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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34화 (34/202)

#34

투자

더그는 밤이 되기 전에 말을 구해와 마차에 연결했다. 실력을 숨긴 건가 싶어서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짓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말을 연결하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제공하고는 마차를 지키는 것에 집중했으니까. 그래도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그 날 밤에도 마물은 습격해 왔다. 하지만 마차의 축성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 때문인지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짖기만 하다가 에드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마물들은 이제 잡아봐야 먼지 같은 경험치만 들어왔지만, 그래도 쌓으면 태산이란 생각으로 마물들을 잡았다. 마물의 수가 무한정한 것도 아니고, 네프사엘이 잠을 재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제 나오는 마물의 수는 그저 잠을 못 자게 견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서른 마리 정도가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나 잠을 방해했지만, 에드는 기본적으로 밤에 더 정신이 맑았다. 그리고 신성력이 휘감은 마차는 그 안에서 지내는 동안 피로해소에 좋았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피로가 줄어서 나타나는 마물을 처리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아린도 돕겠다고 했지만, 에드가 그럴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떼고는 혼자서 다 잡았다. 이런 먼지 같은 경험치라도 쌓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밤에 마물의 습격에 대비하면서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이어졌다. 밤에 마물들을 상대하는 것은 에드 혼자서도 충분했기에 이번처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아린은 밤에 자고, 낮에 깨어있기로 했다.

대신 낮에 아린은 마차 지붕에 올라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하는 수련은 균형 감각을 기르기에도 좋았고, 그녀의 훈련이 얼마나 엄하게 이뤄지는지 알았기에 에드도 낮에는 가능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전처럼 신비술사가 습격한다면 위험하겠지만, 그녀의 능력을 확인했으니 외부의 습격을 마차 지붕에서 더 잘 대응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마차에서 피로가 워낙 잘 풀리니 그냥 눈을 감고 있다고 해도 에드도 주변에 신경을 쓰고 있어 위험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마차가 엔트시를 떠나 달린 지 사흘 뒤 저녁. 석양이 내려앉을 때 마차는 베른 시에 도착했다.

아인 강을 끼고 있는 교역 도시. 돈만 있으면 못 구하는 것이 없다는 향락의 도시에 다시 도착했다.

에드가 감았던 눈을 뜨자 테인이 물었다.

“마차를 태울 수 있는 배를 구해 보겠네만 밤이라 내일 아침에나 출발할 수 있을 걸세. 나는 술을 마시러 갈 건데 자네는 뭘 할 건가?”

에드는 ‘대지 파괴자’를 집어 들고는 말했다.

“지인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혹시 이곳에 없다면 암상에 이것 처분하려고요.”

“난 ‘어부들의 밤’에 있을 테니 볼일 끝나면 오게. 그곳의 에일이 끝내주니까.”

“그러도록 하죠. 아린은 어떻게 할 겁니까?”

마차 지붕에서 내려온 아린은 담담히 답했다.

“교회에 들렀다가 ‘어부들의 밤’으로 갈게요.”

“그럼 다 같이 이따 보죠.”

마차는 신성력을 뿜어내서인지 베른 시의 성문을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에드는 마차에서 내렸다.

커다란 배틀 액스를 등에 메고 허리에 바람의 칼도 찼지만,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그를 잘 인지하지 못했다. 에드는 곧장 암상을 찾아갔다.

전처럼 검은 화살, 부러진 것으로 세 개를 산다고 해서 안내를 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곳에서 에드는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안경을 쓰고 앉아있는 요정.

아리엔이 에드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고객님. 이렇게 금방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뭘 사러 오셨나요?”

“오늘은 뭘 좀 물어보려고 왔는데. 혹시 제라드의 소식을 알고 있나?”

“제라드? 그의 소식은 왜 찾는 거죠?”

“가까이 있다면 뭐 좀 주려고.”

천 골드짜리 ‘대지 파괴자’는 분명 강력한 유물급 장비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물건이죠?”

에드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은 채 그저 물었다.

