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로 살아남기-53화 (53/204)

<고인물로 살아남기 53화>

53. 위대한 열차 도둑 (3)

세컨드 시티 내부의 어느 별장.

록펠스 그룹의 소유로 알려진 이 대저택에 세 사람이 모여 앉았다.

부회장 데이브, 집사장 레너드, 나머지 한 명은 록펠스 그룹의 회장이었다.

제프 록펠스, 그는 생명 보조 장치가 달린 휠체어에 앉아 아들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자코 기다리던 노인은 결국 한숨을 쉬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뭔 뜸을 그리 들이는 게냐. 어차피 다 짜고 치는 포커판인 것을. 쯧.”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그런 짓을 하시고도 제 얼굴을 보면서 사셨습니까?”

데이브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며느리이자, 아들의 아내를 괴롭히고 가문에서 쫓아내 버렸다.

정확히는 레너드가 한 짓이었으나 그는 실행자일 뿐, 주체가 누구일지는 뻔할 뻔 자였다.

두 부자 가운데에 낀 레너드는 진땀을 흘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도련님. 저를 벌해 주십시오. 저의 불찰로 메리 아가씨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만하게. 자네는 늘 과묵하더니 갑자기 말이 많아. 그래, 내 지시로 레너드가 그 여자를 괴롭혀서 쫓아냈다. 어쩔 거냐?”

“……어떻게 며느리에게 그런 짓까지 하십니까.”

아들의 호소에도 노인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우선, 메리인가 뭔가는 내 며느리가 아니다. 내 며느리랑 손주는 지금 네 집에 사는 그 사람들이 아니냐.”

“아버지가 정해 주신 아내죠. 제 아내를 빼앗은 다음에요.”

“그래서. 네 처자식을 버리고 시체도 안 남은 여자랑 살 생각이냐?”

“저는 여태 해왔던 대로 그룹과 제 처자식도 모두 책임질 겁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냐.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될 것을 뭣 하러 여기까지 와?”

제프는 거듭 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앙상한 몸에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남았고 혈색은 영 좋지 못했다.

제프의 죽음은 머지않았다. 그 사실은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아는 정보였다.

하지만 시체와 다름없는 몸으로도 제프는 분위기를 압도해냈다.

“뭐가 그리도 당당하십니까.”

“나는 가문을 지켰고, 키웠고, 록펠스의 이름을 온 세상에 퍼트렸다. 당당하고 말고! 네놈이 애첩 때문에 눈이 돌아간 거라면, 차라리 날 죽여라!”

제프는 아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그는 후회하는 법이 없다.

항상 결정을 내리면 밀어붙였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더라도.

“메리야 그렇다 쳐도, 스칼렛은 어찌 되었든 아버지의 손녀입니다.”

“내가 그 아이를 죽이기라도 했느냐?”

“사실상 죽도록 내버려 둔 것 아닙니까.”

“나는 그 여자가 내 손녀를 놓고 혼자서 떠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손녀까지 챙겨갈 줄은 나도 몰랐지. 물론,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해서 이후에 찾지는 않았지만.”

어쩜 저리도 뻔뻔할까.

너무나도 태연하게 악행을 고하는 모습에 데이브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도 메리가 빈민가에서 산다는 사실은 아셨죠? 뜻대로 돼서 아주 즐거우셨겠네요.”

“아니, 아예 신경을 꺼서 몰랐다. 확실히 숨어서 살기에는 그 시궁창이 좋기는 하지. 그리 보면 그 여자가 배포 하나는 커. 아주 대장부야.”

“어떻게, 어떻게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못 말합니까!”

데이브의 고성에 제프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되려 악마 같은 미소로 리볼버 하나를 꺼냈다.

“내가 그래서 죽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사죄다.”

데이브는 아버지가 건넨 총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딸을 자신의 옆에 두고 싶은 것이었으니.

“그럴 줄 알았지.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네 딸내미나 들여보내거라!”

제프는 아들의 속내를 눈치채고 호탕하게 웃었다.

* * *

나와 스칼렛은 밖에서 안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게임에서는 저 할아버지가 죽은 다음에야 데이브를 만나니, 이번 대화는 나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진짜 장난이 없네.’

나는 스칼렛의 옆에 앉아 제프 록펠스를 힐긋 보았다.

일단 저 양반은 개쓰레기다. 무서운 건 그걸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에게 도움이 될 좋은 개쓰레기인 건 틀림없다.

