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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21화 (21/202)

#21

텐크람

“빈민가에서 일어난 최초의 실종. 아니면 적어도 네가 아는 가장 빠른 실종자의 위치가 어딘지 말해.”

글렌은 빠르게 눈동자를 돌렸다. 이 질문을 왜 하는 걸까? 빠르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에드는 손목을 다시 비틀었다.

“끄아아악!”

“딴 생각하지 마.”

“죄, 죄송합니다!”

“대답.”

“빈민가 동쪽에서 시작됐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그의 손목을 놔줬다.

“이거 지금 뽑으면 넌 죽어.”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조금 있는지 꽂혀 있던 단검이 뽑히면 출혈과다로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 같기에 에드는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거기가 어딘지 안내해.”

“예! 이쪽으로.”

글렌이 앞장서 안내하기에 그 뒤를 따라가려던 에드는 뒤편에서 갑작스럽게 푸른빛이 터져 나와 고개를 돌렸다. 멈춘 것은 그만이 아니라 글렌도 놀라서 돌아보는 중이었다.

아린이 눈이 풀린 여인 한 명의 머리에서 손을 떼는데 그녀의 눈에는 짙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

“라플라 잎에 중독됐어요.”

라플라 잎은 일종의 마약이다. 강력한 진통 효과를 주는 대신에 환각을 보게 된다. 가장 저급한 마약 중 하나. 그런 만큼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중독되면 풀려나기 어렵다.

그런데 그걸 신성 주문 한 번에 치료하다니 아린의 신성 주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풀렸던 눈이 또렷하게 돌아온 여인은 주위를 돌아보다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환각이 풀리고, 기억이 떠오른 여인이 비명을 지르고는 그대로 혼절했다. 쓰러지는 그녀를 아린이 부축했다. 옆에 그녀를 눕힌 아린의 눈이 남은 여인들을 살폈다.

얼핏 보아도 열 명. 저들을 모두 치료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들 열 명을 치료하다가 텐크람이 새끼를 낳으면 그때는 빈민가에서 백 단위의 사람들이 죽어 나갈 테니까.

라플라 잎은 아스트론 교단에서 금지한 품목 종 하나다. 그리고 왕국법으로도 금지된 것.

그걸 이용해서 여인들을 환각에 빠트리고 매춘을 시켰다는 것에 아린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글렌을 향해 다가갈 때 에드가 그 앞을 막아섰다. 비켜 가려면 비켜 갈 수 있는 위치였지만, 아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에드를 향했다.

“지금은 텐크람이 먼저입니다.”

아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그 말을 이해했다. 텐크람을 찾아가야 하는데 글렌의 안내가 필요한 상황. 지금 당장 저자를 쳐 죽이는 것보다는 텐크람을 찾을 단서를 쫓는 것이 급했다.

“알겠어요.”

에드는 그녀가 진정되자 글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안내해.”

글렌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그 뒤를 에드가 따라갔다. 아린은 환각에 빠져 눈이 풀린 여인들을 돌아보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에드의 뒤를 따라 걸었다.

빈민가의 꼬마를 통해서 추적하다가 더 많은 것을 알 자를 만나 그에게 안내를 부탁해 텐크람을 추적하는 중이다.

자신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이다. 악마 사냥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악마를 죽였다고 하더니 배울 것이 많은 이였다.

글렌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빈민가 동쪽. 그곳에 도착한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이 안 사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실종되고 나서 부랑자들도 이곳을 피하게 됐습니다. 저희도 사람이 안 사는 이곳에 있어 봐야 장사가 안되니 서쪽으로 움직인 거고요.”

글렌은 이곳까지 오면서 안색이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졌다. 어깨에 단검을 꽂은 채 이곳까지 오느라 고통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글렌이 필요가 없었다.

“고생했다.”

“감사합니···르륵!”

에드는 어느새 뽑은 단검으로 글렌의 목을 베었다. 목에서 피가 왈칵 쏟아진 글렌이 다급히 손으로 상처 부위를 막았지만, 그대로 쓰러졌다.

