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등
신분제가 있어서 그런지 술집에도 저 어린 친구가 들어올 수 있는 세상이었다. 신임 영주를 쫓아낼 간 큰 인물이 없기도 하니 순순히 합석이 이뤄졌다.
그란트는 1만 골드를 배상했음에도 웃는 낯으로 제린을 대하고 있었다.
“제린 공. 그런데 어쩐 일로 영주성으로 부르시지 않으시고.”
제린은 손을 들어 그란트의 말을 막고는 에드를 돌아보았다. 뭔가 심적 갈등이 느껴지는 눈빛이라 에드는 애가 왜 그러나 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제린은 잠시 주저하는가 싶더니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란트가 잔을 채워주자 제린은 그 술을 단숨에 비웠다.
프레티안 8년.
에드가 마셔본 것 중 가성비가 가장 좋은 술이었는데 이것도 생각보다 독하다.
과연 제린은 단숨에 술을 비우더니 얼굴이 붉어져서는 밭은기침을 토했다.
“켁켁!”
잔뜩 무게 잡고 나타나 술잔을 비운 이 어린 친구는 기침을 토하며 눈까지 빨개졌다. 체면상 눈물은 쏟지 않으려는 건지 버티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제린은 단숨에 얼굴이 붉어져서는 훅훅 숨을 내뱉고는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감사 인사도 못 했더군. 부모님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제린의 말에 에드는 왜 그가 그리 눈치를 보고 고민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주성을 가진 귀족은 귀족 중의 귀족. 남들에게 감사를 표할 일이 드물다.
특히 왕족이나 귀족도 아닌 야인이나 다름없는 용병에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해봤겠지.
에드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악마 사냥꾼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로군.”
제린은 붉어진 얼굴로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꺼내 든 것은 손바닥 길이의 톱니처럼 생긴 이빨이었다. 제린은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6대 가주님께서 잡았던 마수 아펠라의 이빨이다.”
단검으로 쓰기에는 조금 짧아 보이는 이빨이었는데 마수 아펠라가 뭔지는 에드의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테인은 달랐다.
“마수 아펠라라면 악마와의 대척점에 있던 마수가 아니오? 대악마들이 나서서 그 씨를 말렸다고 들었거늘.”
“악마와의 대척점에 있었다고요?”
“맞네. 악마를 잡아먹고 사는 종이었는데 마수라고 보기보다는 신수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연구가들의 말이 있었지. 하지만 이미 멸종한 종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서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고 했지.”
제린은 그 이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문에서는 이걸 아들에게 물려주며 용기를 가지라고 했지.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물건이지.”
에드는 애가 취했나 싶었다. 마수든 신수든 아펠라가 무슨 짓을 하던 놈이건 그 이빨 하나 가지고 뭘 이리 떠든단 말인가?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는 물건이라 철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아들에게, 그리고 그 아들에게 물려주던 물건이다.”
에드는 술 취해서 혼잣말 중얼거리는 제린에게 관심을 끄고 술잔을 비웠다.
제린은 그 이빨을 에드에게 내밀었다. 에드가 멀뚱히 그 손을 바라보자 제린이 입을 열었다.
“부모님의 원한을 대신 갚아 준 것에 대해서 뭐로 보답해야 하나 싶었는데, 악마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이것이 생각나더군. 내가 자식을 보기는 멀었고, 악마의 손에 죽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것이 악마를 죽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싶더군.”
제린의 시선이 에드에게 고정되었다. 술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이 아니라 단단한 결심을 굳힌 눈이었다.
“이걸로 악마들을 죽여 줘. 그러면 부모님도 저 하늘에서 웃으실 것 같으니.”
뭔 이빨 하나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었지만, 마다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일단 주는 것은 받는다.
에드는 그 이빨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귀족이 준 물건을 눈앞에서 이것저것 확인하는 것은 실례가 되어 보일 수 있으나 에드는 무기로 써달라는 말을 들었으니 꼼꼼히 살펴보았다.
