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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33화 (33/202)

#33

신뢰

에드는 신비술사가 이렇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신비술사와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는데 그녀의 신비술이 자신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게임에서 직접 플레이 할 때는 이게 이렇게 위협적인 능력이라고는 생각 못 했었다.

화살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야만 전사를 전위로 둔 채 뒤에 서 신비술을 또 준비하는 그녀의 검에 맺히는 기운을 읽은 에드는 코웃음을 쳤다.

이리 우습게 보였나?

에드가 연달아 화살을 쏴 날렸다. 야만 전사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지 에드가 화살을 쏴 날리는 것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달려드는 야만 전사를 향해서 아린이 마주쳐 달려갔다.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돌진한 그녀와 야만 전사가 격돌하는 순간에 에드가 줄지어 날린 화살이 신비술사가 만든 바람의 보호막을 따라 휘돌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회전하며 화살을 주위로 흘려보내는 바람의 보호막. 그 바람의 결을 읽은 에드는 마지막 화살을 쏘았다.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그렇게 날아간 화살도 바람의 보호막을 반쯤 파고들고는 그대로 바람의 보호막이 만든 결을 따라 옆으로 흘러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준비하는 신비술이 폭발하려는 순간 흘러나가던 화살의 방향이 틀어졌다.

그것은 신비술사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

처음부터 에드가 설계한 그대로, 방향을 튼 화살이 신비술사의 목을 뚫었다. 신비술사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지만, 아무런 말도 뱉지 못하고 피만 울컥 토하더니 쓰러졌다.

신비술이 대단하다고 하나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이것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그녀의 능력은 궁수에게는 상성상 우위에 있었다.

원거리 공격을 자신에게 닿지 못하게 하는 바람의 보호막. 그것을 너무 믿었던 탓에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여기고 반격을 가하려다가 허망하게 죽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

에드의 시선이 아린과 싸우는 야만 전사에게 향했다. 배틀 액스를 휘두르며 뛰어난 근력도 자랑하고 있지만, 아린은 방패로 그 공격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성검을 휘둘러 반격을 가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 앞뒤 없는 녀석들이기는 했다.

축성을 통해서 아스트론 교단의 신성력을 뿜어내는 마차를 노리다니?

이 정도 마차라면 대주교급 이상만 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야만 전사는 아린의 찌르기를 막으면서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실비아! 뭐해?”

야만 전사는 흘끔 뒤를 돌아보다가 눈이 크게 떠졌다. 일행이 목에 화살을 꽂은 채 죽어있었으니까.

“어떻게?”

수많은 전장을 오가면서 실비아의 바람 보호막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확인해 왔다. 전장에서 쏟아지던 화살 비 속에서도 그들은 단 한 발의 화살을 맞지 않았었다.

레인저 부대를 주력으로 한 달리아 왕국 정벌에 그녀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잘 아는 그렉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죽었다고 하하하 웃으며 이거 미안하다고 물러날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죽었기에 뒤가 없어졌다.

그렉은 씹고 있던 육포를 퉤 뱉고는 배틀 액스로 에드를 겨누며 말했다.

“네가 에드냐?”

에드는 그 물음에 대답 대신 화살을 날려줬다.

그렉이 황급히 배틀 액스를 들어 막았다. 배틀 액스의 면이 워낙 넓은 탓인지 화살을 막아냈지만, 그 위력에 손아귀가 얼얼했다.

그렉은 대화도 없이 날리는 화살에 이를 뿌득 갈며 튀어나가려 했는데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카카캉!

아무리 배틀 액스를 휘둘러서 화살을 막아낼 실력이 된다고 해도 한 호흡도 안 돼서 날아오는 일곱 발의 화살은 막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그런데 받아내다 보니 배틀 액스로부터 냉기가 전해져 와서 쥐고 있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제야 상대가 유물을 쓰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몸이 살짝 굳어져 느려진 사이로 날아온 화살이 왼쪽 무릎에 박혔다.

