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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4화 (4/202)

#4

도움

에드는 켈피의 혓바닥 때문에 처음 등장부터 그 간격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혓바닥에 화살을 꽂아 넣으며 더는 그걸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켈피의 간격이 눈에 띄게 줄었다.

켈피가 뒤룩 눈을 굴리더니 짧은 거리에서 돌진해 왔다. 아니, 돌진하려고 했다.

에드의 화살이 이미 켈피의 앞다리 무릎에 두 개 다 박히기 전까지는.

끼에엑!

켈피가 달려오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서 바닥을 굴렀다. 그렇게 구른 켈피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에드의 화살이 그 미간에 박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움찔 몸을 떠는 켈피에게 다가간 에드가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그 목을 잘라버렸다. 켈피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꿀럭꿀럭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소녀와 시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사가 눈앞에서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마부가 일격에 죽는 것을 보고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눈앞에서 너무 쉽게 해치우는 에드를 보니 마치 거짓말 같았다. 합을 짰다고 해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에드는 켈피의 커다란 머리를 내려다보며 단검을 고인돌 밖으로 내밀어 빗물에 피를 닦아냈다. 단검을 다시 허리띠에 끼워 넣은 에드는 켈피를 내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쉬운 상대였다.

켈피의 혓바닥은 기사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지만, 에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승부가 갈렸다.

에드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눈앞에서 쉽게 켈피를 잡았다고 해도 다가오는 에드를 본 소녀가 시녀의 등 뒤로 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는 자신이 할 말을 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했지?”

소녀는 그 말에 시녀의 옆으로 나와 앞으로 나섰다.

“난 베릴 남작의 차녀 엘리스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겠다. 나와 함께 영지로 간다면 충분히 보답해 주실 거다.”

잠깐 잊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 애새끼가 된다는 것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줘.”

엘리스는 무슨 말인가 싶어 에드를 바라보았지만, 에드의 시선은 시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아까 그 주머니 정도만 주면 되는데.”

시녀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이것 말인가요?”

“응. 그거.”

엘리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저건 그냥 여행 경비다. 고작 저 정도만 가지면 된다는 건가?”

에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달라는 대로 주기로 했고, 저만큼 달라고 했으니 그걸로 우리 거래를 끝냈으면 하는데.”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다가와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를 받아 쥔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그걸 품에 넣은 후에 벗어 놓았던 망토를 다시 걸쳤다.

후드까지 착용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엘리스가 물었다.

“뭐하는 거지?”

에드는 자신의 가방을 말의 안장에 걸었다. 고인돌 밑에 말을 데려다 놓아서 말이 무사했기에 곧장 떠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에드가 말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엘리스가 그제야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 잠깐만! 비도 오는데 어디를 가는 건가?”

에드는 고인돌 밖을 살폈다. 켈피가 죽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나가는 비인 건지 빗줄기가 줄어 있었다. 에드는 후드를 눌러쓰고는 말했다.

“이 밤을 시체와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떠나려고 하는 에드를 보고, 엘리스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안장에 매달아 놓은 가방을 잡고는 빠르게 말했다.

“정말로 이대로 떠날 생각인가?”

에드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말의 옆구리를 살짝 두드렸다. 말이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은 가방을 놓쳤다.

에드가 고인돌을 벗어나 빗줄기 속으로 들어갈 때 엘리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 도와다오!”

에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고인돌과 밖의 경계에 서서 돌아본 에드를 향해 엘리스가 빠르게 말했다.

“마차는 부서졌고, 마부도 죽었다! 말은 잡아 먹혔고, 호위 기사인 바델 경도 쓰러진 상황이다. 도와다오!”

에드는 그 말에 엘리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 선 시녀도.

고작 10살. 대화만 나누지 않는다면 귀족가의 소녀도 소녀일 뿐이다. 악마인 켈피는 잡았다고 하지만, 이들을 그냥 두고 간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만큼 험악한 세계다.

