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98화 (98/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98화>

98. 컨트롤러 (3)

한 달 뒤.

데모크라시 타운.

황무지 북부에 있는 이 마을에는 자유 무역 연합의 행정부와 의회가 있다.

크기는 작은 도시만 하고, 지역 주민의 대부분이 공무원과 그 가족들인 이 마을에서 소란이 일었다.

임시 의회.

무역 연합의 상원 의원 중 하나.

데이브 록펠스가 소집한 연합의 의원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데모크라시 타운의 주민들은 고급스러운 마차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지?”

“하원과 상원, 모두 다 모이는 모양이야. 예삿일은 아닐 것 같은데.”

“저번에 평의회 연방이 마족에게 침략당했다고 하던데.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주민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며 떠들어댔다.

보통 하원은 국내의 일, 상원은 국외의 일을 주로 처리한다.

이 모두가 모였다면?

아마도 단순한 외교 사안이나 내부의 일을 처리하기 위함은 아니리라.

그 때문에 데모크라시 타운은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왔고, 의원들이 결정한 사안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 소란의 중심.

연합 의사당 내의 상원 회의실에는 황무지의 일곱 별이 모두 모였다.

무역 연합의 부대통령이자 상원의장인, 실제로는 중재자에 불과한 에런 아담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임시 의회는 록펠스 그룹의 회장, 데이브 록펠스 상원 의원께서 소집하셨습니다. 회의에 앞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부통령은 모든 상원 의원의 눈치를 보며 데이브를 가리켰다.

대통령과 부통령. 그들은 모두 무역 연합의 얼굴이었다.

말 그대로 얼굴마담. 외교 석상에 세울 사람이 없으니 기업가들이 대충 세운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니 의원들, 특히 일곱 별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여러분, 이렇게 모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록펠스 그룹…….”

“겉치레는 이쯤 하지. 다들 바쁜 몸인데, 시간을 뺏겨서야 쓰겠나.”

데이브의 말을 가로챈 사람은 로키드 그룹의 회장인 제임스였다.

공식적인 상원 의회에서는 상당한 결례였지만, 아무도 나서서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관습이니, 제도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가짜였기 때문이다.

의회 제도는 허울일 뿐, 실제로는 미국의 제도를 형태만 빌려온 귀족정에 가까웠다.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제임스 로키드 씨.”

데이브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견원지간, 로키드와 록펠스는 언제나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로키드 그룹에서 좋은 일이 생기면? 록펠스 그룹은 괜히 옆에서 재를 뿌리거나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

그건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유야 뻔하니, 자질구레한 허례허식은 그만두자는 말이었소.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소이다.”

제임스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평의회 연방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연합.

이번 상원 의회의 대표 안건은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모든 계획에 록펠스 그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혼자 다 먹는 건 절대 안 되지.’

제임스 로키드는 다른 상원 의원들의 안면을 살폈다.

마족과의 전쟁에 앞서 세계 각국과 힘을 합치는 건 본인도 찬성이었다.

다만 이 안건의 주축은 본인이 되어야 한다.

제임스 로키드는 그런 생각으로 이 회의에 어깃장을 놓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록펠스 그룹에서 제출한 자료가 너무 가관이오.”

로키드 그룹은 기가 찬다는 듯이 문서의 내용을 읽었다.

“연방과 협약을 체결해, 기동 갑주와 연공법에 대한 권리를 공유한다. 기동 갑주의 생산 설비는 세컨드 시티에 설치하며 그 비용은 연합 행정부에서……. 뭐, 여기부터 말이 안 되는군.”

록펠스 그룹은 기동 갑주의 생산 설비를 세컨드 시티로 특정했다.

제임스 로키드의 입장에서 그건 말이 안 되었다.

무역 연합에서 군수 산업 분야의 최정상은 자신의 회사였으니까.

“기동 갑주는 마공학 기술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록펠스 그룹은 시타델에서 기술자들을 쉽게 충당할 수 있으니. 합당한 결론이 아닙니까?”

“우리 로키드 그룹도! 한자 동맹에서 많은 기술자를 데려올 수 있소.”

여기까지는 무승부.

두 용과 호랑이를 제외한 모든 상원 의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핑거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고, 다른 그룹은 로키드와 록펠스 만큼의 연줄이나 기술이 부족했다.

그냥 중간에 껴서 떡고물이나 받아먹자.

대부분의 머릿속에서는 오늘 먹을 저녁이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여기 리버티 교단의 의견서도 있습니다.”

데이브는 상원의장에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부통령은 내용을 읽어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제임스 로키드의 눈빛을 보고서 어깨를 움찔거리며 말했다.

“그게, 록펠스 그룹에서 제작한 기동 갑주라면, 리버티 교단에서도 무조건 도입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 연합의 주인도 몰라보는 것들, 서민들 편에서 기업이나 물어뜯는 주제에 말이야.”

제임스 로키드는 컵에 든 물을 마시고서 재차 입을 열었다.

“데이브 회장. 요새 리버티 교단과 친해져서 즐겁겠구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군요.”

“어차피 교단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니, 그 의견서가 무슨 소용이 있소. 안 그렇습니까? 상원의장님.”

“그, 그렇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역 연합의 법전에는 종교 집단이 정치로 발을 들여놓는 걸 금지했다.

물론, 상원 의원 중에서 법이나 헌법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제임스는 다른 그룹을 하나씩 지명하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조선 업계를 움켜쥔 뉴포트 그룹의 하워드 회장.

거대 농장을 경영하는 데일 그룹의 워런 회장.

