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53화 (53/202)

#53

대성공

에드의 말에 태자 클라크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연기력이 제법이다.

“매제를 흠모하는 이인가 보군.”

“닮고 싶은 분이죠.”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클라크는 지금쯤 삼십 대 후반이 넘었어야 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팽팽한 피부. 게다가 사람을 대하는 것도 펜드래건으로 플레이할 때 만났던 이십 대의 애송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인간도 아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로 악마의 힘을 얻은 자.

사람 많은 데서 만나지 않았다면 죽였을 텐데 아쉽다. 그런데 왕궁에는 신관들도 자주 올 텐데 용케도 들키지 않았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선물 하나 하지. 볼코프 공. 내가 주문했던 물건은 나왔나?”

“여기 나왔습니다.”

볼코프. 난쟁이 중에 가장 오래 살 자. 악마의 시대 1을 해본 이들은 모두 이를 가는 상대. 모든 플레이어들의 욕을 배가 터지도록 먹은 장본인이다.

그때 화면 너머에서 보던 것보다는 늙었지만, 그 특유의 감정하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볼코프가 꺼내 건넨 물건은 원형의 링이었다. 링 외부로 날이 달린 물건.

클라크는 그걸 집어 들더니 검지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이 물건이 뭔지 아나?”

“차크람 아닙니까?”

“호오! 식견이 뛰어나군. 이건 동쪽 사막 나라 쿠레나이의 유랑 일족이 다루는 무기 중 하나지. 처남은 이런 잡기에 의존하지 말고, 검이나 수련하라고 하는데 그거야 처남 같은 기사들이나 가능한 것 아니겠나?”

클라크가 눈을 반짝이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딜 꼬나보나? 사람 없는 곳에서 만났으면 벌써 머리에 화살을 박혔을 놈이.

에드가 시선을 피하지 않자 씨익 웃은 클라크가 차크람을 다시 볼코프가 가지고 왔던 차크람의 집에 넣었다. 차크람 세 개가 들어가 있는 차크람 집이었는데 클라크가 그 안에 다시 차크람을 집어넣고는 물었다.

“자네도 혹시 잡기는 배우지 않는 이인가?”

“아닙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태자가 주문해서 볼코프가 만든 물건이다. 못해도 명품 이상일 물건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에드의 대답을 들은 클라크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잘 됐군. 이건 기존의 차크람보다 더 날카롭고 더 멀리 날 수 있도록 개량한 거네. 악마를 잡는 데 유용했으면 좋겠군.”

클라크가 내미는 차크람을 받아들었다. 검은 날로 만든 거로 보아 이것도 현철로 만든 차크람인데 개량한 것도 개량한 것이지만 크기 자체가 지름 1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거 잘만 다루면 생각지도 못했던 무기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도보다도 차지하는 공간이 작다는 장점이 있었다.

악마와 관련된 자가 주는 것이라고 마다할 필요가 없다. 언제고 상대의 머리에 박아 줄 수도 있으니까.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식사나 한번 하지.”

클라크는 수호 기사들을 데리고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에드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란트와 볼코프의 대화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하지만 언제고 만나게 될 테고, 그때는 민낯을 드러내게 되리라.

“가져왔나?”

“여기 있습니다.”

그란트가 가지고 온 상자는 푸른색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그걸 본 볼코프가 감탄했다.

“호오. 관리가 중요한 걸 잘 알았군. 이 귀한 샨토의 상자에 넣어온 걸 보면.”

“쿠레나이와 거래할 때 하나 구했었습니다. 설마 괴물의 심장을 넣어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죠.”

볼코프는 상자를 쓰다듬다가 고개를 돌려 에드를 바라보았다.

“너냐? 빙결의 활을 강화하고 싶다고 한 녀석이?”

“예.”

에드가 다가오자 볼코프는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물건도 사람도 감정하는 것이 습관인 자다. 그의 눈에는 지금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에드를 꼼꼼히 살피던 볼코프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펜드래건 이후로 이만한 이를 보는 건 또 오랜만이군. 하지만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어. 더 노력해야겠군.”

