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25화 (25/202)

#25

취향

에시르는 수많은 새끼를 낳는 것으로 유명하다. 빨리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새끼만 백 마리를 이끌어서 악마의 시대 1에서는 드루이드 드레드로 만났을 때 정말 피똥 싸게 싸웠었다.

이 에시르는 얼마나 많은 새끼를 낳았을까?

게다가 에시르 하나만 생각하면 안 된다. 중형 악마 디세로는 철갑보다 단단한 피부와 두 개의 뿔을 지닌 전차와 같은 자다.

둘이 같이 온다면 관통이 된다고 해도 죽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에드는 활의 시위를 건 채 기다렸다. 에시르의 하울링과 함께 사방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낮은 숨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시르의 새끼는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크기를 보면 이미 마수의 영역에 들어서 있다. 송아지만 한 크기의 늑대들의 노란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데 그 수가 족히 오십 쌍은 되어 보였다.

“많이도 싸질러 놨네.”

저만한 인원의 여인을 욕보였다는 것. 그리고 새끼를 낳은 여인은 새끼에게 잡아먹힌다고 하니 악마답다고 해야 할까?

에드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에시르!”

그 외침에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던 노란 눈들이 스르르 물러나더니 그곳에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몸을 지닌 사내가 나타났다.

요정들도 울고 갈 아름다운 미남. 매끈한 나신의 악마 에시르는 인간형으로 나타난 채 에드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네프사엘님이 네 사지를 찢고 숨은 붙여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대계를 네가 망쳐놨거든.”

에드는 거리를 재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화살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모르니 화살 한 발을 쏴보았다.

날아간 화살은 거리가 있어서인지 에시르가 손을 뻗어 잡았다. 네프사엘의 탐색전에서 전력을 다한 빙결의 화살을 쓴 적이 없어서인지 겁도 없이 화살을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온 거냐?”

“혼자도 충분하다고 했는데 굳이 이 친구까지 오라고 하셨더군.”

네 발로 서 있는데 체고가 3미터나 되는 중형 악마 디세로도 그의 옆에 나타났다. 검은 피부는 마치 철갑을 닮았고,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에드는 그 모습에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며 말했다.

“하긴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보면 악마 중 에시르 네가 가장 쫄보인 것 같아.”

에시르의 빼어난 얼굴에 균열이 갔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숨은 붙여서 잡아 와라!”

그 외침에 늑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오십 마리나 되는 송아지만 한 크기의 늑대들이 일제히 달려들다가 우수수 쓰러졌다.

캐앵!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늑대들은 발목이 잘렸다. 그렇게 바닥을 구르다가 다른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걸리면 목이 잘리며 그대로 죽는 놈들도 있었다.

용맹하게 달려든 만큼 빠르게 죽었지만, 명줄이 긴 놈들은 발목이 잘린 정도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런 늑대들의 머리에는 화살이 하나씩 박혔다. 중급 악마의 새끼라서 그런지 마수들보다는 경험치가 더 많이 들어왔다.

오늘 저 중급 악마 둘의 숨통마저 자신이 끊을 수 있다면 레벨이 오를 것 같았다.

에시르의 새끼 늑대들이 모두 죽는데 걸린 시간은 채 3분도 되지 않았다. 에시르는 순식간에 다리가 잘려나가고 머리에 화살이 박혀 죽는 새끼들을 보면서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상식이 파괴되는 장면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뒤늦게 몰려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내, 내 새끼들이···.”

에드는 화살을 시위에 얹으며 말했다.

“난 숨 안 붙여 놓거든.”

에시르의 척추가 불쑥 치솟고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머리가 하늘로 쳐들린다. 에드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화살을 날렸다. 빙결의 화살집에 들어가 있던 화살을 빙결의 활에 걸어 마력까지 집어넣은 채로.

마력에 스탯을 투자한 덕분인지 그 위력도 더 강해졌다.

변신 중이던 에시르 대신에 디세로가 그 앞으로 달려 나와 화살을 뿔로 쳐냈다. 역시 이 정도 거리에서는 중급 악마 정도되면 반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세로의 얼굴 위로 쏟아진 냉기가 뜨고 있던 눈알을 얼려버렸다.

