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105화 (105/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105화>

105. 검귀의 50가지 그림자 (2)

자유 무역 연합의 세컨드 시티.

중요한 무역로로 활용된 이 도시는 요새 더욱 크게 몸집이 불어났다.

도시의 경계에 조병창이 생겨났고, 그 주변으로 새로운 거주지와 상권이 들어섰다.

그 주변에는 시타델에서 파견 온 마법사와 공학자, 그리고 그들의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스칼렛, 이리로 와 봐!”

“어쩐 일이세요. 엘리스 씨?”

“내 전용 슈트가 완성됐대!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

“정말요? 그러면 당장 가야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날렵한 신체의 단발머리 여자는 스칼렛을 데리고 한 구역으로 갔다.

그곳에는 ‘파워 슈트’라고 새롭게 명명된 기동 갑주의 진화 형태가 전시되어 있었다.

크기는 일반적인 사람보다 살짝 큰 정도, 인체 공학적 설계로 착용감도 크게 개선된 신제품이었다.

가장 중요한 성능은 연방의 것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날렵하게 생겼지?”

“그렇네요. 색깔도 예쁘고 체형도 딱 맞아요.”

“응, 이거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스칼렛은 엘리스라는 여자의 파워 슈트를 보며 축하해 주었다.

두 사람이 슈트 시승식을 하는 동안.

통상의 기동 갑주를 크기에서 압도하는 파워 슈트가 두 여인에게 다가갔다.

기이잉, 쿵! 큰 소리를 내며 등장한 거대한 슈트에 두 여인이 깜짝 놀랐다.

“깜짝이야!”

“알렉스 씨, 슈트는 마음에 드셨어요?”

“최고인걸. 역시 스칼렛을 따라오길 잘했어.”

철컥, 철컥.

슈트의 몸체가 벌어지며 안에서 거구의 사내가 나왔다.

그의 기체는 마나나 오러로 운용되는 다른 파워 슈트와는 달랐다.

알렉스의 슈트는 전기를 통해 운용되었다.

간소한 느낌의 엘리스와는 다르게, 거대한 슈트에는 여러 종류의 무기가 달려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데이브 회장님께서 널 찾으시던데.”

알렉스는 본인의 기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들은 스칼렛과 같이 공부한 동문이었다.

이전에 처음 시타델에 갔을 때부터, 최근 4년 사이에도 룬덴에서 생활한 친구들이기도 했다.

“요새 통 바쁘셔서 얼굴도 못 봤는데. 알겠어요, 저 그러면 갔다 올게요!”

스칼렛은 엘리스와 알렉스를 두고 조병창을 나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길, 염동력을 통해 날아오른 그녀는 도시를 가로질러 탑처럼 높이 쌓은 빌딩으로 갔다.

세컨드 시티의 메인 타워. 스칼렛은 1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곧바로 최상층으로 날아갔다.

“압…….”

딸을 위해 특별히 설치한 스카이라운지.

스칼렛은 최상층에 마련된 정원에 안착하고, 그녀의 아버지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데이브는 마법사 로브를 입은 사람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시타델의 대마법사, 스칼렛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 스칼렛. 거기 있지 말고 들어오거라.”

“스칼렛 양,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로빈과 데이브가 손짓하며 안으로 불렀다.

스칼렛은 꾸벅 허리를 숙이며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시타델과 록펠스 그룹은 근 4년 동안 아주 끈끈한 협력 체계를 이뤄냈다.

“시타델에서 네가 부탁했던 사람들의 교육이 끝났다고 하더구나.”

“스칼렛 양이 추천한 사람 중에 특출 난 사람이 많았습니다.”

둘의 주제는 인적 교류와 관련된 일이었다.

록펠스 장학생, 스칼렛은 판게아에 흩어진 십수 명의 사람을 시타델에 소개했다.

그들은 주로 특정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특히 파워 슈트 제작에 큰 공헌을 한 ‘스티븐슨’이라는 장학생이 유명했다.

그는 모든 공학 장치를 단숨에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설계자] 텔런트를 가지고 있었다.

“아뇨, 전부 루카가 알려 준 사람들이에요.”

사실이었다.

행동에 옮긴 사람이 스칼렛이었을 뿐.