황무지의 금융 계를 지배하는 리먼 그룹의 밀러드 회장.

위의 사람들은 모두 이번 계약으로 큰 이익을 얻을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숲을 보유하고 건설업의 정점인 토니언 그룹.

제임스는 토니언 그룹의 회장인 엔드류에게 물었다.

“엔드류 회장. 그대도 이 안건에 동의하나?”

“록펠스 그룹 쪽에서 조병창 건설을 전부 우리에게 맡겼네.”

죄다 한통속이네.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가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합의 상원은 외교와 군사에 관련된 부분만 논의할 수 있다.

즉, 연합에서 록펠스 그룹에게 돈을 투자하려면 하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원에 속한 의원들은 로키드 그룹의 영향력을 더 많이 받았다.

“데이브 회장, 판은 잘 짰지만, 일이 쉽게 끝나지는 않겠군. 뭐가 되었든 내가 더 좋게 쳐주겠소. 다들 마음껏 조건을 말해 보시오.”

이게 바로 1등의 방식이란다.

제임스는 일부러 모두가 듣는 곳에서 흥정을 걸었다.

투표란, 결국 절반을 따내야 이기는 방식이다.

하원에서 예산 심사안의 표결을 부결시키고, 록펠스의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그동안 상원의 다른 그룹 회장들을 꼬드기면 되었다.

분위기가 조금씩 뒤집히려는 순간.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의사당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상원의장에게 다가가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공기가 제임스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그의 입에서 혼잣말이 나오다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부통령은 회장들의 얼굴을 한번 훑고서 한숨을 푹 쉬었다.

“하원에서 표결이 끝났다고 합니다. 무려 30분 만에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의회가 30분 만에 타결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임스 로키드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부통령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투표 결과. 연방과 협약이 체결되면, 기동 갑주 조병창을 세컨드 시티에 짓는 것으로 가결되었다고 합니다.”

씨발.

누군가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지만, 모두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 * *

데모크라시 타운의 석양이라.

나는 에드가 국장과 함께 건물 옥상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번 일에 많은 힘을 써 줬기에 내가 특별히 대접하는 식사였다.

“고기가 맛있네요.”

나는 스테이크 조각을 썰어서 입에 넣었다.

에드가도 열심히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며 말했다.

“보통 스테이크용 고기는 숙성의 정도에 따라 맛의 품격이 달라집니다. 근데 이번 임시 의회는 그럴 시간이 없겠군요.”

“비꼬는 겁니까?”

나는 에드가에게 초승달 눈을 뜨며 쏘아댔다.

그러자 상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저도 이 일에 힘을 실었는걸요. 상부에 보고도 안 하고서요.”

“많이 바뀌셨네요. 원래는 행정부에 충성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요.”

“저는 사람이나 다른 단체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유 무역 연합의 존립에만 관심이 있죠.”

애국자네, 애국자여.

나는 와인 잔을 들어 살짝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이번 일은 솔직히 말하면 록펠스 그룹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데요.”

“작게 보면 한 그룹의 이익이지만. 넓게 보면 무역 연합의 이득이죠. 루카 씨께서 록펠스 그룹을 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판단의 근거가 될 줄은 몰랐네요.”

연합의 하원 의원.

그들은 모두 다른 컴퍼니의 사장이거나 그 친인척이다.

원래 연합에는 상원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컴퍼니들도 자신들에게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며 하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법대로만 따지면 상원과 하원은 전혀 별개의 단체이기는 하다.

‘직간접적으로 거대 그룹과 엮여 있으니, 상원의 2중대인 셈이지만.’

본래라면 하원의 표결은 로키드 그룹에게 유리해야 했다.

하지만 성실하고 유능한 에드가 국장이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레드넥과 붙어먹은 기업 리스트.

에드가 국장은 믿을 만한 부하들을 동원하여 리스트의 기업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물은 하원 의원들의 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잡아 주는 데에 쓰였고.

“근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는 에드가 국장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기다렸다.

“부하들은 어떻게 물갈이한 겁니까. 그룹과 컴퍼니의 스파이가 많았을 텐데요.”

“저번에 저에게 공갈을 치면서 부하들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설마, 그 일이.”

“그 설마가 맞습니다. 조사를 싹 했죠. 여기저기 돈을 받아먹는 부하 놈들이 많더군요.”

이게 바로 나비효과란 말인가.

내가 에드가를 겁주기 위해 뱉었던 말이, 결국 내 계획이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끔은 이런 운이 따라줘도 좋겠지.

언제까지 불운한 모쏠 아다 명품 엑스트라 루카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보다, 여기 일이 해결된 다음은 무슨……”

“여어, 여기 있었군.”

나와 에드가, 그리고 약간의 호위 병력만 있던 건물의 옥상.

그 은밀한 공간으로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길가에서 도약한 사내는 단숨에 옥상으로 올라왔다.

프레스턴 단장, 그는 이번에 임시 회의에 참석하는 밀튼 대표와 함께 데모크라시 타운으로 왔다.

“상원의 일은 어떻게 됐나요?”

“내가 무슨 집배원인 줄 아나? 뭐, 그래도 계획은 성공했네.”

“다행이네요. 이제 시간만 흐르면 기동 갑주를 다루는 능력자들이 양산될 겁니다.”

“오러 사용자를 찾아내는 것도 일이지만.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거야, 시타델의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죠.”

나는 하얀색 냅킨에 입술을 닦으며 일어섰다.

예상한 대로 모든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이제 세계 각국의 교섭이 완료되면.

‘암흑대륙으로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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