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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로 살아남기-58화 (58/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58화>

58. 루카와 전설의 검(1)

푸른색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주변에는 여행객과 회사의 영업 사원들이 모종의 기대를 걸며 육지에 안착하기를 기다렸다.

판게아 서대륙의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서부 해협.

자유 무역 연합의 땅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나에게, 록펠스 그룹의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도착까지는 4일 정도 걸린답니다.”

퍼스트 시티는 무역 연합의 동북부.

북서쪽에 있는 시타델로 가는 정기선은 굉장히 적었다.

이유는 거리와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다. 경쟁자인 록펠스 그룹이 마도 왕국과 친밀한 관계고,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머니까.

“서부 해협의 끝에서 끝까지 항해해야 할 테니 어쩔 수 없겠죠.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직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다시금 바다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자유 무역 연합의 메인 이벤트는 모조리 날려 버렸다.

아직 레드넥이나 대전이 쪽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늦지 않게 청산될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세븐 시티에서 수련하며 많이 고민했지. 특히 검술의 숙련도를 올리는 게 엄청 힘들었으니까.’

이 게임은 마족이 대륙을 침략하고 그걸 방어하는 게 주요 흐름이다.

무역 연합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 이 게임의 주요 전장은 판게아 서부가 아니다.

판게아의 동부 대륙에서 북쪽의 신성 제국과 중앙의 한자 동맹, 그리고 남부의 평의회 연방.

이 3개의 팩션이 마족들과의 전면전이 치러지는 주요 무대다.

“거기는 일단 시간이 촉박한 편은 아니긴 하지.”

나는 무역 연합에서 마도 왕국으로 가고 있다.

가장 큰 목적은 나의 성장이다.

다만 굳이 연합을 떠나서 먼 타국으로 떠나는 데에는 안전상의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내가 그동안 굉장히 깝치고 다녔으니까.’

단델리온은 천성이 게으른 놈이다.

악마 주제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놈이기도 하다.

제아무리 그런 녀석이라도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원인을 규명하려 할 터.

그 과정에서 당연히 나의 존재가 놈에게 인식될 것이고.

내가 사건을 뒤죽박죽 섞어 놓았으니, 이제 나는 세상의 움직임을 봐야 했다.

“와아, 저거 봐봐! 저거, 저거! 바닷물이 빙빙 돌고 있어!”

“저건 소용돌이라고 하는 거란다.”

아이와 엄마는 배 난간에 기대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년은 무척이나 신기했는지, 소용돌이를 유심히 살피며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엄마. 왜 물이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막 도는 거야?”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하하! 소용돌이는 서로 다른 물의 흐름이 만나서 생긴단다. 특히 여기 서부 해협처럼 바다가 좁고 바닥이 울퉁불퉁하면 더 자주 생기지.”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노신사가 대신 답해 주었다.

나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무섭게 물을 빨아들이는 그 현상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다. 지금 자유 무역 연합은 저 소용돌이와 같다.

원래의 흐름을 내가 억지로 비틀어 놓았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나.

‘지금은 안전하게 밖에서 상황을 지켜봐야지.’

게임에서 마족의 침략을 받지 않는 지역은 두 곳이다.

하나는 시타델이고, 다른 하나는 그림자 결사단이 있는 알타이르 산맥이다.

알타이르 산맥의 경우는 애당초 침략할 가치가 없어서 그렇고, 시타델의 경우는 나라 자체가 매우 강력하다.

‘프레스턴급의 강자가 무려 3명이나 있으니까.’

마법의 왕국.

지구와 마족의 침략을 완벽하게 막아낸 군사 강국.

시타델은 차원 대전쟁 시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현재까지도 굳건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족 스파이 한두 마리가 움직이는 거라면 모를까.

대대적인 침략을 당할 걱정은 아예 접어두어도 좋다.

‘뭐, 악마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면 날 찾거나 죽이지는 못하겠지.’

시타델과 알타이르 산맥.

나는 두 안전지역이 있는 판게아 대륙의 서북부로 떠났다.

* * *

슈우우웅!

젊은 마법사들이 빗자루 모양의 마공학 호버바이크를 타며 돌아다닌다.

거리에는 꼬꼬마들이 마법진을 그리며 놀고, 평범한 할아버지가 마법으로 불꽃을 소환해 담뱃불을 붙였다.

나는 이 기이한 현상이 주위에 가득한 거리를 거닐었다.

뎅뎅뎅!

저 멀리서 시계탑의 종이 울리며 12시 정각을 알렸다.

탑은 웬만한 마천루보다 거대하고 높았고, 그 주변에는 학교 건물로 보이는 부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밥이다!”

“아 씨! 이번 기초 원소학은 과제를 왜 한 주에 하나씩 내주는 거야! 교수 새끼 나가 뒤져라.”

“먼저 가서 식당에 자리 잡아놓는다!”

시계탑 정문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이 3위계 마법인 플라잉을 사용하며 솟아올랐다.

시타델의 수도, 룬덴의 일상은 보통 이런 편이다.

마법과 마공학 기구가 난무하며, 일반인 중에서도 기초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널리고 깔렸다.

‘황무지에서 살다 보니 나도 촌놈이 다 됐나 보네.’

나는 실소를 날리며 시계탑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시타델은 유일하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 의무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다.

그 덕분에 시계탑 같은 명문 마법 학교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기도 한다.

“루우카아. 와았구우나아.”