“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볼코프가 그 말에 드물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하지만 장비에 의존해서는 성장이 멈추니 장비에 너무 의존하지 말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볼코프는 인간은 노력으로 완성된다고 여기는 이다. 하지만 그 완성의 마지막은 뛰어난 무기라고 생각하는 이였다.

그렇기에 노력을 게을리하는 인간도 싫어하고, 무기를 무시하는 인간도 싫어한다. 은근히 겸손한 이를 좋아하니 분위기를 맞춰줬다.

“빙결의 활을 줘 봐.”

에드가 빙결의 활을 건네자 그걸 받아든 볼코프가 활의 상태를 살폈다. 상당한 장력을 지닌 활임에도 대수롭지 않게 활의 시위를 당겨 본 볼코프가 입을 열었다.

“장력은 충분한데 시위는 교체해야겠군. 기왕 손 보는 김에 시위도 교체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볼코프가 손짓하자 그의 제자가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볼코프는 망치를 두드리는 대장간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볼코프를 따라간 곳은 대장간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모루 문양이 그려져 있는 문을 볼코프가 열고 들어갔다.

“이곳은 아무나 들이는 곳이 아니지만, 자네들은 특별히 받아주지.”

강화의 방이라고 쓰고 절망의 방이라고 부르는 곳.

강화 재료를 맡겼을 때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기는 했다.

“감사합니다.”

에드와 그란트가 안으로 따라 들어가니 제자 하나가 달려와서 볼코프에게 시위를 넘겼다. 그란트는 시위를 교체하고는 강화의 방 중앙에 있는 술법진 위에 장비를 올려놓고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저 망치가 사실은 성유물이다.

대장장이의 신 헤이토가 내린 성유물.

성유물이라 장비를 강화할 수 있지만, 실패 시에는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놈. 가끔은 일부러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기대가 컸다.

성유물 정도 되면 강화 성공 확률이 20% 미만이지만, 유물급은 40% 정도 성공 확률을 가지고 있으니까.

게임에서야 이 안에 들어와서 빛이 나고 끝. 실패냐 성공이냐만 나왔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떨까?

에드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보는데 술법진 위로 빙결의 활이 올라갔다.

볼코프는 그란트가 들고있던 샨토의 상자를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서 새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볼코프는 그 안에서 어른 머리통만 한 크기의 펄떡거리는 심장을 꺼냈다. 볼코프가 그 심장을 빙결의 활 위에 띄워 놓자 허공에서 룬어들이 튀어나와 심장을 감싸는 구 형태로 빛나기 시작했다.

볼코프는 대장장이로 유명하지만, 실제는 대장장이의 신 헤이토의 사도다. 저것도 사실은 신성 주문이고.

그러니 이 넓은 대륙에 강화를 이 난쟁이 밖에 못 하지.

볼코프는 허공에 뜬 켈페시아의 심장을 감싼 술법진에 집중했다. 술법진의 룬어들이 구의 표면을 따라 회전하면서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켈페시아의 심장이 압축되더니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빛의 입자로 변했다.

신비로운 광경에 그란트가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다. 왕국 내 3대 상단의 상단주라고 해도 이런 광경을 흔히 볼 수는 없었으리라.

장비의 강화는 최소 유물급 이상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걸 아는 이도 그리 많지 않으니 왕궁에서 의뢰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빙결의 활이라는 유물급 장비에 그걸 강화할 장비까지 구해왔으니 되면 좋고, 안 돼도 제물로 바칠 수 있으니 좋다고 여기고 승낙한 것이리라.

그렇게 켈페시아의 심장의 정수가 새하얗게 빛나며 맺히자 볼코프가 그제야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 망치를 그대로 내려치는데 그 궤적에 정수가 닿았다.

망치에 붙어서 떨어져 내리는 빛의 입자가 빙결의 활에 떨어졌다.

그리고 순간 엄청난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새하얀 빛이 검은 활을 감싸고 그 위로 룬문자들이 빼곡하게 빛을 뿜으며 나타났는데 그 광휘가 어찌나 강렬한지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에드는 그 모습에 환호했다. 이 정도라면 단순히 강화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다.

에드는 지금까지 천운을 기대지 않고 살아왔다. 이곳에 떨어진 순간부터 살아 돌아가기 위해, 그 끝을 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만약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그 여자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일 생각이었다.