“자네가 비토를 골로 보냈다던 그 젊은이인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제프의 시선을 좇았다.

어쩐 일인지 회장의 신경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스칼렛을 무시하려는 처사겠지.

“아마 맞을 겁니다.”

“놀라지도 않는군,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 정체를 숨기고 다닌 게 아닌가?”

“딱히 알려져도 상관은 없습니다. 유명해지면 다른 이들이 노리기 쉬워져서 숨긴 겁니다.”

“도살자라는 별명치고는 화끈한 맛이 없구나.”

“저는 재미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서요. 아! 권력에 취한 늙은이를 죽이는 건 예외입니다.”

찌릿.

[예리한 감각]이 매서운 살기를 경고했다.

방 안에는 원래 있던 셋에 나와 스칼렛 말고도 한 명이 더 들어왔다.

록펠스 PMC의 사장, 페도르는 그룹에서 무력을 총괄하는 제프의 수족이었다.

‘저 사람도 오러 500점이 넘는, 2번째 벽을 넘긴 사람이었지.’

나는 제프의 뒤에 선 남자를 쳐다보았다.

정돈된 콧수염의 사내는 일순간 오러를 응집해 나에게 쏘아 보냈다.

오러 프레셔, 나처럼 신체가 재구성된 오러 사용자들이 쓸 수 있는 응용 기술이었다.

“뒤에 있는 아저씨가 저를 죽이려고 드는데요.”

“허허허, 페도르의 기술을 태연하게 받아내다니. 점점 더 탐나는 젊은이구만.”

팡!

두 기운이 맞부딪히며 전등이 터져나갔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나와 페도르는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며 자웅을 겨뤘다.

실제로 나는 총력을 다해 저항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놀아 주며 실력을 적당히 드러낼 뿐.

애당초 이런 젊은 나이에 소위 ‘2번째 벽’을 넘어선 것만 해도 제프가 군침을 줄줄 흘릴만하지.

페도르는 어느 정도 실력을 파악하고 기운을 거둬들였다.

“저처럼 두 번째 벽을 넘었습니다.”

나의 실력을 확인한 페도르는 제프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제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흥미로운 듯 탐욕이 깃든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손녀가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구나. 이런 훌륭한 신랑감도 데려오고.”

“루카는 제…….”

“그냥 친구라고? 글쎄 단순한 친구가 목숨을 걸고 내 방에 들어오지는 않을 텐데.”

“무슨 말씀이신지…….”

“내친김에 날짜도 잡는 게 좋겠구나. 결혼식은 리버티 교단에 맡기면 될 테고.”

제프의 아무 말 대잔치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고 일부러 스칼렛을 흔들어 말문을 막아 버리려는 속셈이었다.

뭐, 본인은 아쉬울 게 없다는 뜻이겠지.

‘내 비밀도 알고 있으면서 설마 스칼렛의 소문은 못 들었을까.’

비교적 숨어다닌 나와 다르게 스칼렛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다녔다.

즉, 저 할아버지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뜻.

역시 이럴 때는 실력 행사만큼 좋은 게 없다.

나는 스칼렛에게 눈치를 줬다. 적발의 소녀는 ‘정말?’이라는 뜻을 담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웅!

아무런 전조 현상 없이 방 안의 물건이 떠올랐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일제히 기물들이 날아올랐고 스칼렛은 손바닥을 움직이며 자유자재로 물건들을 조종했다.

“할아버지는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것 말고도 여러 기술을 쓸 수 있고요.”

“재미없구나, 텔런트로 거저 얻은 힘이 뭐가 능력이라고.”

제프는 혀를 차며 스칼렛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 능력으로는 부족하다. 록펠스 그룹은 마도왕국 시타델과도 연이 닿아 있는바.

마음만 먹는다면 실력 있는 마법사를 빌려 올 수도 있었다.

제프도 내 생각처럼 곧바로 스칼렛을 쏘아붙였다.

“고작 그 정도로 록펠스 그룹의 비호를 바라는 게냐?”

“아뇨, 저는 엄마의 명예를 위해 왔을 뿐이에요.”

“명예라. 그런 것에 목숨을 걸다니 어리석은 것.”

“네, 저는 할아버지와 다르니까요. 약자들을 보호할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웃기는 아이구나. 네가 20만이 넘는 노동자와 80만이 넘는 가족들을 먹여 살렸느냐? 아니면 황무지 전역에 소금을 공급했느냐. 전쟁에서 군인 수만 명의 보급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나 해봤느냐?”

