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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로 살아남기-148화 (148/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148화>

148. 고통과 영광 (2)

3357점.

나는 새롭게 상태창에 나타난 오러 수치를 읽었다.

어젯밤, 에레보스 본성의 뒤뜰에서 드래곤 하트의 모든 기운을 흡수한 결과였다.

점수가 3000점을 넘기며 특성에도 변화가 있었다.

-[세계의 그림자]-

등급: 신화

설명: 효율이 추가로 100%만큼 증가합니다. 응축된 오러가 차원의 본질에 영향을 줍니다. 당신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인기척을 거의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오러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60점씩 증가하며, 전설 이하의 영약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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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귀와 비슷한 경지.

모든 능력치가 단번에 상승하며, 이미 생물체의 궤를 벗어난 신체는 훨씬 단단해졌고 가벼워졌다.

단순히 근력만을 따져도 검성의 능력을 물려받은 클리프를 상회하지 않을까.

똑, 똑.

새로 얻은 힘을 갈무리하는 사이.

마침 내가 부른 손님들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상태창을 닫고서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아침 일찍 불러서 미안해.”

“인페르노 영지와 관련된 일이라며? 그러면 바로 달려와야지.”

“클리프 말이 맞아. 거기는 아직도 마족들이랑 싸우고 있잖아?”

클리프와 스칼렛.

둘은 의지를 불태우며 방으로 들어왔다.

뭐, 얘네야 판게아 대동맹과 관련된 일이라면 빼놓을 수 없지.

다음으로, 그들과 함께 찾아온 사람은 펠리스였다.

“아침 일찍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의 부탁도 아니고.”

펠리스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나는 영지에서 수확한 찻잎을 우려내 셋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바나가 원기 회복에 좋다고 하더라고.”

“……맛은 없네.”

“응? 나는 맛있는데. 씁쓸한 맛의 끝에서 달짝지근한 느낌이 살짝 나서 좋아.”

“너는 맛없는 음식이 없잖아. 그래도 몸에 좋다니 잘 마실게.”

둘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차를 맛보았다.

펠리스는 차를 홀짝이다가 갑자기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주 노골적으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더 강해졌구나. 하룻밤 사이에.”

“아, 어쩌다 보니까요.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존재감이 더 희미해진 느낌이 들기에 그럴 거라는 느낌이 왔지.”

감각 하나는 귀신 같네.

하긴 펠리스의 기운도 이제 거의 대악마급에 가까워졌으니.

나는 미소로 답을 대신한 다음, 시타델에서 지급한 통신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모인 3명도 가진 물건. 셋의 시선은 곧바로 나에게 집중되었다.

“판게아 대동맹에서 요청이 왔어. 아직 림보 영지와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모양이야.”

“이번엔 내가 가겠다.”

펠리스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혼자서 말하길, 검에 피를 묻힌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나 뭐라나.

한 명은 결정이 되었고 나는 무조건 이번 지원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한 명은 남아야 하는데, 둘 중에 누가 남을래? 로시난테가 있으니까 자리를 비우는 건 길지 않을 거야.”

나는 클리프와 스칼렛은 번갈아 보며 물었다.

펠리스는 결사단의 대부분이 여기에 있지만, 이 둘은 대동맹에 아는 사람이 많다.

둘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내가 갈래!”

“나는 빠질게.”

“앵?”

클리프의 빠른 포기.

너무나도 쉽게 결정이 나니 오히려 스칼렛이 더욱 놀랐다.

반응을 보니 시리엘과 엘프들을 만날 자신이 없는 모양이네.

나는 더 이상 이유를 캐묻지 않고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잘됐네. 클리프, 너는 여기에 남아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줘.”

“그래, 통신구는 나한테도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 근데 정말 괜찮겠냐?”

“뭐가?”

“아니, 종족 대표들 말이야. 어제 다들 분위기가 안 좋던데.”

종족 대표들과의 문제.

국밥이가 웬일로 눈치도 좋게 그 부분을 짚었다.

“분위기야 안 좋았지. 내가 대표들을 너무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상황이 상황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갑자기 바뀌려니 모두 고생이지. 왜? 내가 없는 동안 선생님 흉내라도 내려고?”

“야! 내가 그런 재주가 어딨다고.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맨날 너만 이리저리 고생하잖아.”