“크윽!”

그냥 화살도 아니고 냉기가 깃들어서 무릎이 얼어서 깨져나갔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공격을 퍼부었다면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화끈하게 마지막까지 불사르는 것이 바닷사람이다. 그리고 아직 자신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렉이 배틀 액스에 마력을 주입하며 힘껏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슴에 세 발의 화살이 동시에 박혔다.

“이 새끼가 진짜···.”

배틀 액스에 밀어 넣던 마력이 끊겼고, 유물 장비인 대지 파괴자는 써보지도 못했다. 그렉이 힘없이 허물어지는 동안 에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놈들은 뭐죠?”

“이런 씨발···.”

유언으로 한 마디 욕을 남긴 그렉의 숨이 끊어졌다.

에드는 신비술사를 처리하고 나서 야만 전사가 자신의 이름을 물을 때 이미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놈이 말을 하니 아린이 공격을 멈췄던 것이었는데 자신은 그걸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아린과 잠깐 떨어진 틈에 경험치를 주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화살을 퍼부어줬다.

연사를 쏘는 와중에 빙결의 화살집에서 화살을 뽑아 날렸고, 그걸 막아내던 배틀 액스가 어는 사이에 무릎에 화살 한 방. 그리고 마지막에 가슴을 열어주기에 그곳에 화살 세 방을 꽂아주는 것으로 숨을 끊어줬다.

그리고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뭐죠?”

“이런 씨발···.”

욕설을 내뱉는 걸 보고 화살을 더 날려줄까 하는데 경험치가 들어와서 봐줬다.

테인이 허리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자네 이름을 묻는 것 같던데? 얘기나 들어보지 그랬나?”

“말도 안 걸고 마차를 날려버린 놈인데 무슨 대화를 나눕니까?”

테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또 그렇군.”

테인은 야만 전사에게 다가가서는 그가 들고 있는 도끼를 보고는 외눈 안경을 반짝였다.

“어? 이거 ‘대지 파괴자’인데?”

“그게 뭡니까?”

“대충 천 골드 정도 하는 유물이지.”

“예?”

빙결의 활이 이백 골드 정도 하는데 천 골드? 가격이 비싼 만큼 강력한 유물이라는 얘기다. 어쩐지 마지막에 야만 전사가 이걸 휘두르려고 할 때 막기를 잘했다.

“왜 그리 비싼 겁니까?”

“반경 10미터 정도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거든. 이거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이 친구가 그 친군가 보군.”

“누군지 아십니까?”

“그렉이라고 클리프 왕자 휘하에 있던 야만전사 같군. 그러고 보니 아까 바람의 칼날을 날리던 신비술사는 실비아였나 보군.”

테인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마차로 달려갔다.

“더그! 더그!”

테인의 외침에 에드도 그제야 생각났다. 마차 밖에 있다가 신비술이 날아들었을 때 축성진이 보호 마법을 펼쳐졌지만, 마차가 몇 바퀴나 구를 정도로 위험한 공격이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도 에드가 몸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텐데 마차 밖에 있던 더그는 어땠을까?

“더그!”

에드와 아린까지 나서서 그를 찾자 대로 옆의 수풀에서 신음을 흘리며 더그가 몸을 일으켰다. 허리를 움켜쥔 채 일어난 그가 손을 들어 보였다.

“저 여기 있습니다.”

테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그는 수풀에서 나오며 머리카락에 꽂힌 나뭇잎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자네 죽은 줄 알았네. 용케 살았군.”

에드는 테인과 태연하게 얘기를 주고받는 더그를 바라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하나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자신이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에드는 아린이 다가가 더그를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눈여겨보기로 했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실력을 숨긴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마차를 다시 일으켰지만, 말들이 모두 죽었다. 마차를 세워두고, 더그가 말을 사러 엔트 시로 돌아갔다. 다행이라면 엔트 시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이었다.