단검으로 쓰기에는 짧으니 화살촉을 대신해 써야 할 텐데 그러자면 이게 또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단단했다.
옆에서 함께 그걸 살펴보던 테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악마 포식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이니 그 이빨의 단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네. 마수 아테라는 악마의 뼈까지 씹어 먹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이미 대악마에게 멸종당해서 악마의 시대 1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마수. 어쩌면 신수의 이빨이라.
에드는 그 이빨을 들어보았다. 악마에게 유달리 잘 통할 물건이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화살로 만들면 되리라.
특히나 이번에 얻은 스킬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물건이다. 관통 스킬이 있어 가죽의 두께는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이것까지 더해진다면 더 강한 공격을 할 수 있으리라.
에드는 이빨을 품에 넣고는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를 잡는데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고맙군.”
제린은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비틀거렸다. 뒤에 있던 헤럴트가 그런 그를 부축하자 제린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그대의 앞길에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지.”
“영주님의 앞날에도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제린은 미소를 짓고는 걸어가다 계단에서 구를 뻔한 것을 헤럴드가 부축해서는 내려갔다. 멀어지는 제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인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물건을 손에 넣었군. 화살로 만들 건가?”
에드는 아펠라의 이빨을 들어 보였다. 톱니 화살. 상대에게 꽂혔을 때 그 위력은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래야죠.”
제린의 술주정 같은 넋두리를 잠깐 들은 정도로 위력적인 화살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번쩍이는 축성된 마차였지만, 타고 안에 들어가서 마차를 달리고 보니 폭신한 융단으로 만든 의자 덕분에 승차감이 올라가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마차 안에서는 번쩍이는 외관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승차감만 올라갔으면 될 일이다.
에드는 마차 안에서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에 화살의 재료를 구했다.
화살촉으로 쓸 아펠라의 이빨을 고정하고, 바람을 잘 탈 수 있도록 깃털을 뒤에 달았다. 과연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화살촉이 다른 것보다 커서인지 다른 화살보다 길었다.
빙결의 화살집에 넣어봤는데도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냉기를 머금는 것도 가능한 것을 확인한 에드는 마차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틀 정도 밤에도 푹 쉬었더니 정신이 또렷해서 굳이 잠을 청할 필요가 없었다. 에드는 장비들을 꺼내서 하나둘 손보기 시작했다.
테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술을 홀짝이며 악마 총람을 뒤적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잡은 악마들은 아직 계보가 없던 녀석들이더군. 그래서 그런 녀석 중 중급 악마와 상급 악마들을 추려보고 있네.”
중급 악마는 30종, 상급 악마는 그 수보다 적으니 계보에 없는 자들을 추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되면 사냥이 수월해진다.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테인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답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두게. 머리는 내가 쓸 테니.”
테인은 악마 총람을 뒤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네프사엘의 흔적은 쫓고 있는데 역시 대악마 정도 되는 놈이니 찾기가 어렵더군. 그래서 그 자의 계보에 있는 상급 악마를 추적 중이네. 그건 곧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더군.”
“수족이 잘리면 튀어나오겠죠.”
에드가 뭔가 더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본능이 경고를 울렸다. 자신의 간격 안으로 뭔가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에드는 아린과 테인을 끌어안았다. 둘의 눈이 커질 때 마차에 큰 충격이 전해지면서 마차가 전복되었다.
커다란 배틀 액스를 손에 든 채 육포를 질겅이던 그렉이 입을 열었다.
“정신병자들인가? 저렇게 번쩍거리는 마차를 타고 다니다니 말이야.”
그렉의 물음에 술법진 위에서 벼락을 날렸던 실비아가 인상을 굳힌 채 답했다.
“저 마차 뭐지?”
“왜?”
“멀쩡해.”
그렉은 그 말에 저 멀리 마차를 바라보았다. 번쩍번쩍 빛이 나던 마차가 실비아가 날린 폭풍의 칼날에 잘리지 않고 뒤집혀 구른 것이 전부였다.
