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80화 (80/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80화>

80. 엠파이어 오브 홀리 (1)

3일 뒤.

우리는 우선 오크의 영역에서 빠져나왔다.

록펠스와 기자들은 돌아갔고, 핑거톤과 교단의 사람들만이 50번 개척지에서 잠시 지내기로 했다.

“앞에 있던 숭배자 하나가 막 저에게 달려오는데!”

“이봐,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는 뭔데. 좀 간추려서 말해.”

“이걸 어떻게 줄입니까. 어쨌든 제가 막…….”

50번 개척지의 술집.

새로 건축된 오두막 같은 술집에서 교단의 성기사들과 탐정들이 대화를 나눴다.

성기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술집에서 저래도 되나 싶지만, 리버티 교단은 수녀와 사제 말고는 크게 금욕을 강요하지 않는다.

성기사도 수습 딱지를 떼면 술 정도는 마셔도 되었다.

“여기 음식이 아주 맛있네요.”

“맛있지 그럼. 이번에 여기에 식당을 차린 사람이 미트 타운에서 요리사로 일했다네.”

내 옆에는 나이든 보안관이 앉아 있었다.

바라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앉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윌리엄은 내가 차를 끌고 여기에 온 것부터 시작해, 이전의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메뚜기를 때려잡던 걸 보고 뭐라도 될 놈이라는 생각은 했는데. 참 신기하군.”

“영감님 도움이 컸죠.”

“결국, 다른 동네로 도망가지 않았나. 키워서 남 좋은 일만 했군.”

“덕분에 무역 연합의 위협을 제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도대체 그 위협이 뭔가? 이 한적한 마을에 대단한 사람들이 몰려올 일이 뭐가 있다고.”

“나중에 신문으로 확인하세요.”

나는 실실 웃으며 윌리엄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나이든 보안관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어떤 어린 소녀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개척지에도 리버티 교단의 사람이 필요하긴 한데 말이야.”

윌리엄은 몇 테이블 옆에 있는 마틸다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반대로 마틸다도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사람들의 손가락에 낀 담배와 술이 가득 든 양주잔이 그것이었다.

몹쓸 꼬맹이. 설마 ‘반주 곁들여서 식후빵 하고 싶다.’라는 주문을 속으로 외우고 있지는 않겠지?

“좋은 음식 잘 먹었습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원 차렷!”

“아니요. 부대장님.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들 즐거운 저녁 되세요.”

마틸다는 술과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모양새였다.

술집에 모인 성기사들에게 인사를 돌리며, 소녀는 부리나케 가게를 떠났다.

테이블 옆에 앉아 있던 조엘만이 소녀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가능해 보이나.”

“뭘 말입니까.”

나는 빵을 찢어 먹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리버티 교단에서 사제를 파견해 주지 않을까, 묻는 걸세.”

“……꿈도 야무지십니다.”

“이제 이 거주지도 꽤 커졌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 줄 사람이 필요하네. 보니까, 교황 후보가 자네랑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윌리엄은 50번 개척지의 사람이 아니다.

원래는 미트 타운을 중심으로 보안관과 현상금 사냥꾼을 전전하던 사람.

하지만 이곳의 보안관이 되면서 그는 개척지를 본인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토를 죽인 리볼버 값 정도는 해 줄까.

“정 소원이라면. 제가 딱 3달 만에 여기에 교회가 세워지도록 만들어 드리죠.”

“오호, 그 방법이 뭔가?”

나는 테이블에 있던 위스키를 큰 양주잔에 가득 달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바로 이거요. 그럼 이만.”

나는 손을 흔들며 술집에서 나왔다.

근처에 있던 스칼렛이 따라 나오려 했지만, 내가 손바닥을 내밀며 제지했다.

덩달아 재벌 아가씨의 옆을 지키던 페도르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다 말았다.

끼이익, 나는 술집의 문을 열고 뒤쪽으로 향했다.

후우우.

그곳에는 입에서 연기를 내뿜는 한 소녀가 있었다.

마틸다, 그녀는 신성력을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감췄다.

정말 어지간히도.

“뭘 봐.”

마틸다가 뚱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건물 뒤편, 불량한 여자애, 손에 든 담배. 짜증이 난 얼굴.

뭔가 학창시절의 한때가 떠오르는 장면이지만, 나는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위스키 잔을 꺼내 보였다.

“원해?”

“시발, 오빠가 최고야.”

마틸다가 탐욕스러운 손을 내밀며 달려왔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여기 보안관이 마을에 사제가 필요하대.”

“같이 온 사제단 몇 명 두고 갈게. 제발!”

“그 정도로는 힘들지. 음식까지 대접받았잖아.”

“알겠어! 교황청에 돌아가면 정식으로 건의할게!”