“...”

“록펠스는 그 모두를 해냈다. 네가 바라는 그 잘난 영웅놀음? 우리는 자유 무역 연합이 건국되었을 때부터 영웅이었다. 우리의 그룹이, 우리의 가문이!”

저 양반은 왜 갑자기 핏대를 세우고 그래.

나를 포함한 모두가 3단 고음으로 향하는 제프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분위기가 너무 격해지기 전에 나서야 하는데.

나는 대화에 끼어들 적절한 각을 쟀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프의 의도가 조금씩 파악되었다.

이 할아범 완전 A급 동기부여가잖아?

쿵!

결국, 사단이 일어났다.

스칼렛이 염동력으로 띄운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할아버지에게 있는 힘껏 압박당한 스칼렛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여태까지 말씀하신 그 일! 저는 할 수 없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개인이고 가진 것도 없으니까요.”

“알면서 큰소리는. 나중에 이불이나 차지 말고 이쯤에서 다시 자리에 앉거라.”

“아뇨! 제 말 아직 다 안 끝났어요. 할아버지는 제 나이에 무엇을 하셨죠? 수천 명의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막으셨나요?”

“흥, 그까짓 시위대 몇 명 살린 것 가지고 생색은. 결과적으로는 핑거톤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았느냐.”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제프.

스칼렛은 그에 대항해 열을 내며 말을 이어 갔다.

“저는 맨몸으로 천 명의 마피아를 막았고, 여태까지 죽을 뻔한 부상자를 100명도 넘게 치료했어요. 오직 저의 힘으로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네가 나보다 우월하다? 뭐, 이런 말…….”

“네!”

미간을 찌푸리고 목소리를 높인 스칼렛은 멈추지 않았다.

성큼성큼 제프의 앞으로 다가간 소녀는 천하에 선포하듯 외쳤다.

“저는 여기서 훨씬 성장할 수 있고,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라 투자하라고 제안하는 거예요! 지금이 가장 싸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비싸질 테니까요!”

“정말 오만방자하구나.”

“한심하네요. 록펠스에 최고의 영애를 가져다줄 저를! 손녀라는 명목으로 저렴하게 사지 못해서 평생 후회하실 테니까요!”

“그러면 나야 좋다만. 너는 무엇을 얻느냐?”

“할아버지가 틀렸다는 증거요! 제 엄마를 욕보이고 천대한 할아버지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엄마의 명예를 지키는 거죠!”

스칼렛은 뜨거운 콧김을 뿜고서는 속 안의 말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녀가 유독 화를 내는 것은 조금 전에 제프가 어머니인 메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니까. 아무튼 잘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프가 놓아준 약발은 거기까지였다.

얼굴이 달아오른 스칼렛은 휑하고 문을 열어 장소를 떠나고 말았다.

“잠시, 잠시만. 스칼렛!”

딸을 빼앗겼다가 되찾은 데이브는 혹시나 다시 놓칠세라 소녀를 따라 방을 떠났다.

이제 소파에 앉은 사람은 나 혼자.

제프는 흉악한 미소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배짱이 없지는 않구만, 그 어미에 그 딸이겠지.”

노인은 살짝 가만히 있더니 다음으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정에서 보이는 생각은 이랬다. 너는 왜 안 따라 나가고 여기 앉아 있니?

“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니까요.”

“그런 이유였나? 뭔지 말해보게. 내가 손녀에게 줄 선물이 뭔지.”

“소개장입니다. 하나는 스칼렛이고 나머지 하나는 제 것이죠.”

“내가 무슨 이유로?”

“사랑스러운 손녀를 여기까지 데려왔고, 무엇보다 저는 회장님께서 탐내시는 인재니까요. 저도 스칼렛처럼 염가에 팔겠습니다.”

“뻔뻔한 놈.”

제프는 그리 말하면서 내게 손짓했다.

“불러보게. 내 힘으로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하나는 시타델 수도에 있는 패트릭 교수입니다.”

“음, 그 인간은 텔런트 보유자를 전문으로 육성하는 사람이지. 이 사람이라면 스칼렛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군. 다음은?”

검.

내가 원하는 것은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이름 없는 검이다.

하지만 그건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물건을 찾을 방법은 단 하나였다.

“시타델 왕국의 여왕. 빅토리아 5세를 알현할 소개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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