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습격
다음 날 아침이 밝기 무섭게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 테인은 그대로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고, 에드와 아린은 각기 말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린은 떠나기 전에 여인들을 찾아갔다. 삶의 의미를 잃은 것 같은 그녀들 하나하나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준 아린은 프랑크 주임사제에게 그녀들을 부탁하고 여정에 올랐다.
목적지는 엔트시.
대략적인 위치를 감지하고, 그 거리를 파악하고, 어젯밤 교단의 지도를 이용해서 특정한 곳이었다. 혈마석을 이용한 추적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이곳에서 말로 달려도 오 일은 걸릴 도시에 있을 악마를 찾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테인은 엔트시를 확인하고는 감탄했다.
“아직 그곳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발견되지 않았네. 참을성이 좋은 놈이 그곳에 있는가 보군.”
테인은 호위기사에게 뭔가 명령을 내렸고, 그는 저녁에 어디를 다녀왔다. 그리고 우리는 악마 사냥을 떠났다.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여행 경비부터 화살등 기타 장비를 사는데 드는 비용을 아린이 모두 지급한다는 점이었다.
아스트론 교단이 대륙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교단이라고 하더니 돈이라면 차고 넘치도록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 무한의 화살집에 있는 화살을 꽉꽉 채워 놓았다. 그간 사용만 하고 채울 기회가 없었는데 양질의 화살로 다 채워 놓을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현철 화살촉을 만들어 사용할 생각이었다. 돈은 아스트론 교단의 것으로.
마테 시를 떠난 지 하루 동안의 강행군 덕에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이 크지 않아서 마을 회관에서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동전을 받고 잠을 재워주는 곳이었다.
마을 회관을 내준 촌장은 아린이 건네준 은화에 양과 닭을 잡아 요리를 내왔고, 술도 내주었다.
그렇게 만나서 처음으로 함께하는 술자리를 가졌다.
호위 기사 더그는 밖을 지킨다고 구운 닭 한 마리만 가지고 나갔고, 셋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린은 생긴 것과 다르게 대식가였다. 양 한 마리를 혼자서 먹어치우는 모습에는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반면 에드는 미식가였다. 테인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양갈비 스테이크를 잘라 먹으며 벌꿀주로 입가심을 했다.
그렇게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테인이 입을 열었다.
“내일쯤이면 엔트 시의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을 걸세.”
테인은 생각보다 발이 넓었다. 얼마나 많은 악마를 죽였는지 알아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대체 어떻게 앞으로 며칠은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의 소식까지 알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건 아린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영업 비밀일세.”
테인은 전투에는 전혀 필요 없는 일반인이지만, 그는 16년 전에 이미 펜드리건과 함께 대악마를 잡는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 이였다.
달리아 왕국 출신이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 이만큼이나 악마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악마라도 자신을 완전히 숨기기는 힘드네. 그자들의 본능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 내일이면 대충 윤곽이 나올 걸세.”
“다행이네요.”
테인은 촌장이 마련해준 잠자리로 걸어가며 말했다.
“늙어서 그런지 피곤하군. 먼저 자겠네.”
“편히 주무세요.”
테인은 일반인의 몸으로 종일 마차를 타고 왔다.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았다고 해도 몸이 버티기 힘들 수밖에 없다. 저러다 일찍 죽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테인이 먼저 자리에 눕자 에드는 다 먹은 그릇들을 정리했다. 아린과 함께 그릇들을 정리해서 밖에 내놓은 아린이 다시 들어갈 때 에드는 활과 화살집을 챙긴 채 오히려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요?”
“자기 전에 훈련 좀 하고 자려고요.”
아린은 그 말에 눈을 반짝이더니 자신도 무기를 챙겨 나왔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요.”
“그러죠.”
마을 회관 뒤편에는 너른 공터가 있었다. 아린은 그곳에 도착하자 검을 뽑아 들고 내려치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는 활을 꺼내 들고 마을 회관 뒤편의 나무를 향해 화살 한 발을 쐈다. 자신이 원했던 목표에 가서 꽂힌 화살을 보고 에드는 긴장을 풀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활을 쏘는 동작에서 긴장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흡을 내뱉고 긴장을 푼 상태에서 연사도 가능한 법.
에드는 연달아 일곱 발의 화살을 쏘아냈다.
퍼퍼퍼퍽!
에드는 화살이 꽂힌 것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목표한 것은 쐈던 화살을 쪼개고 맞추는 것이었는데 쪼개진 것은 두 발뿐. 나머지는 그 근처에 밀집해서 꽂혔다.
아쉽다고 여기서 훈련이 끝나는 건 아니다. 에드는 이제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화살을 쏘아댔다.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쏘는 화살도 한 자리에 날아가 꽂혔다.
아린은 예언을 따라 퇴마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성기사단에 있을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훈련도 매일 시간에 쫓기며 말을 몰고 이동한 후에는 휴식을 취하기 바빴기에 거르기 일쑤였다.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신에게 변명하며 보낸 날들.
그러나 에드를 보니 달랐다. 그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라는 것을 이미 보았다. 유물급 장비인 빙결의 활을 쓰지 않아도 궁수로서의 능력 자체가 이미 완성의 경지에 이른 이다.
