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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44화 (44/202)

#44

왕도

디에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디에고는 에드와 아린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난 엄마를 모시고 살 거예요.”

이미 모든 얘기가 끝나있는 상황이었다. 디에고가 반대할 것도 알았다. 저 효자는 소피아를 걱정해서 이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것도 알았다.

이 일에 관한 한 돈은 다른 사람이 내지만 이야기는 모두 에드가 하기로 했다. 디에고와 그나마 가까운 에드가 직접 자신이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왕도로 갈 거야. 치안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가게를 내드릴 거고, 소피아는 새로운 삶을 살 거다. 그리고 디에고 너는 우리와 함께할 일이 있다.”

디에고는 그 말에 에드를 바라보았다. 빈민가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고 하지만 후안이 떠나고 얼마나 괴로웠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디에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문을 통해서 저 멀리 빈민가가 있는 곳을 바라보던 디에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일이 있다고요?”

“그래.”

“그럼 그 일이 끝나면 전 자유인가요?”

“당연하지.”

그 일이 과연 끝날지 안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자유다.

“그럼 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래요. 어머니 모시고.”

후안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라 그럴까? 정말 후안의 말처럼 디에고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마기의 씨앗이 깨어나 대악마를 상대하는데 일조할 만큼 강해진다면 그때는 후안처럼 빈민가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에드는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업적을 세웠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좋다.

“얼마든지.”

디에고는 에드의 확답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제가 할 일은 뭐죠?”

“나중에. 일단은 왕도로 가자.”

“왕도요?”

“그래. 왕도.”

펜드래건이 있는 왕도. 이제 그곳으로 갈 때가 됐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신성력을 뿜어내는 마차에 탄 디에고는 그날 하루종일 멀미를 해서 더그의 옆에 앉기로 했다. 마차 안에서 지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마부석에 앉았는데 아마도 심장에 가지고 있는 마기의 씨앗 때문인 것 같았다.

언제 씨앗이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칼림 시를 벗어나 왕도 벤젤로프로 가는 길. 칼림 시에서 마차로 8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게 마차 여행이 다시 시작됐다. 칼림 시를 벗어난 첫날 밤. 에드는 마차의 지붕에 오른 채 주위를 살폈다.

소피아가 와서 마차 안에서 아린과 소피아가 자기로 했고, 테인은 마차 밖에 작은 텐트를 만들어서 더그와 자기로 했다. 마차에 바짝 붙어 있어서 특별히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디에고가 낑낑거리며 마차 지붕 위로 올라왔다. 마차 지붕 위에서 장비를 손질하고 있던 에드는 다가오는 디에고를 바라보았다.

디에고는 말없이 다가와 마차 지붕 위에서 에드가 손질하는 화살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어둠에 휩싸인 숲을 바라보았다. 대로에서 살짝 들어온 공터에서 야영지를 만들었기에 조금만 가면 숲이었다.

칼림 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단 한 발짝도 성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디에고는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반면 그만큼 후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에드를 찾는 것인지도 몰랐다.

에드는 화살대를 들고 오른쪽 눈으로 가져가 화살대가 휘거나 변형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있었다. 디에고는 그런 에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에드는 화살을 무한의 화살집으로 돌리고는 디에고를 마주 바라보았다.

“잠이 안 와?”

“예.”

에드는 디에고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기의 씨앗을 품고 있고, 그것이 개화하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실제로 디에고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허리에 차고 있는 명품 단검을 뽑아 들었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 샐러맨더의 검이 있어 여유분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었는데 자신보다는 디에고에게 필요할 것 같았다.

에드가 단검을 던졌다가 날을 잡고는 디에고에게 내밀었다. 디에고는 에드가 내민 단검을 받아서 들어보았다. 에드는 허리띠에서 검집까지 풀어서 건넸다.

“이거 받아도 될까요?”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어.”

디에고는 단순히 호신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좋은 단검이 아닌가 싶었다. 어디 날이 하나 빠진 데도 없고, 척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성기사님이랑 같이 다니는데 위험할 일이 있을까요?”

에드는 그 말에 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지.”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건 에드가 시위를 한껏 당기더니 숲속 어둠을 향해 날렸다. 마치 화살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캐앵!

