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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22화 (22/202)

#22

아린이 얼어붙은 텐크람의 왼쪽 상반신을 박살 낼 때는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중급 악마의 숨통은 자신이 끊어야 경험치가 들어올 터였으니까.

그래서 빠르게 빙결의 화살집에서 꺼낸 냉기 화살을 텐크람의 이마에 꽂았다. 다행히 숨통을 끊은 것은 자신이었는지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런데 숨통이 끊어진 텐크람에게서 아직도 간격이 보였다. 죽은 자에게 간격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린은 쓰러진 텐크람 앞에서 비켜서질 않았다.

성공 확률 3할짜리였지만, 궁술 훈련을 하면서 6할까지 끌어올린 곡사를 앞으로 함께할 성기사 아린을 향해 쓸 줄은 몰랐지만, 시간을 끌 수 없었다.

그렇게 쏜 화살이 돌아서는 아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제 어미의 배를 가르고 튀어나오던 텐크람 새끼의 어깨를 맞췄다.

중급 악마의 새끼는 중급 악마만큼의 경험치를 줄까? 하급 악마만큼의 경험치를 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튀어나오지 못한 녀석을 처리하는 데는 굳이 성기사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아린이 몸을 돌리는 사이에 에드는 이미 바닥을 차고 벽을 밟으며 빙결의 화살집에 넣어둔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고 마력을 주입했다.

텐크람을 처리하면서 마력을 제법 많이 썼지만, 이것 한 방 날릴 힘은 남아있었다.

뱃속에서 나오던 새끼 텐크람이 멀쩡한 팔을 휘둘렀다가 화살과 부딪치는 순간 냉기가 폭발했다.

쩌저정!

뱃속에서 채 나오지도 않았던 새끼 텐크람의 몸이 얼어붙을 때 에드는 벽에서 도약하며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얼어붙었던 새끼 텐크람의 미간, 인중, 눈알에 네 발의 화살이 연달아 박혔다.

“끼이악!”

단말마와 함께 새끼 텐크람은 어미 배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죽었다. 경험치는 하급 악마보다는 많고 중급 악마보다는 적었지만, 흡족한 양이었다.

에드가 텐크람의 앞에 내려서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 아린이 다가왔다.

“죄송해요. 죽은 줄 알았어요.”

에드는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활을 어깨에 걸며 답했다.

“한번 경험했으니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실수는 목숨이 걸린 실수라 에드가 확실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텐크람의 시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시체를 조사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아린이 다가와서 텐크람의 부서진 왼쪽 상체로 손을 집어넣더니 얼어붙은 심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양손으로 으깨버리니 그 안에서 작은 구슬이 나왔다.

지금까지 악마들을 죽여왔지만, 저렇게 심장을 꺼내서 부순 적이 없었기에 처음 보는 구슬이었다. 붉은색의 보석은 무척이나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린은 그 붉은색의 보석을 손에 쥔 채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녀의 모아놓은 양손 안에서 붉은색의 보석이 비명을 지르는 환청이 들렸다.

그리고 붉은색의 보석이 붉은빛이 되어 사라졌다.

아린이 그제야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에드가 물었다.

“그건 대체 뭡니까?”

아린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답했다.

“제가 교단에서 나온 것은 예언에 의해서예요. 새로운 대악마가 나타나 악마들을 규합한다는 예언이 있어 그들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하급 악마들에게서는 별로 건진 것이 없었는데 데보라의 몸에서도 이 혈마석이라는 것이 나왔어요.”

혈마석? 악마의 시대 1에서는 없던 개념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악마의 등장이라니. 남아있는 대악마들을 잡아 죽일 생각이었는데 또 다른 대악마가 나타났다니 퀘스트 난이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중급 악마 이상에게서 나온다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혈마석을 신성력으로 태우면 다른 혈마석의 위치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어요. 데보라를 죽이고 혈마석을 태웠을 때 이 부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프랑크 사제님의 연락을 받고 제가 온 겁니다.”

“그냥 악마들만 처리하는 게 아니군요.”

아린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대악마를 쫓는 일이라 저를 비롯해 모든 성기사들이 추적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혈마석을 찾아낸 것은 저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주인공은 다르다. 대악마를 추격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메인 퀘스트의 한줄기를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위치는 어디죠?”

아린이 에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에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 말했다.

“어차피 악마를 사냥할 생각인데 교단의 일이라면 돕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요.”

아린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함께 해주실 생각이신가요?”

“저야 목적지 없이 그저 소문 따라 악마를 잡고 다녔는데 예언을 쫓아 사냥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어차피 대악마 그 새끼 머리에는 화살을 박아줘야 하는데 믿을만한 전위를 구한 것은 에드에게 더 큰 도움이었다. 이제야 메인 퀘스트의 실마리를 찾았으니까.

악마의 시체는 가공하기에 따라서 돈이 된다. 그러나 성기사에게 악마의 시체란 태워 없애야 할 존재일 뿐.

에드에게 양해를 구한 아린은 성유를 뿌리고 텐크람의 시체를 태우는데 그것은 푸른 빛의 성화였다. 성화로 태우니 텐크람의 시체는 연기 하나 내지 않고 타올랐다.

삽시간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텐크람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기도하고 있던 아린은 기도가 끝나자 함께 지하에서 올라와 교회로 향했다.

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아린은 글렌 일당이 약으로 중독시켜 매춘을 시키던 여인들을 찾아갔다. 아린은 신성 주문으로 치료한 여인을 등에 업고, 나머지 약에 취한 여인들은 에드가 인솔했다.

그렇게 교회로 돌아가니 프랑크 주임사제와 테인도 분노했다.

“어떤 개호로자식이 이런 건가?”

