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2화 (2/202)

#2

1년

베개 밑에 넣어 놓았던 단검을 뽑아 어둠을 겨누며 벌떡 몸을 일으킨 석호는 어둠 속을 노려보다가 짜증을 담은 긴 숨을 토해냈다.

“아, 쉬발. 꿈.”

석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쓸어올렸다. 1년 전 그날의 일을 악몽처럼 꾼다. 그 간격이 길어지고 있어서 방심했다가 또 꿈을 꾸고 말았다.

석호는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보이는 것은 마을의 야경. 시끄럽게 구는 술 취한 이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창가에 걸터앉아 소란스러움에 귀를 기울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식은땀이 식어가자 석호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현실의 꿈을 꾸어 봤자 그건 마음을 무디게 할 뿐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는 하등 필요 없는 기억.

석호는 창문 아래에서 벌어진 소란스러움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곳이 현실이고, 자신은 이곳을 살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창가에서 내려왔다.

석호는 가죽 갑옷을 입고, 끈을 조였다. 손목에 가죽 완갑도 착용하고 비도와 단검집이 있는 벨트를 허리에 찼다. 그 위로 가죽 코트를 걸쳤다.

안쪽에 비도가 잔뜩 꽂혀 있어 방호복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는 코트를 걸치고 전통을 어깨에 멨다. 마지막으로 벽에 기대 놓았던 합성궁을 꺼내 왼손에 든 석호는 창밖으로 나와 여관의 뒤쪽에 매어놓은 말에 올라탔다.

말을 묶은 끈을 잘라내고 말을 몰아 목책으로 달려갔다. 목책을 지키고 있던 자경단원들이 다가오는 석호를 보고는 앞을 막았다.

“어디 가십니까?”

“나갈 일이 있습니다.”

“밤에는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석호는 고민하지 않고 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보였다.

“급한 일이라서요.”

자경단원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이 문을 열려면 저희 둘이 힘을 써야 하는데···.”

석호는 고민하지 않고 은화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자경단원들이 씨익 웃고는 문을 열어줬다. 석호는 그들에게 은화를 던져주고는 말을 달렸다.

마을을 벗어나 말을 달린 석호는 10분 정도 달린 끝에 강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트라비아 왕국을 가로지르는 아인 강의 한 줄기였는데 그곳에 도달한 석호는 말에서 내려 안장에 달아 놓았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는 강가에서 떨어져 근처 풀숲에 몸을 숨긴 채 화살을 하나 꺼내 들어 활의 시위에 걸었다.

아인 강을 오가는 악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준비해 왔다. 상류 쪽 강가에서 야영하던 상단 무리가 휩쓸렸는데 살아남은 이가 그 악마가 물속에서 나타났다고 했다.

뱀을 닮은 악마에게서 살아남은 것은 고작 둘. 그들을 통해서 전해진 악마에 대한 소문으로 사람들이 강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악마에게는 현상금이 걸렸다.

상단의 호위단도 있었는데 모조리 죽은 것을 보면 보통 놈은 아닐 것 같았다. 강가에서 목을 축이는 말이 문득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고, 석호는 본능적으로 활의 시위를 당겼다.

‘온다.’

촤아악!

과연 예상대로 물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검은 뱀. 하지만 먹이를 먹는 모습은 뱀과 달랐다.

검은 뱀이 지나가면서 물어 뜯어서인지 말의 머리가 사라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푸들거리는 말이 쓰러질 때 석호는 빳빳하게 고개를 든 뱀의 형상을 한 악마를 볼 수 있었다.

악마의 시대 1에서도 강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악마 헤펀트. 그러나 악마의 시대 1에서 나오는 녀석은 커봐야 10미터 정도. 그런데 저건 물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부분만 해도 충분히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우득. 우드득.

쓰러지는 말의 사체를 보며 말머리를 씹던 헤펀트가 꿀꺽 삼키고는 남은 것들을 먹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있었다. 처음은 사냥이었지만, 이제는 식사할 시간.

그렇게 헤펀트가 고개를 숙였을 때 석호는 시위를 놓았다.

쐐액!

헤펀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았는지 고개를 틀었지만, 피하기에는 늦었다. 헤펀트가 눈을 감았다.

헤펀트의 가죽은 질기고 단단하기로 유명했다. 눈꺼풀만 해도 어지간한 공격은 튕겨낸다.

퍽!

그러나 화살은 헤펀트의 눈꺼풀을 단숨에 뚫었다.

끼아악!

비명을 지르는 헤펀트를 보면서 석호는 말없이 화살을 시위에 걸고 연달아 쏘아냈다. 저렇게 커다란 덩치에 방어력만 믿는 녀석들은 오히려 상대하기 쉽다.

퍼퍼퍼퍼퍽!

다섯 발의 화살이 화살깃만 보일 정도로 깊숙하게 박혔다. 하지만 워낙에 큰 덩치라서 화살 몇 발 박는 정도로 죽을 놈은 아니다.

헤펀트가 하나 남은 눈으로 석호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덮쳐왔다.

석호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헤펀트의 머리가 석호가 있던 곳에 내리꽂혔다. 그 날카로운 이빨이 그대로 바닥을 물어뜯었는데 물렸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일이다.

하지만 간격을 보는 석호는 그걸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거리를 벌린 석호의 화살이 하나 남은 눈에 꽂혔다. 그것도 정면에서 꽂힌 덕에 눈알을 뚫고 단숨에 뇌를 파고들었다.

재차 날뛰려던 헤펀트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미끄러져 온 헤펀트가 멈춘 곳은 석호의 발 바로 앞이었다.