외마디 비명이 들리자 에드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세상에 널린 악마와 마물들을 처단하는 것이 성기사의 임무야. 그런 성기사가 가는 길이 평탄할 리가 있겠냐?”

사실은 네프사엘에게 찍혀서 밤에 잠 못 자고 마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굳이 그걸 다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저 앞으로의 길이 어떨 것인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족했다.

“악마랑 마물이랑 싸운다고요?”

빈민가라고 하지만 상급 악마였던 후안이 지배자로 있던 곳에서 자랐으니 마물 하나 본 적이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악마랑 마물과 싸운다고 하니 겁을 집어먹은 듯 긴장한 모습이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소피아가 아무리 후안이 악마였음을 알았다고 해도 디에고가 악마나 마물과 싸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반길 리가 없었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더라도 실제로 듣는 것은 또 다르니까.

디에고는 에드가 농담하는 것인지 진담으로 꺼낸 얘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첫날은 뭔가 겁에 질린 것 같았던 디에고도 8일 동안 왕도를 향해 가는 길에 악마는커녕 마물도 마차 근처에 오는 것을 못 보아서인지 조금씩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곧잘 농담을 건네고는 했다.

소피아도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확실히 기력을 회복해서 디에고의 농담에 희미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떠난 이는 떠난 것이고, 남은 이들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그들이 후안의 죽음에서 벗어난 덕분인지 일행의 분위기도 많이 밝아졌다.

“형! 일어났어요?”

에드는 마차의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왕도가 가까워져서인지 지나가는 마차가 많아서 아린도 마차 지붕에서 수련하지 않고 마차 안에 들어와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에드는 마차의 문을 열고 훌쩍 마차 지붕으로 올라갔다.

“왜?”

“저기 보여요? 저게 왕도래요.”

그 말에 에드도 고개를 들어 왕도 벤젤로프를 바라보았다. 성벽의 높이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도시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달리아 왕국의 왕도조차 깔아볼 정도로 높은 성벽. 성벽의 높이만 대충 보아도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높이의 성벽이 아직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거의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지평선을 이룰 정도로 긴 성벽을 보고 에드가 헛웃음을 흘렸다.

“엄청나네.”

중세 시대라서 건축물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건축물들은 과거에 지은 건물들이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것들.

그런 면에서 저 성벽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될만했다.

마차의 창문 밖으로 테인도 고개를 쑥 내밀더니 미소를 지었다.

“트라비아 왕국의 저 성벽은 철벽이라고 불린다네.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지.”

하긴 트라비아 왕국은 왕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영토의 크기로 보면 다른 왕국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한다. 그뿐인가? 비옥한 토지로 국력도 압도적이다.

그런데 달리아 왕국을 점령했으니 이러다가 트라비아 제국으로 거듭날지도 모르겠다.

마차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체가 되기 시작했다. 아직 왕도까지 갈 길이 먼데 벌써 정체가 일어나나 싶었을 때 더그가 오히려 채찍을 들었다. 마차의 속도가 오르자 소요가 일어났다.

다른 마차들도 있지만, 그 마차의 마부들은 시선을 줬다가 슬그머니 피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란트 상단주의 마차다 보니 그란트 상단의 문양이 들어가 있다. 그것만 해도 왕국 3대 상단 중 하나이니 어지간한 마차들은 피해갈 터인데 지금은 문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차에서 푸른 성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밀린 마차들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진 길을 따라 마차가 달려갔다.

그 모습을 마부석에서 지켜보던 디에고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뭔가 멋지네요.”

빈민가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느낌일 터. 에드는 픽 웃고는 가까워지는 성벽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위용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악마의 시대는 악마가 판을 치는 세계이면서도 인간이 대륙을 지배한 세계다. 인간이 적자인 세상.

상급 악마인 후안을 만나고 그 압도적인 강함에 질려 있었지만, 역시나 인간들은 강하다. 저런 성벽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마차는 제지 없이 성벽까지 다가갔고, 그곳에서 병사들의 제지에 멈춰섰다. 그러나 더그가 품에서 꺼낸 패를 보더니 병사들은 오히려 다른 마차들을 옆으로 물러나게 하고 길을 열어줬다.