축성진에 충전해 놓은 신성력이 바닥이 난 탓에 아린이 다시 신성력을 충전하는 사이에 테인이 그걸 바라보면서 에드에게 물었다.

“자네 클리프 왕자는 왜 죽인 건가?”

“악마 종속자였습니다.”

“네프사엘의 종속자였나 보군.”

“예. 그래서 죽였습니다.”

테인은 픽 웃음을 흘렸다.

“자네를 보면 펜드리건 젊었을 적 생각이 나는군. 그 친구도 앞뒤 가리지 않았더랬지.”

에드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회수한 화살의 화살촉들을 숫돌로 갈며 답했다.

“뭐 클리프 왕자의 복수를 할 녀석들은 끝난 거 아닙니까?”

“그렇겠군. 남은 녀석은 하나일 테니까.”

에드는 그 말에 오늘 얻은 노획품을 바라보았다. 야만전사 그렉이 가지고 있던 ‘대지 파괴자’와 ‘바람의 칼’을 얻었다. ‘대지 파괴자’는 들 수는 있는데 마음대로 휘두르기에는 근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바람의 칼’은 신비술사들이나 다룰 수 있는 물건이다. 특히 바람의 술을 다룰 수 있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

에드가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애물단지 같은 물건들.

저걸 팔아치울지 아니면 선물로 줄지 고민이 되었다. 예전 같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팔아치워서 좋은 장비로 바꿨을 돈이지만, 지금은 든든한 돈줄이 있으니 저걸로 인연을 맺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여유가 생기니 그런 마음도 들었다.

아린이 신성력을 주입하고 돌아와서는 모닥불 옆에 앉았다. 더그가 말을 몰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저녁이나 될 것 같아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았기에 그녀는 그 옆에 앉아서 장비들을 점검했다.

에드는 흘끔 그녀의 장비를 바라보았다. ‘대지 파괴자’라는 천 골드짜리 배틀 액스를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방패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역시 성유물.

새삼 다이아나의 교단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결의 활을 강화하면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성유물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강력하니까.

아린은 방패를 손질하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저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요?”

에드는 가만히 아린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까지 숨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클리프 왕자를 압니까?”

아린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운의 왕자죠. 왕이 될 능력을 타고 태어났음에도 너무나 뛰어나 국왕이 달리아 왕국에 죽으라고 보내버렸더니 오히려 달리아 왕국을 정벌해 버린 희대의 기재죠. 달리아 왕국의 잔당에게 암살당했다고 들었어요. 달리아 왕국의 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비운의 왕자죠.”

에드는 아린이 말하면서 뭔가를 깨닫는 것처럼 보이기에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악마 종속자였습니다.”

“예?”

놀라는 아린에게 에드는 순순히 털어놓았다.

“아마 네프사엘에게 영혼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아린은 그 말에 상황을 이해했다. 왜 네프사엘이 무리해서 에드를 노렸던 건지, 그리고 왜 저만큼 뛰어난 자들이 자신들을 노렸는지도.

그걸 알자 새삼 에드를 바라보게 되었다.

왕자가 악마 종속자가 된다면 그건 보통 큰일이 아니다. 교단의 눈을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그들이 악마에게 휘둘리게 되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령 알아도 죽이기 힘든 것이 왕자다. 왕자가 악마 종속자라고 한다면 그걸 알아내도 교단 전체가 왕가를 압박해야 하고, 수많은 정치적 수단을 내세워야만 했다.

그런 자를 죽였다. 악마 종속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 밝히지도 않은 채.

이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해낸 것인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비밀을 자신에게 털어놓았다. 저토록 큰 비밀을.

이 남자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알자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했어요.”

솔직히 에드는 이 말을 꺼내면서 고민했다. 왕자를 죽인 일은 성기사에게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쿨하게 칭찬해주는 이 여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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