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화 (1/202)

#1

프롤로그

<승리>

단 두 글자.

그걸 보면서 헤드셋을 벗은 한석호는 좌우에서 달려든 팀원들을 보고는 책상을 발로 밀어 찼다. 의자가 뒤로 주룩 밀리면서 팀원들이 우당탕 넘어지는 것을 보고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워 로드 챔피언 쉽! 대망의 결승전 3승 전승으로 한국이 우승 트로피를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주역! 신궁 한석호씨를 모시겠습니다!

동료들이 달려들 때 그들을 피해 도망치던 한석호를 기다렸다는 듯 MC 전도환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한석호는 그가 다가오는 기세에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뒤에서는 같은 팀원들이 등을 떠미는 중이었다. 특히 리더인 강승태가 미는 힘이 너무 강해서 피하지도 못했다.

=한석호씨! 원딜 세계 랭킹 1위에 어울리는 시합이었습니다. 노 데쓰 12킬! 특히 마지막 영혼의 한타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컨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상대의 공격에 맞지 않던데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한석호는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그거야 제 간격으로만 싸웠으니까요.”

=역시 신궁! 상대가 고른 원딜 캐릭인 베릴과 석호씨가 고른 에드는 사거리가 1차이 인 것 알고 하시는 말이죠?

“그러니까 한 대도 맞으면 안 되죠. 그걸 왜 맞습니까?”

담담히 대꾸하는 석호의 모습에 전도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 이 맛이죠! 이 맛에 석호씨 인터뷰하는 거죠. 그러니까 한 대도 맞으면 안 되죠! 그걸 왜 맞습니까?

뒤에서 팀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며 석호는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성격 잘 알면서 인터뷰를 맡긴 탓이다.

자신은 입에 발린 말 따위 하지 못한다. 거짓말도 못 한다.

눈에 보이는데 어쩌겠는가? 상대의 공격이, 그 간격이.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말을 인터뷰에서 했다가 처음에는 온갖 욕을 먹었지만, 이제는 팬들도 그러려니 한다.

세계 대회 우승 기념 파티에서 한석호는 혼자 샴페인을 비우고 있었다.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던 한석호의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석호도 굳이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홀로 오늘의 승리를 만끽하다가 창문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세계를 재패했다. 이것으로 5회째. 다시는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간격을 보는 자신에게 있어 게임은 언제나 시시했다. 그냥 가장 잘하기에 돈이나 벌자고 뛰어든 것이었는데 이제 돈도 많이 벌었고, 다시는 깨지 못할 거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러니 이제 이 시시한 판을 떠날 때가 됐다.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불쑥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시해서요?”

석호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파티에서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이만한 미모의 여인이었다면 어떻게든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그런데 그녀의 외모보다 관심을 끈 것은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옆에 서서는 창문에 비친 석호와 눈을 마주쳤다.

“당신의 재능이라면 시시할 만도 하죠.”

“저 아세요?”

여인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간격이 보이죠?”

석호는 미간을 굳힌 채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석호는 그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간격은 한 걸음 정도다. 그래서 그 거리를 물러났는데 아직도 그녀의 간격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확실히 느꼈다. 이 여자의 간격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넓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하는 석호에게 여인이 한 걸음 다가왔다.

등골이 오싹하고 솜털이 오소소 일어났다.

“혹시 악마의 시대라는 게임 해봤어요?”

석호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시대는 15년이나 된 게임으로 자신의 인생 첫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었다.

“이번에 악마의 시대2를 만들었어요.”

그녀는 석호가 든 샴페인 잔에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말했다.

“시시하진 않을 거예요.”

잔이 부딪친 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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