에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비가 쏟아지는 고인돌 밖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그냥 떠난다면 저 둘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기사 바델이 깨어난다면 그때 떠나도 되리라.

에드는 말에서 내려서는 엘리스를 돌아보았다.

“조건이 있어.”

“조건이 뭐지?”

“내가 도와주는 것은 바델 경이 깨어나거나 다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그때까지는 내게 말 걸지 말 것.”

“말을 걸지 말라니?”

“조건을 들어줄 건가?”

엘리스는 볼을 부풀렸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조, 좋아.”

“그럼 지금부터 시작.”

엘리스는 뭔가 할 말이 가득해 보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에드는 마부의 시체를 들어 밖으로 옮겼다. 고인돌 밖으로 나가자 말의 잔해가 눈에 띄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야무지게도 잡아먹어서 발굽 정도만 남아있었다.

마부의 시체를 멀찍이 던져놓고 고인돌로 돌아온 에드는 바델 경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커헉!”

바델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는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몸이 축 처졌다.

“바델 경?”

엘리스와 시녀가 기사에게 달려들어서 살피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출혈로 인해 죽은 것 같았다.

하긴 바위에 그리 세게 머리를 박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이 세계에서는 어차피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신관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바델 경!”

엘리스가 짤짤 흔들어 보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그가 대답할 리가 없었다.

에드는 엘리스의 옆에 앉아 바델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델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드는 엘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바델 경은 죽었다. 그만 흔들어.”

엘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겁에 질린 아이의 눈동자.

마부의 죽음과 자신을 지키던 호위 기사의 죽음은 받아들이는 크기가 다르겠지.

에드는 바델의 시체를 내려놓고는 물었다.

“묻어줄까?”

“···아니. 그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나를 호위해온 기사야. 그는 묘지에 묻혀야 해. 그렇게 해주고 싶어.”

엘리스가 에드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도와줘.”

대부분 귀족은 자식을 낳으면 유모 하나와 호위 기사 하나를 붙여준다. 그들은 마치 부모처럼 귀족가의 자식을 키운다. 그러다 보니 바델은 엘리스에게 있어 베릴 남작보다 더 아버지 같은 존재일 수 있었다.

바델의 실력이 시골 기사답게 형편없었다고 해도 그를 생각하는 엘리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도와줄 테니 이만 쉬어.”

에드의 시선을 받은 시녀가 그녀를 데리고 고인돌 한쪽으로 물러났다. 에드는 그들을 놔두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바퀴가 구덩이에 빠진 마차.

저들이 들어 올리지 못한 마차의 상황을 본 에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빗속에서 두 개의 랜턴이 다가오다가 기우뚱할 때만 해도 이렇게 일이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잠깐 엘리스의 눈빛을 떠올린 에드는 근처에 쓰러진 튼실한 나무를 가져다 대고 바퀴를 들어 올렸다.

지렛대의 원리로 바퀴를 들어 구덩이에서 빼낸 에드는 긴 숨을 토했다.

근력에도 투자하지 않았다면 이런 무식한 짓을 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렇게 마차를 구덩이에서 뽑아낸 에드는 말을 끌고 와 마차에 연결했다.

쌍두마차라 두 마리 말이 필요했지만, 한 마리로 끌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고인돌 아래로 들어가기에는 마차가 너무 커서 마차는 고인돌 밖에 세워놓고 말만 비를 피하게 세워놓았다.

엘리스는 자신들의 마차를 가지고 온 에드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부와 바델 둘이 붙어서도 구덩이에서 빼지 못했던 바퀴를 무슨 수로 뺐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물을 여력이 없었다.

“비가 그치면 출발할 테니 쉬고 있어. 바델 경의 시체는 마차에 넣어 놓을 테니.”

바델의 시체를 마차에 넣어 놓고 고인돌 아래에서 그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몸을 떨어야 했다. 엘리스는 시녀의 품에 안긴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있다가 에드를 돌아보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계약 조건이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입술을 꾹 깨물고 삼켜야만 했다.