꾸워억!

비명을 지르며 디세로가 날뛸 때 그를 향해 아린의 해머가 날아갔다. 신성력을 듬뿍 머금은 채로.

꽝!

철갑과도 같은 피부를 지닌 디세로는 본능적으로 뿔을 휘둘러 해머를 쳐냈지만, 디세로가 믿어왔던 뿔에 금이 쩍쩍 갔다.

그사이 변신을 마친 에시르가 디세로를 뛰어넘어 달려왔다. 자기 새끼들의 사체를 밟고 도약하는 녀석을 보며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원딜과 싸우는데 허공에 뜨다니?

에드의 손에서 화살이 연달아 날아갔다.

카카카캉!

그런데 에시르의 길게 자란 손톱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화살들을 모조리 쳐냈다. 늑대 인간으로 변하면서 민첩이 더 올라간 것 같았다.

에드는 자신이라고 해도 민첩함만으로는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을 목표로 정했다면 상대할 방법은 간단하다.

“아린. 제가 상대할게요.”

에드는 아라크나의 거미줄을 쳐놓은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발 한번 잘못 디디면 설령 에드라고 해도 발목이 잘려나갈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드는 트랩의 간격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위험한 곳으로 성큼 발을 들일 수 있었는데 에시르는 그걸 보고는 나무를 밟으며 머리 위에서 움직였다.

실수로라도 떨어지면 에시르라고 해도 조각날 상황. 나무를 박차며 달려오는 에시르를 보고 에드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에시르는 지금 화살 몇 발 쳐내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졌다.

자식을 죽인 자신을 쫓아와 토막 내겠다는 듯 미소를 짓고 거리를 좁히고 있다.

에드는 다섯 발의 화살을 연달아 날렸다. 에시르는 가볍게 화살들을 쳐냈다. 아직은 충분히 쳐낼 수 있어서 화살들을 쳐냈는데 한 발의 화살이 에시르의 발톱을 피해서 아래에서 위로 휘어져 올라가 옆구리에 꽂혔다.

쩌적.

연사로 쏘던 화살 중 마지막 화살은 무한의 화살집이 아닌 빙결의 화살집에서 꺼낸 화살이었고, 그 화살은 곡사까지 썼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던 방식으로는 막지 못할 화살이었다.

마력을 주입할 시간도 없이 쏘아낸 화살이라 냉기가 약했지만, 옆구리에 화살 하나를 박고 얼린 것만으로도 움직임은 확연히 느려졌다.

에시르는 상처를 입었다고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르게 접근해 왔다. 원딜과 싸우면서 거리를 벌리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고 여기고 다가오는 것 같았는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에드는 더 물러나지도 않고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활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한 호흡에 일곱 발. 줄줄이 날아가는 화살 중 두 발이 다시 어깨에 꽂혔고 드디어 거리를 좁힌 에시르가 에드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두 번의 공격에 에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어깨를 트는 것으로 공격을 모두 피하고 지척에서 세 발의 화살을 한 번에 쐈다. 지척에서는 피하지도 못하고 에시르의 가슴에 화살이 꽂혔다. 냉기 화살 세 발을 더 꽂은 에드는 에시르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휘두르는 공격을 보고 백스텝으로 물러났다.

접근을 허락한 건 에시르가 막거나 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제는 가까이할 필요가 없다. 뒤로 물러난 에드가 쏜 화살이 비틀거리는 에시르의 이마에 박혔다. 에시르가 힘없이 쓰러지며 아라크라의 거미줄에 닿아 목이 잘려나갔다.

밀려오는 경험치를 즐기고 있을 틈은 없었다. 아라크라의 거미줄조차 끊으며 달려온 디세로를 방패로 막고 해머로 내리치고 있는 아린을 보았다.

이미 데보라라는 중형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단단한 철갑을 두른 디세로를 상대로 해머를 휘두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벌써 디세로의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만든 상태.

하지만 숨통을 끊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약속대로 디세로의 숨통을 끊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다.