시계탑의 정문에서 나를 향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좀비가 내는 듯한 느낌. 고개를 돌리자 수천의 학생 사이에서 걸어오는 시체가 한 구 보였다.

푸른색 마법사 가운을 입은 적발의 소녀. 시타델의 수도로 유학 온 재벌 아가씨였다.

“흐어어어.”

푸욱.

스칼렛은 젤라틴처럼 흐느적거리며 내 품에 안겼다.

몸에서는 죽은 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페트릭 교수가 사리사욕을 위해 스칼렛을 언데드 조교로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 루카, 여기 공용어 쓰는 나라 맞아?”

“연합이랑 쓰는 언어는 같을 텐데.”

“교수님이 나보고 기초 지식이 부족하데. 그래서 먼저 이론을 익히래.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근데! 다른 학생들은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좀비가 된 소녀는 공포에 떨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약 5일 전, 스칼렛은 당당하게 시타델에 입성했다.

거기서 페트릭 교수와 면담을 했고, 교수는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면 텔런트를 잘 다루지 못할 거란 조언을 남겼다.

그래서 스칼렛은 시타델 최고 마법 학교의 청강생이 되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게 아니야. 내용을 이해하고 종이에 써서 제출하래.”

“레포트구나. 기한은 언제까지인데…… 읍읍!”

스칼렛은 다급히 내 입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지나치던 학생들이 일제히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서 그 이름과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돼! 죽음의 저주를 받을 게 분명해!”

“읍읍.”

아이고 재밌어라.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그런 금기어가 있는 줄은 몰랐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루카만 옆에 있으면 돼!”

스칼렛은 다시 내 품에 안기며 편안함에 녹아들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미안, 나 시타델에는 오래 못 있어.”

“……엥?”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배고프지?”

충격을 먹은 소녀와 나는 함께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생선과 감자를 튀긴 요리가 유명하며, 그럭저럭 맛이 있는 집이었다.

깔끔하게 생선 튀김 정식 3접시를 작살 낸 소녀는 입으로 바람을 불며 식기를 내려놓았다.

“후우. 맛있었다.”

“응, 나도 맛있었어.”

“루카, 이제 얘기해 줘. 기껏 시타델로 오고서 또 어디로 가게?”

“여기는 환승역이고. 종점은 알타이르 산맥이야.”

“알타이르 산맥?”

나는 스칼렛에게 간략하게 목적지를 일러주었다.

세븐 시티에서부터 당분간 숨어서 지낼 공간을 쭉 고민했다.

성장과 안전을 동시에 보장받을 수 있는 곳. 내가 기억하기에 그런 공간은 모쏠아다 명품 엑스트라인 루카에게 없었다.

아니, 사실 하나 있었다. 특정 조건을 갖춘다면 말이다.

“응, 왕실에 들려서 물건 하나를 찾을 거야. 그리고 산맥에 들어가 수련할 생각이야.”

“왕국에서 멀지는 않지?”

“왜, 심심하면 놀러 오려고? 스칼렛, 할아버지에게 복수한다며.”

“아.”

스칼렛은 충격을 받았는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게 그리워서 그래?”

“아니, 나는 루카가 걱정되니까. 정말 내가 없어도 되겠어?”

물론이지.

나는 그리 말하려다가 잠시 머뭇거리고서 단어를 바꾸었다.

“힘낼게. 그러니까 너도 힘내.”

내 말에 스칼렛은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조금 전에 듣기 싫어 죽겠다던 수업의 참고서와 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제 다시 들어가 봐야 해. 그리고 나중에 꼭 캄촤짜개 만들어 줄게! 기대해!”

캄, 뭐요?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스칼렛은 손을 흔들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판게아에 존재하는 아이템들을 떠올렸지만, 비슷한 물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뭐, 설마 나쁜 걸 만들어 주겠다는 거겠어.

‘이름만 들으면 뭔가 꺼림칙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이요.”

“8번 테이블은, 이미 여자분께서 계산하고 나가셨습니다.”

아, 이제 나보다 돈 많지.

종업원의 말을 듣고 나는 쫄래쫄래 가계에서 나왔다.

시계탑으로 돌아가는 스칼렛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제 나도 내 할 일이나 해야지.

햄트턴 궁전.

다음 목적지는 여왕이 거주하는 시타델의 왕성이었다.

나는 우선 록펠스 그룹의 룬덴 지사 건물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룬덴 지사의 총 책임자인 클러크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집무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회장님의 편지로 이야기는 대강 들었습니다. 왕실의 보고에 들어가실 생각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여왕 폐하의 친동생을 구해낼 생각입니다.”

“허! 그리만 된다면 록펠스 그룹과 왕가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지긴 할 겁니다만.”

클러크는 다과로 나온 홍차를 홀짝거린 뒤 말했다.

“그곳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은 단 2명이 전부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꼭 들어갈 일이 있어서요.”

“혹시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지요.”

클러크는 왕실의 보고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했다.

“음, 대답하기 곤란하신 모양이군요.”

“예, 개인사와 관련된 일입니다. 제 스승님과 관련된 일이거든요.”

“선조님의 물건인가 보군요. 잘 알았습니다. 시일 내에 여왕 폐하와의 접견을 성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지사장은 그 뒤의 말은 크게 묻지 않고 나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당연히 내가 찾는 물건은 루카의 조상과는 연관이 없다.

내가 익힌 연공법과 검술과 관련이 있다.

‘검귀.’

내가 보고에서 가져 나올 물건은 검귀가 생전에 쓰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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