에드는 그 모습을 보고 마차 안의 테인에게 물었다.

“뭘 보여준 겁니까?”

“왕족의 통행증일세. 펜드래건이 내준 물건이지.”

그제야 에드는 성벽의 모습에 압도되어 펜드래건을 만나러 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악마의 시대 1 주인공이자 지금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트라비아 왕국의 부마가 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왕궁으로 바로 갑니까?”

테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왕궁으로 바로 갈 필요는 없네. 펜드래건은 지금 사냥을 나가서 집에 없다는군. 사흘은 걸려야 돌아올 걸세.”

테인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우선은 집으로 가지.”

마차 지붕 위에서 에드는 왕도를 보고 있었다. 다른 도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파가 몰려있는 곳이다. 마차가 다니는 대로 옆으로는 인도가 놓여 있었고, 그곳으로는 수많은 인파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도시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화려한 도시였다. 대로는 마차 네 대가 왕복으로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런 대로에 마차들이 가득하니 현실이 떠올랐다.

1년도 넘었지만, 교통체증을 느끼다 보니 새삼 지구가 떠올랐다.

에드는 오랜만에 떠오른 지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왕궁은 왕도에서도 지대가 높았다.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언덕 위에 지어진 왕궁은 지배자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마차는 대로를 따라 달리다가 교차로에서 좌회전했고, 그쪽으로 향하다 보니 대저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땅값 비싸 보이는 왕도에서 이만한 크기의 저택들이라니.

어지간한 영주들의 대저택만한 크기였다.

그런 대저택들 사이를 누비던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다른 대저택에 비해서도 몇 배는 커다란 대저택이었다. 일단 높은 담장과 그 위로 비죽 솟아있는 전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더그를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커다란 철문이 열리니 그 사이로 전나무가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고, 그 끝에 대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마차를 몰고 가는 것을 보고 에드가 감탄했다.

“테인. 이렇게 부자인 줄은 몰랐네요.”

“난 별채를 쓸 뿐이네. 여기는 펜드래건의 집이야.”

어쩐지 너무 크다 했다. 과연 전나무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원형으로 된 교차로가 나왔고, 전면의 대저택이 아니라 우측으로 마차를 몰아갔다.

별채라더니 어지간한 영주들의 저택만 한 크기의 건물이 또 한 채가 있었다.

마차가 그 앞에 서니 디에고가 그 위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가 테인 할아버지 집이에요?”

마차가 멈추자 마차의 문을 열고 나온 테인이 등을 두드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여기가 내 집이지.”

테인이 먼저 내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피아가 아린의 부축을 받으면서 내리는 것을 보고 테인이 지팡이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소피아와 디에고 너희 집이기도 하고.”

“예?”

테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이곳은 왕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 여기서 함께 지내면 되지 않겠나? 내가 없는 동안 집을 돌봐주면 좋겠는데.”

테인의 말에 소피아가 아무런 답도 못했다. 디에고가 마부석에서 내려 그런 소피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소피아는 디에고의 손을 잡은 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여기서 지낸다면 디에고도 안심할 수 있지 않겠나?”

소피아가 돌아보자 디에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여기서 지내요. 제가 할 일 금세 마치고 돌아올게요.”

소피아는 그 말에 손을 내밀어 디에고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 조그만 아이는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 아는 걸까? 그녀도 어렴풋이만 짐작하고 있지만,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피아는 디에고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대저택을 돌아보았다. 영주의 대저택을 방불케 하는 곳. 자신이 이런 곳에서 지내도 되나 싶었지만, 디에고가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이곳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저택에는 집사장을 비롯해 하녀까지 많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차려준 식사는 8일간 야외에서 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음식들이라 만족스러웠다.

소피아의 방은 예전에 살던 빈민가의 집보다 몇 배나 넓었고, 침대도 넉넉했다.

디에고는 소피아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다. 왕도에서의 일이 끝나면 다시 떠나야 한다고 했기에 엄마와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길 생각이었다.

편안한 침대에서 금세 잠이 들었던 디에고의 손에 낀 반지가 스르륵 움직였고, 잠든 디에고의 심장에 깃들어 있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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