테인은 분노로 외치기라도 했지, 프랑크 주임사제는 그녀들을 수행 사제들과 함께 돌보면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아스트론 교단에서 금지한 것이니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에드는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상황 설명을 해야 했다.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잘했네. 이런 자들은 백해무익한 자들이야. 살려둘 가치가 없는 쓰레기들이지.”

에드도 그 말에 공감했다. 눈에 띄는 쓰레기 정도는 주워서 버리는 게 사람 된 도리다.

아린이 직접 그녀들을 일일이 신성 주문으로 약에서 깨어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테인이 감탄했다.

“대단하군.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저만한 신성력을 품고 있다니 말이야.”

에드도 그의 옆에 서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의 신성력은 대단했다. 아론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 사제가 대단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는데 아린에 비하니 달빛 아래 반딧불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유물을 가져서 뻥튀기된 것인지 저만한 신성력을 품고 있어 성유물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진짜다.

테인이 프랑키 주임사제를 보며 말했다.

“라플라 잎을 유통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군. 그들에 대해서는 영주에게 보고하면 될 걸세.”

“그래야겠죠.”

교단에서만 금지 시킨 것이 아니라 왕국법으로도 금지 시키고 있는 만큼 영주도 이 일을 알게 되면 반드시 그 뿌리를 뽑아야 했다.

그 정도면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기에 충분하리라.

테인은 에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악마는 텐크람이었나?”

에드는 테인이 잡은 악마의 수를 알아본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새끼를 낳기 직전의 텐크람이었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새끼까지 잡은 거군.”

“예.”

테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 프랑크 주임사제가 다가왔다. 여인들은 모두 약에서 깨어나자 비명을 지르다가 혼절했다. 아마도 자신이 약에 취한 동안 했던 일들에 대한 충격 때문에 혼절한 것 같으니 깨어나면 그때 앞으로의 일을 신경 쓰면 되리라.

열 번에 가까운 신성 주문을 썼음에도 아린은 멀쩡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론 사제의 말이 하나 틀린 것 없군요. 도시의 모든 형제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린도 옆에서 프랑크 주임사제의 말에 에드에 대해 칭찬했다.

“에드님이 없었다면 잡지 못했을 거예요. 에드님의 실력은 명불허전이더군요. 제 목숨도 구해주셨죠.”

테인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프랑크 주임사제도 에드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아린의 악마 토벌에 에드가 거든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에드는 당분간 아린을 따라다닐 생각이었기에 점수를 조금 따기로 했다.

“솔직히 아린님이 시선을 다 끌어 줘서 공격이 통했던 거죠.”

아린 얼굴에 금칠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시선을 확실히 잡아 끌어준 덕분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일단 성기사는 신성력을 품고 있어서 악마에게 어그로를 상당히 끌었다.

게다가 아린이 가지고 있는 성유물들도 대단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해머는 던졌다가 돌아오는 기능이 있었고, 방패는 그런 기능은 없지만, 한방의 위력이 해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검의 성능은 보지 못했지만, 그것도 보통 물건은 아니리라.

그런 성유물들을 가지고 돌진하니 악마가 눈을 떼지 못했다. 자기 몫은 충분히 하는 성기사다. 그리고 성기사 중 유일하게 혈마석을 구할 수 있으니 꼭 함께해야 했다.

아린은 프랑크 주임사제를 보며 말했다.

“교단에 연락을 취해주십시오. 에드님은 저와 함께하기로 하셨습니다.”

프랑크 주임사제는 아린의 말에 살짝 놀랐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곧 떠날 건가?”

“예. 내일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아린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혈마석의 흔적을 쫓아 악마를 잡으러 가는 것은 시간을 오래 끌 수 없는 일. 그녀의 시선에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바로 출발하죠.”

둘의 대화를 듣던 테인이 호기심이 동한 듯 그들에게 물었다.

“새로운 악마의 흔적을 찾은 건가?”

“예.”

에드가 아린을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예언에 관해 얘기해 줬다. 아마도 테인이 아스트론 교단과의 관계가 깊은 것은 물론이고 악마 연구가로 유명한 덕분이리라.

“예언이 있었어요. 새로운 대악마가 탄생한다는. 그런데 그 대악마가 악마들을 규합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넘어간 악마들에게는 혈마석이라는 것이 나오고 있어요. 데보라에게서 나온 혈마석은 이곳을 가리켰고, 이곳에서 잡은 텐크람에게서 대략적인 다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테인의 안색이 굳어졌다.

“새로운 대악마라고?”

“예.”

“그걸 왜 알리지 않았나? 펜드리건이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분은 국왕파이기 때문이죠.”

테인은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는 악마의 시대 1에서 자유기사 펜드리건의 엔딩을 떠올렸다. 정말로 공주와 결혼한 걸까?

“그렇다고 해도 악마를 상대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는 진심이네.”

“맞아요. 하지만 귀한 신분이니 함부로 부를 수도 없죠. 그리고 이건 교단의 일입니다.”

“끄응. 악마를 상대하는 일에서 만큼은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뒤로 미루면 안 되나?”

“마스터 팔라딘의 뜻이니까요.”

“하여간 고집들은.”

한숨을 내쉰 테인이 에드와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함께 가도 되겠나?”

아린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테인님이 도와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왕궁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테인은 지팡이를 짚은 채 미소를 지었다.

“펜드리건은 날 이해해줄 걸세.”

하긴 테인의 악마에 대한 증오는 펜드리건도 이해해줄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기는 했다. 아린이 에드를 돌아보았다.

자신에게 묻는 그 시선에 에드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같이 가죠.”

성기사 아린, 악마 연구가 테인. 팀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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