에드는 엘리스의 노력이 짠해 보였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을 때 비는 그쳤다. 싱그러운 내음을 맡으며 에드는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비가 그쳤으니 마차 위에 바델의 시체를 올려서 밧줄로 묶고, 마차에는 엘리스와 시녀를 태웠다.

그리고 마부석에 올라 마차를 모는데 아무래도 쌍두마차를 한 마리가 몰다 보니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구덩이를 피하며 마차가 조금씩 나아갔다. 그렇게 마차를 몰던 중에 에드는 종종 활을 집어 들고 화살을 날렸다. 숲에서 악마 켈피를 죽였으니 이제 마물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악마가 있을 때는 기도 못 피는 것들이지만, 악마가 죽고 나면 미친 듯이 날뛴다.

에드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나 만약 어제 엘리스를 그냥 두고 떠났다면 아마도 저런 마물의 한 끼 식사가 되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다가오는 마물들을 죽이며 이동한 마차는 해가 머리 위에 떴을 때는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나니 저 멀리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성벽이 둘린 것을 보면 아무리 작아도 마을 수준은 넘어섰다. 생각해 보니 엘리스는 고작 호위 기사 하나 데리고 숲을 이동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녀의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말.

“엘리스.”

에드의 부름에 마차 밖으로 엘리스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보고는 안도하며 말했다.

“햄튼시야. 아버지의 영지.”

예상대로 베릴 남작의 영지였다. 느리긴 해도 마차는 결국 햄튼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가 햄튼시에 도달하자 병사들이 황급히 다가왔다. 마차를 천천히 세우자 엘리스가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

병사들이 놀라서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그녀는 귀족 아가씨 특유의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아버지는 저택에 계셔?”

“예. 지금 저택에 계십니다.”

엘리스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집까지 부탁해도 돼?”

여기까지 왔는데 마차에서 말을 떼어내서 그냥 떠날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해가 기울어지기도 했으니 집에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귀족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지만, 수틀리면 뭐 이마에 화살 하나 박아주고 떠나면 될 일이다.

성문을 지나 햄튼 시로 들어가니 시녀가 마부석에 올라 길을 가르쳐 줬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니 대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영지가 그리 크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정도 대저택에 살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부자인 걸 보니 보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그냥 주머니만 받고 떠났으면 속이 쓰렸을지도 모르겠다.

대저택으로 다가가니 병사들이 문을 열어줘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저택 앞까지 마차를 몰고 가니 중년 사내 하나와 그의 뒤에 선 기사, 그리고 시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앞에서 마차를 세우니 엘리스가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엘리스는 그대로 달려서 중년 사내의 품에 안겼다.

“무슨 일인 거냐? 바델 경은 어디 가고. 저 친구는 또 누구냐?”

중년 사내 베릴 남작의 물음에 시녀가 마부석에서 내려서는 빠르게 설명했다.

“숲에서 악마 켈피를 만나 마부와 바델 경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가씨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저희 목숨을 구해주신 것뿐만 아니라 바델 경의 시신도 운구해주었습니다.”

시녀가 얘기하는 동안 에드도 마차에서 내렸다. 베릴 남작은 시녀의 말을 전해 듣고는 엘리스의 등을 토닥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 난 베릴 남작이오.”

“에드라고 합니다.”

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에드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자 베릴 남작이 웃으며 물었다.

“딸아이의 생명의 은인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고, 내 보답할 테니 오늘 저녁이나 함께합시다.”

그냥 보상만 받고 떠나고 싶지만, 저녁 초대를 거절하면 돌변할지도 몰랐기에 순순히 응했다.

“영광입니다.”

베릴 남작이 엘리스를 데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뒤를 따르던 기사가 말없이 에드를 바라보았다. 기사들 특유의 여행자를 경시하는 저 눈빛. 오랜만에 받아 본다.

마주 바라보고 있으려니 기사가 먼저 시선을 피하고 멀어졌다.

그러게 뭘 꼬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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