 갚아야 할 빚이다.

에밀리아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녀는 지금 왕의 눈에 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를 지지해주는 세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베네딕토 대주교라는 인맥이 생기는 일이다. 베네딕토 대주교도 이 빚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지지해줄 수밖에 없는 일.

서로가 이기는 길이다.

베네딕토 대주교의 시선이 에밀리아를 향하자 에드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을 받은 에밀리아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수첩을 보다가 막연히 에드가 떠올랐었다. 그리고 그라면 이번 일을 반드시 해결해 줄 거라 믿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돕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탁 놓였다. 고작 두 번 본 것이 전부인 데도 이렇게 믿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고, 그런 적이 처음이라 당혹스러우면서 혼란스러웠다.

에드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데리고 왔다.

그리고 이 자리가 뭘 뜻하는지 이제야 보였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베네딕토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책상으로 걸어가며 말을 꺼냈다.

“오늘 밤 호텔에서 카르엔 대신을 본 이가 있다고 하더군.”

베네딕토는 종이에 메모를 남기며 말을 이었다.

“둘이 들어갔다가 넷이 나왔고, 그들은 어딘가로 향했다고 하더군.”

베네딕토가 메모를 남긴 종이를 접으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이 일은 교단과 연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네.”

에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네딕토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아린은 이런 일에 함께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아스트론의 눈을 빌리게만 해준 것으로 충분했다.

에드가 다가가자 베네딕토가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말이 통하는 친구로군.”

에드는 쪽지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친구인 겁니까?”

에드의 말에 베네딕토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베네딕토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친구. 한 가지 충고하자면 카르엔과 함께 움직인 이들. 우리도 아직 그들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네.”

아스트론의 눈을 피한 자들이라는 말에 쉬운 상대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는 쪽지를 펼쳐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누구든.”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카르엔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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