“제라드는 어디 있지?”

아리엔은 자기 할 말만 하는 에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저번에 임무를 처리하고 나서 베른 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곳에 눌러앉아서 의뢰를 처리하는 중이에요. 근방에서 제법 유명해졌죠.”

“지금은 어디 있지?”

“물푸레나무 여관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검 두 자루를 꺼냈다. 암살자 드네쉬를 죽이고 얻었던 단검이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판매하기로 했다.

“이건 처분하고 싶은데.”

아리엔은 단검을 받아들고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철로 만든 단검이군요. 유물급은 아니나 명품 수준은 되네요. 개당 30골드씩에 사 드리죠.”

현철 비수를 빼고도 60골드를 벌었다. 클리프 왕자를 죽이는 의뢰는 굉장히 힘들기도 했지만, 그 뒤로 벌어들인 것들을 생각하면 할만한 일이었다 싶었다.

60골드를 받아든 에드가 일어나자 아리엔이 나가는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아칼란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녀석들입니다. 주의하세요.”

에드는 잠시 멈춰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칼란의 소나를 죽이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증거를 불태웠지만, 진행 과정을 알렸다면 자신을 노릴 가능성도 있었다.

소나를 죽이던 때에 비하면 레벨이 몇 개 더 올랐기에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인간 중에서는 장군급은 어림도 없고, 대장군급은 되어야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됐다.

누군가 또 찾아온다면 그때는 그들 또한 경험치가 될 뿐이리라.

“고맙군.”

아리엔이 저렇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아칼란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 에드는 그녀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하고, 밖으로 나왔다.

물푸레나무 여관으로 간 에드는 그곳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떠났던 그 날처럼 왁자한 분위기에 에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제라드가 눈에 들어왔다.

어째 저 녀석은 변한 것이 없나 싶었다.

그때 춤을 추던 녀석이 에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있었지만, 후드를 뒤로 넘겨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기에 제라드는 번쩍 손을 들었다.

“친구!”

테이블을 성큼성큼 밟고 다가와 와락 끌어안으려고 하기에 슬쩍 피해버렸다. 술을 한참 퍼마셨는지 에드의 뒤편에서 바닥을 굴렀다가 일어나며 와하하 웃은 제라드가 다가왔다.

“이렇게 또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이곳에 눌러앉았다며?”

“돈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돈이 잘 벌리더군. 자네가 없는 동안 악마도 두 마리나 잡았지.”

제라드는 그리 말하면서 에드를 자신의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말을 못하는 하멜은 눈빛만으로 반가움을 표했고, 신비술사 시르케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에드는 그들의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시르케가 옆에 앉는 제라드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와 함께 의뢰들을 처리하고 있어요.”

“포드는?”

“그는 전에 인연이 있던 용병단장의 부탁을 받고 떠났어요.”

이 둘이 함께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제라드가 가장 떨어지는데 어떻게 함께 하게 됐을까?

분위기만 보면 제라드가 이들을 이끄는 느낌이었다.

그런 에드의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시르케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저나 하멜이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제라드는 보기와 다르게 협상에 뛰어나거든요.”

“내가 보기가 어때서?”

제라드가 투덜거리며 에드에게 술잔을 건네고 술을 가득 따라줬다. 에드는 따라준 술을 쭉 비우고는 제라드를 바라보았다.

그래. 악마의 시대 2 주연급이라면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을 줄 알았다. 자신이 아린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그래도 하멜과 시르케를 영입했을 줄은 몰랐다.

제라드는 두 번째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함께 해보니까 알겠더라고. 혼자보다는 함께 할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잘 생각했네. 넌 누가 함께할 때 더 강한 것 같더라.”

“크하하하. 역시 이 친구 사람 볼 줄 안다니까?”

에드는 제라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 왜 이리 시끄러운 거야?”

“내가 술 샀거든.”

시르케가 이마를 살짝 짚으며 말했다.

“돈을 모을 생각이 없더라고요.”