아린이 다가와서는 물었다.

“살려주실 줄 알았는데요?”

에드는 무슨 말 하냐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살려줘 봐야 제 버릇 개 못줄 놈이다. 저놈 하나 살려줘서 피해 볼 사람들을 생각하면 죽여야만 했다.

아린은 죽은 글렌을 바라보다가 텅 빈 빈민가를 돌아보았다.

“여기에 텐크람이 있는 건가요?”

에드는 활의 시위에 화살을 하나 걸고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혹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까?”

아린은 잠시 눈을 감고 양손을 맞잡더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 그녀의 눈은 창공의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린은 빈민가를 돌아보다가 둥근 방패와 해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린이 손에든 방패와 해머에서 그녀의 신성력을 받아들인 것인지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니 저거 유물급이 아니라 성유물인가 보다.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가 많지 않다고 하나 신입 성기사가 들고 다니기에는 과분한 물건이다. 아론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제가 되어 있더라니, 그녀 또한 보통 성기사가 아닌가 보다.

과연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재능이다.

앞장서 걷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에드도 감각을 일깨웠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에 아린이 멈춰 서서는 방패를 앞으로 하고는 말했다.

“저쪽인 것 같은데 지하인가 봐요. 마기가 지하에서 느껴져요.”

자신의 거리를 재는 감각보다 그녀의 탐색 능력이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제가 앞장설게요.”

“텐크람은 굉장히 민첩합니다. 조심하세요.”

아린은 에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허름한 집으로 향했다. 아린이 대문을 해머로 가볍게 밀자 대문의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요란한 소리가 났음에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걸 보고 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신성력을 느끼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참을성이 크다는 얘기고, 좁은 지하에서 싸움이 난다면 민첩함이 큰 위력이 되리라.

아린이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녀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데보라는 중형 악마여서 큼직하니 때려잡기 편했겠지만, 이건 좁은 공간에서 기다리는 악마를 직접 만나러 가야 하는 일이니 절로 긴장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에드는 그런 아린의 뒤에서 용기를 심어줬다.

“뒤는 제게 맡기세요.”

좁은 공간, 민첩한 악마와 싸울 때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게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는 아린의 뒤를 에드도 시위를 한껏 당긴 채로 쫓아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기습해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아무런 공격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와서야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2미터 키에 다리는 새의 다리를 연상케 하고 양팔은 사마귀를 닮은 본래의 모습을 한 채 불룩 튀어나온 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새끼를 낳기 직전이었나 보다.

아린이 그 모습을 보고는 해머를 든 오른손을 어깨 뒤로 돌렸다. 아린의 손에 들린 해머가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고 텐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아린은 텐크람의 붉은 눈을 마주한 채로 그대로 해머를 던졌다.

휘리릭! 카앙!

한줄기 섬광처럼 날아갔던 해머가 텐크람의 왼팔에 맞고 튕겨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몸의 민첩함은 모르겠지만, 왼팔을 휘두르는 속도를 보니 확실히 텐크람이 얼마나 민첩한지 알 수 있었다.

에드는 시위를 당기고 있던 화살을 쏴봤다.

카앙!

역시나 일반 화살은 어렵지 않게 막아낸다. 지금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저것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아스트론의 개야! 죽여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라.”

아린은 전투에 돌입하고 나서는 허투루 대화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앞으로 내뻗었을 뿐인데 저 멀리 날아갔던 해머가 돌아와 그녀의 손에 잡혔다.

아린이 먼저 방패를 앞으로 한 채 돌진해 들어갔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방패를 전면에 두고 돌진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에드도 빙결의 화살집에서 두 개의 화살을 뽑아 들며 옆으로 이동했다.

지하실은 높이 4미터에 가로세로 15미터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이 정도 좁은 공간에서는 텐크람의 움직임을 제한해야 했다.

마침 아린이 돌진하며 시선을 잡아끌 때 에드의 화살이 텐크람의 배와 다리를 노렸다.