판게아 각지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준 사람은 루카였다.

그리고 두 아저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칼렛. 사실 특히 너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단다.”

데이브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딸을 보았다.

좋은 소식이라니. 다른 장학생들이 또 엄청난 세웠다는 건가?

스칼렛은 정말 모르겠다는 순수한 표정을 만들었다가, 이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 아, 그러니까. 지금 시타델에, 제가 아는 그.”

“공작 전하. 이러다가 제 여식이 언어를 잃고 말겠습니다.”

“하하하! 로빈, 너무 웃기는데, 조금만 더 놀리자.”

로빈은 여전히 혼잣말을 하면서 웃었다.

그러더니 품에서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스칼렛에게 건넸다.

“채널은 이미 맞춰 놓았습니다. 어서 말해 보세요.”

“아, 감사합니다! 공작 전하.”

수정구를 건네받은 두 손은 어쩔 줄 모르고 떨어댔다.

데이브의 얼굴은 복잡하고 미묘했다.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번뇌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스칼렛은 이전에 들었던 대로 수정구에 대고 입을 열었다.

건너편에서는 아직 말이 없었다.

설마 두 아저씨가 나를 놀리려는 건가.

스칼렛은 토라진 얼굴로 두 아저씨를 째려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저쪽에서 넘어온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 버렸다.

“그거 내 전매특허야. 마음대로 쓰지 마.”

그토록 기다리던 루카의 목소리였다.

* * *

스칼렛과의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풍경이 많이 뒤바뀐 넓은 평원을 둘러보았다.

한때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던 땅에는 곡식이 자라났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의 성처럼 생겼던 구조물은 전부 현대적인 건물로 바뀐 상태였다.

“오랜만에 보니까. 어때?”

클리프가 말을 걸며 음료수를 건넸다.

일반적인 사과 주스. 듣기로는 암흑대륙의 토양에서 재배된 것이라고 했다.

“많이 바뀌었네.”

“어째 감상평이 너무 메말랐네.”

클리프는 혀를 차며 음료를 마셨다.

암흑대륙은 인류가 마계로 향하는 전진 기지가 되었다.

이전에 마족에게 비슷한 용도로 쓰였던 것처럼.

“그나저나 몰라보게 성장했다?”

클리프가 찔러보듯 물었다.

“깨달음을 많이 얻긴 했지.”

나는 잔에 든 음료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확실히 나는 성장했다. 단순히 수치가 살짝 올라간 정도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종합적으로 진보했다.

■────능력────■

근력: 237+20 민첩: 406+32

지능: 103+5 체력: 293+14

오러: 1989 마기: 2925

신성력: 863 혈마력: 267

텔런트: ???

■────특성────■

[인간 방패] [2.0] [희생자] [개코] [초감각] [나는 전설이다] [폭탄마] [어둠에 속한 자] [운수 좋은 나] [돌개바람] [천의 얼굴] [철인] [초인적인 힘] [마독불침] [천재적 두뇌] [악마] [성스러운 자] [밤의 귀족]

■──────────■

‘많이 바뀌긴 했지.’

나는 상태창을 펼쳐 능력치와 특성을 살폈다.

능력치는 거의 모든 부분이 변화했다, 특히 민첩이 400점을 넘기며 [돌개바람]이라는 영웅 등급의 특성이 발현되었다.

이전에 있었던 [순풍]의 상위 호환.

모든 행동의 속도를 높여주고, 저주나 마법의 회피율을 비약적으로 높여 주었다.

거기에 오러 1989점.

나는 차원의 바깥에 있었기에 팔찌가 오러를 모아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조: 그림자 연공]이 SSS등급에 도달하며, 270점이나 올라가며 오러가 2000점에 육박하게 되었다.

더해서 검귀의 경험을 받아들인 덕분에 스킬들도 등급이 상당히 올라갔다.

[개조: 그림자 연공] SSS등급

[검귀식: 그림자 검술] SSS등급

[전투의 신] A등급

[한손검의 신] B등급

[그림자 잠행술] S등급

검술과 연공법은 모두 숙달했고.

오래도록 A등급에 머물렀던 잠행술도 드디어 숙련도를 끝까지 올렸다.