클리프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국밥이는 내가 처음 비밀을 말했을 때 조금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었다.

당연한 일이다. 본인을 억지로 영웅으로 세워놓은 사람을 원망하는 건 당연하니까.

‘지금은 조금 변한 것도 같지만.’

물론, 그 당시에도 나를 이해한다고는 말했지만.

아무래도 어색한 느낌이 감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요새는 그런 위화감이 사라지고 이전처럼 편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도와주고 싶다고? 그러면 일단 서류 업무부터 시작해서, 어디 보자.”

“참나, 이제는 아예 대리인 역할까지 시키네.”

“그만큼 너를 믿는다고 이야기지.”

“믿기는 무슨. 개척지에 있을 때부터…….”

어쩌고저쩌고.

클리프는 맛이 없다던 차를 쭉 들이켜며 궁시렁거렸다.

“후후, 다들 아직 애들이란 말이야.”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스칼렛이 고개를 저으며 그리 말했다.

여기서 제일 애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너무 우습잖아.

나와 클리프는 언쟁을 그만두고,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허탈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실컷 날뛸 수 있어서 좋겠군.”

그 가운데.

펠리스가 태연하게 웃으며 살기 어린 말을 늘어놓았다.

* * *

흑과 백의 전장.

리버티 교단의 사제들이 내린 축복이 성기사의 몸을 휘감았고, 흑마법사들의 저주가 그 위에 뿌려졌다.

음산한 마기와 햇살과 같은 신성력의 혈투는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엉클 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모두 이를 악물고 버텨라!”

한 고위 성기사가 성벽을 타고 올라온 마족을 베며 외쳤다.

솔선수범하는 상관의 외침에 다른 성기사들의 눈에도 독기가 서렸다.

신의 뜻으로 하나가 된 자들. 그들은 어느 나라의 군인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헌신적인 군인이었다.

방어선의 최선봉에 있는 요새.

리버티 교단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 요새를 지켜냈다.

곁에 있는 것이라곤 잠시 몸을 숨길 성벽과 체력이 고갈된 동료가 전부.

이곳은 대동맹이 구축한 방어선에서 툭 튀어나와 있었고, 마족들은 몇 주간의 전투 끝에 요새를 점령할 방법을 찾아냈다.

포위전.

그 간단하고 무식한 방식은 꽤 효과적이었다.

방어선에서 떨어진 덕분에 리버티 교단의 요새에 도움을 줄 아군은 없었다.

만약 요새를 맡은 세력이 신념으로 똘똘 뭉친 교단이 아니었다면, 이미 이 요새는 마족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었다.

“부상자입니다!”

요새의 내부.

성기사 여럿이 들것에 실린 동료를 이끌고 치료소로 쓰이는 건물로 들어왔다.

안에서 환자를 돌보던 치료사가 일어서며 침착하게 물었다.

“상태가 어떻게 되죠?”

“둘은 가벼운 출혈이고, 하나는 뼈가 부러져서 살을 뚫고 튀어나왔습니다.”

“경상 환자는 입구 근처에 두시고. 중상 환자는 안쪽으로…….”

치료사는 끝까지 말을 내뱉지 못했다.

날개를 이용해 성벽을 뛰어넘어 요새 내부로 들어온 가고일 때문이었다.

키예애애액!

단단한 신체가 장점으로 꼽히는 중급 마족.

가고일 십여 마리가 일제히 괴성을 날아들었다.

그들은 뾰족한 이빨과 손톱으로 무장한 채 치료소를 노렸다.

“가고일이다! 모두 도망쳐!”

“부상자들은 어떡하고, 누가 좀 도와주세요!”

“끼야아악!”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치유 사제들.

그들도 나름의 호신술은 배웠으나, 가고일처럼 중급 마족을 처치할 수단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파아아앗.

어디선가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백에 가까운 빛이 주변을 물들였고, 마족을 포함한 모두가 그 강렬한 빛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사람은 단 하나였다.

“씨발 개새끼들. 우릴 여기에다가 처박아?”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의 여인.

소녀의 티를 벗고 거의 성인에 가까워진 마틸다가 걸쭉하게 쌍욕을 내뱉었다.

유력한 교황 후보가 입에 담을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나서서 꼬집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신이고 자시고. 여기서 다 뒤지게 생겼네.”

