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개소리
소 뒷걸음에 쥐 잡는다고 했던가?
빈민가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다가 눈이 가는 소년을 만나 그 뒤를 따라 왔는데 어째 악마가 연관된 냄새가 물씬 났다.
악마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엄마의 병.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아빠.
여러모로 의심이 갔다.
그러나 에드는 수소문 이상으로 악마를 확인하는 법은 모른다. 그걸 알아내려면 자신이 아니라 아린이 와야 하는 상황. 마침 디에고의 엄마 병을 치료하려면 아린이 오기는 해야 했다.
“가서 엄마 병을 치료할 분을 모셔 올 테니까 너도 요기하고 어머니 드리는 죽에 고기 팍팍 넣고 끓여라. 몸을 회복하려면 고기를 먹어야지.”
디에고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감사하기는 일러.”
아무래도 디에고의 아빠가 악마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가운데 감사를 받기에는 이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어쩌면 감사가 아니라 원망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디에고가 빵을 입에 쑤셔 넣고 안에 들어가서 냄비에 고기를 팍팍 집어넣는 것을 보고 에드는 빈민가를 나와 걸음을 옮겼다. 빈민가를 걸어보니 확실히 디에고의 엄마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에드는 빈민가를 나와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어시장을 지나 귀족들이 사는 곳까지 가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크기의 웅장한 교회가 있었다.
수도의 방위 성 중 하나인 만큼 교회의 크기도 남달랐다. 교회를 바라보던 에드가 다가가자 교회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이들이 앞을 막았다.
아스트론 교단의 수사들이었다. 교리를 연구하고 따르는 사제들과는 다르게 육체를 단련하는 이들. 이들은 성기사들과도 다르게 날붙이를 쓰지 않지만, 허리에 차고 있는 메이스는 악마나 마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머리도 충분히 쪼갤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무기를 소지한 채 교회로 다가오니 막아선 것 같았다.
에드는 그들과 날을 세울 생각이 없었기에 목에 걸고 있던 아스트론의 증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성기사 아린 경을 만나러 왔습니다.”
에드가 밖으로 내비치자 증표가 은은하게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사들은 그걸 보고는 한 명이 직접 안내까지 해줬다.
수사를 따라 걷던 에드는 디에고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빈민가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 못한다. 이 세계의 아스트론 교단은 빈민구제가 목적이 아니다.
교단 자체도 중세와 다를 바가 없어 권력에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중에도 빈민까지 구제하고자 하는 성인들도 있지만, 주임 사제들의 성격은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일수록, 목이 좋은 곳의 주임 사제들일수록 돈에 눈이 멀어있다.
에드는 빈민가에서 곧장 와서인지 더욱 그 대비가 극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주임 사제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에드가 수사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주임 사제실로 높은 문부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주임사제님. 아린 경을 찾아오신 손님이 계십니다.”
“들어오시오.”
수사가 문을 열자 넓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는 아린과 백금 증표가 달린 지팡이를 쥔 채로 앉아있는 뚱뚱한 주임 사제가 눈에 들어왔다.
아린이 에드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에요? 곧 갈 생각이었는데.”
에드는 그 물음에 간단히 답했다.
“빈민가에서 만난 소년의 어머니가 아파서 아린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랬어요? 보고는 끝났어요. 가죠.”
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임 사제가 입을 열었다.
“아린 경. 저녁에 만찬을 할 생각인데 그냥 가시는 겁니까? 수사들과 수행 사제 모두 아린 경을 뵙고 싶어 합니다.”
아린은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찰리 주임 사제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우선입니다. 수사들과 수행 사제들도 모두 이해해 줄 겁니다.”
찰리 주임 사제는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두꺼운 살에 파묻힌 눈에 탐탁지 않은 빛이 스쳐 지났지만 따지고 들지는 못했다. 예언에 따라 퇴마행을 나선 성기사란 그런 위치였다.
하지만 에드를 향해서까지 그런 눈빛을 숨기지는 않았다.
“칼림 시의 아스트론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찰리 주임 사제요. 손님의 이름도 아직 듣지 못했구려.”
“에드라고 합니다.”