그녀의 신비술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기에 그렉은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저게 가능해?”
“빛을 보아서는 축성 받은 마차 같은데 5위계의 신비술을 받아낼 줄은 몰랐는데?”
그렉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역시 쉬운 놈들이 아니네. 그럼 마무리는 내가 할게.”
“조심해.”
“뒤에서 지원이나 해 줘.”
그렇게 외친 그렉이 힘차게 소리치며 말을 달려나갔다. 그렉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비아는 방심하지 않았다.
클리프 왕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그의 염력은 5위계의 신비술에 버금갔다. 그리고 에트리안의 능력과 그녀가 가진 유물급 장비를 생각하면 그렉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한다.
실비아도 뒤를 따라 말을 달리며 유물 바람의 칼을 뽑아 들었다. 바람의 술을 다루는 신비술사인 그녀에게 클리프 왕자가 선물한 유물이었다.
에트리안이 구해주어서 더 뜻깊었던 유물을 쥔 실비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녀가 들고 있는 바람의 칼 위로 선명한 마력이 맺히며 그녀의 술식에 따라 거대한 힘이 사역되고 있었다.
마차가 견딘 것이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자들의 목을 날려버릴 신비술이 준비되었다.
정신없이 마차가 굴렀다. 그 안에서 아린과 테인을 안고 버텼던 에드는 마차가 구르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일행의 상태를 살폈다.
“다들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에드는 어때요?”
머리가 어지럽기는 했지만, 높은 체력 덕분인지 멀쩡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테인의 물음에 에드가 활을 꺼내고 화살을 시위에 걸며 답했다.
“원거리에서 공격이 날아들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마법 같은데.”
아린도 비틀거리다가 방패를 들고 성검을 뽑아 들었다.
“축성진이 외부 충격에 발동한 거예요. 이 정도면 적어도 4위계 이상의 신비술이에요.”
에드는 빠르게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뒤집힌 마차. 말을 몰아주던 호위기사 더그의 생사는 확인이 안 됐다.
에드가 마차의 문을 박차고는 다가오는 자를 바라보았다. 말을 타고 커다란 배틀 액스를 든 야만 전사.
삐죽거리는 거친 수염의 야만 전사가 호쾌하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연달아 세 발의 화살을 날렸다.
두 발은 야만 전사를 향해,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은 말의 무릎을 향해서.
카캉!
두 발의 화살을 막아낸 야만 전사가 탄 말이 무릎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지만, 야만 전사는 그 등을 박차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에드는 뛰어오른 야만 전사를 향해서 화살을 연달아 네 발을 날렸다.
카카카캉!
배틀 액스의 면으로 화살을 막아낸 야만 전사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 떨어졌다. 에드는 마차의 문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야만 전사 뒤편에서 달려오는 여인의 칼에서 일어나는 바람을 읽고는 밖으로 나가려는 이들을 막았다.
“나가면 안 됩니다. 마법의 범위 안에 들어갔어요.”
마법의 간격도 읽을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지금 마차 밖은 전부 뒤에 선 여인의 간격 안에 들어갔다. 그 말에 아린이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말했다.
“마차의 보호 마법은 한 번 사용했으니 더는 견디지 못해요. 어차피 나가야 해요.”
그렇게 말한 아린이 밖으로 나가기에 에드가 황급히 신비술사에게 화살을 날렸다. 그녀의 주위로 날아간 화살이 방향이 틀어지더니 저 멀리 날아갔다.
바람을 다루는 신비술사라 그런지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 신비술사가 바람이 깃든 칼을 휘둘렀다.
가공할 바람의 칼날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에드는 자신의 체력과 장비라면 저걸 견딜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냥 몸을 날렸다.
그때 아린이 성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커다란 푸른 빛의 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성검의 능력. 검에 왜 보호막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검의 보호막은 마차까지 감쌌다. 그리고 날아들던 수많은 바람의 칼날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에드는 아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작지만 한없이 든든한 등.
하지만 가장 믿음직한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