특히 두드러진 변화는 전투와 한손검, 이 2가지 패시브 스킬이었다.

이것들은 영웅 등급을 뛰어넘어 단숨에 전설이 되었다.

‘검귀가 마지막에 사용했던 검술이 스킬창에 없는 게 조금 신기하긴 하네.’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새로운 기술.

목숨의 경계에 붙어 있던 검귀가 고안해 낸 검술은 내 머리에만 있을 뿐.

상태창에는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건 됐고. 혹시 유리엘 제사장님은 안 계셔?”

나는 주제를 바꾸며 클리프에게 물었다.

토끼녀가 제시한 판게아로 돌아가는 출구는 총 3곳이었다.

시타델의 왕실 보고, 그림자 성역의 입구, 마지막으로 이곳의 게이트.

내가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유리엘 제사장 때문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클리프를 만나면 대충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왔습니다.”

나와 클리프.

이렇게 둘만 있었던 공간에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역 근처에 어떠한 힘이 작용했다.

이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렴풋하게 어떠한 장막이 설치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타나시는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서 있는 유리엘을 보았다.

클리프는 그대로 멈춰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아마도 이 현상의 진위조차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제자의 몸에 갇힌 검성도 마찬가지일 터.

“제사장님이 맞습니까? 아니면.”

“저입니다. 당신이 찾던 그 존재요.”

유리엘은 딱딱하게 굳은 인형처럼 입을 열었다.

저 상태로라면 일상적인 행동도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초월자가 나를 손에 넣지 않은 건 저런 이유 때문인가.

나는 유리엘 너머에 있을 세계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감시자들이 말하길, 마족을 끌어들인 건 당신이라더군요.”

인사도 나눌 겸.

나는 깔끔하게 세계수가 아파할 부분을 찔렀다.

세계수는 곧바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래서, 그 말을 믿으시나요? 전 이 차원의 지배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제가 저 흉포한 괴물들을 불러들였을 것 같나요.”

“믿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반응을 보고 싶었습니다.”

반응 자체는 예상한 대로네.

탐색전은 이쯤 해 두고, 나는 세계수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부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부탁은 아니군요.”

“말해 보시죠.”

“그자들이 저에게 어떤 짓을 했습니까?”

세계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알 수 없는 시선이 내 몸을 쓱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 직후에 유리엘의 입술이 움직였다.

“없습니다. 정말로 겁이 많으시군요?”

“신기하네. 그럼 그 케이크는 그냥 축하 파티라는 건가. 진짜 미친놈들이네.”

“예? 케이크라뇨.”

“아닙니다.”

이제 용무는 끝났다.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검사가 끝났으니 이제 필요 없는데.

“설마, 이걸 검사하자고 절 부르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떨렸다.

역시 초월자. 순간적으로 [천의 얼굴]의 효과를 뚫은 건가?

나는 빠르게 다음 대화 주제를 골랐다.

“그, 저희가 마계로 가도 될까요?”

“급하게 떠올린 주제치고는 그럴듯하군요. 상관없습니다.”

“오, 그렇군요. 정말로 마신과 같은 편이 아니었구나.”

“아닙니다!”

세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잠시 목소리를 고르더니, 이어서 마계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현재 마신은 제대로 된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 사실은 들었습니다. 대악마들이 다른 마족을 속이고, 왕좌의 게임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잘 몰랐지만. 감시자들은 모든 차원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세계수는 감시자들이 내게 전해 준 정보를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나는 일부러 허락을 맡는 것처럼 물었다.

세계수는 이 표현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세요. 다만.”

“다만?”

“마신의 근원을 얻게 될 시점이 오면 저를 불러 주세요. 그들은 절대 근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이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엘의 모습이 훅하고 사라졌다.

동시에 평원에 드리운 곡식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는 신호였다.

“클리프, 일어나.”

나는 국밥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어, 뭐야? 언제 일어섰냐.”

“나야 항상 빠르니까. 그보다 이제 시계탑주에게 가자.”

찰스 랭커셔.

그 양반은 아직 암흑대륙의 수비군 사령관이었다.

감시자들은 이제 곧 게이트에서 손을 뗄 예정이니, 그 기간에 맞춰서 움직여야 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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