제라드가 그 말에 가슴을 활짝 펴고 답했다.

“혈혈단신. 혼자인 내게 무슨 돈이 필요하겠나? 그냥 번 만큼 쓰고 있는 거지.”

오늘만 사는 녀석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하긴 만나서 크레아틴을 함께 잡고 밤새 술을 마시며 별다른 이야기가 없이 그냥 웃고 떠들었던 사이니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그 사이 악마도 잡고 이곳에서 팀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메인 퀘스트에 휘말릴 운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인 퀘스트끼리는 진행하는 중에 서로 얽히게 되니 이 녀석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훗날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에드는 등에 메고 있던 배틀 액스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테이블을 거의 가득 채우는 크기의 배틀 액스. 그 장식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 단번에 눈에 띄었다.

제라드가 그걸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오다 주웠다. 너 가져라.”

“뭐? 진짜 나 주는 거야?”

제라드가 뭔지도 모르고 그걸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이거 마력을 원하네?”

제라드가 마력을 주입하며 쳐드는 것을 보고 에드는 그대로 일어나 주먹을 날렸다. 제라드의 턱이 휙 돌아가더니 눈이 풀리고 풀썩 쓰러졌다.

“휴.”

미친놈이 지진을 일으키면 여관이 폭삭 내려앉을 판이었다.

시르케도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안도했다.

“이거 유물이죠?”

“예. ‘대지 파괴자’라는 물건인데 아마 이대로 내리쳤으면 반경 10미터가 내려앉을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을 겁니다.”

뭐 설명을 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냅다 마력을 주입하는 바람에 생매장당할 뻔했다.

“이게 ‘대지 파괴자’라고요?”

놀라서 묻는 물음에 에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르케가 쓰는 신비술이 바람 계열이죠?”

“예. 풍계 신비술을 쓰죠.”

“그렇다면 이게 시르케에게 어울리겠군요.”

에드가 바람의 칼까지 꺼내서 내밀자 그걸 본 시르케가 가만히 손을 올리더니 감탄했다.

“이거 ‘바람의 칼’이네요?”

“한눈에 알아보시네요.”

“이거 풍계 신비술사들에게는 꿈의 유물이라고 불리는 것이니까요. 자신의 위계 이상의 신비술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유물이에요.”

“그건 시르케가 쓰세요.”

시르케가 에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거 풍계 신비술사들에게는 어지간한 성유물보다 뛰어난 유물이에요. 이런 귀한 것을 그냥 받을 수는없어요.”

에드는 그 말에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는 제라드를 보고는 말했다.

“앞으로 이 녀석과 함께 한다면 힘든 여정이 될 겁니다. 그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시르케는 그 말에 손에 들린 ‘바람의 칼’을 가만히 쓸어 만지고는 고개를 들었다. 풍계 신비술사가 아니면 다루지 못하는 만큼 고객이 한정되어 있지만, 천금을 주고도 사려고 줄을 설 물건이었다.

이런 물건을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주는 의도가 궁금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시르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제라드는 저희가 잘 보살필게요.”

에드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일행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멜이 쓰러진 제라드를 부축해주고 시르케가 여관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에드는 시르케와 그녀의 어깨너머로 하멜과 제라드를 바라보았다.

오늘만 사는 녀석이 그래도 이들의 리더로서 제구실은 하고 있나 보다. 저리 챙겨주는 것을 보면.

“언제고 기회가 되면 이 신세 꼭 갚을게요.”

에드는 그저 손을 들어 보이고는 떠났다. 왁자지껄한 물푸레나무 여관을 떠나 강변에 있는 ‘어부들의 밤’을 찾아간 에드는 그곳에서 이미 테인이 아린과 함께 에일을 비우고 있었다.

물푸레나무 여관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늘 하루 일에 지친 어부들이 모여서 조용히 에일을 비우는 곳. 그런 곳에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제라드는 그만의 팀을 만들었고, 자신은 아린과 함께 팀을 만들었다. 자신만의 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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