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90화 (90/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90화>

90. 남부전선 이상 많다 (4)

나와 스칼렛은 주변 지역의 마족들을 추가로 소탕했다.

고위 마족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상급 마족이 전선을 지휘하며 부하들을 이끌었기에 정리는 정말 쉬웠다.

전투가 끝난 뒤, 연방군 부대의 지휘관이 우리를 찾아왔다.

“외부인은 정체를 밝히시오!”

대대장쯤으로 보이는 남자.

나는 그에게 외부에서 들어온 지원군이라 설명했다.

내 말을 듣고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하지. 지원군이 북쪽이나 서쪽도 아니고, 어째서 남쪽에서 올라오겠는가.

우리는 일단 대대 지휘부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대대의 사람들은 최소한 적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 무기는 본 적이 있습니다. 저 멀리 무역 연합의 물건입니다.”

“음, 핑거톤이라고 했었나? 나도 들어본 적이 있네.”

“이 증표도 그렇고. 무역 연합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대의 지휘부는 내가 증거물로 내민 해결사 증표와 마공학 리볼버를 살폈다.

연합과 연방은 지리적으로는 나름 가까운 편이지만,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몇 장교 중에는 연합의 물건이나 세력의 특징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은 무역 연합의 스파이요?”

지극히 당연한 결론.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정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편이 좋았다.

“맞습니다. 우리는 연합에서 파견된 요원입니다.”

“흐음, 목적이 무엇이오.”

“여러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세계 각국은 평의회 연방의 일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의 일이 벌써 퍼졌단 말이오?”

대대의 지휘관들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근 일주일, 전장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에게는 기나긴 세월이었을 터.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군인들은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연방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소만. 음,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무역 연합은 마족의 군대를 이곳에서 무찌르길 원합니다. 사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겠죠.”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

일단 마족이 대규모로 쳐들어온 이상, 다른 국가들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마족을 무찌르면 더욱 좋아하겠지.

내 이야기를 알아들은 지휘관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대장 동지. 아무래도 상부에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참모 하나가 슬며시 의견을 내놨다.

잠시 고민을 이어 가던 대대장은 상부에 내 신원을 신고했다.

만약 여기서 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오히려 명분을 줘서 고맙지.’

평의회 연방은 결속력이 지나치게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내가 마음대로 연방의 힘을 사용하기 힘들다는 뜻.

이 상황에서 나에게 사살 명령이 내려진다면, 나는 곧장 이곳을 탈출해서 한자 동맹으로 갈 생각이다.

응애, 나 애기 루카.

쟤네 좀 혼내 줘.

요거 하나면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형과 누나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방의 지도부를 무너트리고, 정정당당하게 연방을 우리의 수중에 놓을 수 있다.

뭐, 시타델이나 신성 제국도 연방의 이권을 놓칠 생각은 없을 테니까.

“사단장 동지께서 모셔오랍니다.”

칫.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정상적인 사고 수준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네.

대대장은 우리를 후방으로 보냈다.

일선 부대의 최고 지휘부, 나와 스칼렛은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6 소총병사단으로 보내졌다.

후방의 건물 지하로 데려온 장교는 별 2개가 달린 계급장을 보며 경례를 붙였다.

“사단장 동지. 말씀드렸던 밀입국자입니다.”

“수고했네. 이만 가 보도록.”

60대에 근접한 장군은 장교를 내보내고서 우리를 자리에 앉혔다.

얼굴에는 근심이 덕지덕지, 축 내려간 어깨와 테이블에 올려진 술병이 그의 기분을 대변했다.

사단장은 군모를 벗으며 담배를 꺼냈다.

“안드레이라고 하네. 한 대 피우겠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소장은 내밀었던 담배를 회수하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연방법에서 밀입국자는 사형이라 적혀 있더군. 하지만 무역 연합의 스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도움? 씨발,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게! 물자든, 사람이든.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보이는가?”

이성을 유지하던 사단장은 언성을 높였다가 숨을 골랐다.

주변에서 무전을 받던 병사들과 지휘관들이 순간 얼어붙었다.

욕설이 마구 튀어나올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란 의미였다.

“후우, 미안하네. 그만큼 상황이 안 좋네.”

“이해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적의 공세가 조금 덜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오늘은 그렇지. 왜 그런지는…… 잠시만.”

사단장은 내 말을 듣고 어딘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적의 공세가 약해진 이유. 마치 그걸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구라를 쳤다.

“연합에서 손을 썼습니다.”

내 말에 다시금 주변의 기류가 들썩였다.

옆에서 입을 꾹 닫고 있던 스칼렛도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다시금 철통과 같은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연합이 손을 쓰다니.”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아무튼, 당분간 마족군의 공세는 주춤할 것입니다.”

사단장은 오늘 오후에 중앙 사령부에서 받은 정보를 떠올렸다.

빼앗긴 지역을 수복했다거나, 적의 공격이 멈춰서 재정비를 하고 있거나.

대부분. 아니, 전부 좋은 소식이었다.

“단순히 적들이 공세 종말점에 도달한 것이라면?”

어려운 말은 쓰지 말자.