찰리는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다가 그 이름을 떠올린 듯 답했다.
“그 악마 사냥꾼이라고 불린다던 야인이시군.”
에드는 그 말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 솔직히 에드는 귀족도 아니고 한 일도 악마를 사냥해서 현상금을 받는 일을 해왔으니 고귀한 주임 사제 눈에는 야인으로 보이는 것이 맞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무시를 받을 줄은 몰랐다. 아론이 교단에 잘 말해서 이제 교단의 은인으로 불릴 줄 알았는데.
“빈민가에 사는 것들은 언제나 도움을 청하기만 할 뿐, 아스트론님의 영광 아래 서고자 하는 이들이 없소. 굳이 그런데 고귀한 성기사가 가셔야겠소?”
아린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하니 에드에게 돌려서 말하는 중이었다. 에드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아린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다가왔다.
“에드는 교단에서 인정한 은인입니다. 그리고 예언에 따른 퇴마행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기도 하고요. 주임 사제님이 그렇게 무시해도 될 분이 아닙니다.”
찰리 주임 사제는 그 말에 움찔 몸을 떨었다. 아린은 그동안 기도를 통해서 신성력을 몸에 품어서인지 목소리에 담긴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마스터 팔라딘에게 전할 보고 내용만 전해 듣느라 그녀가 정색하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으리라.
아린은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리고 성기사가 고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서 영광됨을 전파하는 것이 성기사가 할 일이고, 사제들이 지향해야 할 길이다!”
아린은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소리를 치고 있었다.
찰리 주임 사제가 뭔가 입을 열기 전에 아린이 그의 살에 파묻힌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마스터 팔라딘께서 항상 성기사들을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찰리 주임 사제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린은 그런 찰리 주임 사제의 벗겨진 머리꼭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과는 제게 하실 게 아닙니다.”
찰리 주임 사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에드에게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내 생각이 짧았네. 용서해주겠는가?”
에드는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일부러 말을 높이지 않았다. 찰리 주임 사제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지만, 아린 앞에서 감히 난리를 부리지는 못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찰리 주임 사제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에드는 아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에드의 옆을 걸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아요.”
이 세계 귀족이나, 사제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다. 몇몇 사람다운 사제들을 만났다고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건가요?”
에드는 검지를 들어 입을 가렸다. 이 교회 안에서 무슨 말을 하면 찰리 주임 사제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리되면 오히려 디에고의 엄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린은 에드의 분위기를 읽고 교회 안에서는 묻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야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마기에 노출된 것 같아요. 눈 밑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악마의 마기에 노출됐나 보네요.”
“예.”
아린이 걸음을 빨리하며 물었다.
“혹시 전염병인가요?”
“아뇨. 다른 이들은 괜찮았어요.”
“하긴 전염병이라면 아무리 빈민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교회에서 알아냈겠죠. 테인이 알아냈거나.”
“맞아요.”
아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그녀 혼자 악마를 만나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마기에 노출된 것은 악마가 본신의 힘을 드러낼 때가 아니면 없는데? 그리고 악마가 도시에서 본신의 힘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에드도 모두 했던 의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의심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해줬다.
“소년의 아버지가 사라진 때랑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한 때가 비슷하더군요.”
아린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뜬 채 에드를 돌아보았다.
“설마···?”
“아직은 의심만 할 뿐이에요. 그래서 우선은 어머니를 치료하고 물어보도록 하죠. 그리고 소년의 상태도 살펴보고요.”
아린은 그저 누군가를 치료해줄 일이 있어서 불려왔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훨씬 복잡함을 깨닫고는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에드는 그녀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가씨 거짓말은 못 하고 살 팔자인가 보다. 지금도 너무 긴장해서 같은 팔과 같은 발이 나가고 있었다. 똑 부러지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귀엽다.
에드는 그녀의 어깨를 뒤에서 붙잡고는 말했다.
“아린. 긴장할 필요 없어요. 디에고는 자신은 굶어도 어머니의 먹을 것을 챙겨주는 효자였으니까요. 모든 것이 오해로 끝날 수도 있어요.”