에드는 빙결의 화살집에 남은 화살을 꺼내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확실한 한 방. 디세로는 마침 눈을 잃은 상태라 에드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에드가 마력을 집중하자 시위에 걸려있던 화살의 화살촉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을 본 아린이 뿔을 휘두르는 디세로의 턱밑으로 몸을 바짝 숙인 후에 방패로 그 턱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디세로의 턱이 돌아가면서 벌어진 입속으로 에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화살이 입속으로 사라지자 디세로의 몸이 굳어졌다. 철갑처럼 몸을 두르고 있다고 해도 뱃속까지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입속으로 들어간 냉기를 가득 머금은 화살 한 발에 내장이 모두 얼어버린 디세로의 거구가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밀려오는 경험치.

레벨이 올랐다. 20레벨. 에드는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민첩을 하나 올렸다. 스킬은 어떤 것을 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지만, 지금 당장 선택하지는 않았다.

쓰러진 디세로를 내려다보던 아린은 에드를 돌아보았다.

“어땠나요?”

에드는 활을 어깨에 걸치며 그녀에게 엄지를 내보였다. 그녀가 만들어준 기회 덕분에 쉽게 디세로를 잡을 수 있었다.

“최고였어요.”

아린은 에드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가 가진 무기로는 디세로와의 승부가 길어지고 있었다. 검은 철갑과 같은 가죽은 성검으로도 제대로 베이지 않았다.

해머로 두드려 패기 시작했지만, 승기를 잡은 정도일 뿐 디세로를 죽이려면 한참은 더 걸려야 했다. 그리고 신성력이 그때까지 유지 될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데보라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악마였는데 에드가 단숨에 잡아줬다.

악마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숨통만 끊을 수 있다면.

에드가 장갑을 끼고 아라크라의 거미줄을 회수하는 것을 보고 아린도 중급 악마들에게 성유를 붓고 기도를 올렸다. 성화에 타오르는 중급 악마들의 시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아린은 자신의 신성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성화는 신에게 올리는 제물. 제물을 받은 아스트론은 보상으로 신성력을 내려주니 그녀의 신성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에드 덕분이었다. 그와 함께하면서 수많은 악마를 성화로 태울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잡아 왔던 악마보다 그와 만난 며칠 사이에 잡은 악마가 더 많았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고 있었다.

에드가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회수하고 돌아왔을 때 테인이 다가왔다.

“이것으로 네프사엘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군.”

네프사엘의 계보에 있는 하급과 중급 악마를 모두 죽였다. 이제 남은 것은 상급 악마와 그 본인뿐이다. 아무리 네프사엘이라고 해도 움직이기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만큼 네프사엘이 이를 악물고 에드를 죽이고자 할 터였다.

테인의 말대로 이제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일.

“어차피 모든 악마와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 말이 웃겼던 것일까?

테인은 웃다가 사레가 들려서 기침할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고, 아린은 감탄한 눈빛으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네프사엘이 혹시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대악마들은 언제나 숨어다니지. 위치가 발각되는 순간 모든 교단의 성기사들이 그들을 죽이러 갈 테니까. 그 개개인은 강하지만, 그 공격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대악마를 죽이는 일 중 가장 힘든 일은 놈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네.”

에드는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얻어만 맞는 것은 취향이 아닌데.”

경험치를 퍼다 주니 지난 1년 동안 얻은 경험치보다 요 근래에 얻은 경험치가 더 많은 수준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필요 경험치가 많아지는데도 레벨업 속도가 오히려 스노우 볼링 효과처럼 빨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휘둘리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밤잠을 빼앗아간 대가를 치르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놈을 반드시 찾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이마에 화살을 박아줘야겠다.

“테인.”

“왜 그러나?”

“네프사엘을 찾아주세요.”

테인은 그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노력하겠네.”

뒷짐을 진 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소나가 죽었다."

여인의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인은 그런 사내를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죽인 자는 악마 사냥꾼이라 불리는 자다. 이름은 에드. 달리아 왕국의 정예 레인저 부대 크로우의 생존자로 보인다."

사내가 작게 그 이름을 되뇌는 것을 바라보던 여인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굵직한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우울하게 들렸다.

"그녀의 죽음을 기릴 수 있게 그자의 목을 가져와라."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사내가 사라졌다. 여인은 뒷짐을 진 채 오래도록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