나는 순간 멈칫했다가 윤활유가 잔뜩 발린 혀를 놀렸다.

“마족군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요. 구울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 병력은 먹거나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느닷없이 연합의 개입이라니. 그런 걸 우리가 믿겠는가. 설령 그렇다 쳐도,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닐 텐데요. 우리는 당신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는 차가운 어조로 태세를 바꾸었다.

강경하게, 상대의 선택을 강제하듯이.

“연방은 풍전등화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나라들은 억지로라도 연방의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만방자하군.”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나는 굳이 다음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내지 않았다.

쫄리지? 궁금하지? 무섭지?

연방의 영토에 다른 세력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것.

그건 일개 사단장과 논의할 일이 아니다.

나에겐 이 사람도 조금 전의 대대장과 같다. 그저 징검다리일 뿐.

‘결정권을 가진 사람.’

누구든 좋으니 줄이 좀 닿아 있으면 좋겠는데.

나와 사단장 사이에서 불편한 시간이 지속 되었다.

상대는 말이 없었다. 이 이상의 대화는 자신의 직권을 벗어난 일이니.

고심하던 사단장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좋다. 네놈들의 뜻대로 해 주지.”

쾅!

사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기 앞으로 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흐르자, 통화를 끊은 남자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미하일 군단장 동지께 보내 주마. 그분께서 네놈의 처분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방긋 웃었다.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 * *

우리는 연방의 임시 수도로 보내졌다.

구세프카, 여기는 내가 게임에서도 와 본 곳이다.

지리적으로 연방의 북쪽에 있으며, 북부집단군 사령부가 주둔해 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흠, 시간은 밤이니 딱 좋네.’

지금은 어린이도 어른이도 모두 잠들었을 시각.

깨어있는 자들이라곤 군인이나 경호원, 마족, 불법 밀입국자가 전부였다.

나는 내 앞에 앉아 나를 감시하는 사람을 향해 싱긋 웃어 줬다.

그리고 다리를 신명 나게 떨며 신경이 쓰이도록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시오.”

검과 마공학 총을 소지한 군인이 근엄하게 꾸짖었다.

이곳은 군인들이 임시로 점거한 건물의 내부. 우리는 감시를 받으며 아파트 내부에 억류된 상태였다.

“이거 원. 좀이 쑤셔서.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겁니까?”

“군단장 동지께서는 군대를 시찰하고 새벽쯤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도록.”

나를 감시하던 군인은 내가 정확히 기다리던 답을 주었다.

오케이, 새벽이면 상당히 시간이 남았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군인이 고압적인 태도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덧붙여, 이 만남은 공식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니 혹시나 허튼수작은 부리지 말도록.”

“아, 물론입니다.”

나는 대답을 하고서 곧바로 오러에 사념을 실어 스칼렛에게 보냈다.

‘스칼렛,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정신 지배]를 걸 수 있겠어?’

내가 질문을 던지자, 내 정신에 간섭하는 미증유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스칼렛의 기술에 걸려 주었다.

‘루카, 가만히 있겠다고 했잖아.’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겼어. 살펴봐.’

‘……정말로 지금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내 정신에 침투한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김만득에 관련한 것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간섭을 통제하며 내 계획을 보여 주었다.

동시에 내 진심 어린 감정도 함께 전하자, 스칼렛은 결국 내 계획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어, 이게 마족을 물리칠 최선이라면.’

나의 감각을 토대로 스칼렛은 군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의 인원은 모두 기동 갑주의 파일럿.

하나하나가 오러 사용자였고, 2번째 벽을 넘긴 자들도 하나둘 섞여 있었다.

그러나 스칼렛이 누군가?

‘단델리온에게도 쌍욕을 먹었던 개사기 텔런트 보유자라고.’

‘나는 사기꾼 아니거든!’

참, 정신이 연결되어 있지.

이거 클리프는 어떻게 폰허부랑 다니나 몰라.

모든 절차가 끝나자, 내 앞에 앉아 있던 군인이 내 수갑을 풀어주었다.

방 안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파일럿들은 그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근데 목표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

스칼렛의 물음에 나는 그저 웃었다.

여기는 연방의 임시 수도다.

그 말은 대충 돌아다니다 보면 목표를 찾는 건 쉬운 일이라는 뜻이었다.

‘설마 어디 판잣집에 있지는 않겠지. 가장 경호가 삼엄한 곳에 있을 거야.’

나는 당당하게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복도와 계단을 지나쳐 옥상으로 나왔다.

무기와 압축 주머니는 전부 빼앗겼지만, 굳이 이번 작전에서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전시 태세에 들어간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목표를 특정했다.

밝은 조명, 수많은 경비병.

목표가 있는 장소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옥상을 뛰어다니며 스칼렛에게 물었다.

‘30분이면 충분해. 혹시 나를 중계기 삼아서 네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도시 안이라면 가능할 거야.’

우리 스칼렛 장하다.

나는 그림자에 숨어들어 불빛을 향해 움직였다.

평의회 연방 세력의 최강자인 ‘미하일’이 오기 전에 끝을 봐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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