쩌엉!

방패를 들고 돌진하던 아린이 튕겨 나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쳐낸 텐크람은 자신의 다리에 박힌 화살을 내려다보았다. 아린을 쳐내고 배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막느라 다리로 날아온 화살을 막지 못했다.

화살이 박힌 순간 그 주위가 빠르게 얼어붙는 것을 보고 텐크람의 눈이 에드를 향했다.

“캬악!”

비명인지 분노의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른 텐크람이 몸을 일으켰다. 사마귀를 닮은 팔이 대충 3미터 내외를 간격으로 두고 있었는데 새끼를 낳을 시간을 벌 수 없어 보였다.

몸을 일으킨 텐크람은 이것들을 죽여서 다진 고기로 만든 후에 새끼를 낳을 생각이었다.

다리 하나가 얼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텐크람이 몸을 일으켰을 때 아린의 해머가 날아들었다. 날파리가 달려든다는 듯 간단히 팔로 쳐낸 순간 그 뒤를 따라 날아든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못 쳐낼 것도 없다고 여기고 쳐낸 순간에 팔이 부러졌다.

아린이 날려 보낸 것은 원형의 방패. 위력은 해머와는 달랐다. 회전하며 날아든 방패를 쳐낸 팔이 기형으로 꺾였을 때 화살들이 또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세 발의 화살.

텐크람은 화살을 쳐내면서 땅을 박차고 이동했다. 얼어붙은 다리는 짐이 될 뿐이었지만, 무기를 다 던진 성기사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에드는 일반 화살 세 발을 동시에 쐈다가 텐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속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노리는 것은 텐크람의 배.

새끼를 신경 쓰는 것인지 배를 향한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기에 아린에게 향한 텐크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공격이었다.

일곱 발의 연사가 줄줄이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들자 텐크람도 성기사를 죽이러 갈 수 없었다. 그러다가는 배가 뚫릴 위기라 어쩔 수 없이 멈춰서 팔을 휘둘러야 했다.

카카카카캉!

일곱 발의 화살을 간신히 쳐낸 텐크람은 뒤편에서 달려드는 아린을 느끼고는 황급히 돌아서며 팔을 휘둘렀다.

카앙!

아린이 검으로 텐크람의 팔을 막았다. 아린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좋은 것인지 텐크람의 팔을 한 손으로 막은 채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왼손으로 해머가 돌아오자 아린이 그걸 쥐고 텐크람의 팔과 힘을 겨루던 검을 기울여 흘려내며 접근해 해머를 휘둘렀다.

텐크람은 그 순간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그대로 아린을 뛰어넘으며 그녀의 등 뒤를 노리려던 텐크람은 솟구친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화살 한 발에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렬한 냉기가 팔부터 왼쪽 상반신까지 전부 다 얼려버렸다.

아린이 달려드는 순간 마력을 빙결의 활에 잔뜩 집어넣었던 에드의 공격이 성공했다. 아린은 몸이 얼어붙어 떨어지는 텐크람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퍼걱!

얼어붙은 텐크람의 왼쪽 상반신이 박살 났다. 아린이 재차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텐크람의 이마에 어느새 화살이 하나 날아와 박혀있었다.

그리고 냉기로 얼어붙은 텐크람에게서 생기가 사라졌다. 뒤로 넘어가는 텐크람을 보고 아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텐크람은 혼자서 상대했다면 쉽지 않았을 상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민첩이 빠른 텐크람의 다리를 봉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올 때 시선을 잡아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었을까?

아린은 새삼 에드의 대단함에 감탄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 아린의 눈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볼 수 있었다. 몸이 반응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날아오던 화살이 회전하며 그녀의 뺨을 스치고 그녀의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뒤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몸을 돌리는 아린의 눈에 텐크람의 배를 찢고 나왔던 1미터 남짓한 크기에 유독 긴 팔을 지닌 텐크람의 새끼 어깨에 박힌 화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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