석호는 그런 헤펀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악마 녀석들은 그냥 죽어주는 법이 없지.”

석호는 벨트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서 그대로 헤펀트의 미간에 꽂았다.

끼아아악!

헤펀트가 괴성을 지르며 요동쳤지만, 석호는 단검을 놓지 않았다. 헤펀트는 잠시 요동치는가 싶더니 쿵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석호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경험치를 느끼고는 그제야 헤펀트가 완전히 죽었음을 깨달았다. 석호는 헤펀트의 머리에 박아 넣은 단검을 뽑아서 그 목을 잘라냈다.

워낙에 두꺼운 목이라 단검으로 잘라내는 데 애를 먹었지만, 이 녀석의 현상금은 금화 다섯 닢이다. 어지간해서는 악마들에게 잘 붙지 않을 수준의 현상금.

상단 하나를 박살 내지 않았다면 붙지 않았을 현상금이다.

그렇게 헤펀트의 목을 잘라낸 석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헤펀트의 머리 무게가 상당한 데 말이 죽었다.

“이걸 어떻게 옮기지?”

석호가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반사적으로 화살을 시위에 걸며 뒤돌아섰다. 가만히 강가의 풀숲을 겨눈 채 석호가 입을 열었다.

“나와.”

석호의 말에 풀숲에서 한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을 들어 보인 여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에드님.”

석호는 이쪽 세계에 떨어진 후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 밝힐 때 워 로드 게임의 최애 캐릭터인 에드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구냐?”

“악마 사냥꾼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에드는 활의 시위를 놓았다.

쐐액!

여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화살이 뒤편의 나무에 박혔다. 여인은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핏물에 몸이 굳었다. 설마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화살을 쏠 줄은 몰랐다.

에드는 군말하지 않고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보고 여인은 빠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트라비아 왕국 특무대 아칼란의 소나라고 합니다.”

에드는 그 소개에도 화살을 거두지 않았다.

트라비아 왕국의 특무대 아칼란.

악마의 시대 1부터 유명한 집단이다. 트라비아 왕국만이 아니라 로젠타로 대륙 전역에 퍼져 있어서 어떤 캐릭터로 해도 한 번 이상은 엮이는 곳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트라비아 왕실을 위한 것이지만, 악마 척살에 한해서는 그들도 대의를 같이 한다. 적어도 악마의 시대 1에서는 그랬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서 에드도 화살을 거두지 않았다.

“용건은?”

소나는 에드의 뒤편에 떨어져 있는 헤펀트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상금을 타러 가실 건가요?”

“그래.”

“그렇다면 그 현상금은 저희가 대납하도록 하죠. 악마의 사체도 저희가 운반하겠습니다.”

에드는 가만히 소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사체 따위 관심도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 악마의 시대 2의 엔딩을 보는 것.

주인공 중 하나로 들어왔다면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며 엔딩을 보기 쉬웠겠지만, 자신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가졌던 이 몸의 주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전장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던 레인저의 시체 중 하나였으니까.

엑스트라 중에서도 엑스트라.

그래놓고 시시하지 않을 거라고 하다니 얼마나 열이 뻗쳤던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레벨 업 시스템과 스킬을 얻을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칼란과 만났다. 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메인 퀘스트와 연관이 있을 자들. 어쩌면 이 만남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에드는 화살을 전통으로 돌리고 활을 내렸다.

“악마의 사체를 원한다면 10골드.”

현상금을 대납해주기 위해서 아칼란의 요원이 움직일 리가 없다. 아마도 저들의 목표는 악마의 사체일 테니까. 이유는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에드의 제안에 소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헤펀트 중에서도 대형에 속하는 저 악마의 사체의 가치는 적어도 50골드 이상.

운반과 해체 작업등에 들어가는 운임을 제하더라도 남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이 에드라는 남자. 벌써 알려진 것만 해도 20이 넘는 악마를 처치해 왔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악마 사냥꾼.

아칼란에서도 주의 깊게 살피던 인물이다. 접촉은 이번이 처음. 헤펀트가 등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처리하려고 왔는데 직접 싸웠다면 꽤 여럿이 다치거나 죽었을 정도로 위험한 놈이었다.

그런데 홀로 헤펀트를 처리했으니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소나는 품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서 던졌다.

에드는 날아오는 주머니를 받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13갠데?”

잡아채는 순간 그 무게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거 금화 13닢이다.

에드의 물음에 소나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나머지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뜻에 드리는 거예요.”

에드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쪽 세계에서는 정말로 돈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특히나 궁수인 자신은 돈을 워낙 많이 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 중 활과 단검만 명품 급이고, 나머지는 아직도 일반 무기를 쓸 정도다. 더 강해지려면 상황에 맞는 화살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화살도 많이 구해야 했다.

그러니 돈을 마다치 않았다.

“혹시 말이 있나?”

소나는 에드의 물음에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하나 내드리죠.”

소나가 손짓하자 뒤편에서 곧 말 한 마리를 끌고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가죽을 기워 만든 가면에 눈쪽은 유리를 끼워 넣어 얼핏 보면 방독면을 떠올리게 하는 가면이었다.

아칼란 고유의 가면.

소나는 가면을 안 쓴 것을 보니 적어도 팀장급 이상인가 보다.

에드는 사내가 내준 말에 올라타고는 소나를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머리에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 헤프게 웃고 있지만, 아칼란의 요원이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여인이다.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잡아 먹힐지도 몰랐다.

에드는 괜히 말 걸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한 번의 접점이 생겼다는 것은 저들도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었으니까.

악마의 시대 2에 들어온 지 1년. 드디어 메인 퀘스트의 실마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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