저만한 궁사는 그녀도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 그가 훈련하는 것을 보니 새삼 부끄러워졌다. 그는 종일 말을 타고도 훈련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신기에 가까운 궁술을 보고 새삼 자신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성기사단 내에서 마스터 팔라딘이 인정해 줬다는 것에 기뻐하고 안주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자랑하던 검투술은 고작 중급 악마인 텐크람도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예언에 따라 대악마를 상대하자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그걸 깨달은 그녀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스터 팔라딘은 말했다. 단 한 번의 검을 휘두를 때도 전력을 다하라고. 그 말에 따라 그녀가 휘두른 검이 밤공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500발의 화살을 다 쏠 때까지 훈련한 에드는 나무 한 그루에 빼곡하게 박힌 화살들을 회수하러 가며 아린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기본 검술을 훈련하는 것 같던 그녀였는데 지금 그녀는 생사대적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진심으로 훈련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에드는 화살을 회수했다. 같은 자리에 화살이 꽂히다 보면 화살들이 망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수를 최대한 조절해 보지만 이번 훈련으로 열다섯 발의 화살이 못 쓰게 됐다.
화살을 회수한 에드는 공터의 한쪽에 앉아 아린의 검술을 지켜보았다. 일검에 전력을 다하는 만큼 저런 식으로 훈련한다면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할 것 같았다.
그 마음가짐만으로 그녀는 주인공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마을을 떠나 하루를 더 달렸지만, 이번에는 마을을 만나지 못해 노숙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노숙을 하게 됐을 때 호위기사 더그의 실력을 볼 수 있었다.
마차의 지붕에서 두 개의 긴 장대를 꺼내더니 마차 지붕을 덮었던 천을 펼쳐서 장대에 고정했다. 그리고 그 좌우로 천을 내리니 바람을 막아줄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인지 능숙하게 쉴 공간을 만드는 동안 에드는 아린과 함께 장작으로 쓸 것들을 구해왔다.
더그가 불을 피우고 마차에 실었던 솥을 꺼내 그 안에 염장한 고기를 넣고 채소를 숭숭 썰어 넣고는 몇 가지 향신료를 더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더그가 스튜를 만드는 동안 테인이 외눈 안경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엔트 시의 특이점은 그란트 상단주가 세 번째 부인을 얻은 이후로 그녀의 침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정도더군.”
“다른 특이점이 없는 건가요?”
“지금까지는 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했네.”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란트 상단이 취급하는 물건이 뭔가 특별한 건가요?”
“호오.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에드의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데보라를 잡았을 때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나요?”
“데보라는 사람들을 산 채로 잡아들이고 있었어요. 그들을 부려서 땅굴을 파고 있었죠. 하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어요.”
“한 놈은 땅굴을 파고 있고, 한 놈은 새끼를 낳고, 다른 놈도 뭔가 목적이 있겠죠. 중급 악마 정도 되는 녀석이 단순히 남자의 생기를 빨아 먹을 생각이었다면 젊은이들을 노렸을 테니까요.”
테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란트 상단이 주로 취급하는 물건은 향수라네. 귀족들이 환장하는 향수를 만들지.”
“향수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제품이라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린이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면 셋째 부인이 중급 악마가 아닐 수도 있겠군요.”
“가능성은 열어두고 조사해 보겠네.”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서 며칠 거리의 정보를 취득하는 테인 덕분에 가는 동안 악마를 특정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에드는 펜드리건이 테인과 끝까지 함께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튜 다 됐습니다.”
더그의 말에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스튜를 받았다. 왜 저리 스튜의 양이 많은가 했더니 아린이 먹어치우는 속도가 놀라웠다. 에드는 받아든 스튜를 한 수저 떠먹고는 새삼 감탄했다.
야외에서 그냥 때려놓고 끓인 스튜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1년 동안 먹은 음식 중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이다.
“너무 맛있어요.”
현대의 온갖 음식을 맛보았던 에드가 인정할 정도의 맛이니 그녀가 감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스튜를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에 테인은 마차 안에 들어가 누웠고, 아린은 야영지 옆에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하는 그녀의 검술을 바라보던 에드도 활을 쥐고 화살을 걸고 대로 옆의 나무를 향해 화살을 겨눴다가 몸을 돌리며 그대로 화살을 날렸다.
화살에 맞은 짐승 하나가 나뭇가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에드는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쓰러진 짐승을 가만히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린도 검을 휘두르던 것을 멈추고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에드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화살에 맞아 쓰러진 짐승을 가만히 겨누고 있었다. 아린도 이상함을 느끼고 짐승을 바라보자 짐승의 사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등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커다란 눈이 튀어나오고 뒷다리로 딛고 일어나 에드와 아린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입도 없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에드는 맥락 없는 말에 시위를 놓았다. 커다란 눈알에 다시 화살이 꽂히자 목소리가 사라졌다.
아린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가 싶더니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죽은 짐승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악마의 흔적을 읽은 아린이 그 흔적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린이 에드에게 물었다.
“에드. 저거 보여요?”
에드는 아린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인상을 굳혔다. 하늘에 떠 있던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는데 점점 커지고 있었다.
구름처럼 보였던 것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날짐승들이었다. 아니, 일반 날짐승이 아니라 마수들이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아린! 테인을 지켜줘요!”
말을 마친 에드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화살들이 쏘아져 날아갔다. 날아들던 마수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마수들을 뚫고 날아드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 움직임은 마수의 것이 아니었다. 유성처럼 에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에드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물러나자 마치 유성처럼 떨어진 악마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급 악마 벤젤. 비행형 악마다.
무려 열 마리의 하급 악마와 머리 위에는 수백을 넘을 마수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장난하나?”
에드는 빙결의 화살집에 넣어두었던 화살들을 연달아 쏘아냈다. 비행형 악마인 벤젤은 유성처럼 떨어지는 공격이 가장 강한 공격이다.
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날개로 몸을 감싸는데 그걸 푸는 순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야 열 마리의 악마가 동시에 날개를 풀고 등장하는 모습이 무섭겠지만, 에드에게는 기회였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들이 열 마리 벤젤의 이마에 차례로 박혔다. 따로 마력을 넣지 않았지만, 열 마리의 벤젤의 머리를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경험치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