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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35화 (35/202)

#35

형제

마차를 가지고 이동해야 하다 보니 구한 배도 커다란 상선이었다. 밀을 운반하는 상선으로 바닥이 평평하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배였는데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마차가 워낙에 커서 어쩔 수 없었다.

마차의 성능이 뛰어났기에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칼림 시까지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수도까지 이동할 생각이었기에 마차는 가지고 가기로 했다.

상선에 말과 마차를 싣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

에드가 고개를 돌리니 제라드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하멜과 시르케의 모습도 보였다.

제라드의 어깨 위로는 배틀 액스의 손잡이 두 개가 보였다. 근력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배틀 액스를 쌍으로 들 줄은 몰랐다.

“와하하하. 새벽에 깨서 써 보니 이거 물건이더라고.”

물건이지. 지금의 제라드에게는 오버 파워라고 할 만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줬다.

제라드는 웃음을 터트리다가 턱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아오. 이상하네. 자네한테 이거 받고 집어 든 것까지 기억나는데 턱이 왜 이리 아픈 거지?”

시퍼렇게 멍이든 턱을 보고 에드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제라드는 곧 웃음을 거두고 주먹을 내밀었다. 솥뚜껑만 한 주먹을 보고 에드도 마주 주먹을 내밀었다.

두 개의 주먹이 맞닿자 제라드가 입을 열었다.

“에드. 자네는 이제 내 친구가 아니다.”

매번 친구라고 하더니 선물 받고 입 닦는 건가 싶었는데 제라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 자네는 내 형제다.”

“누가 형인데?”

“그야 당연히 내가 형이지.”

에드는 이 건방진 친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싸움 잘하는 놈이 형 해야지.”

“와하하하. 그렇게 동생이 하고 싶었어? 그럼 이번에 확실히 가르쳐주지. 맞고 울기 없기다!”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제라드가 대뜸 주먹을 휘두르기에 에드는 몸을 틀며 발을 차올렸다. 주먹으로 후려갈겨도 간단한 일이지만, 아주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줄 생각이었다.

빠각!

눈이 풀리며 쓰러지는 제라드를 붙든 에드는 그를 부둣가에 눕혀놓고는 하멜과 시르케를 기다렸다. 하멜이 부둣가에 눕혀 놓은 제라드를 부축했고, 시르케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서열 정리는 끝난 건가요?”

에드는 기절한 제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깨거든 말해주세요. 다음에 만나면 형이라고 부르라고.”

“그렇게 할게요.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에드는 그 말에 픽 웃었다.

“또 만났을 때 헛소리하면 그때는 정신이 번쩍 나도록 맞아야죠.”

근력이라면 제라드가 앞설지 모르나 민첩은 에드가 아득히 높다. 제라드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으리라.

시르케가 작게 웃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에드는 어느새 다가온 둘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악마 연구가로 이름이 높으신 테인 님이시고, 이쪽은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 아린입니다.”

에드는 아린과 테인에게 제라드 일행도 소개해 주었다.

“저기 기절한 녀석은 제 동생인 제라드고, 이쪽은 하멜, 이쪽은 시르케라고 해요.”

테인이 그 말에 외눈 안경을 반짝이며 제라드 일행을 돌아보았다.

“저 친구가 그 친구군. 요즘 악마를 때려잡는 야만 전사.”

“맞을 겁니다. 저랑 헤어지고 나서도 악마를 잡았다고 하니까요.”

“기절해서 아쉽군.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테인이 아쉬워할 때 아린은 시르케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아린입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시르케에요. 이쪽은 제 남편 하멜이고요. 하멜은 목소리를 잃었으니 이해해 주세요.”

“제가 한 번 살펴봐도 될까요?”

“오래전에 다쳐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아린은 에드와 친분이 있던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멜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그의 목에 난 상처는 오래전의 것이라 신성력만으로 치료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신성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린은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면서 신성력을 주입했고, 그녀의 몸에서 찬란하게 피어나는 푸른 창천의 빛에 시르케의 눈이 커졌다.

에드와 함께 하는 성기사라서 치료를 허락했지만, 지금까지 많았던 모든 신관이 포기했던 하멜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신성력은 하늘에 닿을 듯싶었다. 이 정도의 신성력은 시르케의 오랜 삶 중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 빛이 하멜의 목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하멜의 인상이 굳어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에 시르케가 당황해서 말려야 하나 싶었지만, 하멜이 손을 들어 말렸다.

하멜은 저 안쪽에 난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망가진 성대가 회복되면서 느끼는 간지러움을 감지했기에 시르케가 참견하는 것을 말렸다.

지금까지 만났던 신관들도 포기했고, 영약들도 구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아서 이제 목소리를 되찾는 것을 포기했던 하멜이었기에 지금 일어나는 변화에 희망을 품었다.

아린의 찬란하게 빛나던 신성력이 모조리 하멜의 목으로 향하고, 그녀를 감싸던 한점의 빛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하멜은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르케가 조심스럽게 그를 부축했을 때 하멜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하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 신.”

하멜 스스로도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시르케는 그런 하멜의 양 뺨을 손으로 잡고는 물었다.