아린은 그 말에 에드가 어깨를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길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조금 진정됐어요?”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가 그녀보다 앞서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 어딘지도 모르는 데 앞장서지 말고요.”
에드가 앞장 서가자 아린은 그제야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그의 뒷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믿음직스러웠다. 다만 악마와 관련해서 그의 예상은 빗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도 일단 만나서 결정할 일이었다.
아린은 에드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새삼 빈민가를 돌아보았다. 빛이 환할수록 어둠이 짙어진다고 했던가?
다른 교회에 비해 유달리 부유했던 교회의 모습과 대비되어 빈민가의 모습은 참혹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전해져 오는 악취와 함께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한 곳.
약에 취한 자들과 부랑자들이 판치는 곳. 이런 곳에서 소년이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니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는 에드를 따라 걸었다.
앞장서 걷던 에드는 저 멀리 보이는 디에고의 집과 그 집 앞에서 일어난 소란에 인상을 굳히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곳에는 디에고를 두들겨 패던 소년 셋이 다시 거침없이 발길질하고 있었고, 그 뒤로 부랑자 둘이 서 있었다.
디에고가 어머니를 돌보는 모습에 도움을 줄 때는 생각도 못 했다. 보통 빈민가에서 소문을 접할 때는 동전을 주지 직접적인 도움은 잘 주지 않았으니까.
빈민가에서 퍼지는 고기를 끓이는 냄새에 파리가 꼬이듯 부랑자들과 소년들이 몰렸다. 그리고 디에고는 언제나처럼 어머니에게 줄 것을 지키고 있었다.
달려가던 에드의 눈에 집에서 뛰쳐나오는 디에고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그녀가 린치를 당하고 있는 디에고를 때리는 소년들을 밀치고 다가가 그의 앞을 막았다.
“안 돼! 이게 무슨 짓들이야? 너희는 디에고의 친구들이잖아!”
소년들은 아무래도 디에고의 엄마에게까지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는지 뒤로 물러났지만, 뒤에 선 부랑자들은 달랐다.
“소피아. 그건 당신 남편 후안이 여기 있을 때 이야기고.”
병색이 완연한 그녀의 턱을 잡은 부랑자가 히죽 웃을 때 그 손목을 디에고가 깨물었다. 자신이 맞는 것은 상관 없었지만,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참지 못했다.
부랑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을 때 부랑자의 이마에 화살이 불쑥 솟아났다. 디에고는 부랑자가 단검을 뽑을 때 어머니를 안고 등지고 있어서 그 모습을 못 보았다.
“어?”
다른 부랑자가 뭔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이마에도 화살이 꽂혔다. 부랑자가 또 쓰러지자 소년들은 그제야 기겁하며 도망쳤다.
그런 소년들의 종아리에도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아아악!”
소년들이 화살을 어쩌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사이에 에드가 나타났다. 에드는 바닥을 구르는 소년들을 바라보다가 활을 거두고 디에고를 살폈다.
“아저씨.”
“형이라고 불러. 그리고 나와 봐라. 어머니 상태 좀 보게.”
“저희 어머니 좀 부탁드려요.”
디에고가 물러났을 때 에드는 거의 반쯤 혼절한 소피아를 살폈다.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에서 놀란 데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근육이 잔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아린이 그녀를 보고는 에드에게 부탁했다.
“눕힐 곳이 있을까요?”
디에고는 빈민가에 사는 만큼 아린이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성기사임을 알아보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아린이 디에고와 함께 소피아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자 에드는 그제야 소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눈치가 빠른 녀석들인지 에드가 나타나고 나서는 비명도 입술을 깨물고 참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눈치가 빠른 녀석들이니 디에고를 괴롭혔겠지.
에드가 다가가자 소년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 살려주세요!”
“저희가 어려서 뭘 잘 몰랐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에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희는 어리지.”
에드는 품에서 비도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려서 잘 모른다?”
에드가 천천히 쪼그려 앉아 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소년들의 눈동자가 에드의 손에 들린 비도를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에드의 손에 들린 비도가 허공에서 핑그르 돌다가 다시 손에 착 잡혔다.
“어디서 개소리야? 알 거 다 아는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