만약 이쪽에서 만나면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에드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들었을 때 볼코프가 빙결의 활을 들어 올리며 감탄했다. 시위를 당겨본 볼코프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 일이시지? 요즘 제물로 바친 것들이 시원찮았는데 이런 축복을 내려주시고?”

볼코프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난쟁이는 사실 빙결의 활을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던 건가?

볼코프는 에드에게 빙결의 활을 던져줬다. 날아온 빙결의 활을 잡아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진짜 대성공이다. 적은 마력으로 더 강력한 냉기를 뿌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성유물 부럽지 않다.

그냥 강화했다면 적어도 다섯 번은 강화했어야 할 정도로 성능이 올랐다. 이 정도라면 진짜 헤이토의 축복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었다.

“혹시 헤이토 님에게 헌금이라도 잔뜩 했나?”

“아뇨. 다음에 헤이토 님의 신전을 발견하면 헌금 듬뿍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다. 그만한 축복은 나도 살아생전 처음 보는 거니까.”

일반 강화도 툭 하면 실패하고 강화가 겹쳐질수록 실패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에 이 정도 대성공이 나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

볼코프도 처음 보는 일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괜히 여기 있다가 다른 장비도 봐준다고 하면 곤란하다. 이만한 대성공이 터졌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신나게 제물이 바쳐질 테니까.

에드가 인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볼코프가 입을 열었다.

“잠깐.”

“예?”

“자네 유물급 장비가 더 있군. 내가 봐 주지. 헤이토 님이 이만큼이나 축복을 내려준 적이 없네. 지금이라면 재료가 없어도 기본 강화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네.”

“하하하. 괜찮습니다.”

에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볼코프는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왼손에는 망치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위험하다.

에드는 쫓아오는 볼코프를 피해서 강화의 방을 뛰쳐나갔다. 볼코프는 에드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자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돌려 그란트를 바라보았다.

“자네. 샨토의 상자. 내가 축복을 내려주겠네.”

그란트는 에드만큼 빠르지도 못했지만, 볼코프가 문을 막고 선 채로 망치를 들고 있어 피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에드야 볼코프를 다시 안 보면 그만이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그란트가 울먹이면서 샨토의 상자를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쿠레나이 왕국에 마적들이 들끓고 있고 호족들이 들고 일어난 상황이라 샨토의 상자는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날 믿게. 그란트.”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그란트는 호방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우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는 이미 그가 가지고 왔던 샨토의 상자가 헤이토에게 바쳐진 것을 들었다.

위로해 주니 악마를 잡는데 샨토의 상자는 필요 없다고 말한 그란트였지만,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부쩍 말이 없어진 것을 보면.

마차가 저택의 별채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후였다. 일행은 디에고가 소피아와 함께 사 온 군것질거리들을 늘어놓고 별채 뒤편의 정원에서 간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에드가 그란트와 돌아오자 테인이 물었다.

“어떻게 됐나?”

테인은 알고 있을 터였다. 볼코프가 강화할 수 있지만, 실제로 날려 먹기도 한다는 것을.

에드는 빙결의 활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걸 본 테인이 눈을 반짝였다.

“성공했나 보군.”

“대성공입니다.”

에드의 확신에 깃든 말에 테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역시 자네는 운이 따라주는군.”

아린이 성유물을 셋이나 들고 다녀서 부러웠는데 이제 부러워할 일은 없으리라.

에드는 그란트가 앉아서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사람들에게 동화되며 샨토의 상자를 날려 먹은 것을 잊어 버리는 것을 보고 아린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눈짓을 알아보고 따로 나와서 일행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까지 간 에드가 테인을 바라보았다.

“태자를 만나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테인은 그 물음에 픽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내가 태자를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나? 못 본 지 십 년도 넘었네. 왜? 태자를 만났나?”

테인의 안목을 생각하면 근래에 그를 만났다면 에드가 알아본 것을 알아봤으리라.

“예. 그런데 태자가 악마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테인과 아린의 눈빛에 경악이 어렸다.

“종속자던가?”

“아뇨. 그렇게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악마와 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에드는 테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가 악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테인은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태자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악마에게 홀렸다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