“이제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하멜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르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

아직 큰 소리는 낼 수 없어 보였지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대단하다 싶었다. 시르케는 하멜을 와락 끌어안고는 눈물을 쏟아냈다.

요정들의 긴 수명을 생각했을 때 하멜이 말을 잃은 시간이 생각보다 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왜 다쳤는지도 모르지만, 시르케에게는 그것이 마음의 짐이었나 보다.

눈물을 쏟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아린의 옆에 서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큰일을 해냈네요.”

아린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직 악마를 격살하는 데만 써왔던 신성력이 이렇게 누군가를 치료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린은 뭔가 뿌듯함이 느껴져 주먹을 꼭 쥐었다.

시르케는 한참을 오열했고, 하멜은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쓸어내리며 진정시켰다.

요정들은 감정의 고저가 낮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격한 감정을 보이는 것을 보니 그만큼 힘들었겠다 싶었다.

시르케가 마음을 추스르자 하멜이 그녀를 부축한 채 일어나 아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무리해서 말하지 마세요. 상처가 회복되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은 근육이라 조금씩 회복해야 하니까요.”

하멜은 고개를 돌려 시르케를 보았다.

“그녀를 구하다 입은 상처라 오랫동안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자신의 목이 치료된 것보다 시르케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니 하멜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르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언제고 저희 힘이 필요할 때 불러주시면 어디서든 달려가겠어요.”

아린은 둘의 반응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지금까지 사람을 치료해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만큼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들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아스트론의 은총입니다.”

아린의 말에 하멜과 시르케가 동시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서로 아스트론을 찬양하는 사이에 뒤쪽에서 더그가 다가왔다.

“말과 마차를 모두 실었습니다. 이제 출발하시죠.”

에드는 그 말에 하멜과 시르케를 돌아보았다.

“저희도 가봐야겠네요. 다음에 웃으면서 또 만나죠.”

하멜과 시르케는 에드에게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아린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 그 또한 은인으로 생각한 탓이다.

에드와 테인, 아린이 배에 올라 떠나는 모습을 보고, 하멜과 시르케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그들의 배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바닥에 누워있던 제라드가 눈을 떴다.

“으잉? 내 동생은?”

시르케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는 답했다.

“일격에 뻗어놓고 동생은 무슨 동생이에요? 다음에 만났을 때도 그리 말하면 정신이 번쩍 나도록 두들긴다고 했어요.”

제라드는 자신의 턱을 만지다가 아프다고 발을 동동 구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멀어지는 배를 보고는 양손을 모으고 크게 소리쳤다.

“에드 형! 또 보자!”

멀어지던 배에서 제라드의 외침을 들은 에드는 픽 웃음을 흘리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다음에 형이 술 한 잔 살게!”

에드의 외침을 들었는지 제라드의 대답이 들려왔다.

“약속했다!”

더는 소리를 질러도 닿기 힘든 곳이라 에드는 그저 손만 흔들어 보였다.

대륙의 젖줄이자 트라비아 왕국의 수로를 책임지는 아인 강은 무척이나 넓고 깊었다. 강물에 파도가 칠 정도니 새삼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마물의 습격은 밤마다 이뤄졌다. 특히나 수면 아래로 다가오는 녀석들이 문제였는데 그 문제는 아린이 해결했다.

그녀가 던지는 해머는 물 속에서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고, 돌아오기까지 하는 전천후 무기였기에 수면 아래로 습격하는 마물들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다만 밤에 공격해 오기에 이제는 아린이 밤에 깨어있어야 했다. 에드는 그녀의 곁에 서서 다가오는 마물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첫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테인이 입을 열었다.

“칼림 시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네. 특이점은 잡히지 않았네.”

최소 중급 악마 이상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특이점이 나타날 텐데 그것이 없다는 것을 보면 다른 악마들의 죽음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지금은 시국이 워낙 어수선해서 특이점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것도 있네.”

“시국이 어떤데 그러십니까?”

“클리프 왕자의 죽음이 왕국의 잔당이 벌인 일이라는 말에 국왕이 크게 노해서 클리프 왕자를 지켜야 했던 기사 말롯에게 귀환을 명했는데 그가 거절했네. 말롯은 오히려 달리아 왕국의 잔당에게 클리프 왕자가 죽었다고 그들을 더 탄압하고 있더군. 그 때문에 국왕이 귀족들에게 명해 병력을 끌어모으고 있다네. 달리아 왕국으로 말롯을 잡으러 갈 생각인 모양일세.”

“전쟁이 벌어진다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군.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달리아 왕국의 잔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왕국을 되찾겠다고 나서고 있거든.”

“왕국을 되찾겠다고요?”

“살아있는 왕족을 옹립했다고 들었네. 에스터 공주라고 했던가?”

에드는 귀에 익은 이름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궁에 남아있겠다고 하더니 결국 왕국의 잔당들과 함께하기로 했나 보다.

“그랬군요.”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선구이의 살을 뜯어 먹던 중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한 척의 배가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쾌속선인 듯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데 선수에 서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양팔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는 사내는 무심한 눈으로 상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뒤편에 있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독면을 연상케 하는 가죽 가면. 아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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