마지막 말은 들었는지 치료소의 사제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여태까지 치밀하게 유지한 마틸다의 이미지.

그 선량함의 대명사는 인페르노에 들어와 전쟁을 치르며 심각한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물론, 그녀의 압도적인 신성력 덕분에 다른 소리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자자, 다들 지쳐서 환청이 들리나 봅니다. 그치 마틸다?”

마틸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치료소 안으로 들어온 남자.

그녀의 호위기사로 불리는 조엘이 능청스럽게 말하며 치료소의 사제들을 살폈다.

“아, 음. 다들 힘들어서 그렇죠. 우선 부상자들을 제 근처로 모아 주세요.”

정신을 차린 마틸다는 평소의 자상한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냈다.

뒤이어 그녀의 기도가 치료소 내부에 울려 퍼지자, 이번에는 따스한 신성력이 부상자에게 깃들었다.

경상은 완치, 중상도 완치. 치명상은 경상 정도로.

“뼈, 뼈가 붙고. 상처가 전부 나았어.”

최근에 치료소에 들어온 부상병이 팔을 휘두르며 놀라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통에 신음하고 있던 자들도 모두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엉클 샘이 내려 주신 신의 사도가 아닐까.

모두의 뇌에서 조금 전의 폭언이 자동 삭제되어 버렸다.

“자, 이제 동쪽 성벽으로 가자.”

“단 몇 초도 쉴 시간이 없네. 아저씨는 괜찮아?”

“나야 돌아다니면서 계속 네 축복을 받고 있잖아. 어서! 쉬고 있을 틈이 없어.”

“다, 담배 한 개비라도.”

“빨리!”

조엘이 마틸다의 손을 이끌고 치료소에서 나왔다.

마틸다는 끌려가면서도 사제복 안에서 기어코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요새의 교단원이 모두 그 광경을 보았지만, 아무도 마틸다의 일탈을 지적하지 않았다.

“내가 환각을 다 보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냄새도 진짜 담배 냄새 같잖아?”

“최근 2주 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그럴 만도 하지 뭐.”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보내던 성기사들은 모두 본인의 눈과 코를 탓했다.

아무렴, 특히나 쾌락과 향음을 멀리하기로 유명한 교황 후보께서 그런 짓을 저지르겠나.

격전을 치르는 탓에 모두 저런 사소한 기현상에 심력을 쏟지 않았다.

“씨발! 아주 미친 듯이 밀려오네!”

동쪽 성벽에 도착한 직후.

마틸다는 끝도 없이 펼쳐진 성벽 아래를 보며 신성력을 펼쳤다.

그녀의 축복이 마족들을 뒤덮자, 중급 이하의 마족들이 순식간에 분해되어 사라졌다.

마틸다는 누군가의 딴지가 없자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왜 대답이 없어.”

“여기도 바빠서 그렇지!”

조엘은 그녀의 곁에서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푸른색 아지랑이, 그것을 검에 덧씌운 조엘의 검은 수월하게 마족들을 처리했다.

마틸다는 그 모습을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지금 보니까 아저씨도 엄청나게 강해졌네.”

“너를 따라다니려면 아직 멀었다.”

조엘은 이제 2번째 벽을 목전에 뒀다.

계기만 생긴다면 가로막고 있는 벽을 뛰어넘을 터.

마틸다는 조엘의 얼굴을 살피고서 성벽 위의 성기사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이대로는 끝도 없겠어.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다시 제자리야.”

“그러면 어떡해. 사람들을 데리고 필사의 탈출이라도 해?”

“힘들겠지. 아마도.”

마틸다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부조리한 신성력으로도 요새 병력의 5%를 잃고 말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살려 낼 수 없으니까.

교황의 신성력을 뛰어넘었다는 평가에도 무력감은 여전히 마틸다를 괴롭혔다.

“도대체 언제까지…….”

마틸다가 혼잣말을 뇌까리는 순간.

번쩍! 북쪽 하늘에서 강렬한 섬광이 요새 외부 어딘가에 내리꽂혔다.

성기사들이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조엘도 눈살을 찌푸리며 해당 장소를 쳐다보았다.

“마틸다.”

그리고 서서히 입을 벌리며 절망에 빠진 소녀에게 말했다.

“수고 많았어. 이제 우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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