“옳지.”

소녀에게 주어지는 술잔.

마틸다는 담배와 술잔을 번갈아 입에 대며 천국을 맛보았다.

나는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그런데 교황은 어떻게 설득한 거야? 저런 귀중한 걸 그냥 내주지는 않았을 텐데.”

“인생 한방이지. 내 교황 후보 자리 걸었어.”

“이거 완전 또라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흐렸다.

마틸다는 차기 교황이 될 수 있는 후보다.

그렇다는 건 후보가 여럿이라는 이야기. 리버티 교단도 여러 파벌이 있고, 각 후보를 밀어주는 원로가 있다.

마틸다는 상응하는 전공을 세우지 못할 경우, 모든 지위와 권력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핵무기를 받아온 것이었다.

“왜? 애당초 이 성격 때문에 오빠를 따라온 거라고. 인생 뭐 있어?”

마틸다는 코에서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열심히 살아라.

나는 다 마신 위스키 잔을 건네받고 자리를 벗어났다.

주점에 잔을 놔두고 등을 돌리자, 그곳에는 말리크와 클리프가 나란히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쌓아온 업보가 장난이 아니네.’

나는 우선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클리프. 말리크 장로님도 저녁은 잘 드셨습니까.”

“저녁보다……, 여기 계신 검성의 제자분과 약간의 오해가 생겼습니다.”

“루카, 뭔가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

둘의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했다.

그래도 당장 칼을 뽑고 싸울 정도는 아니니 다행인가.

“말리크 장로님. 잠시 친구와 대화를 나눠도 될까요?”

“예, 그러시죠.”

나는 클리프를 술집 밖으로 안내하며 걸었다.

50번 개척지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언덕. 그곳까지 걸어가자 클리프는 황무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 말인데.”

“응, 검성과 검귀의 관계?”

“맞아. 그건 사실이 아니야.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클리프는 말리크와 대화하며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검성과 검귀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고 같이 마족에게 맞서 싸웠다니.

아마 폰허부는 살면서 그런 개소리는 처음 들었겠지.

“사실, 나도 궁금한 게 있었어. 클리프,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검술은 과연 뭘까.”

“그건.”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이 무술의 정체를 찾아다녔어. 그러다가 시타델의 한 고문서에서 알아냈지.”

나는 혀에 기름을 바르며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이건 그림자라 불리던 결사단의 검술이었어. 그렇지?”

“맞아.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텔런트를 통해 400년 전의 인물을 알게 됐어.”

“그래, 그것도 알아. 폰테베드라 허멘 부르고스. 검귀를 죽이고 결사단을 초토화한 사람이지. 네 검술이 그분의 것이란 사실도 알아냈었어.”

나는 클리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구라를 섞어가며 결사단을 만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검성과 검귀가 친구라는 거짓말을 꾸며냈다고 말했다.

클리프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물었다.

“안 그랬으면 저 사람들이 너를 죽였을 테니까.”

“……그랬겠네. 설득은 어떻게 한 거야?”

“이 흑도는 검귀가 썼던 검이야. 네 속에 있는 스승님은 알겠지? 내 검술에 이 검까지 보여 주니까 믿더라고.”

우리 둘은 황량한 허허벌판을 배경 삼아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클리프는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에게 준 편지는? 거기에 적힌 내용은 뭐야. 온갖 정보를 적어 놨잖아.”

또 업보를 청산할 때가 왔군.

나는 클리프에게 내 정체를 밝힐까 고민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깔끔하게 끝날 테니까.

하지만 루카의 기억이 나에게 섞여서 그런지 선뜻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클리프와 더 이상의 오해는 만들기 싫고.

“응? 나는 그런 걸 적은 적이 없어. 그냥 여행 잘 다녀오라고 써놨는데.”

나는 클리프가 시리엘과 만난 걸 떠올리며 사실을 부정했다.

클리프는 세계수의 지목을 받은 ‘구원자’다.

따라서 이걸 대충 신의 계시로 섞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만, 여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 네가 적은 게 아니라고?”

클리프는 나에게 편지를 보여 주며 물었다.

나는 그 글씨를 읽으며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의 얼굴]의 효과로 내 연기력은 베테랑 배우의 그것처럼 훌륭했다.

“뭐야, 여기에 왜 이런 말이 쓰여있지? 혹시 네가 이 편지를 읽어 본 때가 언제야?”

“시리엘에게 말을 배워서 읽었지. 설마!”

편지가 신의 계시로 바뀐 건가.

우리의 국밥이는 머리를 굴리더니 아주 훌륭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지.

충실한 신의 사도 탄생이요! 나는 클리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사실 내가 시타델에서 검성의 무기를 봤거든. 얻는 방법을 알려줄까?”

