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로 살아남기 57화>
57. 갱스 오브 퍼스트(4)
[스킬: [전투 전문]의 등급이 ‘B’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1, 체력+2]
[스킬: [한손검 전문]의 등급이 ‘D’가 되었습니다. 근력+1, 민첩+2, 체력+1]
내 시야에 익숙한 알림이 보였다.
아, 끝이구나. 나는 문구를 보고서야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러자 [오버 클럭]의 여파와 오러 소진으로 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우욱!”
위장의 내용물을 몇 차례 게워 낸 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아작이 났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터.
곤죽이 되어 버린 흡혈 도마뱀의 시체.
원뿔 모양으로 반듯하게 잘린 지면.
무너져내린 동굴 입구.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돌과 나무.
검강이 닿은 모든 곳이 파괴되었고 소멸했다.
물론, [오버 클럭]의 효과가 더해지지 않았다면 이만한 파괴력은 못 냈겠지.
그걸 생각해도 [그림자 난무]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B등급만 되어도 이 정도란 말이지.’
스킬의 경우.
영웅 등급부터는 숙련도의 끝이 A가 아니라 S등급이다.
이어서 내가 익힌 전설 등급의 스킬은 숙련도가 SSS등급까지 있다.
따지자면 검술 숙련도의 절반 정도를 올린 것인데, 문제는 앞으로 올릴 숙련도였다.
‘확실히 이 속도면 불안하긴 하지. S등급으로 올라가는 숙련도는 몇 배나 되니까.’
악마를 상대할 수 있을 수준.
최우선 목표는 검술 S등급이다. 그리고 오러를 성장시켜 3번째 벽도 넘어야 한다.
이 모두를 충족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우선 시타델로 갈 필요가 있었다.
“일단 보상이나 얻자. 이놈은 얻어낼 게 별로 없긴 한데.”
나는 고위 마족의 시체에 손을 집어넣어 새빨간 돌조각을 꺼냈다.
혈정석. 마족의 핵과는 다른, 아주 높은 수준의 뱀파이어에게서 나타난다는 희귀한 광석이었다.
마기를 분리해 가공한다면 아주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었다.
“거기 누구야!”
“천천히 손을 들고 얼굴을 보여라!”
때마침 수사관 둘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말대로 순순히 손을 들고 밝은 지역으로 걸어 나왔다.
전신에 묻은 붉은 체액, 그 끔찍한 몰골을 본 두 남자가 나를 정조준했다.
“신원을 입증할 수단이 있나?”
수사관은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의 뒤로 수사관들이 대거 나타났고, 나는 핑거톤의 리볼버와 블랙 카드를 건넸다.
황무지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볼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수사관들에게 체포당했다.
‘미리 얼굴이라도 봐둬야, 나중에 편할 테니까.’
* * *
잠시 후.
나는 수사국 본부 건물 안에 있는 심문실에 구금되었다.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통유리,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문. 심지어 오러를 운용을 방해하는 마법진도 설치되어 있었다.
시각은 벌써 새벽. 수사관들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서 나를 여기에 혼자 두었다.
역시 공무원들의 행정력은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인가?
‘진짜 그 사람이 나오기는 할까 모르겠네.’
아마도 나오긴 할 것이다.
게임에서도 나름 또라이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그럴 무렵, 내 감각에 심문실로 다가오는 두 남자의 기운이 포착됐다.
“지금 안에 있나?”
“예, 그렇습니다.”
“설마 혼자 기다리게 둔 것은 아니겠지?”
“그, 그렇습니다만. 도착하실 때까지 본부에 잡아 두라고…….”
“어떻게 일 처리를 그렇게 하나! 심문실에 감시하는 인원 전부 빼고 다들 물러나 있게. 으하하! 대어를 낚았구나!”
남자 둘이 이야기하며 이곳으로 걸어왔다.
상사로 추측되는 남자가 부하를 타박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수사국의 총책임자 에드가 국장, 그는 자물쇠가 걸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부하들이 결례가 많았소. 나는 연합 수사국의 국장인 에드가라고 하오.”
“루카입니다.”
나는 그와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다.
록펠스 그룹의 직원에게 맡겼던 편지는 수사국에 배달되었다.
그 편지에는 내가 파이브 포인트에서 마족의 행동을 파악했고, 수사관 파견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역시나 국장도 그 사실을 말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오. 당신이 보낸 편지도 봤고 고위 마족의 시체도 확인했으니 당신은 무죄방면이 마땅하오. 다만.”
에드가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원래라면 고위 마족을 처치해준 사람이 되어 국장의 호감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묘하게 흘러간다.
“어째서 이 사건을 혼자서 몰래 처리하셨소?”
고위 마족과 관련된 일은 국장이 나설 만큼 중차대한 사항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국장은 노스페라투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위 마족보다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말인데,
“질문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어째서 이 중대한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려 하냐는 것이오.”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사건이었다면 누군가는 데려왔을 터.
조건이 갖춰졌기에 홀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무엇보다 스칼렛과 클리프에게 이 사실을 알려, 아픈 기억을 심어 둘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에드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걸 굳이 말해야 합니까.”
“흠, 이유는 굉장히 중요하오. 당신은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소?”
에드가는 가불기를 걸며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커다란 호기심이 있다는 느낌. 그는 잠시 정적을 유지하다가 슬며시 질문을 내보였다.
“아니면 혹시, 당신이 그림자이기 때문이오?”