“뭐? 나야 당연히 좋지.”

“그러면 약속 하나만 해. 네가 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거든. 무기를 얻는 정확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맡겨놓을게.”

“뭐든 말해. 아니, 잠시만! 모두는 아니고.”

클리프는 말을 정정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프레스턴 단장님을 따라가. 그러면 알아서 일거리를 주실 거야.”

이로써 황무지에서 쌓은 업보는 모두 청산되었다.

* * *

이튿날.

프레스턴과 핑거톤, 그리고 리버티 교단은 개척지를 떠났다.

거기에 클리프와 나머지 둘도.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야.’

나는 개척지에서 몰래 빠져나와 오크의 영역 깊숙이 들어왔다.

속도는 인간의 범주를 한참 벗어났기에 개척지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혈정, 나는 마기를 제거한 순수한 혈마력의 정수가 담긴 약병을 꺼냈다.

찰랑, 찰랑.

약병 안에서 물체가 새빨간 광채를 띄었다.

고도로 압축된 기운, 나는 병마개를 뽑아내고 액체에 가까운 몽글몽글한 물체를 손바닥에 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기를 제거하지 말라고 그럴걸.’

하긴 그때는 텔런트가 생길 줄 몰랐으니.

게임 설정에서 텔런트는 차원 대전쟁 이후에 생겼으며, 인간이나 아인종의 극히 소수에게 발현되는 특이 성질이라 설명한다.

즉, 언제 어떤 방식으로 텔런트가 생겨도 이상할 것은 없다.

슈우우웅.

내 손바닥에 떨어진 혈정은 서서히 내 몸에 깃들었다.

아니, 깃들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강한 반발력에 의해 혈정이 손바닥 위에서 통하고 튀었다.

나는 빠른 반사신경으로 혈정을 받아 내 무사히 유리병 안으로 넣을 수 있었다.

[텔런트: 조건을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관련 스킬 숙련도를 올려 잔여 ??을 충족하십시오.]

잔여 ??.

나는 저번에 보았던 0의 의미를 알아냈다.

이 숫자가 있어야 다른 기운을 얻을 수 있다는 거구나.

‘근데 관련 스킬이 없는데.’

이럴 때는 이것저것 해 봐야지.

나는 몸속에서 마기를 꺼내 회로를 휘저어 보았다.

반대로 오러를 움직여 보기도 했다. 내친김에 마기를 손바닥에 꺼내 보기도 했다.

역시 반응은 없다.

“그렇다면 동시에.”

슈아아.

검은 기운과 검붉은 안개가 손바닥에 올라왔다.

둘은 구의 형태로 손바닥 위에 올라와 물과 기름처럼 회전할 뿐이었다.

그러던 무렵 내 눈앞에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스킬: [??]이(가) 생성되었습니다. 모든 에너지+3]

뭐야, 이것도 이름이 제대로 안 나오네.

오러와 마기가 각각 3점씩 상승한 건 좋은 일이지만, 상태창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스킬의 등급은 유일, 원래 텔런트는 각자 종류가 다르니 유일 등급이 맞았다.

‘근데 설명이 왜 이래.’

내가 스킬의 설명란으로 들어가자,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로 적힌 스킬 설명이 주르륵 펼쳐졌다.

마치 컴퓨터의 문서가 깨진 것처럼.

“모르겠다. 이건 뭐 시스템 오류도 아니고. 잠시만?”

나는 오러 능력치를 올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내 텔런트는 기운을 흡수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마나가 깃들어 있는 마정석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압축 주머니에서 상급 마정석을 꺼냈다.

군용탄으로 따지면 몇천 발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놈이었다.

마정석에 담긴 힘, 그것에 집중하며 머리통만 한 수정을 들고 눈을 감았더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어디 보자,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콰작! 이번에는 상급 마정석을 부숴보았다.

역시나 황금색 마나는 바닥으로 흘러내릴 뿐, 나에게 흡수되지는 않았다.

최상급 마정석이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건 국가 단위에서 관리되는 물건이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놈의 판게아는 엑스트라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동네네.

“에라이!”

나는 상태창을 닫고 황무지를 보았다.

어쨌거나 관련 스킬도 얻었으니 숙련도를 올리면 혈마력을 손에 얻고 말겠지.

미완료 중에서 마지막 하나는 어떤 기운인지 알지 못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신성력이 분명했다.

“마틸다나 리버티 교단은 아군이라 건드릴 수가 없고.”

나는 신성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종교 집단을 떠올려 봤다.

그러던 중 신성 제국에 있는 ‘판게아 신성회’를 떠올렸다.

거기는 카시안이 황제가 되는데 방해하는 정치 세력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빨대 좀 꽂아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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