에드가의 질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가 지칭한 ‘그림자’라면, 판게아 대륙 북부의 중앙, 알타이르 산맥에 근거지를 둔 그 조직을 말한다.
그래, 게임에서 클리프를 죽이려다 본인들이 멸문당한 그 미친 싸이코 집단 말이다.
덩달아 내가 익힌 검술의 원래 주인이기도 하고.
에드가는 본인의 압축 주머니에서 정리된 문서 파일을 꺼내 건넸다.
“사실 꽤 이전부터 당신을 주시하고 있었소. 읽어 보시오. 수사국 본부에서 당신을 조사한 문서이니.”
나는 덤덤하게 서류철을 확인해 보았다.
우선 나의 출신지랑 나이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티끌 하나 없는 진실 그대로.
해결사 자격을 취득하며 조작한 정보도 빗금으로 표시해 놨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용하는 검술과 여러 정황을 추론하며 ‘그림자’의 방식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눈에 띄었다.
이 양반은 참 성실하네.
“잘 읽었습니다. 에드가 국장님.”
“하하하! 소문으로만 듣던 그림자를 직접 보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하오. 당신들은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으니까. 솔직히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
“그림자라면 나와 같이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지. 당신들의 목적은 모든 정보의 접근이라고 들었소.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당신의 팬이오. 내가 앞으로 당신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다니. 이 사람은 진짜다.
에드가 국장은 자신의 본분에 맞게, 무역 연합에 일어나는 일들을 열심히 수사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상대는 나를 그림자의 일원으로 착각하고 있다, 요런 말이지?
내가 원하던 대로 상황이 화기애애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에드가와 협력할 방안을 떠올렸다.
“에드가 국장. 시험에 통과하신 걸 축하합니다.”
나는 우선 개소리를 지껄이며 국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상대가 주도하고 있는 이 상황을 나에게 당겨올 필요성이 있으니까.
“시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 자유 무역 연합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뭔 소리인지. 일단 말이나 해 보시오.”
“우리는 수 세기 동안 무역 연합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는 이상 징후를 파악했습니다.”
좋아, 일단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어.
나는 최대한 혀를 유연하게 만들며 열심히 이빨을 털었다.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마족은 대대적인 침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침략이야 항상 있었소. 평의회 연방이 암흑대륙을 놓고 마족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소이까?”
“단순한 교전이 아닙니다. 악마와 대악마가 직접 참전하는 대규모 공세입니다. 마치 차원 대전쟁처럼요.”
에드가는 원래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탈바꿈되었다.
즉, 내 말이 어느 정도 통하고 있다는 말이지.
“혹시 이번에 있었던 세븐 시티와 조금 전에 제거한 퍼스트 시티의 고위 마족이 그 증거요?”
심지어 에드가는 똑똑하기까지 했다.
이래야 말이 통하지! 더글라스는 너무 멍청해서 숟가락을 입에 들이밀어야 삼켰다고.
“그렇습니다. 전부 우리가 처리한 일이죠.”
“당신의 실력은 인정하오. 다만 세븐 시티의 일은 프레스턴이 대부분 해결한 것으로 아오. 당신은 그저 비토 폰테인 회장을 암살한 것뿐이잖소?”
맞는 얘기지. 너무 아파서 뼈가 시큰거리네.
그렇다면 해답은 ‘묶고 더블로 가!’가 가장 적합했다.
“아직 그곳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군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저 나는 당신이 ‘모든’ 정보를 알고 나를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역시 아직 공조는 힘들겠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존심이 급격히 추락한 에드가는 다급히 팔을 들어 나를 막아섰다.
“당신은 내 허락 없이 여기서 나갈 수 없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보시오.”
“정 그러시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무역 연합에서 활동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사실이잖소.”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역 연합이 건국되던 때부터 당신들과 늘 함께였습니다.”
“그게 무슨. 설마!”
핑거톤의 리볼버와 록펠스의 블랙 카드.
무언가가 에드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희열과 두려움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소?”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진실에 더 가까워지면 그때 나를 다시 찾아오십시오.”
나는 에드가의 팔을 밀며 문으로 걸어갔다.
국장은 나를 막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나는 심문실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에드가 국장, 당신은 동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 심문실에 사람을 배치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의지가 맞습니까?”
심문실과 이 주변에는 어떤 수사관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건 당연히 에드가가 나를 마음 놓고 압박하기 위함이지만. 이런 식으로 말해 놓으면 뭔가 느낌이 이상하잖아.
‘에휴, 저놈이 노스페라투보다 더 쫄깃하네.’
어쩐지 일이 쉽게 끝나더라니.
이번 보스 몬스터는 노스페라투가 아니었다. 첩보전에 이골이 난 변태 국장이 진짜 빌런이지.
내가 심문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때.
[특성: [침.착.해]의 효과가 제거되었습니다.]
[특성: [위압자]의 효과가 제거되었습니다.]
[특성: [천의 얼굴]이(가) 개방되었습니다.]
[[천의 얼굴]의 효과로 항상 강력한 평정 상태가 유지되며, 설득 확률이 매우 크게 상승합니다. 영웅 등급 이하의 모든 심문 스킬과 특성 효과가 차단됩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거짓말이 드러날 확률이 극히 감소합니다.]
미친 영웅 등급 특성이라니.
하도 구라를 치고 다니다 보니 이런 명예스러운 불명예도 생겼다.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수사국 본부를 빠져나왔다.
‘이제 당분간 무역 연합과도 작별이네.’
마도 왕국 시타델.
이제 다음 성장 빨대를 꽂을 장소로 떠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